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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해도 저자는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그러니까 제목을 그렇게 지었겠지.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랄 때만해도 남자가 눈물이 많으면 안 된다고 했다. 오죽하면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했을까? 그만큼 인생에 있어 중요한 때를 간과하지 말고 울라는 뜻도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좀 바꿔도 되지 않을까? 울고 싶으면 수시로 울되 중요한 세 번은 지나치지 마라. 뭐 그런 뜻으로 말이다.(더구나 여자는 울어도 되고 남자는 울면 안 된다면 그건 사회적으로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불행한 사회인가.) 솔직히 어찌 어찌하다 보니 때를 놓치는 때도 많지 않은가.
저자는 기자면서 왜 그렇게 눈물에 관심이 많은 걸까?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서는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온다. 하긴, 우리가 세월호를 어찌 있을 수 있을까? 저자는 기자로써 세월호를 취재하기도 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슬픈 소식을 들으면 그냥 울어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소식을 전하는 기자나 앵커는 울면 안 된다. 그러나 그 사건을 취재할 땐 아마도 우리 보다 몇 배의 눈물을 흘리고 삼키지 않았을까? 그것을 소회처럼 남겼다.
언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김대중이나 김영삼 대통령 때도 국가적으로 세월호만큼 재난이고 슬픈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땐 그냥 하나의 사건으로만 취급되어 건조하게 보도만하고 지나간 경우가 많았다고. 그래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보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삼풍백화점 붕괴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로부터 거의 20년 만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물론 그 사이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을 대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더 이상 그것을 개인적 사고로만 보지 않게 된 것이다.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세월호는 분명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그 토록이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했다는 건 내 이웃의 아픔을 끌어안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일에 같이 아파하고 울어주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 사회는 분명 좋은 사회고, 건강한 사회가 될 확률이 높다고 믿는다.
이 책 어딘가 에도 저자가 그런 말을 한다. 눈물방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피시방, 비디오방처럼 눈물방이라는 걸 만들어서 편히 몸을 기댈 수 있는 소파에다 각 티슈 몇 통 갖다놓고, 종업원은 손님의 울고 싶은 심경을 건드리지 않게 최소한의 안내만 한다. “한 시간 동안 우는 데 삼천 원입니다. 필요하시면 함께 울어드리는 서비스도 있습니다.”라고.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법 그럴 듯하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지하철을 타고가다 어떤 젊은 아가씨가 전동차 출입구에 기대서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우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게 벌써 10년쯤 된 일이었던 것도 같은데, 그녀는 왜 우는 걸까? 아는 사이라면 어깨라도 빌려줬을 텐데, 오히려 무심한 척 외면하려니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도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했고, 잔칫집 가기를 바라지 말고 초상집 가기를 더 바라란 말도 있다. 모든 사람이 지하철과 버스만 타면 다 스마트폰만 보고, 졸고 있는 것 같아도, 또 많은 사람이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는 것 같아도 누군가는 그렇게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상해 보라. 백만 년 후의 사람들은 눈에 눈물샘이 퇴화되어 웃기는 하는데 우는 것을 모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지.
저자는 기자란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자라는 완장을 떼고 온전히 인간으로 돌아가 쓴 저자의 에세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것도 이제 40대에 든 남자의 인생 고백이 들어있다.
나도 40대 이전을 생각해 본다. 20대는 좌충우돌이 많았고, 그나마 30대쯤 되니 비로소 세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30대 때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자존심이 팽팽했던 시절이었다. 나만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세대를 살고 있는 선후배들 역시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니 그 안에서 얼마나 자존심의 싸움이 치열했던가. 그게 언제까지나 계속 된다면 난 오늘 이렇게 한가하게 이 책의 리뷰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40대는 확실히 꺾였다. 옛날 같이 피터지게 싸울 힘도 자존심도 없다. 뭔지 긍휼에 눈이 뜨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평생 미워할 것만 같은 사람도 (물론 여전히 밉겠지만)너도 사느라 힘들겠구나 조금은 한숨 지어줄 생각이 드는 나이가 40대는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계셔줄 것 같은 부모가 정말 늙으셨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나이도 40대다. 그래서 저자는 세월호에 대한 단상 못지않게 부모에 관한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저자가 부모가 되고 보니 자신의 부모가 더 선명히 보이는 것이다.
인생은 살아지는 것 같아도 사느라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지 때로 미친 척이라도 해서 짐을 털어버리고 일탈을 꿈꿔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으련만, 꾸역꾸역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힘들게 살지 말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말없이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도 40이란 나이에 들어서면서부터가 아닐까. 그 40대를 이 책에서 발견하고, 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잘 건너오시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밖에 책이 못지않게 할애한 건 문학과 음악에 대한 단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3분의 1씩을 할애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월호를 빙자해 자신의 일에 관한 이야기/ (조)부모와 가장으로서의 이야기/ 취민지 투잡인지 모를 팟캐스트 운영자로서 문학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중간 중간 끼어드는 저자의 단상들로 구성된. 그렇게 되면 4분의 1이 되는 건가? 아무튼.
기자가 문학에 관한 글을 쓰면 꽤 흥미롭다. 작가나 기타 문학 종사자들이 문학 작품을 쓰는 것 하고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 이 책도 그랬다. 모르긴 해도 작가는 한때 작가를 꿈꾸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문학에 관한 애정이 느껴지고 실제로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작가는 무엇으로 글을 쓰는가? 나는 오래도록 분노가 너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 것이라던 나의 사부님의 말씀을 철석 같이 믿었고, 나는 그것으로 세례를 받았다.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요즘은 좀 달라졌다. 분노만이 글을 쓰게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다.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을까? 그중 하나가 분노겠지.
저자는 작가를 꿈꾸기 전에, 기자가 되기 전에 오래 전부터 독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소설과 시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게 좋은 소설이란 가장 잘 아파하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타인의 고통을 잘 느끼는 작가가 등장인물의 아픔 속으로 깊이 들어간 소설이, 나는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게 인물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는데, 좋은 소설은 그 이해의 공감대가 넓고 깊게 형성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106~107p)
이 말을 후에 유안진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뒷받침 해주고 있기도 한데, 유 시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시인은 져야 합니다. 져줘야 이기는 게 시거든요. 지는 건 진실이고 이기는 건 사실이죠. 역사(사실)는 승자의 기록이고 문학(진실)은 패자의 기록이잖아요. 진실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게 문학이죠.” 그리고 저자는 이 말 끝에 이런 말을 남긴다. 진실이 패자의 기록이란 말은, 진실이란 결국 패배한 이들에게서 길어낼 수 있다는 뜻일 테다. 또한 좋은 소설에는 좋은 대화가 있다고 했다. 좋은 대화는 소설의 이야기를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삶의 진실을 가장 나긋나긋한 방식으로 일러주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저자는 베스트셀러는 잘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온전한 책의 힘이 아니라, 잘 설계된 기획의 산물처럼 여겨져서라고 한다. 출판시장에서, 잘 기획된 책은 잘 쓴 책을 자주 이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취향에서, 잘 쓴 책은 잘 기획된 책을 항상 이기고야 만다고 했다. 이게 다 책은 단순한 글 묶음 상품이 아니라, 글 그 자체여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며 당분간 그 편견을 고칠 생각이 없다고 단언한다.
이런 독자를 단 한 사람만 알고 있어도 작가는 글을 쓰는데 힘이 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자신의 글을 쓰기도 전에 세상의 잘 기획되고 편집된 글에 목을 매는지. 또한 독자는 요즘 잘 나가는 책이 뭔지를 알아 스스로의 선택을 유보하거나 불신하는지. 작가도 글을 쓰는데 자기 철학이 있어야하듯, 독자도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자기 철학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러면 더 좋은 책 세상이 될 텐데. 너무 우주적인 바람을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안진 시인의 말처럼, 기자 역시 승자의 기록이나 쓰는 역사가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약하고, 소외되고, 문제 많은 곳을 건드려주고 보여주는 게 기자 정신에 더 부합되지 않을까? 저자는 그런 낮은 곳을 볼 줄 아는 따뜻한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아 흐뭇했다. 또한 이곳저곳 밑줄 긋다 나중엔 그것을 포기했다. 공감하고 생각할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세월호로 돌아가서, 마침 오늘 세월호가 똑바로 세워졌다는 뉴스 속보를 보았다. 무려 4년의 일이다. 기울어졌던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데 왜 그처럼 많은 세월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앞서 같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좋은 사회, 건강한 공동체로 나가는 징조라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린 그 사건으로 인해 이미 너무 많은 가족들이 상처를 받았다. 국가가 국민과 가족의 안위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함께 흘리는 눈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난 4년 동안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난 아무런 답도 달지 못했다. 사실은 그런 불행한 일에 함께 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나눌 좋은 일이 더 많아 함께 웃을 수 있으면 그게 더 좋은 일 아닌가.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 글제목은 줄리아하트 밴드가 부른 <당신은 울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 제목을 그대로 옮겼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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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 유명한? 작가라지만, 난 시사쪽에는 관심이 잘 없어 누군지는 모른다. 헤헤. 기자일을 하면서 겪은 일들이 주로 기술되는 에세이. 우리 사회를 비판하기도하고, 본 모습을 그대로 그리기도 하고. 표현은 담담하거나 약간은 격동적?인.. 정치부 기자의 에세이! 지만 정치외의 부분도 많이 다룬다. 사회의 다양한 사건과 자기가 좋아하는 시, 소설 등ㅇ의 문학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일례로 제목이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인 것 처럼 읽다보면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다. 초반부를 지하철에서 읽다가 바보처럼 눈물을 훔칠때도 있었던..ㅎㅎ 이상하게 부모님 얘기만 나오면 울게돼, 그래서 싫어. 엄청 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탓일까?
또한 관련되어,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 때 생각에 또 조금 울컥. 언제쯤이면 무뎌질까 세월호. 아니 무뎌질수는 있을까.. 그때 호르몬의 영향으로 상당히 우울했는데, 세월호는 불난집에 기름이라도 붓듯 촉진제가 되어주었고 덕분에 엄청 엉엉 울면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눈물로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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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정강현 작가는 JTBC기자 이기도 합니다. 정강현 작가는 기자이지만, 몇 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한 작가로 산문집뿐만 아니라 소설집을 내기도 한 아주 글을 적는 것에 관심이 많은 작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라는 이 책도 정강현 작가의 산문집으로, 여러 에세이들을 책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제목만 봐도 어느 정도는 내용을 알 정도로 아주 간결하고, 핵심을 잡아내는 듯한 제목들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자세하게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넣어 이야기 하는 모습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자가 중앙일보에서 사회, 문화, 정치 담당 기자로 일해서 그런지... 사회적인 부분을 아주 잘 발견해 글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지나쳐 버리고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일들도 저자는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며 글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정말 사소해 보이는 내용도 빠뜨리지 않고, 작가의 추억과 작가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한 글입니다. 그래서 더 공감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을 그냥 살아가다보면 쉽게 놓치고 지나가는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만큼 인생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래서 더 정강현 작가의 에세이집인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라는 책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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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는 JTBC '정치부회의' 정강현의 3번째 산문집니다. 전작인 두 권의 산문집이 각각 음악과 시를 서술한 것이라면 책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는 정강현 자신의 내밀한 삶을 돌이켜보고 증언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정강현은 서른 즈음에서 마흔 즈음에 이르는 동안 발견한 진실은, 바로 눈물 그 후에 벌어지는 일에 관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눈물은 결국 슬퍼서 쪼그라들었다가 감격해서 부풀었던 마음까지도 간질이고, 이내 개운하게 도달하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연유에서 비롯됐던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우리의 영혼은 개운해져서, 어김없이 한 뼘 자라난다. 자신의 삶의 페이지마다 눈물은 제각각 다른 맛을 내면서 영혼을 살찌웠다고 말하는 정강현의 산문집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은 그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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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정강현 1977년생이며 서강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0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사건 담당), 정치부(국회 담당), 문화부(대중음악/문학) 등을 두루 거치며 10년째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2011년 겨울까지 대중음악 분야를 취재하면서 인디 음악에 푹 빠져버렸다. 중앙일보 지면에 연재한 ‘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이라는 칼럼으로 화제를 모았다. 저서로『당신이 들리는 순간』『한류 DNA의 비밀』(공저)이 있다. [예스24 제공] . . . 최근에 나는 언제 울어봤던가.. 눈물이 많진 않지만, 한번 흘리면 주체하기가 힘이 든다. 그렇게 쏟아낼 수 있는 눈물이 나에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타인의 삶에서든 내 삶에서든 눈물이 날 자라게 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눈물은 나에게 늘 뜨겁고, 나에게 참 벅차다. 박완서 선생은 생전 이런 글을 적었다. "이 나이에, 머지않아 증손자 볼 나이에도 지치거나 상처받아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이불 속에서 몸을 태아처럼 작고 불쌍하게 오그리고 엄마, 엄마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서럽고도 서럽게 엄마를 찾아 훌쩍인다면 누가 믿을까." 우리 엄마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을 것이다. 엄마도 요즘처럼 지칠 때는 밤마다 엄마의 엄마를 숨죽여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5년이 흘렀다. 친정엄마는 정말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세상에 남은 고아가 되어버린 느낌이라며 내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으신다. 지금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전화로 들리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나의 엄마가 아닌 할머니의 딸로써 엄마가 보고픈 딸의 모습이라 느껴져서 더 마음이 아프다. 우리 모두 어른이 되어 어른인 척 살아가지만 아직까지 엄마, 엄마하고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처럼 엄마를 찾아 헤맨다. 나또한 시집을 가서 집을 나온지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친정집은 엄마가 있어서 포근하고 따스한 곳이다. 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른다란 생각도 들 때가 많고 정말 힘들 땐 엄마가 마냥 그립고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한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삶이 버거울 때, 전화걸 엄마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실감이 들지.. 난 미쳐 생각지 못했다. 인생이란 어쩌면 단 한 개의 치약, 한번 짠 치약을 다시 넣을 수 없듯, 한번 흘러간 인생을 다시 주워 담을 순 없다. 그러니까 아버지란, 온전한 사랑을 다 짜낸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게 치약처럼 짜이고 또 짜여가며, 우리는 겨우 아버지가 된다. 한번 짠 치약.. 치약에 비유한 표현이 참 맛깔스럽다. 아버지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 그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던 그 힘겨운 자리를 지금도 지켜주고 계신 것에 감사한다. 내가 부모가 되고보니 더 많은 걸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더 깊은 생각 속에 어른이 되고 철이 들어간다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도 깊은 사색으로 이어지니 책장을 그냥 막 넘길 수가 없다. 나 역시도 수 만 번의 양치질을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기에 이 책에서의 이 표현이 내가 양치질을 하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자꾸 회상되어질 말이 아닌가 싶다. 얼마나 짜여진 치약이 놓여있는가.. 아직 남겨진 치약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나와 함께 할 추억도 그 안에 녹아져 있을걸 생각하면 두근거린다. 삶이 녹아져있는 이 책의 감동적인 메시지가 너무도 멋진 책이란 걸 읽으면 읽을 수록 그러하다. 쉽게 넘길 수 없는 책장과 씨름하면서 그렇게 나도 내 인생 앞에 놓여있는 희로애락을 이 책 속에서 많은 물음과 답하며 맞서고 있다. 뜨겁게 눈물 흘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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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를 맡아오던 사회, 문화, 정치 담당기자였던 그가 책을 몇권 출판했다고 한다 그것도 산문집과 소설집으로 뭔가 해당분야의 기자들은 사실만을 전해야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잘 파헤쳐 전달해야 하는 입장이고 역할이다 보니 감수성이 발달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있던 감수성 조차도 파괴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일반적인 생각을 해왔었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흘러내린 별, 눈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이 울어본 삶이 더 반짝인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이게 되고, 청승맞아 보이는 상황이 있을지언정 우리는 그 눈물이라는 별을 항해한다고 말해주는 그의 글 저자에 대해 생각했던 편협했던 내 생각또한 바뀌게 하는 그의 글이다 눈물, 우리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그 눈물은 뭉클한 생명의 액체이다 생명의 시작도 눈물, 그것을 거두는 행위도 끝내 눈물이니 우리는 삶속에서 슬퍼서 기뻐서 서러워서 감격해서 울고 또 울며 성장한다 삶의 변곡점마다 동행해왔던 눈물 저자는 그 눈물이 쏟아내고 나면 우리의 영혼을 개운하게 하며 어김없이 한뼘 자라나게 한다고 한다. 한바탕 쏟은 후 우리는 영혼의 배가 불러진다 눈물의 맛과 종류도 다양하겠지만 결국 눈물로 자라온 우리는 울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명언을 남긴다 다양한 경험과 소재, 사례를 통해 저자가 느끼고 마주했던 눈물을 우리가 함께 마주보게 된다 나또한 그럴것 같음, 나또한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눈물이 함께 함을 느껴본다 감수성을 돋게 하는 그의 글에 그 묘미를 더욱 느끼게 해준 챕터가 있다 시와 음악사이 시 속에서 음악속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를 그가 더욱 가깝게 해준다 더욱 감미롭게, 더욱 친근하게 우리는 앞으로도 눈물과 함께 고마워하며 삶을 살아낼 것이다 그가 용기를 준 것처럼, 힘을 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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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눈물에 관한 글을 읽고자 하였는가? 나만이 눈물 흘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위로받고자 하였을 것임이며 내가 겪는 눈물의 시간들이 의미없지 않고 나를 성장으로 이끌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을 것임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 하루의 의무적인 일과를 끝낸 밤, 소파 등받이의 경사를 조금 완만히 하고 몸을 기대 이 책을 읽다가 나는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눈물이 찼을 때 눈물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내 존재가 눈물일 때 주변이 딱딱한 아스팔트나 시멘트이면 내 몸은 흐를 곳을 찾기까지 엉성하게 경직된 채로 부유해야 한다. 그러나 눈물흘리게 하는 글을 읽으며 나는 내 주변에 물이 차오르며 점점 깊어지는 것처럼 느꼈고 결국 그 물과 하나가 되어 몸을 편히 뉘이듯 잠겨 둥둥 떠 쉴 수 있었다. 정말 정확히 그런 기분이었다. 이별에 관하여, 소설가 박완서 님에 대하여, 세월호에 대하여, 온갖 세상의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글들을 읽으며 어찌나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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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는 말, 그 말에 공감할 뿐. 어느새 눈물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우연히 JTBC <정치부회의>을 보다가 방송 말미에 정강현 기자가 산문집을 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정반장' 으로 불리는 기자가 쓴 책이니 사회 고발이나 르포가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그만큼 정강현 기자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원래는 문학 기자였다는 걸. 이미 산문집과 소설집까지 낸 작가였다는 걸. 저자는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라는 세 번째 산문집을 내면서, 엄밀한 의미에서 이 책이 자신의 첫 번째 산문집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야말로 자신의 내밀한 삶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산문집은 대개 서른 즈음부터 마흔 즈음에 걸쳐 썼던 에세이를 묶은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사십대 초입에 들어선 저자는, "내 삶을 흐르게 한 것은 결국 눈물이었다. ... 조그맣게 자부하며 말하거니와, 눈물은 내 삶을 길러낸 거의 절대적인 자양분이었다. 나는 눈물로 자랐다."라고 말합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근 10년 남짓한 세월을 담아냈으며, 그 삶의 변곡점마다 눈물이 함께 했습니다. 인간은 눈물을 흘리며 태어나서 힘든 고비마다 눈물을 쏟아내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래 가사처럼. 제 경우에는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면 거의 운 적이 없을 정도로 눈물을 경계하며 살았습니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건 약해빠진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꾹꾹 눈물을 참으며 이십 대를 버텨왔는데... 요새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장 난 수도꼭지마냥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납니다. '아, 이건 아닌데... 눈물이 자꾸 흘러나오는 것도 병인가?' 도저히 조절이 안 되다보니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눈물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코끝이 찡, 가슴이 뭉클, 눈물이 또르르.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이든다는 건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거구나라고. 저자는 김소연 시인의 「눈물이라는 뼈」와 줄리아하트의 <당신은 울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추천해줍니다. 이 시와 음악에 공감한다면 당신은 어쩌면, 어느새 어른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라는 책이 잘 팔리는 책이 될 지는 장담 못해도, 서른 즈음과 마흔 즈음을 지나는 이들에게는 분명 좋은 책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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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의 국민적 공분이 한참이었던 2016년 말. 처참하게 무너진 현실을 뉴스를 통해서 한참 확인하던 시기. 이전까지는 오후 5시에 특별히 뉴스를 볼 일이 없었지만 그때는 뉴스라도 틀어놓지 않으면 황당하고 답답한 상황에 화병이라도 날 지경이었다.
뉴스를 쇼처럼 재미있게 전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했다는 이전에는 없었던 독특한 형식의 뉴스로 각기 다른 개성이 넘치는 반장들의 발제를 듣는 재미에 빠져 한동안 즐겨보았었다. 개그맨 뺨칠 정도로 끼가 넘치는 양반장과는 달리 금요 정다방을 운영하는 정반장, 정강현 기자는 감성적인 균형을 맞추며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언젠가 9시 뉴스룸이 끝나고 하는 소셜라이브에 직접 출현해 정치부회의 뒷얘기를 들려주었는데 그때 정반장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중앙일보에서 오랜 시간 문화부 기자를 하면서 문학, 음악 등 문화적인 감각을 키워오던 저자가 갑자기 jtbc로 발령이 나면서 '정치부회의' 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기자가 하루아침에 방송을 하게 되는 환경이 정말 황당하고 쉽지 않았겠지만 정반장은 잘 적응하여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 것이다.
사실 <소소한 책수다>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였던 터라 방송이 영 낯선 것은 아니었을테지만 그럼에도 TV 방송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을텐데 훌륭히 잘 적응을 하여 지금은 자연스러운 진행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만의 특기를 살려 '금요 정다방'이나 '한끼정치'와 같은 따뜻한 시선과 인간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코너를 만들어 그의 색깔을 입혀 진행하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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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는 그의 세 번째 산문집이다. 소설집도 1권 있으니 이제는 작가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은 그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사실상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첫 산문집이라고는 하지만 기자라는 역할에 익숙한 그이기에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회에 대한 연민과 고민, 공감의 시선이 깊게 묻어난다.
"사십대 초입에 서서 돌이켜보니, 내 삶을 흐르게 한 것은 결국 눈물이었다. 나는 슬퍼서, 기뻐서, 서러워서, 감격해서 울고 또 울면서 성장했다. 삶의 곡절마다 눈물로 출렁이지 않은 적이 없지만, 그 눈물 덕분에 내 삶은 한껏 단단해졌다. 그러므로 내게 눈물은 단지 슬픔의 기호가 아닌 것이다. 조그맣게 자부하며 말하거니와, 눈물은 내 삶을 길러낸 거의 절대적인 자양분이었다. 나는 눈물로 자랐다." ---p.10~11 <책머리에> 中
제목이 이해는 되었지만 선뜻 와닿지 않았는데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이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경험상으로도 그렇다. 삶의 구비구비 눈물을 흘리며 버티고 견디었던 그 경험은 타인의 상황에서도 역시 눈물로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 때나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이제는 그렇게 민망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크게 4부로 구성했다. 1~3부는 연대기와는 무관하게 글을 독해하는 정서적 리듬을 고려해 배치한 글들이다. 그래서 가급적 1~3부를 순차적으로 읽기를 권하지만, 실은 아무페이지라도 펼쳐서 아무렇게나 읽더라도 무방한 것들이다. 다만, 4부에 관해선 약간의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데, 4부의 타이틀 '시와 음악사이'는 푸른봄에서 운영했던 팟캐스트 <소소한 책수다> 속 코너명이다. 나는 그 팟캐스트의 공동 진행자로 1년 8개월 남짓 활동했는데, 당시 '시와 음악 사이'란 별도 코너를 꾸려었다. 그 코너에서 나는 시를 골라서 해설하고, 해당 시와 어울리는 음악을 선별해 틀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4부 '시와 음악 사이'에 담긴 글은 당시 진행했던 방송 스크립트를 토대로 했으되, 온전히 새로 작성한 산문이다. 4부에 담긴 글을 읽을 때는 각 시마다 짝지은 음악을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p.13~14 아무리 문화부 기자였지만 이렇게 감성이 말랑말랑한 그에게 팩트를 전달하는 기자로서만의 생활은 힘들고 답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 권의 산문집은 아마도 그런 답답한 공간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의 탈출구가 아니었나 싶다. 팩트와 대척점에 있는 소설까지 쓴 것 역시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잘난 팩트의 세계라면 나도 모르지 않는다. 그게 세계의 진실이라면서, 보도 행위를 하는 게 내업이니까. 하지만 그 잘난 팩트의 세계가 지닌 치명적인 오류도 나는 안다. 팩트의 세계란, 감수성을 발라낸 앙상한 세계다. '잘 느끼는' 사람보다는 '잘 아는' 사람이 대접받는 곳이다. 그곳이 치명적인 이유는 '타인'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이 아파하는 걸 느끼는게 아니라, 그 아픔의 정확한 근거를 찾는 데 혈안이 된 곳이 바로 팩트의 세계다. 물론 그것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잘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수록 더 따뜻한 세계가 되지 않을까. 우리 공동체에 고통 감수성을 갖춘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이 세계만큼 좋은 소설 작품도 없을 것이다." ---p108~109 <고통의 감수성에 대하여> 中 그런 좋은 소설 같은 세상을 꿈꾸며 그는 팩트의 세계에서 타인을 보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현직 기자이다 보니 글 속에는 현재진행형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사건들과 이슈들이 많이 나온다. 세월호 한가운데에서 취재를 담당했던 그였기에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무게감보다 그는 훨씬 더 큰 부채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꽤 많은 페이지가 그 고통의 공감을 풀어내는 공간으로 되어 있지만 그 여백에는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감정, 이야기들이 수북하다. 세월호 속에서 아이를 낳고 아빠가 된 그에게 공감의 고통은 세월과 함께 성장해버렸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해도 하기 힘든 그런 세상. 그 세상으로 들어와 그는 또다른 아픔을 느끼게 된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관심사가 '시'와 '음악'으로 압축되는 것을 느낀다. 물론 팟캐스트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시와 음악에 대한 그의 태도나 호기심을 보면 단순히 뭔가 준비를 위한 것만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을 인터뷰하면서 시란 무엇인지, 시는 어떻게 써야하는지 등과 같은 그 스스로가 정말 궁금해하고 답을 찾고 싶어하는 질문들을 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나름의 시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할 때면 그는 시를 정말 사랑하고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시에는 의도적으로 생략된 언어의 구멍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시를 처음 읽을 때는 그 구멍이 다소 걸리적거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하여 시를 읽다 보면 그 구멍에 오래 머물러 사색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발굴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이 발굴해놓은 새로운 말들이 가지런한 리듬으로 출렁일 때, 당신은 상투적인 일상에서 달아나는 체험을 할 것입니다. 시는 반복되는 일상에 느닷없이 주어지는 휴식같은 것입니다. 시를 읽는 순간이란,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스펙을 쌓기 위한 것도 아닌, 아무런 목적이 없는 무목적의 시간입니다. 오로지 나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오직 내 것인 시간. 그 사색의 시간이, 시에 있습니다." ---p.238~239 <시를 읽어야 할 이유> 中
기자라는 업을 삼고 있는 저자라서 그런지 보통의 산문집과는 글의 결이 좀 다르다.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문장에 육하원칙까지는 아니지만 폐부를 찌르는 듯한 논리성, 여기에 솔직함과 따뜻한 감수성이 배어있다. 기자 출신의 작가는 많이 있지만 저자의 글은 또다른 색깔의 또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점심 먹으러 갈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정치부 회의> 기자들은 바쁘다던데 언제 이렇게 글까지 썼을까. 그렇게 자신의 언어로 속엣말을 내뱉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야근을 밥먹듯 하는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다듬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심지어는 지쳐가는 일상조차도 글로 뱉어내고야 만다.
"하얀 눈이 내리는 모습이 봄날의 벚꽃처럼 보여서 나는 조금 들뜨기도 했는데, 방송을 준비해야 했으므로 매몰차게 커튼을 다시 내리고 말았다. 그러곤 다시 시집을 펼쳤는데, 문득 시를 읽는 것이 무슨 노동처럼 느껴졌다. 시 읽기는 내게 거의 유일한 휴식이었는데. 방송이라는 목표를 향해 시를 노동하고 있는 내가, 나는 측은했다. 노동의 연장으로 시를 읽어야 한다면, 이따위 시가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 시집을 덮어버렸다. 커튼을 다시 올리자 이러다 밤하늘이 주저앉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형광등 스위치를 내리고 오랫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까만 밤하늘을 씻어 내리는 눈송이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몇 분쯤 흘렀을까. 나는 어떤 목적도 없는 시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p.190 <고독이라는 사치에 대하여> 中
아무리 좋은 것도 일로 다가오면 짐이 될 때가 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숙제처럼 해치워가는 요즘. 내가 지금 딱 이 상황이다. 다 덮어버리고 잠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휴식을 갈망하고 있었는데 저자 역시 같은 상황에 몰리고 있었던가 보다. 이렇게 고독한 휴식을 즐길 줄 아는 저자는 아마도 꽤 오랜 시간 글을 쓸 것 같다. 그때는 기자가 아닌 작가, 저자로서가 더 자연스러워지겠지. 비슷한 세대는 아니지만 꽤 많이 공감을 할 수 있는 문화적인 배경과 기반도 그의 글이 가슴을 때리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층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글에서 나는 추억까지도 선물받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맑은 세계가 아닌 거칠고 투박한 세계를 맑고 투명하게 닦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그의 글을 그렇게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 눈물의 힘 이 책은 눈물을 통해 삶이 성숙해졌다고 고백하는 산문집이다. 저자는 JTBC 대표프로그램 중 하나인 ‘정치부회의’에 출연하고 있는 정강현 기자이다. 그가 지난 10여년간 쓴 글들을 묶어서 산문집을 발간하였다. 스스로 밝히듯 어쩌면 자신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의미로는 첫 번째 산문집 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사회부, 정치부, 문화부를 두루 거쳤기에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담을 통해 각계의 소리를 대변해 줌과 동시에 자신이 좋아하는 시와 음악을 팟캐스트로 공유하고 있기도 한다. 이러한 그가 눈물이라는 것을 통해 삶의 페이지 마다 어떻게 살찌우게 했는지 밝히고 있다. 기자로써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 대하 더욱더 민감하고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부분을 알 수 밖에 없는 직업이겠지만 그는 그것을 눈물로써 담담히 마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책의 전체적인 느낌을 통해 받았다. 1부는 다양한 사회 문제, 2부는 개인적인 감정들, 3부는 시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을 쓴 저자가 30대에서 40대로 바뀌는 과정가운데 겪었던 개인적인 일들과 사회적인 일들을 묶어서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죽은 아이들이 불쌍해서 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남겨진 가족들 때문에 오열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관점의 차이가 아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오는 이입의 다름이 느껴진다. 신문사 기사에서 방송국 기사로 그리고 여러 부서를 옮기고 또한 결혼과 출산을 통해 한 생명의 아버지가 된 그는 이러한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감정을 적절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더욱더 큰 공감을 선사하고 있다. 1부에 언급 된 다양한 사건 사고의 중심에는 <기독교>, <장애를 가진 곽정숙 국회의원>,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세월호>,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자살>, <아동학대>, <정치>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각각의 이슈들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담담하게 눈물로써 혹은 견딜 수 밖에 없는 참혹한 심정으로 대하고 있다. 엄청난 사건 사고가 하루에도 수 십, 수 백건씩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접하다 보면 어느새 무뎌지고 무감각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죽은 사망자가 나의 가족이거나 친구가 된다면 그 사건은 그냥 한 줄짜리 기사로 지나칠 수 없는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세월호 사건에 관해 책에서 여러 번 언급을 한 것은 부모의 입장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꽃을 피어보기도 전에 무책임한 어른들의 방관과 잘못으로 생매장 당하는 현상을 생중계로 본 전 국민들은 한 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지만 이내 정치인들은 서로 공방을 펼치며 본질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더욱더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 듯 하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저자는 정치인 혐오가 정치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국민들이 외면해 버리는 순간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속 마음이 전해 지는 듯 하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몇 가지 중 하나는 분명 교회마다 세워져 있는 빨간 십자가일 것이다. 서울의 밤 붉은색 빛깔의 반은 유흥가의 몫이고 나머지 반은 십자가의 몫이다.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거칠기만 하다. 잘난 목사가 부족해서 십자가가 속세에 파도에 묻힌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제 잘남을 내세워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목사들의 욕망이 문제일 것이다. 한국은 미국을 포함한 여느 나라에 비해 미성년자 처벌에 대한 수위가 낮게 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10대들의 폭행,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여론은 지금이 기회인 듯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해답인 듯 공론화를 시키고 상당수 많은 국민들이 거기에 동조를 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는 몇몇 10대 아이들의 문제로만 치부하면 되는 것일까? 저자는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 듯 하다. 어쩌다 어른이 된 어른들은 10대 청소년 범죄 문제의 원인을 아이들에게 돌림으로써 스스로 함량 미달의 어른임을 인증하고 있는 듯 하다. 어른은 가르치는 존재이고, 아이들은 가르침을 받아서 성장해야 하는 존재이다. 아이들이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가르침을 잘못 준 어른들의 책임이다. 청소년 문제로 불리는 사회 현상은 어쩌다 어른이 된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낸 문제다. 저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에 관해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의 노쇠화로 인한 여러 심경들을 쓴 글들은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거나 혹은 지나온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듯 느껴졌다. 3부에는 몇몇 시인의 시와 그 시에 걸 맞는 노래가 소개 된다. <김영승>, <오은>, <장석남>, <손택수>, <김광규>, <최두석>, <김소연> 대한민국 성인들 중 40%는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또한 책을 읽은 60%의 사람들도 1년에 8권을 읽는다고 하니 점차 책을 읽는 이들이 줄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마치 높은 책값과 미개한 국민들 탓으로 돌리기에는 한국인은 너무 많이 일을 하고 너무 낮은 급여를 받고 있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저자는 시에 대한 극찬과 장점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시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학교에서도 점차 시를 배우지 않고 시를 접하기 어려운 시대에 저자를 통해서라도 다시금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성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장 15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