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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언 리더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라캉의 지도로 정신분석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중문화와 문학, 의학, 심리학, 그리고 임상사례를 넘나들며 라캉의 이론을 해석해오고 있다. 즉 라캉주의 정신분석가로서 대중들에게 정신분석이론을 소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대리언 리더에 의하면 우울증은 제약회사에 의해 만들어진 병이라한다. 우울증 치료제에 관한 연구가 제약회사의 지원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결국 질병은 제약회사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들의 약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다. 우리의 건강문제도 이제는 자본의 흐름속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최초로 진행된 대규모의 병원조사에서 성인들의 입원일이 유년기에 겪은 상실 기념일과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것이다. 즉 애도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세대를 넘어서까지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즉 상징화되지 않은 상실은 우리를 애도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애도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보았다. 그가 제시하는 여러 제안중에 "망자가 생각했던 내 모습을 애도"(167)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보통 애도라 함은 사랑하는 망자를 애도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대리언 리더는 자신의 저서 <우리는 왜 우울할까>를 통해 "망자가 생각했던 내 모습>을 애도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소개한다. 사랑받는 아이이건 학대받는 아이이건 또는 무시받는 아이이건 그러한 이미지들이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 특별한 가치로서 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사례로는 어머니를 애도하는 과정중에 있던 한 여인은 어머니를 생각할때마다 "참새"라는 단어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만 자신을 부를때 "참새"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참새"라고 불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빅토리아여왕의 경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뒤 남편과도 사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빅토리아 여왕은 어머니의 상실보다 남편과의 이별을 더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생전에 여왕은 어머니가 자신을 그리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서류를 정리하던 중 자신의 작은 메모가 적힌 것까지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던 어머니를 발견하게 되었다. "여왕은 실로 자기가 모성애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할 기회를 스스로 져버렸다는 회한에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 자신이 아닌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인정하게 되었던 이야기가 사례로 소개된다. 우리는 대타자가 명명한 나의 모습에 갇혀 있는 모습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대리언 리더는 그것에서 벗어나야 애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자기 이미지로부터의 소외 경험"은 그의 마습속에 있던 내 이미지를 단념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의 무의식적인 상정을 까발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가 어떤 사람이었지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기 탐구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머리맡에 베게를 놓여드리는 일은 나의 담당이었다. 그래서 늘 아버지가 누우시면 내가 베게를 들고 아버지곁으로 갔다. 이를 어머니는 늘 포착하고 계셨다. 아버지의 부재로 베게를 놓여드리는 일은 어머니에게로 이후 시댁의 어른들에게로 확장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이제 더 이상 베게를 놓여드리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 어린시절의 나, 관심받고자 칭찬받고자 애쓰는 나의 모습이 사라졌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타자가 나에게 씌운 이미지, 언어들이 나를 응집시키는 것이라면 굳이 애도하지 않아도 되겠으나 나를 고정시키는 이미지들이라면 그 대상을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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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언 리더는 이 책에서, 우리가 쉽게 표현하고 단정해 버리는 우울증에 대해 갖고 있는 ‘무거운 장막’(p:13)을 어떻게 거두어내야 하는지에 관해 실제적인 정신분석 사례를 들어 받아들이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우울증을 약이 아닌 애도와 멜랑꼴리를 통하여 치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전에 보면, 애도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 한다는 뜻으로 영어의 regret, condence, mourning등과 같은 의미의 말이며, melancholy는 우울 , 침울, 깊은 생각, 구슬픔, 애수 등으로 기분이 우울하거나 울적하다는 의미의 단어로 정의되어 있다. 저자는 우울증에 대한 접근 자체부터 인지행동치료보다는 (인지행동치료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잘못된 학습의 결과로 보는데, 이는 빙산 아래에 숨어 있는 무의식의 공간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들에는 접근하기가 어려운 표면적인 치료라고 본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바탕으로 한 심리요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에게 있어 그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서 문제가 만들어졌는지 그 근원을 탐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울증은 짧은 면담으로 원인을 밝혀 낼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을 읽은 나역시, ‘오랜 시간에 걸친 경청과 대화’가 그 원인을 밝히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환자’로 진단된 사람들의 상처받은 내면을 먼저 살펴보기 전에 의학적인 해결책을 우선시하는 현대의 풍토는 ‘재화나 서비스를 따 내려는 시장경쟁에 사로잡힌’(p:8) 까닭이라고 신랄하게 꼬집어 주기도 하는 대니언 리더. 그는 “THE NEW BLACK", 이 시대를 새로운 암흑의 시대로 진단한다. 어떻게 그 새로운 암흑을 걷어내고 깊고 슬픈 자기만의 방에서 박차고 나올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문제이자,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에게, 한 마디로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치유함으로써만이 진정으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더 확고하게 해 주었다. 평소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만큼, 나름 유익한 책이었다. 이 책은 급하게 읽어서 될 책은 아니다. 차근차근, 치료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경청하듯 그렇게 저자의 말에 경청하며 눈 기울여 읽어야 할 책이다. 심리 상담사나, 정신분석요법가 등 상담 쪽에서 일 하는 분들이 관심 갖고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쉬운 책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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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이란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일까? 작가는 프로이트의 저서에서 '애도'와 '멜랑코리아'에 대한 언급이 매우 적다는 것을 제시하면서 우울의 영역에 대하여 논하고자 하고 있다. 책은 머릿말부터 굉장히 흥미로운 실례를 들고 있다. 우울증 처방약이 포일로 하나하나 감싸져 있다는 것에 환자는 더 우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우울증 환자가 자살을 생각하며 한꺼번에 약을 모두 복용해 버리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과 복용자가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 방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우울증 환자는 그 사실을 오히려 거꾸로 활용하려 했다. 약들이 하나하나 격리되어 있는 점이 너무 안타까워 포일을 다 벗겨내고 한꺼번에 약을 복용하려 했다고. 그 이유는?
"그래야 알약들이 그렇게 외롭지 않고 폐쇄 공포도 느끼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는 수 많은 해외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장면을 봐왔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은 너무나 일반적인 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인사들을 시작으로 항우울제를 복용한다는 사례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이제 일반적인 것으로 정착하려 하고 있다.
작가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우울증 증세 환자에게 처방해 주는 이 항우울제. 너무 남용되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에 본 영화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에서도 여자 주인공 마르잔이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와중에 의사는 노트에 그저 낙서나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곤 대충 마르잔의 설명이 끝나자 병명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당신은 임상 우울증이라는 병에 걸렸습니다. 약을 처방해 드릴께요."
이 장면은 정신과 의사들이 얼마나 항우울제를 남용하고 있는지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환자의 증상을 자세히 듣지도 않고, 한 귀로 흘려듣고 난 뒤 기계적으로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현실을. 마르잔은 이 약을 처방 받고서 바로 얼굴이 폭삭 늙어보이고 수척해지며 공중을 부양하듯 산다. 약이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애도와 멜랑코리아에 대한 프로이트와 라캉의 견해와 작가의 견해가 더불어져서 이 <우리는 왜 우울할까>라는 책이 완성이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보다 책의 내용은 매우 심오했고, 전문적이었다. 라캉의 <에크리>를 통해서 그의 정신분석론을 공부했던 적이 있던 나에게도 매우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속이 꽉 찬 열매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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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란 단어가 현대인들에게 많이 발병하고 있는 질병중의 하나이며 정신병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있다. 우울은 마음의 무력함 허탈감 의욕상실등 마음을 가라앉혀 버리고 마음의 무거움을 주며 자기비판 학대등 여러가지 현상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마음이 우울할때가 많다 . 내자신의 무력함과 그리고 나의 만족이 채워지지 않을때 또한 이상을 꿈꿨을때 이뤄지지 않은 현실속에서의 불만족이 마음의 우울로 이어질때가 있는것 같다. 잠시의 우울은 생각의 전환과 상황의 바뀌면 자연스레 좋은기분이 되기도 하지만 우울증이란 증상이 심해진다고 할때에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가져옴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책에서의 우울증은 현대의학으로는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함을 말한다. 우울증이 있다고 할때에 마음의 치료이기 보다는 약으로 해결할려는 의학적인 것을 보면서 우울증에 대처하는 자세와 문제를 푸는것은 정신적인 마음의 분석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우울증에 관한 사례들을 통해서 애도와 멜랑콜리아의 과정들을 말하고 어떻게 이해하며 헤쳐나가는지를 말하고 있지만 약간은 어려운 부분들도 있겠지만 분석과 대화의 필요성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안아주며 노력하는 모습들이 필요할것이다. 우울하다고 하는 마음의 불안과 지침 무력함 할수 없다는 마음들은 좋지 않음을 모두가 알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울증이란 깊은 곳에 들어가면 더 깊은곳으로 추락하는것을 보면서 현대인들에게는 우울이라는 마음의 병을 항우울제 신경안정제을 사용하기 보다는 내면의 마음, 프로이트를 경유하여 애도의식이라는 답을 제시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가장 건강한 사람은 슬픔과 고통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히스테리적 인 비참을 일상의 불행으로 바꿀수 있는 사람. 일상의 괴로움과 슬픔을 견딜수 있는 사람의 정신분석이 목표로 삼는 건강한 주체이다. 조금은 어렵고 딱딱하게 들릴수 있겠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에서는 우리는 왜 우울할까 라는 제목만큼이나 우리의 모든 마음의 병과 그 문제를 안고 겪고 풀어나가며 헤쳐나갈수 있는 모든마음과 정신적인 분석까지도 읽어낼수 있으며 이겨낼수 있음을 볼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우울함을 벗어날수 있는 마음의 문제를 이 책과 함께 잘 풀어나갈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순간의 우울함이 때론 있지만 그곳에 깊이 빠져들지 말고 살아가는 삶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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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 5,566명으로 하루 평균 42.6명, 평균 34분당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는 한 해 전인 2009년 자살자 1만 5,413명에 비해서는 0.4% 늘어난 것이고, 1997년 7,056명에 비하면 무려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자살의 원인으로 현대에 와서 가장 눈에 띄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우울증이다. 고도성장기에 열심히 일하며 나라 경제 일으키고 자식들 다 키워 세상을 내보내고 나니, 막상 수중에는 돈도 없고 노년을 보장해줄 가족의 울타리가 있는 것도 아닌 노년도 우울하고, 늙은 부모 봉양하랴 자식들 뒷바라지하랴 허리가 휘는 중년도 우울하다. 이 화창한 나이에 사랑도 접고 놀이도 접고 죽어라 공부해도 일자리 하나 찾기 힘든 청년도 우울하고, 집에 가도 공부, 학교 가도 공부, 세상은 공부‘만’이어야 하는 소년도 우울하다. 그만큼 우울한 소식은 늘어나고 또 그만큼 우리의 우울도 늘어난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슬픔, 낙담, 절망 등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최잭감과 열등감에 시달린다. 비관적 미래의 전망 때문에 두려움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도 없다. 늘 의욕이 없어 모든 일을 귀찮게 여기다가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히게 된다.
이 책은 우울증으로 인해 괴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라캉주의 정신분석가. 슬라보예 지젝과 함께 난해한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일반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대리언 리더가 저술한 것이다.
이 책은 항우울제를 먹기만 하면 우울과 슬픔을 해결할 수 있다는 현대의학의 편의주의를 비판한다. 현대의학은 환자 내면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의학적 해결만을 강조한다. 따라서 우울증은 세균 감염처럼 특수한 생물학적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문제로 간주되고,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항우울제를 먹게 해서 예전의 생산적이고 행복한 상태로 복귀하게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현대의학은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일을 정신 위생이라고만 간주한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우울증은 별 생각 없이 널리 쓰이기 때문에 상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상세히 조사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면서 “우울증 진단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해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인간의 삶을 기계적 관점으로 보게 되면 우울증은 더 만연하기 쉽다고 본다. 최초에 우울증을 유발한 원인을 약으로 치료할 수 없으며, 증상을 일탈 행동이나 적응 장애의 신호로 볼수록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정상, 즉 어때야 한다는 중압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우울증에 때문에 약을 복용하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많이 있다.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복용하던 약을 버리고 멜랑콜리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 책을 읽기를 권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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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나와 많이 관련이 되있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아니 나와 많은 관련이 있는 단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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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 뿐만이 아니라 사회 안팎으로 온통 우울한 일들 투성이다. 즐거워지려고 해도 즐겁기 힘든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은 확실히 관심을 끈다. 저자는 대놓고 <우리는 왜 우울할까>하고 직접적으로 묻고 있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우울증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애도와 멜랑콜리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에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보통 우울증에 대한 진단과 함께 해결방법의 하나로서 우울즐 약을 처방하는 것이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왔고,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한 대중들의 생각에 반대되는 주장으로서 우울증 진단과 처방에 우울증 약을 먹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애도와 멜랑콜리를 그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두 가지가 어떤 의미에서 관련이 있고,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너무나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심리학에서 애도는 상실을 극복한다는 관념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우리는 상실을 극복하는가?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상실을 삶의 일부로 만들지 않는가? 때로는 생산적으로 때로는 파국적으로, 그렇지만 결코 쉽지는 않게 말이다. 애도에 대한 좀더 면밀하고 상세한 관점을 통해 애도의 기제와 변천을 탐구할 수 있다. 멜랑콜리는 한물간 범주, 역사적 호기심거리, 자기도취적인 슬픈 기분을 이르는 시적 용어 등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멜랑콜리에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그리고 자기 인생이 하찮고 살만하지 못하다고 확신하는 사람처럼 멜랑콜리는 심각한 우울 증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상실, 또는 무언가의 상실에서 오는 우울증을 겪는 것은 상실 대상에 대해 애도를 제대로,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충분한 애도의 기간을 거치고, 충분히 애도를 표현함으로써 스스로 상실에 대한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진단과 처방의 이면에는 제약회사와의 금전적 거래, 지원 등으로 인해서 충분히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객관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우울증에 대해 너무나 당연시되던 우울증 약 대신 각자 개인의 원천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들을 들여다 보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제대로 직시함과 동시에 그것을 애도의 작업화로 표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형태로든 애도 대상에 대한 감정적 표출을 이루어 냄으로써 마음 속에 감겨져 있는 우울감을 밖으로 끄집어 내도록 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인 것이다.
보통의 우울증 관련 책들을 보면 어려운 학계 용어를 나열함으로써 학술 논문 못지 않은 저술을 펼쳐 보인다. 그러한 사실적 내용들에 정보를 얻을진 몰라도 크게 공감대는 갖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통의 해결 방식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함으로써 그 문제의 해결법 또한 당사자에게서 찾는다는 그 발상이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오히려 실직적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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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아마도 아무도 모르게 엄습해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때로는 주변환경에서 오는 우울함 아니면 내가 우울함을 만들어 우울이라는 동굴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 [우리는 왜 우울할까]를 통해서 우울의 근원과 왜 우울의 그늘에 노출되고 방치되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우리의 일상에 잠식해 있는 우울에서 벗어나는 법과 대처하는 법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선택했고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우울을 퇴치하는 법을 알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우울증에 대하여 보다 생생하게 접근하려 했고 정신분석적으로 사례를 들어 주면서 우울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전개 해 주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이런 우울과 슬픔을 약으로 대처하려 하는 우리의 실상을 일시적인 의학적 해결책에 의존하기 보다는 가장 근본적인 우울의 원인을 제거하고 접근하기 위하여 인간 내면을 보다 면밀히 살펴보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잠식해 있는 정신적인 부분을 건드려 그 해결점을 찾기를 권해 주고 있다.
우울증과 밀접하게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실에 대한 여러가지 다양한 부분의 지적과 함께 크고 작은 영역으로 엄습하고 상실의 이모저모를 언급해 주고 있고 이를 토대로 상실감에서 오는 우울증을 약의 힘을 빌리기 보다는 근본 원인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임시 방편으로서 아닌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고 이에 대해 공감을 가질 수 있었다.
멜랑콜리가는 용어의 등장과 함께 나는 새로운 용어를 접할 수 있었고 우울증과 관련하여 멜랑콜리가 무엇인지 메랑콜리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멜랑콜리는 한물간 범주, 역사적 호기심거리, 자기도취적인 슬픈 기분을 이르는 시적 용어 등으로 여겨진다고 말해 주고 있다. 쉽지 않은 영역으로의 접근이기는 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서서히 그 내용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었고, 멜랑콜리에는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멜랑콜리를 통해서 심각한 우울증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대해서 멜랑콜를 이해함으로 심각하고 위험함 우울 증상을 이해하는데 맣은 도움을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고 우울과 관련하여 또 다른 시각과 원인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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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우울할까 살면서 “우울하다, 내가 혹 우울증인건 아닐까? 혹은 조울증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던 거 같다. 정신과를 찾아 본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가 내게 “너 우울증 있는 거 아냐?”라고 말하지 않았으나, 그냥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그냥 아무렇잖게 “우울하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거죠. 그런 늬앙스의 말이 통상적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또 하나의 아무 생각 없이 썼던 말은 멜랑콜리하다라는 단어다. 그냥 기분이 우울(무의식적으로 그냥 이렇게 툭하고 던져지는 말, 상용어구가 된 우울과 멜랑콜리)하다고 느껴지거나, 축 처지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 때 “멜랑콜리하다”라고 사용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제게 ‘제대로 알고 사용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책은 우울에 대한 설명을 프로이드를 통해 풀어 간다. 프로이드가 애도와 멜라콜리아를 비교하며 우울에 대해 설명한다. ‘애도에서는 상실한 사람과 관련된 우리의 기억과 희망이 점검되고, 각각의 기억과 희망은 그 사람은 이제 없다는 판단에 직면한다. 생각과 이미지들을 훑어보고 다시 추스르는 이러한 과정은 결국 그 끝을 보게 되고, 애도하는 사람은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병적이거나 까다로운 애도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저지된다. 이는 주로 고인에 대한 사랑과 뒤섞인 증오라는 강력한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멜랑콜리아에서는 상실한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인 증오가 도리어 우리를 잠식한다. 상대방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기 때문에 한때 상대방에게 분노했듯이 우리 자신에게 분노하는 것이다. 차마 포기할 수 없기에 우리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 된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 책에서 지적하듯이 어쩌면 현재 사람들이 이해하는 우울증은 현대의학이 만들어 낸 증상과 그에 맞는 병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현대의학은 그 우울의 원인을 마음과 정신적인 상황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약으로 조절할 수 있다라 판단하고 약으로 치료하려고 한다. 각종 호르몬을 조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근본의 치료가 없기에 약물적 치료를 하는 현대의 의학은 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억눌러 없애는 것, 하지만 그것은 결국 또다른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저자 대리언 리더는 상실로 인해 우울에 빠진 사람의 치료를 위해 약물이 아닌 그 사람이 충분히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위 책의 인용한 부분에서 보듯 충분한 애도를 거친 사람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삶을 선택하는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을 돌아보고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거쳐 스스로의 내면을 강하게 한다면, 어떤 외부적인 일상의 슬픔과 괴로운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도 잘 견뎌낼 수 있는 건강한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어려웠던 이 책, 책을 읽으면서 우울, 애도, 멜랑콜리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물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프로이드의 이론들에 대해서도 살펴봐야겠다는 도전이 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