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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만은 자신의 책에서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발전시키겠다고 밝힌다. 이러한 해석학은 "관계와 사귐 가운데 이루어지는 사고로 인도할 것이며 자기의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키지 않고서는 일할 수 없는 주관적인 사고를 해체시킬 것이다." 자신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는 주관적 사고를 해체하기 위해서인가? 성부는 성자를 십자가에서 내버리신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구절을 바탕으로 성부께서 성자를 유기했고 철저한 분리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는 몰트만의 자기 모순 아닌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적 관계를 주장하면서도 십자가 상에서는 분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통해 아버지는 아들을 잃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이는 또한 아버지의 죽음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고난이다. 고난당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품으시고 종래에 종말론적으로 품으신다는 주장을 위해 왜 몰트만은 마가의 텍스트만을 고집하며 성부와 성자의 분리를 주장하는가? 누가의 텍스트에서는 예수께서 끝끝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신의 영을 의탁한다. 오히려 이 장면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를 확인할 수 있고, 고난당하는 아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현존, 무기력해 보일지라도 그렇게 함께 하시며, 삼위일체가 함께 자기를 내어 주시는 현장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늘날 고난당하는 우리에게 더욱 희망이 되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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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이론의 기원에 대한 몰트만의 강조점은 구원의 경험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뿐 아니라 교회의 삶과 실천에 있어 삼위일체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유대교의 유산과 유대교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는데, 이는 종교 간 대화에 참여하고 신학적 관점을 넓히려는 일이다. 몰트만의 삼위일체에 대한 접근 방식은 비판적 사고와 대화를 신학 탐구의 필수 구성 요소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신학 담론에 대한 생각을 자극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