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8%
  • 리뷰 총점8 64%
  • 리뷰 총점6 18%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7.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허조그 1
"허조그 1" 내용보기
솔 벨로의 자전적 이야기라는데서 나는 적잖은 충격과 같은 남자로서 그에 대한 연민에 이 책을 들게 되었다. 허조그는 가정도 직장도 붕괴된 중년의 지식인으로 그러한 삶의 역경과 위기를 낙담으로서가 아닌 인생에대한 긍정과 관조의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실존적 고뇌를 해소할 또 하나의 통로를 제시한다.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들이 꼭 읽어야하는 필독서라 생각한다.
"허조그 1" 내용보기
솔 벨로의 자전적 이야기라는데서 나는 적잖은 충격과 같은 남자로서 그에 대한 연민에 이 책을 들게 되었다. 허조그는 가정도 직장도 붕괴된 중년의 지식인으로 그러한 삶의 역경과 위기를 낙담으로서가 아닌 인생에대한 긍정과 관조의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실존적 고뇌를 해소할 또 하나의 통로를 제시한다.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들이 꼭 읽어야하는 필독서라 생각한다.
z*******8 2016.09.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랑보다 소중한 이별
"사랑보다 소중한 이별" 내용보기
밥 알 한 알 한 알이 너무나 커서 쉬이 삼키지 못 하겠고, 지나는 바람 소리가 너무도 스산해서 눈물을 삼기는 때는 언제인가. 몸무게가 서너 배쯤 늘어난 듯 방바닥에 늘러 붙어 바닥이 난지 내가 바닥인지 구분 못 하고 지내던 시절은 언제인가. 이런 때는 이별하는 중이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평소보다 무기력해지고 하지 않던 편집증적인 일을 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몸
"사랑보다 소중한 이별" 내용보기

  밥 알 한 알 한 알이 너무나 커서 쉬이 삼키지 못 하겠고, 지나는 바람 소리가 너무도 스산해서 눈물을 삼기는 때는 언제인가. 몸무게가 서너 배쯤 늘어난 듯 방바닥에 늘러 붙어 바닥이 난지 내가 바닥인지 구분 못 하고 지내던 시절은 언제인가. 이런 때는 이별하는 중이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평소보다 무기력해지고 하지 않던 편집증적인 일을 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몸이 견뎌낼 수 없을 만큼의 운동을 한다. 정신의 고통보다 육체의 고통이 감내할 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순간뿐이고 불면의 밤은 육체와 정신에 동반되어 올 뿐이다. 그러한 불면의 밤과 괴로움이 정점에 다다를 때면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만남보다는 이별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별을 겪고 난 뒤 나는 그 전보다 성숙한 듯 느껴지고,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었음을 느낀다.

 

이 책의 주인공 허 조그도 마찬가지이다. 허 조그도 이별을 겪고 있는 중이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는 점과 자신이 아는 모든 이에게 편지를 쓴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허 조그는 자신의 전 부인의 부정을 가장 나중에 알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변심은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가장 늦게 알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허 조그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중요하다.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치유하기도 하고, 지식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소임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편지를 쓰는 대상은 광범위한데, 전 부인, 자신의 정신과 의사, 사촌, 존 듀이, 니체등이 그가 편지한 대상이다. 그는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치유한다. 전부인에 대한 적개심이 포용의 측면으로 돌아서는 것도 이 편지를 통해서이고, 자신의 무기력증을 사회전반의 문제에 대해 편지로 적어나감으로써 지식인의 책무도 일정부분 채워나가고 있다. 이는 자신이 연구하던 분야의 실패 또한 치유하고 있다.

 

소설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허 조그로 대표되는 전후 세대들의 허무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시절에 대한 낙관이다. 전 부인이 보여주는 지적 허영심이나 종교에 대한 선택적 믿음, 다른 등장인물들에서 느껴지는 허무들을 허 조그는 새롭게 사유해내고 비판을 통한 낙관을 이루어 낸다. 허 조그는 자신을 얽매고 있던 지식인의 차원마저도 그저 허울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종국에 허 조그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우리 시대의 많은 이들이 지니고 있는 지적 허영과 세상에 대한 허무를 극복하는 허 조그의 모습은 대단하게 느껴진다. 허 조그는 자신의 자식들에 대해서 애착을 보이고 있는데. 다음 세대에 대한 긍정으로 읽혀진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새로운 희망을 자신의 자신, 다음 세대에서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허 조그는 딸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했다. 물론 그 노력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기는 했지만 이 사실이 오히려 허 조그라는 인물을 더 긍정하고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허 조그는 방황을 통해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러 굴레에서 벗어나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의 이별을 통해서 사람이 이토록 변할 수 있다면 이 이별 또한 그 사람과의 만남만큼 소중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m*****1 2012.08.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학자, '허무'의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하다
"학자, '허무'의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하다" 내용보기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한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나긴 방황을 거친 허조그는 스스로를 포함한, 자신을 속박하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만의 세계, ‘학자의 허무주의’를 파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여인을 위해 기꺼이 ‘땅에 뿌리내린’ 꽃을 꺾는다. 허조그가 미친 듯이 편지를 써
"학자, '허무'의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하다" 내용보기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한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나긴 방황을 거친 허조그는 스스로를 포함한, 자신을 속박하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만의 세계, ‘학자의 허무주의’를 파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여인을 위해 기꺼이 ‘땅에 뿌리내린’ 꽃을 꺾는다.

허조그가 미친 듯이 편지를 써대며 정신착란을 앓게 될까 봐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근원에는, 외도를 저지른 아내와 절친한 친구에 대한 분노, 나아가 그것을 그 누구보다 늦게 알아차린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통탄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러한 분노와 통탄만으로는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허무’를 설명할 길이 없다.

 

현실 속에서 바둥거리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허조그에게만이 허무가 허락될 수 있는 것은, 그의 직업이 바로 교수(敎授)이기 때문이다. 교수란 고독한 학자의 길, 즉 오롯이 홀로서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정의와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옭아매기를 선택한 자들을 일컫는다. 허조그는 스스로 그러한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해답 없는 인간사에 천착하며 ‘지성인의 특권’에 내포한 허무로 내면을 채웠을 터이다.

연구의 종착점이 허무하면 허무할수록, 그리고 그 허무를 포장하려는 낯선 용어들이 등장하면 할수록, 현실에서 과시할 수 있는 학문적 공적을 세우기 위해 매달리는 허조그.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일상에서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고자 노력한다. 데이지와의 이혼, 소노와의 동거, 매들린과의 재혼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허조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애초부터 그에게 남은 것은 허무였고, 그래서 승리를 거두는 쪽도 허무였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상태에서는 분노와 통탄의 질주를 막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 속에 들이부은 술로 인해 온 몸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듯이, 허무로 인해 허조그의 분노와 통탄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기술이 그 자체로 정통 사상과 합리와 박애를 대변하는, 그래서 기독교와 도덕에 뿌리박고 있는 사상가 집단이 허무주의로 쏠리고 극단적인 광란 끝에 ‘건설적인’ 원리를 제공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그러나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 허조그는 자신의 아들인 마르코, 딸 주니를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지점부터 허조그는, 어쩌면 자신이 즐겨왔을지도 모르는 허무를 떨쳐내기로 한 것이 아닐까. 그 누구라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를 들으면 건강한 생명력을 떠올리고, 그러한 생명력이 자신에게도 내재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과 같이. 그가 허무를 떨쳐낸다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마르코, 주니, 그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싱그러운 생명력이다.

 

거스배치가 주니를 정성스레 목욕시키는 장면을 본 순간, 허조그는 드디어 분노와 통탄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맹목적인 학문 추구가 자신이 그토록 힐난하던 매들린의 무의미한 삶의 방식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바,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자신의 공허함을 생명력으로 가득 채우는 일 뿐이었다. 루디빌의 옛 집에 돌아온 그는 주니에게 줄 피아노에 칠을 하고, 라모나를 맞이하기 위해 꽃을 꺾는다.

허조그는 그제야 비로소 지상에 발을 디디고 서게 되었다. 그를 옭아맸던 지성인의 특권이자 학자의 고유영역이었던 정의와 이론으로부터, 또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허무로부터, 그는 벗어나지 않고 그 스스로 떨쳐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케 하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땅 위를 굳건히 밟고 서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온전히 살아 숨쉬고, 그 자체로 충만함을 느끼며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5 2012.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중산층 지식인의 일그러진 화해 방식
"중산층 지식인의 일그러진 화해 방식" 내용보기
‘허조그’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순차적으로 사건이 전개되긴 하지만 자유자재로 과거 회상과 자유 연상이 끼어든다. 무엇보다 그가 끊임없이 써대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편지’가 가독을 방해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왜 허조그가 그토록 ‘지독한 글쓰기’를 해야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정말 내가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다’(9)라고 주인공 허조그는 첫
"중산층 지식인의 일그러진 화해 방식" 내용보기

‘허조그’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순차적으로 사건이 전개되긴 하지만 자유자재로 과거 회상과 자유 연상이 끼어든다. 무엇보다 그가 끊임없이 써대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편지’가 가독을 방해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왜 허조그가 그토록 ‘지독한 글쓰기’를 해야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정말 내가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다’(9)라고 주인공 허조그는 첫 운을 뗀다. 그는 ‘신문사와 저명인사, 친구와 친척과 이미 죽은 사람들, 자신의 초라한 시신에게, 그리고 마침내는 고인이 된 위인들에게까지’(9) 이상야릇한 편지를 끊임없이 써댔다. 이 ‘편지’는 허조그의 심리 상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입장과 철학자와의 토론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사실상 편지가 아니라 독백에 가까운, 일그러진 파편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는 답장을 받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적는 글에 어떤 질서도 양식도 없었다. 단편적인 말-무의미한 횡설수설, 감탄사, 억지로 갖다 붙인 격언과 인용문,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쓰시던 이디시어……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죽음-죽다-다시 살다-다시 죽다-삶. 사람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 어리석은 자를 닮지 않으려면 어리석은 자에게 답을 하지 말라.’(12)


두 권짜리 소설에서 편지가 거의 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한다. 물론 뒤로 갈수록 편지는 더 장황해지고 논지는 복잡해진다. 그가 이토록 엄청난 편지를 쏟아낸 까닭은 무엇인가? 편지를 씀으로써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내가 보기에 답은 이렇다. 그는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편지를 쓰는 것이야말로 그가 끔찍한 절망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식이자 죽지 않기 위한 항거인 것이다. 


허조그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한 전형에 들어갈 수도 있다. ‘자기도취적, 마조히스트, 시대착오적인 성격, 임상적으로는 대체로 우울증이나 중증은 아니’(13)라는 간단한 수사는 그를 제대로 보여주기엔 역부족이다. 많은 남자들-특히 허조그가 대표하는 중산층 백인 남자-이 이러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비정상적이고 모호한 성격이지만, 가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보인다. 그의 근육은 여전히 건재하고, 피부도 미끈하다. 그러나 그는 늙어가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심히 의기소침해진다. 그는 학자로서 꽤 인정받고 촉망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연구비만 받아낸 논문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더구나 그는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이며, 그 원인 제공을 한 여자가 오히려 지금 그를 증오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농락당하고, 돈을 빼앗기고, 빚을 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아내와 친구, 의사에게 배신당했는지를 끊임없이  말하고 싶어 했다’(247)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것이 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말 대신 ‘편지’를 쓴다.


그가 맞딱뜨린 ‘배신과 기만’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한 인간을 통째로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그의 두 번째 아내인 매들린이 그에게 이혼을 통보하면서 그의 자아를 무너뜨렸다. 더구나 그녀가 사랑에 빠진 건 그와 가장 친한 데다 종종 매들린과의 일을 상담했고 거취까지 마련해주었던 밸런타인이었다. 그의 정신과 의사마저 매들린에게 빠져 그 일을 부추겼다. 그 의사에게 허조그는 조롱의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때때로 그들은 남의 잠자리에도 드나듭니다. 당신은 어떤 남자와 철학적 대화를 나누고 그 부인과는 잠자리를 함께 하지요. 또 불쌍한 남편의 눈을 바라보고 위로하며 그의 일생을 다시 정리해주지요. 당신은 몇 해 동안의 예산까지 세워주고 그의 딸마저도 빼앗지요.’(106) 


그는 이미 한 번의 결혼을 끝냈다. 엄격하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데이지를 떠나 화려하고 열정적인 매들린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매들린의 외도에 그토록 큰 상처를 받은 허조그가 수시로 혼외정사를 벌였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이런 종류의 모순은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이다. 허조그는 매들린을 위해 교수직을 버리고 유산 2만 달러로 지방의 고택을 산다. 시골에서 논문을 완성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아내는 이내 시골 생활에 대한 욕구 불만에 시달린다. ‘자신이 너무 젊고 지적이며 사교적’(17)이라고 생각하는 아내는 자신의 몸을 왜 당신에게 모두 낭비해야 하느냐고 일갈하기도 한다. 결국 시카고로 이사를 가지만, 거기서 아내는 이혼을 요구한다. 


“한 순간도 당신을 사랑한 적 없다고 고백하는 건 참 고통스럽네요. 앞으로도 당신을 사랑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이 결혼 생활을 계속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우리 결혼이 실패한 걸 인정하는 건 나로서도 참기 어려운 굴욕이란 걸 알아줘요. 나도 이 결혼에 모든 것을 걸었으니까요. 아주 타격이 커요.”(21) 


 그는 ‘오쟁이 진 남자’였고,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린 후에도 끝내 스스로 그걸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경악할 만한 사실은 허조그에게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심연은 얄팍한 웅덩이와 얼마나 닮아 있는가. 배신당한 인간이 내세우는 온갖 철학적 발언은, 고통스러운 진심을 숨기고 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자조와, 어떻게 감히 나를 배신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갈마들며 마음을 괴롭힌다. 지난 날을 하나씩 돌아보며, 기억의 단면들을 뼈아프게 회상한다. 그러나 온갖 인간의 부도덕에 대해 지탄하는 허조그가 초반에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거의 하지 않는다. 무언가 어긋났고, 그것이 서로의 문제인 건 인식한다. 그러나 매들린이 지적한 ‘폭군, 정신병자, 이기적이고 전제적인 남자’라는 발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 애인 소노가 한 말이기도 했지만, 매들린은 ‘눈이 너무 차가운 여자’였고, 허영에 가득찬 삶을 추구하는 사이코패스라고 매도한다. ‘예쁘고 영리한 데다 정신도 온전치 못하고 종교적(87)’인 여자라는 수사도 덧붙인다. 매들린이 불 같은 성미는 여러 장면에서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허조그가 사립탐정을 고용했다며 펄펄 뛴 적이 있었다. 사치를 감당하기 어려워 물건을 돌려보내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은 갈수록 커졌고, 잠자리도 원만하지 않았다. 허조그는 “어떤 남자도 자기를 원하지 않는 여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67)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매들린은 결국 그에게 의문부호였다.


‘여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영원히 모를 것입니다 여자들이 원하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들은 녹색 샐러드를 먹고 사람 피를 마십니다.’(70)


많은 사람이 그에게 안정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는 유럽여행을 떠나 돌아왔지만, 상태가 더욱 나빠졌다. 매들린은 그가 자신과 아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고했다. 그는 매들린에 대해 나쁘게 말해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과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다. 어떠한 위로의 말도 배신으로 흘리는 피를 멈출 수는 없다. 허조그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형과 누나, 사촌들에게도 사랑받았고, 여자들도 그를 사랑했다. 더구나 비참한 처지가 된 지금도, 그를 사랑하는 매력적인 라모나도 있었다. 


“당신은 여자와 다투면서 지내야,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249)


라모나의 통찰력은 훌륭하다. 허조그는 라모나가 사랑스러운 여성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녀를 피하려 한다. 자신도 신산한 삶을 살아온 라모나가 그에게 끊임없이 지혜를 퍼부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교정을 거절하지 않는다면서, 그녀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 라모나는 그의 장점을 알아보는 사람, 그의 살에서 나는 ‘향기’를 맡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그는 다정하고 현명하며 사랑스러운 마초인 것이다. 허조그는 단지 위로를 받고 싶어 찾아왔으면서 보고 싶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라모나에게 매들린과 밸런타인을 험담하고, 그녀는 그 이야기를 너그럽게 듣는다. 그는 라모나와 함께 하는 시간에도 계속 머릿속에서 편지를 써댄다. 그러나 그 날 밤, 매들린과 달리 그가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던 밤을 보낸 후, 그는 ‘편지를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중요한 발견을 깨닫지 못한 채 허조그는 다시 라모나에게서 떠난다.


그는 죽은 아버지의 집에서 권총과 달러를 챙겨 나온다. 그러다 우연히 재판을 목격하게 된다. 매춘을 한 소년이 판사에게 전혀 기죽지 않는 모습을 본다.


‘소년은 나쁜 현실에는 나쁜 환상으로 저항하며, 판사에게 암묵적으로 “당신 권위나 나의 타락이나 따지고보면 마찬가지잖아”라고 주장하고 있었다.’(2권 42)


한편, 세 살짜리 아이를 죽인 엄마의 재판에서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딸인 준을 떠올린다. ‘어떤 사람들은 살인하고 운다. 어떤 사람들은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2권 57) 두 범죄자(?)의 손에서 준을 구해야겠다는 계획으로 그는 의욕이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권총을 들고 간 매들린의 집에서, 그는 준이 밸런타인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본다. 세 사람의 보금자리에, 방해자는 오히려 총을 들고 덤불에 숨어 있는 자신이었다.

 

‘단지 준이 허조그가 사람들을 닮았다고 그 애가 둘보다 나하고 더 가깝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애의 삶에 아무런 역할을 못 해낸다면 어떻게 닮았다고 할 수 있을까?(2권 82)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그는 준을 포기하지 못한다. 밸런타인의 아내에게 가서 간통죄로 그를 고소하자고 제안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피비는, 남편은 언제나 밤에 돌아온다면서 허조그의 제안을 묵살한다. 친구의 집에서 허조그는 복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후 딸과 조우한 허조그는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경미한 교통사고를 내서 조사를 받게 된다. 탄환이 든 권총을 소지한 문제로 경찰과 대립한다. 형의 도움으로 간신히 유치장에서 풀려나온 허조그는 고택으로 돌아간다. 오래 방치된 그 고택에서 자연의 세례를 받는다. 허조그의 정신을 지배하던 비정한 니힐리즘이 사라지고,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는 처음으로 안락한 기분에 젖는다. 그는 드디어 라모나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다. 그는 편지쓰기를 그만두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도 전할 말이 없다. 단 한 마디도 없다.’(2권 208)


참으로 고통스러운 화해 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의 첫 부분과 대칭을 이루는 이 지점에서야, 허조그는 일그러진 자신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긴 이야기 속에서 작가가 쏟아낸 철학적 담론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는 도시의 빈민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아름다운 빈곤이, 도덕적인 빈곤이 미국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체제 전복적일 것이다. 빈곤은 추잡해야 한다.’(78) 그리고 그 빈곤을 지탱하는 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어떤 공동체든 간에 타인에게 대단히 위험한 계급의 인간들이 존재합니다. 범죄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응징과 형벌 제도가 있습니다. 저는 지도자를 말하는 겁니다. 항상 가장 위험한 인물들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입니다.’(84)


한편으로 인간답게 사는 방식에 대해서도 숙고한다. 그는 그레셤의 법칙을 변형하여 ‘공적 생활이 사적생활을 구축한다’(255)고 쓴다. 사회가 정치적이 될수록 개인의 개성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생활의 영역은 넓어졌지만 오히려 단조로워진다. 그래서 그는 ‘영감을 받은 상태’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리를 알고, 자유의 몸이 되고,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 존재를 완성한다는 것, 맑은 의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없이는 제 아무리 죽음을 피해 달아나고 외면해도 영혼은 이미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259)’


결국 긴 여정의 끝에서 그가 선택한 건, 복수가 아닌 관용, 파괴가 아닌 창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g*****a 2012.08.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허조그 - 솔 벨로
"허조그 - 솔 벨로" 내용보기
그는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듯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그러고는 그 시골구석에 파묻혀 신문사와 저명인사, 친구와 친척과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시신에게, 그리고 마침내는 고인이 된 위인들에게까지 이상야릇한 편지를 끊임없이 써댔다.(1권, 9쪽)   제법 명망 있는 학자로, 경제적으로는 궁핍함 없이,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을 둔 중
"허조그 - 솔 벨로" 내용보기
그는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듯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그러고는 그 시골구석에 파묻혀 신문사와 저명인사, 친구와 친척과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시신에게, 그리고 마침내는 고인이 된 위인들에게까지 이상야릇한 편지를 끊임없이 써댔다.(1권, 9쪽)
 
제법 명망 있는 학자로, 경제적으로는 궁핍함 없이,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을 둔 중년의 남자 ‘모지스 허조그’는 꽤나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허조그의 평탄한 삶은 아내의 불륜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분노와 배신감, 좌절과 회의는 비관주의과 허무주의로 점철되어 가고 그의 정신은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이러한 정신의 붕괴는 소심하고 나약한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한 채 대상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편지 쓰기’라는 편집증적인 형태로 발산된다.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편지들-이를테면 마음에 담아둔 여자, 자신을 기만한 변호사, 옛 친구, 경찰청장, 대통령 심지어는 킹 목사, 니체 등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전달될 리 만무한 인사들을 향한 부치지 못한 편지들-은 일종의 병적 행위의 결과물이자 몸부림이었고 동시에 상처 입은 영혼에 대한 치유의 행위였다.
 
 
아, 불쌍한 녀석! 그리고 허조그는 순간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신을 경멸해 보았다. 자신도 허조그를 비웃고 경멸할 수 있다. 그러나 끝내 한 가지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허조그이다. 나는 그일 수밖에 없다. 누구도 허조그가 될 수 없다. 자신을 비웃어도 결국에는 자신으로 되돌아가 진상을 파악해야만 한다. (1권, 108쪽)
 
소설 <허조그>는 현대 미국 문학의 거장이자 197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솔 벨로의 자전적 소설이다. 실제로 솔 벨로는 아내와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아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부정한 관계였음을 알게 되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소설 속 허조그는 솔 벨로 자신을 온전히 투사한 존재였으며, 허조그의 광적인 편지 쓰기 행위는 결국 솔 벨로의 글쓰기 행위를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허조그가 편지 쓰기를 통해 상처 입은 영혼의 정화를 이루고자 했다면 솔 벨로는 집필을 통해 자신이 겪은 고통을 예술의 경지로, 문학의 세계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책 속 ‘나는 허조그이다. 나는 그일 수밖에 없다.(…)자신을 비웃어도 결국에는 자신으로 되돌아가 진상을 파악해야만 한다.’라는 허조그의 독백은 결국 저자 솔 벨로의 독백이자 처절한 자기반성이며 이 소설이 어떤 식으로 끝을 맺을지 더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그는 병원에 입원하는 걸 거부한 것 말고 자기가 제정신이라는 증거가 뭔지 생각해 보았다. 아마 편지 쓰기를 그만두는 것일 테지. 그렇다, 사실, 다음에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를 사로잡았던 그 마법이 무엇이었든, 이제 그 마술은 그를 지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사라지고 있다. (2권, 208쪽)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 전반에 자리한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그리고 점점 더 고조되고 격해지는 허조그의 심리상태로 인하여 이 소설의 결말이 복수, 살인 혹은 자살과 같은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된다. 그러나 솔 벨로는 허조그를, 자기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는다. 아니, 절망의 바다 끝까지 허조그를 끌어내리지만 결국 허조그는 깊은 절망을 떨쳐내고 좀 더 원숙한 인간으로, 좀 더 강한 인간으로, 좀 더 따뜻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변모해 간다. 아내와 자신의 친구에게 살의까지 품었던 허조그는 인간이 가진 다양한 양면성을 깨닫고 스스로를 구원하게 된다. 또한 학문적 욕망과 독단, 자만심으로 점철된 자신의 상아탑과 나약하고 소심한 내면세계를 깨치고 나와 인간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바로 그 관계와 소통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 솔 벨로는 소설 <허조그>를 통해 결코 완벽할 수 없는, 한없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일 수만은 없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용서, 절망과 좌절 가운데서 성숙해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긍정 그리고 관계와 소통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제, 절망의 바다를 헤치고 나온 허조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할 뿐이다. 더 이상은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p*****l 2012.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읽기 쉽지 않았던 그 책 허조그
"읽기 쉽지 않았던 그 책 허조그" 내용보기
주로 비문학을 좋아하고 소설을 읽더라도 직관적이고 가벼운 소설을 주로 읽는 나에게 있어서 허조그는 결코 쉽게 대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더군다나 철학적이고 난해한 수사들과 현학적인 표현들. 단순히 번역상의 문제가 있어 이리 어려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원전 후기를 읽어보니 원래 소설 자체가 그런 것 같다. 철학이라든지 심오한 사상이나 사유에 대해 몸서리 치는 나
"읽기 쉽지 않았던 그 책 허조그" 내용보기




주로 비문학을 좋아하고 소설을 읽더라도 직관적이고 가벼운 소설을 주로 읽는 나에게 있어서 허조그는 결코 쉽게 대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철학적이고 난해한 수사들과 현학적인 표현들. 단순히 번역상의 문제가 있어 이리 어려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원전 후기를 읽어보니 원래 소설 자체가 그런 것 같다. 철학이라든지 심오한 사상이나 사유에 대해 몸서리 치는 나에게는 한편의 공포물과 같았다고 할까.

작품전체는 무겁고 비관적으로 전개되나  비슷한 유형의 '호밀밭의 파수꾼'과는 다르며, 한국의 이상 문학상 작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는 또 다르다. 

40대 중반으로 나오는 철학자 허조그와 그의 두서 없이 휘갈겨 내려가는 편지를 통해 작가는 1900년대의 미국 사회상과 유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인식, 그리고 그의 학문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사실 소설은 허조그가 두번의 이혼과 자신을 도와주는 척하며, 이용하기만 하는 주변의 인물 속에서 몽상가에서 현실가로 탈피하며, 그가 원하는 삶을 정신적으로 성취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소설이 진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모습, 즉 소설의 형태로 표현된 자서전이 아닌가 한다.

어떠한 목적성도 없이 자기 분야와 관계 된 자들에 대해 두서없이 적어내려가는 편지들과 편지를 통한 사유, 사회에 대한 비난, 마지막으로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온 허조그는 작가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아니면 말고 ㅋ)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철학에 대한 배경도, 그리고 문학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는 내 머리로서는 한번 읽어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두, 세번 더 읽어본다면 이 작품의 가치는 꿰어 낼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더 많은 지식의 축적만이 이 소설의 가치를 발굴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r********l 2012.08.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A Unserious Man
"A Unserious Man" 내용보기
인류의 핵심 문제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집단적 권력과 투쟁하는 일이며, 개인의 핵심 문제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비인간화와 싸우는 일이다. 솔 벨로,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서, 1976동트기 몇 시간 전, 외과의사 헨리 퍼론은 잠에서 깨어나 자기도 모르는 새 벌써 움직이고 있다. 앉은 채로 침대보를 밀쳐 낸 다음 두 다리를 딛고 일어섰다. 전에는 언제 정신이 들었는지는 알
"A Unserious Man" 내용보기

인류의 핵심 문제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집단적 권력과 투쟁하는 일이며, 개인의 핵심 문제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비인간화와 싸우는 일이다.

솔 벨로,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서, 1976


동트기 몇 시간 전, 외과의사 헨리 퍼론은 잠에서 깨어나 자기도 모르는 새 벌써 움직이고 있다. 앉은 채로 침대보를 밀쳐 낸 다음 두 다리를 딛고 일어섰다. 전에는 언제 정신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이언 매큐언, <토요일>, 2005


누군가의 흉내 혹은 미메시스 또는 모방 그리고 재현, 


이언 매큐언의 거시적으로는 정치적반전소설이며 더불어 개인의 은밀한 폭력적인 성향에 대한 한 개인에 대한 하루 일대기를 담은 <토요일>은 분명히 말하지만 솔 벨로의 <허조그>에 대한 ‘오마주’이다. 어떻게 보면 이언 매큐언의 소설들이 솔 벨로에 대한 전제적인 해설서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는 편에 나는 속해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1944년에 발표한 벨로의 첫 장편 <허공에 매달린 사나이 Dangling Man>부터 그의 마지막 장편 <라벨스타인 Ravelstein 2000>까지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도 변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매큐언이 그의 테마를 점차 침전되는 내면으로 돌입하고 있을 때, 솔 벨로는 그의 목적을 미국이민자로서의 현대인 삶의 공존을 모색하는데 온 심혈을 기울였다. 


<허조그>는 벨로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며, 동시에 전미도서상 세 번째 수상작중 두 번째 수상작품이다. 여기서 이 소설의 주인공 중산증위기에 빠진 Moses E. Herzog(모지스 허조그)에서 가운데 E는 ‘하나님은 소유하신다’의 뜻을 가진 Elkanah(엘가나)이다. 라고 알려져 있으며 허조그 그의 나이 47세, 두 번째로 경험하게 되는 이혼의 고통을 신랄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고 각각의 아내에게서 낳은 자식들이다. 


우선 허조그는 마치 에드가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의 한 대목처럼 편지를 쓴다 “그는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즛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썻다.”에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허조그>는 인물의 이름처럼도 보이지만 일종의 상징계적 상징의 한 유형으로 표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젝의 <왜 편지는 항상 그 목적지에 도착하는가?>라는 장에서 “상싱계적 수준에서 ‘편지는 항상 그 목적지에 도착한다’라는 말은 같은 명제들의 전체 사술(가족)을 응축한다” 라고 명시되있다. “송신자는 항상 수신자로부터 전도된 형태로 그 자신의 메시지를 받는다. 억압된 것은 항상 되돌아온다. 틀 자체는 항상 그 내용의 부분에 의해 틀지어지고 있다. 우리는 상징적 부채에서 달아날 수 없다. 그것은 항상 청산되어야만 한다. 이것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메타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동일한 기본 전제의 변주들이다. 라며 지젝은 메타 언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허조그>는 윤리적 애티튜드에 대한 심각한 고찰에 대한 임시방편에 속한 내레이션이다. 이 말은 바디우의 사건과 존재의 관계를 윤리학적 입장에서 고찰하며 일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이 주제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방식을 발명하도록 구속한다 라는 말과 같다. 

n*****m 2012.07.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허조그 -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허조그 -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내용보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긁어버린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믿었던 아내와 친구는 눈이 맞아버렸고, 주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아내로부터 강제 이혼 통보를 받은 그에게 남은 것은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과 빚, 사회적 추락,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다.
"허조그 -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내용보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긁어버린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믿었던 아내와 친구는 눈이 맞아버렸고, 주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아내로부터 강제 이혼 통보를 받은 그에게 남은 것은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과 빚, 사회적 추락,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다.

 

  그가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편지 쓰기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명 인사, 이미 역사의 한 편으로 사라져버린 이들에게 쉴 새 없이 편지를 쓴다. 그의 편지는 종잡을 수가 없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는 편지는 허조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지식들과 다른 사람에게 풀어낼 수 없었던 속마음을 가득히 품고 있다. 이 정신 없는 편지는 곧 허조그를 상징한다. 허조그에게 있어서 편지는 자신을 증명하는 통로이다. 교수로서의 명성도 추락하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 그에게 편지 쓰기는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지식들을 펼쳐놓음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지금까지 묵혀 왔던 이야기들을 마음껏 토해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편지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쓴 편지를 발송하지 못한다. 그리고 허조그는 곧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바로 만남이다.

 

  “정말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타인의 도움으로 우리가 일하는 것이고, 또 우리의 도움으로 그들이 일하는 거야.”

 

  소설 속 대사처럼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나고 인연을 맺음으로써 살아간다. 허조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꽃집 여인 라모나를 만남으로 그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간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을 그는 마침내 찾아낸 거다.



 

t********0 2012.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어떻게 허조그는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허조그는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용보기
허조그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겪는 상상 속의 나였고 나를 괴롭히는 못된 악당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허조그는 쉽게 읽히지 않았다. 아내의 불륜, 그것도 친한 친구와의 불륜이라는 소재의 설정은 나를 미칠듯이 자극했고 감정이입에 익숙한 나로써는 허조그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않았다. 마치 내가 겪는 일인것만 같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책장을 넘김에 따라 실
"어떻게 허조그는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용보기

 

 허조그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겪는 상상 속의 나였고 나를 괴롭히는 못된 악당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허조그는 쉽게 읽히지 않았다. 

아내의 불륜, 그것도 친한 친구와의 불륜이라는 소재의 설정은 나를 미칠듯이 자극했고 감정이입에 익숙한 나로써는 허조그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않았다. 마치 내가 겪는 일인것만 같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책장을 넘김에 따라 실제의 나는 책 밖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 후 조금씩 평정심을 찾아가고 천천히 허조그를 바라보다보니 색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 나는 허조그의 아내인 매들린과 친구인 거스배치를 욕하기 바빴다. 어떻게 남편의 사랑을 배신할 수 있으며, 어떻게 친구의 우정을 배신할 수 있는지 속으로 물음을 그들 둘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세상에 원인없는 결과가 없고 이유없는 다툼이 없듯이 글을 지배하고 있는 허조그의 생각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혼사태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허조그에게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낭만주의에 대한 논문을 쓰고 철학과 사색에 빠진 허조그가 지식인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허무주의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포착하는 순간 명확해졌다.

 첫번째로 이혼한 데이지와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안정적이고 특별할 것 없는 결혼생활에서 극단적인 허무에 빠진다. 명확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이 싫어 어디로든지 벗어나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하는 허무주의는 허조그를 소노라는 일본인 여자와의 육체적관계로 까지 이끌어가고 결국에는 또다른 아내로 매들린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행위자체는 허조그를 허무에서 구해주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장에 이르기전까지 모지스 허조그는 지성인의 특권이라고 여겨지는 정의과 이론에 얽매여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채 살아갔다. 이것이 실제로 저자의 삶과 어느정도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 책이 솔벨로의 자전적 소설인만큼 아마도 작가는 현실에 대한 심각한 허무를 느끼고 삶을 지탱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허조그의 일상을 음미하면 할수록 신기하게도 책 속에서 독자인 나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허조그와 과거의 나는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했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생활이 끝난 직후 재수를 결정함에 있어서 나는 심각한 허무에 빠져있었다. 삶의 모든것이 하찮게 보였고 재미없었으며, 현재의 생각만으로 내 미래의 삶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을거라는 어린 착각에 휩싸여있었던 나는 삶보다는 죽음이 더 반가운 뒤늦은 사춘기청년이었다. 그런 나의 허무주의는 대학교1학년때까지 이어졌고 조금만 더 지속되었더라면 나 자신이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그랬던 나의 단단한 허무를 깨준 것이 군대였다. 군대에서의 땀과 부딪힘, 극복과 좌절과 같은 인간의 피부가 직접적으로 맞닿는 현실이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던 망상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허조그의 허무를 깨준 것은 다름아닌 사랑하는 자식과의 접촉이었다. 보기만해도 사랑스럽고 깨물어주고픈 딸 주니와의 만남을 통해 허조그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아들 마르코에게 편지를 써 루드빌의 자기집으로 초대하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는 스스로의 마법에서 풀려나게(편지쓰기를 중단)되고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마지막장을 읽고서는 무릎을 탁 쳤다. 소설 전반에서 답답했던 허조그가 결론적으로는 스스로를 극복한 것이 만족스러웠고 그 경험이 내 경험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이 탄성을 자아냈다. 두 사람의 인생(과거의 나와 책 속의 허조그)으로 미루어봤을때 인간에게는 분명 뿌리내릴 땅이 필요하다. 지적 욕구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살갗을 맞대는 인간미이고 피부를 비비는 마찰이다. 

 이런 것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영화 레옹이다. 킬러 레옹이 인간으로써 삶의 행복을 알아가게 된건 마틸다와의 따뜻한 관계였고 결국 그는 죽지만 그의 분신인 식물은 영화마지막장면에서 땅에 뿌리를 내린다.


 사실 이런저런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허조그라는 책이 쉬이 읽히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철학적 내용들이 곳곳에 등장하기도 하거니와 소설이 아주 흥미를 끄는 문체로 이루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많은 청춘들-본인이 대학을 나온 지성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허조그를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싶다. 아무쪼록 현대 지식인들이 자기만족과 고루한 생각에 빠지지않고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사회가 열리길 기대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j******1 2012.08.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불안정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자화상.
"불안정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자화상." 내용보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면만 바라본다.'는 이 구절을 보는 순간 결국 인간은 자기 합리화를 하며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구나 하고 깨달았다. 점점 나이가 먹을수록 시아가 점점 어두워진다. 솔 벨로의 <허조그>를 읽을 때도 모지스 허조그의 위기에 처한 중년의 모습 보다, 40대 남자사람으로
"불안정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자화상." 내용보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면만 바라본다.'는 이 구절을 보는 순간 결국 인간은 자기 합리화를 하며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구나 하고 깨달았다. 점점 나이가 먹을수록 시아가 점점 어두워진다. 솔 벨로의 <허조그>를 읽을 때도 모지스 허조그의 위기에 처한 중년의 모습 보다, 40대 남자사람으로 '어른'인 그가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못하고 두번의 이혼을 하고, 교수직을 그만두어 사회적 위치가 약해진 나약한 어른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10대에는 20대의 모습이 안정적으로 보였고, 20대에는 30대가 되면 안정적인 직장에, 배우자도 만나 아이를 하나 둘 낳고 삶을 안정적으로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그 시절에 꿈꾸었던 '그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기에 인생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때 생각했던 '평온함'과 '안정적'이라는 말은 세대를 걸쳐 살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도달하기 힘든 과제가 아닌가 싶다. 허조그를 보면 불안정한 모습 속에서도 '편지'를 쓰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쓰지만 보내지 않는 소심함과 카타르시스적인 감정을 쏟아내는데 있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영혼을 풀어내곤 하지만 어쩐지 그 글속에서도 그의 모순적인 행동들이 담겨져 있다.

 

비극적인 상황에 희극적인 모습들이 우스면서도 뭔가 찜찜한 속내를 드러낸다. 소심한 A형 같은 모습을 드러내다가 전형적인 지식인의 고독함을 나타내는 허조그의 모습은 불안정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자화상 같다. 허조그처럼 편지를 쓰지는 않지만 혼자 중얼중얼대며 공중에 말을 풀어버리곤 한다. 시간이 지나 점점 더 자신이 생각한 이상에 닿을 수 없는 나약함을 인간 스스로가 한계라고 생각하며 소리없는 벽에 부딪히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그의 모습이 때로는 눈물겹다.

 

<허조그>는 저자 솔 벨로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만큼 지식인의 깊은 고뇌에 대해 유감없이 깊은 심연을 그려내고 있는데 허조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여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보여지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 사이의 갈등이 보이며 이중성을 가진 허조그를 보면서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허조그의 모습에서는 나와 같은 모습이, 때로는 다른 사람의 모습들이 비춰진다. 지식인으로서의 깊은 고뇌는 따라갈 수 없지만 그가 겪는 기본적인 감정들은 보이되 보이지 않는 그림자와 같다.

 

행복을 추구하려면 불행한 결과에도 대비해야 한다. - P.28

 

겉과 속의 솔 벨로의 편린 속에서 주옥같은 문장들이 쏟아진다. 그 가운데 이 문장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어쩌면 허조그가 이 한문장의 뜻을 일찍 알았더라면 그가 깊이 고뇌할 일도, 그의 삶이 흔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또 한명의 거장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l****9 2012.08.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