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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이데아:창조와 표절의 경계에서』 by 이승하
"『욕망의 이데아:창조와 표절의 경계에서』 by 이승하" 내용보기
『욕망의 이데아』는, 신경숙 표절 논란을 위시하여 국내에서 발생했던 표절의 여러 사례를 서술하고, 표절의 범위와 파장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욕망(欲望/慾望)의 뜻을 살펴 보면,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을 의미한다. 표절이라는 것이 남의 것을 가져가 자신의 창작물인냥 쓰는 행위이니 이 또한 욕망의 속성이다. 이 책은, 총 4장에 걸쳐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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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이데아』는, 신경숙 표절 논란을 위시하여 국내에서 발생했던 표절의 여러 사례를 서술하고, 표절의 범위와 파장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욕망(欲望/慾望)의 뜻을 살펴 보면,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을 의미한다. 표절이라는 것이 남의 것을 가져가 자신의 창작물인냥 쓰는 행위이니 이 또한 욕망의 속성이다. 이 책은, 총 4장에 걸쳐 '표절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인간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한국문학에 대하여'까지 여러 문학 작품들을 통해 각 챕터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 본다. 저자 이승하 씨는, 우리 문학이 살아 남으려면, 작가 스스로 창조에 힘을 쏟고 공정한 가치평가를 기대하는 것이라는 소회를 밝힌다. 우리의 문학이 갈수록 철퇴를 맞는 데 비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인세가 최소 20억 원이라는 말에 맥이 빠진다.

 

 

신춘문예를 비롯해 대다수의 문학상 수상작 가운데 베끼기, 짜깁기, 대작, 혼성모방, 모작, 표절 등이 적발되었다는 점도 놀랍지만, 1992년 작가세계문학상 제1회 수상작의 소설가이자 당시 문학평론가였던 류철균(이인화)이다. 모자이크 식으로 엮은 자신의 작품을 두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작기법 중 '패스티시 기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불과 1년 뒤인 1993년 동일한 패스티시 기법을 사용한 김 아무개의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이 취소됐다는 점이다. 가진 자의 횡포가 따로 없다. 이상한 것은, 그가 대학교수로 임용되는 데 있어 이 사건이 전혀 문제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자의 편에 섰다가 몰락하고 말았지만, 최소한의 양심이 의심되는 사람이다.

뒤에 열거한 다른 작가들의 대다수의 작품들 역시 노골적으로 표절이 드러남에도 불구, 전혀 표절 시비에 거론된 적이 없었다고 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객관적인 접근을 위해, 독자들에게 원작과 표절작을 비교 분석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그나마 한시의 경우, 모방에 유연한 자세를 취한다지만 과거 用事(좋은 글귀를 가져다 쓰는 행위)나 환골탈태(換骨奪胎:선배 시인들이 지은 시구를 자기의 시에 끌어다 쓰되 더 훌륭하게 바꿔 쓰는 방법)를 시도하려다가 목숨을 빼앗거나 잃게 되는 역사적 일화(유희이와 송지문에 얽힌 시, 묘청의 난을 평정하는 보수파 김부식과 개혁파 정지상)까지 소개하니 남의 글을 허락 없이 쓴다는 것이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말이다. 누가 봐도 유사한 모티브와 플롯을 가져다 쓴 작가를 덮어주기만 한 출판사들 또한, 작가의 발전 뿐 아니라 한국 문학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느껴진다.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 폴 엘뤼아르 <자유>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 테니슨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바이런 <大洋>
박인환 <열차> - 스티븐 스펜더 <급행열차>
신경숙 <작별 인사> - 마루야마 겐지 <물의 가족>
신경숙 <기차는 7시에 떠나네> -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신경숙 <전설> - 미시마 유키오 <우국>
김윤식 <한국 근대 소설사 연구> -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영화 <해적> - 구광렬 소설 <반구대>

1부 '표절에 대하여'에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표절의 문제점을 다뤘다면, 2부 '인간에 대하여'에서는 국내 작가 이광수를 통해 작가의 부도덕함과 소설 <유정>을 통해 자기변명을 보여준다. 또한,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장용학의 <요한시집>, 조정래의 <태백산맥> 각 소설의 화두는 모두 인민재판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작가의 편차는 상당히 다르다는 데 주목한다. 식어버린 창작욕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소설가 권도옥 씨의 자살이나 19세기 후반의 문제적 인물 오스카 와일드는 그들 각자가 써낸 소설 <그래도 인생은 계속될 것이다>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투영한다.
인류의 역사는 금기를 깨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의 속성은 '가장 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는 데 있다. -p106

3부 '신에 대하여'에서는 신을 문학 속에 투영한 작가와 그 작품을 소개한다. 알리기에리 단테는 자신의 첫사랑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를 <신생>과 <신곡> 속에 부활시켜 '구원의 대명사'로 만든다. 카잔차키스의 소설 <수난>을 통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시작으로 수많은 인물이 수난 위에서 발전한 기독교의 역사를 짚어본다.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아래 욕망>은, 신을 줄곧 조롱하면서도 불행한 자신을 구원해주지 않는 신성을 인정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톨스토이가 십 년에 걸쳐 쓴 <부활>은, 예수가 죽음을 넘어섬으로써 모든 신자가 죄, 죽음, 악마를 물리칠 수 있다는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은, 시베리아 유형의 엄벌을 받아 8년 동안의 유형지 체험을 한 작가 자신의 기록이다.

4부 '한국문학에 대하여'에서는 한국 문학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고민해 본다. 
미디어의 영향력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특정 시집에 대한 깊은 우려를 시작으로, 시에 대한 정의(운율, 함축성)를 무시하고 유행어와 조어, 약어가 난무하는 카피 문구를 묶어 시집으로 낸 '하상욱'이나 인터넷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의 귀여니는 21세기가 낳은 문학 영웅이다. 문학적 완성도가 형편없어도 상업적인 성공만 거두면 그만인 시대가 도래했다!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이유와, 한국 문학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해본다. 우리의 대하소설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기가 힘든 이유, 우리의 민담과 설화를 잘 활용하지 못한 점, 일제 강점기 36년으로 철퇴를 맞은 문학사(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남과 북 분단으로 인한 변절(김지하, 박노해), 스토리 라인의 약화, 우리 소설의 가치를 증명해 낼 번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인정받기는 힘들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동시를 통해 동시가 가진 스토리텔링까지를 짚어보았다.

d******7 2018.06.05. 신고 공감 12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욕망의 이데아 - 이승하
"욕망의 이데아 - 이승하" 내용보기
블친 "이수"님이 주관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 "욕망의 이데아 - 창조와 표절의 경계"를 읽었다. 예스24 리뷰 서평단 책이었으면 느리작거리면서 있다가 시간에 쫓겨서 허겁지겁이었을텐데 이수님이 팬의 입장에서 만든 개인 이벤트이기에 부리나케(저의 책읽는 속도 기준) 읽었다. 이 책은 신경숙 표절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중국과 한국의 한시를 놓고 전개된 옛 논의들
"욕망의 이데아 - 이승하" 내용보기

 블친 "이수"님이 주관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 "욕망의 이데아 - 창조와 표절의 경계"를 읽었다. 예스24 리뷰 서평단 책이었으면 느리작거리면서 있다가 시간에 쫓겨서 허겁지겁이었을텐데 이수님이 팬의 입장에서 만든 개인 이벤트이기에 부리나케(저의 책읽는 속도 기준) 읽었다. 이 책은 신경숙 표절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중국과 한국의 한시를 놓고 전개된 옛 논의들을 살펴보고 아주 오래전부터 행해져 온 표절논란에 대해 쓴 글들 그리고 다른 평론들을 묶어서 펴낸 책이다. 

: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다 읽긴 읽었는데, 그것에 대해 쓸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다. 물론 쓰려고 하는 1부도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2부 인간에 대하여, 3부 신에 대하여, 4부 한국문학에 대하여는 나중에 쓸 수 있으면 쓰겠다)

 

이승하 - 경북 의성 출생, 김천에서 성장 ,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등의 시집과 '길위에서의 죽음' 소설집을 내고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 '세속과 초월사이에서' 등 시론집을 냈다. 천상병 귀천 문학대상, 시와 시학상 등을 수상하고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김천 출신 문인들이 유독 많은 이유를 연구를 해봐야 될 듯하다 - 문태준, 김연수, 김중혁 등)

 

 저자는 서문에서 "인간은 신을 표절하였다" 말한다. 인간은 신(자연)이 창조한 것들을, 행한 일들을 따라하면서 신(자연)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예술에 있어 특히 문학에 있어 그것의 원류(출처)를 밝히지 않고 자기가 말한 양, 새로 쓴 양, 발표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신을 향한 질문은 곧 인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늘 아래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면서 남의 작품을 표절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절대자를 표절하는 것이 아닌가, 성경모티브, 신화모티브, 그리고 텍스트 상호간의 표절, 표절도 좋은 작품을 쓰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리라. 내게 없는 것을 남이 갖고 있다는 결핌감과 충족욕구가 인간 내면의 속성이기에 표절행위는 당사자를 단죄하기에 앞서 보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학에서 표절은 절도 행위라는 것이다"(p6)

 

 1부는 신춘문예 등 문예지 등단작과 공모 수상작들의 표절, 신경숙과 김윤식의 표절을 다루면서 작품이 표절작임을 알면서도 그의 작품을 내준 출판사의 이익과 손실을 생각해 애써 두둔하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 하나는 살려주는 것이겠지만, 그 대신 한국문학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거라고 비판한다. (이 글은 2001년도에 쓰여진 것을 다시 보완한 것이다)

 신경숙 표절 논쟁은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가 1999년도에 발표한 딸기밭(문학동네, 여름호)이 다른 글과 여섯문단에 걸쳐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최기자는 글 말미에 박철화 평론가가 작가세계에 기고한 글에 "기차는 떠나네"와 "작별인사"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마루야가 겐지의 소설을 표절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면서 신경숙 작가의 반성을 촉구하였다. 이에 신경숙 작가는 표절의혹을 지면에 보도한 최기자가 아닌 박철화 평론가를 향해 반박했다. (박철화 평론가가 재반박문을 한겨레에 보냈으나 신문사의 만류로 활자화되지 못함에 따라 논쟁은 끝이 났다. 이때 공론화가 되었다면 표절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랄까 잘못이라는 기준이 생겨 오히려 신경숙 작가나 한국 문단 전체에 이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한겨레신문 지상의 논쟁은 중앙대 교내신문에도 대서특필되었고 저자가 가르치는 학생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 과 신경숙의 소설 "전설"을 들고와 표절인가 여부를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 저자는 표절은 나쁜 의도를 갖고서 베끼는 것인데 도입부의 전개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소설의 플롯이 비슷햇음에도 신경숙 작가의 입장을 성급하게 재단하고 싶지 않았고 작가의 양심을 믿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작가인 신경숙이 근대문학을 우리에 앞서 일구어낸 일본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 문학정신이나 작가정신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스리슬쩍 베끼기라니, "깊은 슬픔"을 느꼈다면서 누가 읽어도 모티브가 유사한 소설을 이 시대의 대표작가라는 이유로 출판사들이 나서서 덮어주기로 한다면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글과 말을 문학으로 지키고자 애썼던 뭇 선배작가들에 대한 모독이자, 작가 자신의 자해를 방조하는 행위라고 결론지었다.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표절 논쟁은 공론화되지 못하다가 2015년 이응준 작가가 신경숙 표절에 대한 글을 쓰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처음엔 나도  기사로 접하고 공격적인 이응준 작가의 글을 보면서 "설마 표절이겠어" 하고 의심했었다. 하지만 아래 비교글을 보면 일반 대중인 내가 봐도 변명거리가 안된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신경숙의 "전설"의 한단락은 너무나 유사하다. 또한 주인공의 캐릭터, 글의 전개방식 등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작가는 표절이 아니라고 한다. 절대 베끼지 않았다고 한다.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극우주의자 미시마 유키오의 글이라니) 

 

 "두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 "(우국)

 "두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로,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고............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있었다.........."(전설)

 

 나도 신경숙 소설을 좋아했고 어렵게 작가가 된, 몇년동안 필사를 했던 그녀의 인간 승리를 응원한 사람 중에 한명이다. "엄마를 부탁해" 같은 공전의 베스트셀러를 쓴,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소설가가 표절 논란에 휩싸여 한창 써야할 시기에, 쓰는 것을 목숨처럼 여긴다는 그녀가 이렇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맘은 정말 안좋다. 이 표절 논란이 한국 소설을 안 읽는 지금에 결정타를 가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건 한국문학 발전을 위해 당연히 치뤄야 할 댓가다. 난 아직도 신경숙이 의도적으로 베꼈다고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정말 의도적인 거였다면 그녀는 다시는 문단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 그녀의 변명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차라리 습작 시절에 워낙 필사를 많이 해서 무의식 중에 영향을 받아 그런 글이 나왔을 수도 있다고 했다면 대중은 조금 기다리다가 용서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저자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면서 옛사람들의 지혜, 환골탈태(換骨奪胎)와 용사(用事)를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옛사람의 좋은 글을 가져다 쓰려면 내 글 속에서 더 빛나게 해야지 그대로 가져다 쓰는 표절이나 모작은 안되고 더 훌륭하게 바꿔써야 한다는 것이다.

 표절은 더 잘 쓰고 싶은 욕망, 대중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등 욕망때문에 이루어진다. 직업 작가라면 모방이 아닌 창조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야 하고 항상 자기 글에 가혹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말과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승하 선생은 기다려 주는 분 같다. 가차없이 매운 말로 영원히 문단에 돌아 올 수 없게 하지는 않는 분, 설사 잘못 된 것일지라도 작가에게 최소한의 양심을 바라는 기대를 끝까지 하고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죽비를 내리쳐 스스로 깨닫게 하고 함부로 누군가를 재단하지 않는 분이다. 이런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어린 질책과 때론 격려가 우리 문학을 발전하게 할 것이다.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는 분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블친님 중 작가가 되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재미로 쓰는 분들도 많겠지만 모방에서 표절로 향하지 않고 창조로 나아가게 하는 글쓰는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얻게 될 것이다.

k*****7 2018.05.24. 신고 공감 11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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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이데아/이승하]나의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어서는 안 되겠기에
"[욕망의 이데아/이승하]나의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어서는 안 되겠기에" 내용보기
1. 욕망이란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 중에는 책을 낸사람은 없다. 하지만, 만약 그 중에 책을 낸사람이 있다면 나의 반응은 어떠할까?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욕망들이 나의 창작욕구를 부추기고 그럼으로 인해 나는 오늘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 이건 책 <질투>의 소개글에 나와서 살짝 인용해 보았다.
"[욕망의 이데아/이승하]나의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어서는 안 되겠기에" 내용보기

1. 욕망이란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 중에는 책을 낸사람은 없다. 하지만, 만약 그 중에 책을 낸사람이 있다면 나의 반응은 어떠할까?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욕망들이 나의 창작욕구를 부추기고 그럼으로 인해 나는 오늘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 이건 책 <질투>의 소개글에 나와서 살짝 인용해 보았다.

<욕망의 이데아>는 사람의 욕망을 절제하자는 내용이 아니다. <욕망의 이데아>는 그 욕망을 인정하되, 그 욕망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할 것인가가 관심의 주요내용이다. 그래서 첫 장부터 표절에 대해서 나오는 것이겠지.

 

 

2. 표절

 

"인간은 왜 남의 작품을 표절하는 것일까? 욕망 때문이다. 쉽게 문명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문명을 오래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욕망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더 좋은 작품을 쓰고 싶은 것은 모든 창작자의 '순수한' 욕망이다. 하지만 이 욕망이 이데아가 되면 도벽을 갖게 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고, 살짝 베끼던 사람이 슬쩍 베끼게 된다. 슬쩍 베끼던 사람이 군데군데 베끼게 된다. 군데군데 베끼던 사람이 왕창 베끼게 된다. 그 사이에 양심은 사라지고 욕망의 이데아만 남아 어떻게 남의 작품을 교묘하게 훔칠까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문학정신은 사라지고 문학이 죽는다." -p.31

 

나의 욕망이 때로는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그 욕망이 적절한 수단을 동반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렇다. 문학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열심히 쓴 작품인데, 누군가가 나의 작품을 표절한다면 어떨까. 너무 아플 것이다. 이승하 작가는 표절문제가 단순히 표절 자체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문제는 영향이나 모방이나 표절 여부에 있다기보다는 독자가 표절이라고 단정 짓도록 빌미를 준데 있지 않을까. 누가 읽어도 모티프가 유사한 소설을 이 시대의 대표작가라는 이유로 출판사들이 나서서 덮어주기로 한다면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글과 말을 문학으로 지키고자 애썼던 뭇 선배작가들에 대한 모독이자, 작가 자신의 자해를 방조하는 행위일 것이다."-p.46~47

 

신경숙의 <<딸기밭>>에 대해 논의한 내용 중의 일부다. 즉, 실제로 표절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서 표절에 대한 빌미를 줄 수도 있는 소설을 써서는 안 된다는 얘기. 철저하게 작가의 창조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으면 되겠다.

 

 

3. 인간과 신

 

인간은 신을 표절하였다는 말머리에 나오듯, 2부와 3부에서는 인간과 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은 자살을 허락한 적이 없으나, 어떤 작가는 자살을 한다. 2부에서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을 하기보다는 실제 작품과 작가와의 연관성을 알려주고, 3부 신에서는 신에 대한 인간의 원망을 토로하기도 한다. 신과 인간. 세상을 창조하신 신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어달라는 것. 그 요구에 응하지 않는 신이 때론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하느님께서

 순교 현장의 순교자들을 보시다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를 모른다고 해라

 고통을 못 참겠다고 해라

 살고 싶다고 해라

 

 나의 고통이 부족했다면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고 해라

 

                           - 김남조 <순교>

 

신은 마음 아파 하신다. 

하나님을 끝까지 믿겠다며

결국은 순교한

저 많은 성직자들.

인간과 신의 관계가 결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만은 아니다.

 

 

4. 무시할 수 없는 욕망

 

4부에서는 한국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다룬다. 그 중 유독 한 문장이 나의 눈길을 끈다.

 

"뛰어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고급독자와 비평가들만 찾는 소설은 공감대 형성에서 문제를 드러냅니다." -p.261

 

아무리 뛰어난 소설이라도 감동이 없고 공감대가 형성이 되지 않으면, 적어도 <나에게는> 별로 좋은 소설이 아니다. 기교만 부리는 진실성 없는 소설이나 시는 결국은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욕망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욕망. 뭔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 그 욕망은 아이들에게도 있다.

 

"엄마의 말씀대로

 선생님의 말씀대로

 내 마음 사나워진다는 것을

 나는 알아요

 그렇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한 시간이라도 늦게 들어가려고

 그곳에

 나는 매일 갑니다.

 후회하면서도

 매일 갑니다.

 옷 속에 안 보이게 건

 잘랑잘랑 열쇠 목걸이.

 엄마가 없는 빈집처럼

 쓸쓸하다

 

 목걸이 꺼내 문 열고

 빈집에 들어서서

 "엄마"하고 불러보면 더

 쓸쓸하다

 

                      - <열쇠 목걸이>

 

사나워진 아이처럼 쓸쓸한 마음이 더해진다. 욕망을 쫓다보면, 그렇게 된다. 욕망이 안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욕망을 쫓다가 보면 어느 순간, 쓸쓸해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 이런 욕망이 있어, 라고 솔직하게 표현을 하고 인정을 하고 나면, 오히려 그 욕망이 줄어들기도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돌아가실 날 기다리는

 우리 할머니

 

 가족들 빙 둘러서

 손잡고 기도하는데

 

'꼬르르-'

갑자기 내 배에서

나는 소리

 

어쩌지

고모, 삼촌,

누워 계신 할머니

다 들으셨을까

 

울 할머니

곧 돌아가신다는데

몇 주째

링거주사가 밥인데

 

내 배는

어서 자기

밥 달라고

꼬르륵 꼬르륵

 

- 김유진 <꼬르륵>

 

 

배고픈 것도 욕망의 하나일까. 본능적인 욕망이겠지. 욕망을 표현했을 때, 비로소 그 욕망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아이러니. <욕망의 이데아>에서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욕망의 이데아>가 추구하는 방향이 그런 것은 아닐까.

 

 

6.  다시, 욕망

 

비평서임에도 의외로 빨리 읽힌 <욕망의 이데아>. 다 읽고 난 여운은 소설이나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 준다. 나의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어서는 안 되겠기에, 나는 내 욕망을 적절한 곳에,  창작의 욕심으로 태어난다. 내 욕망은 얼만큼 채우졌고 얼마나 표현되고 있을까. 오늘은 왠지 모르게 쓸쓸한 하늘이 더욱 파랗게 보인다. 그 하늘을 표현하고픈 욕망은 또 어떻게 채워야할까. 

h******o 2018.05.20. 신고 공감 5 댓글 9
리뷰 총점 종이책
[파블14-5월] 평론의 묘미, 욕망의 이데아
"[파블14-5월] 평론의 묘미, 욕망의 이데아" 내용보기
이승하 시인을 처음 접한 것은, 예스 블러그 이웃이신 세나님을 통해서다. 그리고,세나님을 통해서 또다른 블러그 이웃이신 이수님을 알았다. 이수님이 좋아했던 송경동 시인,그러고보니 두 시인님 모두 굉장히 능동적이면서 참 불편하고 아픈 우리네 삶들 詩 속에 많이 투영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우리 사회 내 억울하고 비참하고 고단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찢겨져나간 시대
"[파블14-5월] 평론의 묘미, 욕망의 이데아" 내용보기

이승하 시인을 처음 접한 것은, 예스 블러그 이웃이신 세나님을 통해서다. 그리고,

세나님을 통해서 또다른 블러그 이웃이신 이수님을 알았다. 이수님이 좋아했던 송경동 시인,

그러고보니 두 시인님 모두 굉장히 능동적이면서 참 불편하고 아픈 우리네 삶들 詩 속에 많이 투영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우리 사회 내 억울하고 비참하고 고단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찢겨져나간 시대적 상처들이 오롯이 詩에 담겨져있다. 이승하 시인의 나날 시리즈『공포와 전율의 나날』『감시와 처벌의 나날』/ 송경동 시인의『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너무 사실적이라

충격이라 마주하고싶지 않았지만 애써 외면하기도 힘든 우리네 사회의 자회상이었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아프고 힘겹다고 마냥 피할 수 없는 그 때 충격적인 폐부들이 적폐란 이름으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다행히 잊혀질 수 없고 묻혀질 수 없는 나날들이 새로이 평가되고,

바뀌어지는 기대감 속에 지금 우리 사회가 서 있다. 문학의 역할에 대해 짧게나마 생각했다.

깨어있는 시대의 좋은 시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책까지 선물하신 세나님과 이수님, 감사합니다^^

 

누구의 시선으로 평가된 문학작품들을 나만의 또다른 시선으로 가지고 올 때, 생각의 스펙트럼이 무한대로 넓어지거나 좁아질 수 있음을 알았다. 생소하기도 하고, 공감도 되고, 재밌기도 하다.

이렇게 읽혀지고 해석도 됨으로 앎의 지경이 넓혀져 '지적 유희'.... 행복하기도 하다.

좋은 책을 읽은 기쁨인데, 읽고 난 느낌을 글로 남기려고 하니 그 기쁨 달아날까봐 사실 조마조마하다.

이수님이 직접 서평단 신청을 하고, 당첨되어 나에게로 선물로 온 책이라 부담감도 없다면 거짓말^^

생각도 정리되지 않은 채 그저 느낌만^^ 그럼에도 습관처럼 글을 쓴다.

책의 요약이 아니라 내 머리와 가슴속에 남겨진 선명하지못한 느낌들이지만 진솔하게 쓸려고.

이승하 시인이 쓴 문학평론집 <욕망의 이데아; 창조와 표절의 경계에서>이다.

 

제목에서 주는 느낌이 심상치않다. 부제를 보면서 느낌이 조금 온다. <욕망의 이데아>는 개인의 도덕과 양심의 문제다. 특히, 쓰는(write) 직업을 가진 사람 문장노동가(장석주 시인 자칭,타칭 직업)에게는.

문학작품 특히 소설은 결국 인간 연구라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연구는 신에 대한 연구에 가 닿는다고.

책에서는 하늘 아래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다는 데에서부터 고찰이 시작된다. 새로운 것이 없다고

표절이 유연하게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좋은 작품을 쓰고자 하는 욕심은 모든 쓰는(write) 인간들의 속성이다. 그러나 그 능력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 결핍과 충족 욕구가 맞아떨어질 때, 남의 것 베끼거나 몰래 갖다 쓴다. 절도 행위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려고 모방을 함은 은연중 신이 되려고 하는 바벨탑을 쌓는거라고 생각된다.

 

욕망이 이데아가 되면 도벽을 갖게 된다. 그 사이에 양심은 사라지고 욕망의 이데아만 남아 어떻게 남의 작품을 교묘하게 훔칠까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 정신은 사라지고 문학이 죽는다.

 

<욕망의 이데아; 창조와 표절의 경계에서>에서 1부, 표절에 대하여 쓴 부분에 집중해서 읽었다.

우리 문학의 한계를 엿보는 것 같아 불편했다. 치부를 들춰내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말함은 그만큼

시인의 우리 문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음을 느꼈다. 관심이 없으면 어떤 의견도 비판도 하지않는다.

결국 도덕과 양심을 져버린 문장노동가는 사라지고 잊혀진다는 것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2,3부에서 말한 인간과 신에 대한 부분은 작가와 작품 속에서 선명하게 살아나고, 의미가 어렵지않게

흥미롭게 와닿았다. 1부의 표절에 대한 탄탄한 첫 글들을 신선하게 대면해서 그런가보다. 4부에서는

한국 문학(시와 소설)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오랜 시간동안 많은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그 상처투성이 문학을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부끄럽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공감했고, 탁월한 서사가 기본이 된 우리 소설과 시의 가치를 새롭게 증명해 낼 번역가가 아쉽기도 하다. 오랜만에 공부하듯 줄 긋고 진지하게 읽은 것 같다. 관심있는 듯^^

 

'영향'과 '표절'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패스티시는 기존의 작품을 모방한다는 점에서 패러디와 같지만 패러디가 풍자적 충동 혹은 희극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는 반면 패스티시는 모방을 긍정적으로 수행하며,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배제된다는 점에서 패러디와 다르다. 이런 창작 방법 덕에 이 작품 저 작품을 잘 조합하여 발표하면서 내 작품이라고 큰 소리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중략) 표절이 지금처럼 음으로 양으로 만연된다면 작가는 새로운 작품 창작을 위해 고뇌하는 장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골동품 수집가가 되어야 한다. 도둑질을 얼마나 교묘하게 잘 하느냐가 그 작품의 우수성을 재는 잣대가 된다면, 표절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묻히는 사례가 많다면, 우리 문학의 앞날은 지금보다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중략) 문학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며, 작가는 남의 몸이 아닌 내 몸의 수고로움으로 세상과 인간을 읽어내면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일구어가는 존재여야 한다. (p68,69) 

패스티시가 표절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모방을 긍정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비틀기다.

새로움을 창조하고 그것에 대해 고뇌하는 것은 문장노동가의 마땅히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욕망의 이데아; 창조와 표절의 경계에서> 이승하 시인의 첫 문학평론집, 지적유희로 가득해 좋았다.

 

l*****5 2018.05.17. 신고 공감 4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