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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색다른 스릴러 추리소설,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 아이를 토막 낸 엽기적 살인마, 그 공포자의 살인자는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이런 잔인한 살인을 저질렀나. 아이의 행방불명과 아이의 유괴와 살해를 겪는 부모의 심정은 ‘둘은 서로 결코 찾을 수 없는 위안을 삼아보려 애썼다. 이 부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견딜 수 없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상처 이상의 고통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리라. 왜 무엇을 위해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일까? 전체적인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나,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부모의 사랑과 어렸을 때의 상처가 아닌가 생각된다. 책 속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일들이 항상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분명 아이들과 지내는 것은 강한 인내심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우리의 자식이지만, 우리는 왜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지 못하는 걸까?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 아이의 지금의 모습은 당신의 과거의 모습이다. 막상 만난 살인자, 그는 겁에 질린 비겁자였다. 그는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오직 자신의 위안을 위해서. 거인과 제닛, 제닛에게 일어난 시련, 자신을 편안히 하기 위해서 바친 재물, 벌이냐 구원이냐? 누구에게 바치는 재물인가? 이 살인자를 지배하는 주인은 누구일까? 살인사건의 진행은 의외로 어린 소녀(나야)를 중심으로, 수사관(레이나)와 의사(피터)를 그 주변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나야는 피터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새로운 의미를 알게 해 준 아이였다. 나야의 비밀은 무엇일까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어렸을 때의 상처를 간직하고, 자라났다. 그 상처의 기억과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하는 일들 ‘사람들은 늘 자신의 행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병원에서의 생활, 병원 응급실은 마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잘 보존된 생태계 같았다. 불쌍한 영혼 소아정신병동의 아이들, 천진난만하게 보이는 아이에게 제어하지 못하는 무서운 힘들이 발산된다. 인도 출신의 아이, 뭔지 모를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나야의 꿈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 그것은 단지 나야의 꿈이지만은 않았다. 영혼의 표시(몸의 선들), 환생, 운명 예언이라는 개념의 도입과 미래를 읽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 인도출신의 작가가 만들어낸 흥미로운 요소인 것 같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정신적 트라우마, 우리의 마음 뒤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지배자, 하지만 이런 지배자도 우리 스스로 만든 함정이거나, 부모들이나 어른들로 인한 상처이다. 우리는 이 저주의 사슬을 풀어내고 찬란한 모습으로 설 수 있을까? 마음의 상처를 받는 그런 아이들이 두 가지 부류 중 하나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피터와 레이아를 통해서 상처를 극복한 모습과 아카스 등의 극복하지 못한 모습을 대조를 하면서 보여주는 것 같다. 과연 피터와 레이아는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그렇게 손에 땀을 쥐며 읽어가는 추리소설은 아니다. 대충 중간 정도만 가면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러나 왜 이런 일들이 생겼는지를 펼쳐 보이기에 끝까지 흥미를 유지하면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뛰어난 추리력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 그 상처는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 그리고 당신의 미래도 좌우할 수 있다. 또 사회에서의 약물중독의 위험의 경고, 외과의 에버슨은 약물중독으로 범죄까지 가담하고, 그의 인생을 스스로 파멸시킨다. * 번역의 유감, 이 책에서는 대체적으로 내용은 번역이 잘된 것 같다. 하지만, 흔히 범하는 오류, 이모와 고모, 삼촌과 외삼촌 등을 잘 구분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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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 꿈을 꾸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꾸는 행위는 우리에게 있어 굉장히 신비로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잠을 자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일련의 과정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영혼의 사슬]에 등장하는 나야는 우리보다 조금 더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바로, 죽은 자들이 꿈에 나타나 말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살인범을 추적하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자, 이제 눈치를 좀 채셨나? 이책은 사건을 추리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를 추리하는 이야기이다. 유괴범죄의 베테랑 FBI요원이 휴가중에 달려오고, 미국 최고의 법의학자가 시체의 파리유충으로 사망일자를 알려주면 뭘하나. 범인에 대한 단서는 하나도 찾지 못한 채, 나야의 꿈을 단서로 범인을 추적할 뿐이다. 추리소설로는 기대치가 많이 떨어지지만, [영혼의 사슬]의 작가 프리담 그란디는 아동· 청소년 담당 정신과의학 박사로서의 자신의 지식을 소설 전반에 녹여냄으로 그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군지 추리하게끔 만드는 전개방식은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나야의 정신치료 전담의사 피터는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야를 포기하지 않는다. 의학적인 치료가 아닌 심리치료를 계속 해나가는 것이다. 나야의 꿈에 나타나는 죽은 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야가 그 존재로부터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죽은 자의 집에 찾아가 그의 유품들을 보고 살아있었을 당시의 사진도 직접 보게 한다. 이러한 치료를 통해 꿈에서 죽은자가 나타나 말을 건넨다고 해서 이상하거나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야에게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나야 외에도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로 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정신병동에 격리되어 치료받고 있는 아이들도 친구를 사귀고, 적절한 교육을 받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주활동 무대인 소아 정신병동을 소개함으로 정신적인 문제를 무조건 숨기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봐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방식은 전지적작가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제3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범인의 심리를 특히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그럴 때는 범인을 '노예'로 지칭한다. 범인은 자신의 정신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존재인 아난시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묘사때문에 본의 아니게 범인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범인을 어린 소녀를 무참하게 살해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도저히 용서할 가치조차 없는 인간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범인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의사의 입장에서 정신학적으로 추리해낸다. 범인은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학대에 따른 상처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그대로 방치되어 버렸다. 학대받은 아이들이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야에게 치료를 베푸는 의사 피터도 어린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어머니도 어린나이에 그를 떠났다. 그렇지만 피터가 범인과 다를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많은 어른(이모)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범인의 경우에도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보살핌과 치료를 받았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범인이 측은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감정은 제3자의 입장이라서 가능한 것이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전혀 그렇지 않을테니, 나와 같은 감정으로 감히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표지를 뒤집어 놓을 정도로 무서웠던 것은 처참한 살해방식에 대한 묘사나 나야가 꾸는 초현실적인 꿈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 두려운 것은 범인의 정신에 자리잡고서 강력하게 그를 지배하고 있던 존재이다. 피터는 나야의 꿈에 나오는 죽은 자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범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존재 아난시에 대해서는 그저 망상이라고 결론내린다. 하지만, 죽은 자가 꿈에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범인의 정신을 지배했던 그 존재도 당연히 인정해야 하는게 아닐까? 작가가 언급했듯이 범인에게 있어서 아난시는 실제하는 강력한 존재이다. 그렇기때문에 피터가 의사로서 범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포기'라는 단어를 선택했다)해버린 것은 매우 아쉬운 결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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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의 작품은 늘 긴장시킨다. 검증이 되지 않은 작가인지라 낯선 작가가 선보일 재미가 어떤 수준일지 가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의외의 재미보다는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무래도 한번쯤은 겪어본 작가들 위주로 책을 선택하게 되고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기대보다는 우려가 항상 앞서게 된다. 이번에 만난 “프리담 그란다”의 <영혼의 사슬(원제 A Circle of Souls /북캐슬/2011년 11월)>도 작가가 전업(專業) 작가가 아니라 아동· 청소년 담당 정신과의학 박사로 사실상 비전문 작가인데다가 사실상 첫 번 째 작품이라고 하니 역시나 걱정과 우려로 책 읽기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 낯선 작가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의외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하굣길에 10세 어린 소녀 “제닛”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용한 마을인 “코네티컷 뉴베리”가 발칵 뒤집힌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만 일주일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자 같은 마을에 사는 유력 정치인이 FBI에 도움을 요청하고 휴가 중이던 어린이 실종 사건 전문 요원인 여형사 “레이아”가 긴급 투입되는데, 얄궂게도 레이아가 도착하던 날 실종되었던 제닛이 토막난 시체로 발견된다. 항공 촬영을 통해 조각 조각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 지점들을 선으로 연결해보자 묘한 주술적 형태가 드러나고 레이아는 과거 사건을 조사하던 중 30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소녀 살해 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뉴베리 종합소아병원에서 아동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전담하는 의사인 “피터 그람”은 몽유병 증상으로 하마터면 발코니에서 추락 사고를 당할 뻔했다가 응급실에 실려 온 일곱 살 어린 소녀 “나야 헤이스팅스”를 맡게 된다. 뇌파 측정 및 MRI 검사 등 여러 검사를 시행하지만 나야에게 딱히 이상을 발견할 수 없는데, 특이한 점은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아주 자세하게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점이었다. 나야가 전날 꾼 꿈을 그린 그림을 보게 된 피터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그 그림은 바로 제닛의 끔찍한 죽음을 그대로 그려낸 것이다. 소아 병동에 신문이나 TV 시청도 되지 않아 나야는 살인사건에 대한 뉴스를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피터가 나야와 면담해본 결과 놀랍게도 꿈에서 죽은 제닛이 조각조각 난 몸을 실로 꿰맨 채로 나야를 찾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피터는 그림을 들고 제닛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이자 나야의 그림에도 그려져 있는 “코끼리 바위”를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수사를 하고 있던 FBI 요원인 레이아와 뜻하지 않은 조우를 하게 된다. 과연 30년 전과 지금 현재 어린 소녀들을 끔찍하게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나야의 꿈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추리소설인줄 알고 읽었는데 책 페이지가 넘어갈 수 록 이야기 방향이 이상하게 전개되어 당황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어린 소녀가 끔찍하게 살해되고, 이런 사건이 30년 전에도 일어났다는 대목까지만 해도 유아 연쇄살인범을 다룬 미스터리이겠거니 했는데 소아 정신 병동에 머물게 된 소녀의 꿈에 처참하게 살해된 소녀가 나타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담당의인 피터에게 말까지 전달한다니 추리소설의 규칙을 위반한 이야기 전개가 금세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도 출신의 입양된 아이였던 나야의 친어머니 또한 나야와 비슷한 증세 - 몽유병에 예언 능력 - 을 앓고 있었고, 나야의 외삼촌이 나야와 피터가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런 운명이 가문에 전해 내려 오는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피터의 전생(前生)이 30 년 전 살인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대목부터는 이제는 더 이상 추리소설이 아닌 본격 심령 공포 소설로 장르를 완전히 전환되어 버린다. 이 책이 어떤 장르인지 분명히 알게 되고 나서야 당황스러움은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 전개에 몰입하게 되었다. 노틸러스 북 어워드 수상, USA북뉴스 최우수도서 선정이라는 책표지 문구를 보면 분명 서구(西歐) 쪽 소설인데 그동안 “스티븐 킹” 이외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오컬트적 요소들, 그것도 예지몽(豫智夢), 전생과 환생(還生), 예언(豫言) - 물론 범인의 엽기적 살인 동기는 자메이카 토속 신앙에서 비롯되니 동양적 요소라고 볼 수 는 없지만 - 등 동양적 정서가 다분한 이유가 과연 뭘까? 아무래도 작가가 바로 인도 뱅갈로 출신인지라 자연스럽게 인도 신앙이나 동양적 정서가 배어나온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초자연적인 요소와 추리소설로서의 스릴이 서로 성기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내어 읽는 내내 유치함이나 지루함 없이 책에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과 재미만큼은 뛰어난 소설이었다. 다만 아동 실종, 유괴 사건을 해결해 온 전문가로서 의욕적으로 사건 수사에 나선 FBI 요원 레이아는 결국 이렇다 할 활약을 펼쳐보지 못하고 밑도 끝도 없는 어린 소녀의 꿈에 의존해 사건을 해결하게 되고, 결말에 이르러 피터와의 러브라인을 보여 주는 역할로만 그쳐 캐릭터 설정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추리소설을 기대했다가 심령 공포 소설 - 그렇다고 모골이 송연하고 꿈자리가 사나울 정도로 극한의 공포는 아니니 공포 소설을 꺼려하는 분들도 편한 마음으로 읽어볼 만한 수준이다 - 을 만나게 되어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야기 설정과 전개는 꽤나 진지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 읽는 내내 긴장감과 스릴을 맛볼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 읽고 나니 엉뚱한 궁금증이 하나 들었다. 이 책이 과연 허구(虛構)일까? 앞서 언급한 작가의 이력처럼 작가가 현재 이 책의 주인공인 “피터 그람” - 이름이 작가와 비슷한 걸 보면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한 것 같다 - 처럼 아동·청소년 정신 상담 일을 하고 있다니, 그리고 전문적인 작가가가 아닌 이상 자신의 실제 경험이 녹여서 썼다고 한다면 혹 실제 경험은 아니었을까?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상상해보니 괜히 으스스 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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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길을 걷다가 만난 사건치고는 너무 황당하고 당황스러워 할 말을 잃는다. 한 아이가 방과 후 귀가 길에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닌 호기심에 호수가를 따라 집으로 향한 걸음이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되었다. 코네티컷 뉴베리의 조용한 마을에서 한 어린 소녀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아무런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없고 누구가의 비위를 건드릴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실종신고가 되고 탐문 수색이 이루어졌지만 아이를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되자 FBI에 수사의뢰를 하게 된다. 또 한편에서는 일곱 살 소녀 나야 헤이스팅스가 악몽에 시달리고 평소와 다른 이상행동을 하여 정신병원을 찾는 일이 발생한다.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나야는 전신과 치료과정에서 그림으로 그리게 되고, 그림을 살피던 담당의사는 나야의 꿈과 살인사건과의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고 나야의 그림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범행이 발각될까 두려워한 범인이 또 다른 범행을 계획하고 진행시키려고 하는데, 범인이 노리는 희생자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범인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범인은 유년시절 자신이 경험했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현실이 아닌 망상에 사로잡힌 생을 살았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어린 소녀를 살해한 범인의 정싱과 치료 기록을 살펴보던 중 알게 된 사실, 범인은 어린 시절 자신의 부친이 어떤 여자를 성폭행 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 충격과 살면서 만난 상처가 합쳐져 누군가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닐까? 너무나 충격적인 어린 시절의 기억, 정신적 트라우마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물론 충격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악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괴한에게 살해당한 어린 소녀 제닛, 너무나 억울한 죽음을 당해도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가지 못한다는 영적인 내용도 언급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선과 악은 분명한 일이며, 억울함이 풀린 후 영원히 건너야 할 곳을 향하는 영혼의 세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과연 사후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는 모르는 것이어서, 더욱 남에게 악한 일을 행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사람은 선한 행동을 해야 마음 편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전생에 데비 샌더스였다는 말씀이신가요?” 피터가 겨우 말을 꺼냈다. “지금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믿을 수 없는 얘기겠지만 맞아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그람 선생님이 나야와 만나게 될 운명이었던 것 같네요.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만이 범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몰라요.” 피터는 그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엔가 씨의 얘기가 완전하게 이해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피터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한 일은 지금까지도 충분히 겪은 게 아니었나? 이번 주에 일어난 일들을 도저히 하나도 믿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제가 이해하는 게 맞는지 확실히 해야겠어요.” 피터가 다소 반항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선들이 제가 전생에 관절마다 조각나서 살해된 흔적이란 말씀이시죠?” “그래요.” 이엔가 씨는 완전히 확신하는 투로 말했다. “데비 샌더스의 영혼은 피터 그람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전생의 흔적이 남게 된 거죠. 그 자국들은 그람 선생님이 전생에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순간에 몸에 생긴 흔적일 거예요.” 이엔가 씨가 명확하게 설명했다. “정말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피터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잔뜩 고뇌하며 말했다. “가끔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죠. 그리고 그 원인에 의심을 품지 말고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있답니다.” 이엔가 씨가 조심스럽게 피터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p.394~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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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무래도 읽고 난 뒤 잔상이 며칠동안을 괴롭히기에 그런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잡은뒤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그렇게 무섭지는 않지만;;;) 결국 밤을 새서 읽어버렸다.
책은 노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난시를 두려워 하는 노예는 용서를 받기위해, 어린아이 한명을 죽이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제닛 트로이, 이 어린소녀는 영문도 모른채 노예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관절마다 토막이나는 토막살인을 당한다. 노예는 이 토막난 아이를 코끼리 바위위에 머리만 펼쳐놓고, 관절마다 토막낸 시체를 그 주변에 묻어두고, 그것을 수사하는 요원 레이아의 얘기가 전개된다. 레이아는 시체 유기모습을 보고 30년전에 벌어졌던 살인사건과 동일하다고보며 연쇄살인 가능성을 의심한다.
같은 시간이 아동정신과 의사 피터에게 몽유병 증상을 보이는 "나야"라는 어린아이가 찾아온다. 생생한 꿈을 꾸는줄만 알았던 나야는 꿈속에서 죽은것들과 이야기하는 신기하고도 무서운 경험을 하게된다. 그 꿈안에 제닛 트로이라는 노예에게 죽임을 당한 아이가 나타나고 나야는 꿈에서 본 것들을 피터박사에게 그림으로 설명을 한다. 자신을 죽인 거인을 벌해주길 바라며 제닛트로이는 밤마다 나야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과학적인 것만을 믿는 피터박사와, 레이아 요원은 믿을수없음에도불구하고, 다른 정황상의 증거를 찾을수없는 나야의 말을 토대로 범인을 유추해간다.
그과정중 위협을 느낀 노예때문에, 나야까지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은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때문에, 그렇지만, 모든 사람은 얽히고 얽힌 사이이기에, 결국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지구어딘가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사람이 한명쯤은 있다고들 하는데, 이승이 있듯이, 저승또한 죽은 인간이 사는 세계라하는데,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다고하는데, 만약, 책과같이, 나와 운명의 고리가 엮인 사람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사람의 존재를 알았을때, 나는 착한아이 "나야'처럼 그 존재를 가여히 여기고, 도와줄수있을지,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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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사슬'은 논리적으로 사건이 해결되어가는 범죄 소설이 아니다.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가미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를 더한 스릴러라 할 수 있다. 사실 '꿈'을 매개체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발상은 진부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드라마나 영화, 소설의 소재로 많이 사용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지루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소재임에도 이 소설에는 다른 소설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이 숨어 있다.
이 소설에서는 비정상적으로 강한 적이나,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나약한 인간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보통 비범한 주인공이나 범죄자를 내세우는 소설들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는 꿈을 통해 피해자와 소통하는 어린 여아인 나야는 물론이고 의사인 피터나 FBI인 레이나, 그리고 살인범 역시도 특출한 면보다는 인간적이고 나약한 면들이 두드러지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다른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긴장감이나 긴박감을 느끼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이해하게 되는 마음이 앞서게 된다.
그리고 아동, 청소년 정신의학도인 저자의 경험과 관점이 잘 녹아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최대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피터가 입원 치료가 필요한 아이를 입원시키기 위해 매번 보험사와 전화상으로 입씨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나, 아이들이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제압하는 부분, 아이들의 입원생활을 묘사하는 부분 등은 저자가 정신의학 센터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실질적으로 겪은 일들이기 때문인지 논리적으로 비교적 생생하게 표현한 부분들이 많다. 그리고 양부모님 밑에서 사랑받는 나야의 모습과 원만하지 못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피터와 살인범의 모습을 대조시키면서, 유소년기부터 이어온 정신적 트라우마를 부각한 점은 정신 의학도인 저자 나름의 관점이 잘 드러난 부분인 것 같다.
또한, 서양 스릴러에서는 드물게도 인도적 신비주의를 소재로 초현실주의를 표현한 점도 흥미롭다. 보통 마법이나 주술을 통해 초현실주의를 표현한 소설들이 많은데, 친숙하지 않은 초현실주의를 가미함으로써 색다른 느낌과 신비감을 더해 준 것 같다. 여기에서 초현실주의는 강력한 힘을 표현한다기보다는, 나야가 꾸는 꿈이나 환생이 얽힌 피터와 나야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분명한 사항에 대해 초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독자를 이해시키고 있다.
살해장면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다른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달리 무섭다거나 섬뜩하다는 느낌보다는 편안한 느낌으로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지루하다는 느낌보다는 '벌써 다 읽어버렸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술술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소재로 글을 쓸 때의 강점이 돋보이게 잘 드러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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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에 로켓을 쏘아 올리고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고도로 발달 된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신비한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가끔씩 우리를 놀라게 한다. 종종 일어나는 기적과도 같은 이러한 일들을 종교적 측면에서 받아들이기도하고 영혼이나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들에게도 분명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임에 틀림없다. 직접 목격한 바도 없거니와 영혼의 존재에 관해 회의적일지라도 착한 사람은 신의 축복을 악한 자는 벌을 받게 된다는 권선징악을 믿는다.
어린 소녀의 실종사건으로 평화롭고 조용하던 마을은 발칵 뒤집히고 범인은 짐작조차 할 수 없고, 당황한 마을의 수사관과 마을사람들은 수색에 나섰지만 학교를 나온 뒤 아이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게되고 마침내 처참하게 살해된 채 여러 곳에 묻힌 시신이 발견되고 FBI 요원레이아를 비롯한 검식반이 현장에 속속 도착한다. 도대체 누가? 왜? 이처럼 끔찍한 모습으로 어린 소녀를 살해했을까? 관절마다 조각나서 살해된 사건현장을 둘러본 레이아는 범인이 종교적인 의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된다. 한편 일곱 살 소녀 나야는 악몽을 꾸다 급기야는 아이가 부상당할 위험에 처하게 되자 병원응급실을 찾게 되고 정신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게 된다. 잠결에 걸어 다니는 몽유병 증상으로 생각하던 담당의사 피터는 나야의 그림을 통해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게 된다. 나야가 그린 그림의 내용이 살인사건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더욱 나야가 한번도 가본적도 없는 살인현장은 피터도 아는 장소가 아닌가.
한편 FBI 요원은 잊혀진 지 꽤 오래된 30년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살해 된 소녀의 사건일지를 발견하게 되고, 두 사건의 범인이 동일 인물임을 확신한다.
나야의 치료에 도움이 될가해서 만나게 된 나야의 외삼촌 이엔가 씨는 피터가 전생에 30년전 살인사건의 희생자인 데비 샌더스였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도 않을 뿐더러 믿을 수 없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 때문에 그람 선생님이 나야와 만나게 될 운명이었던 것 같네요.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만이 범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몰라요.” “데비 샌더스의 영혼은 피터 그람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전생의 흔적이 남게 된 거죠. 그 자국들은 그람 선생님이 전생에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순간에 몸에 생긴 흔적일 거예요.” 이엔가 씨의 설명에 피터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고 나야의 꿈 이야기를 경찰에 해야할지, 그들이 과연 믿어 줄지 고민하게 된다. “가끔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죠. 그리고 그 원인에 의심을 품지 말고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있답니다.” 이엔가 씨가 조심스럽게 피터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노예는 땅바닥에 누워 안심하는 마음으로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난시, 아난시, 아난시…. 그 이름은 마치 북소리 장단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의 중심에는 바로 그 이름이 있었다. 노예는 아난시의 기척을 다시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바람은 곧 아난시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난시는 실제로 존재했을 뿐 아니라 아주 강했다. 노예는 자신의 삶을 아난시에게 바치며 평생을 그의 노예로 살고 있었다. 그는 아난시를 만나기 전의 삶을 떠올려 보았다. 아난시를 만나기 전에 그는 노예가 아니라 한 소년이었다. (본문 22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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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러스 북 어워드 수상 USA북뉴스 최우수도서 선정 공포와 희망이 한데 섞인 심리 스릴러 최고의 작품
책 표지를 보자마자 호기심을 발동하게 한 작품이다.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꼭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으로,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불과 몇페이지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책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읽는 순간부터 책에 몰입하게 되었는데, 범인을 예측하는 것도 어려웠을뿐만 아니라, 서스펜스도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었다. 구성도 굉장히 치밀한 작품인데, 처녀작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저자는 아동,청소년 담당 정신과의학 박사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을 상담해온 경험을 토대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인간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선과 악 그리고 미스터리한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담겨져 있다.
코네티컷 뉴베리의 조용한 마을의 어느 가을날 오후, 수입을 마치고 친구 멜리사와 헤어진 제닛은 좀 멀지만 흥미롭게 느껴지는 윌로우 호숫가를 따라 집으로 가던 중 사라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목요일, 동트기 전을 시작으로 시간순서에 따라 쉼없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자신을 찾는 호출에 소아과 응급실에 간 아동 정신과 의사 피터 그람은 그곳에서 나야 가족을 만나게 된다. 잠을 자던 나야가 2층 발코니 벽을 오르려던 것을 발견한 부모님이 나야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피터는 나야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입원치료를 권하게 되고, 나야가 꿈을 꾸는 내용을 그림으로 정확히 그려내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나야는 꿈 속에서 제닛을 만나게 되고, 피터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자신을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반면, FBI 레이아는 제닛 트로이의 실종 사건을 맡게 되고, 실종된 아이의 부모와 이웃들과의 면담에서도 아동학대나 방치에 실종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점과 실종에 대한 실질적인 단서를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찰나, 제닛 트로이의 시체를 발견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토막난 여자아이가 꿈에 나타났다는 나야와의 상담을 끝낸 피터는 식당에서 우연히 읽게 된 신문에서 제닛 트로이의 실종 사건에 대해 알게 되면서 놀라움을 경험하게 되고, 나야가 꿈에 대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사건 현장을 찾아 갔다가 레이아를 만나게 된다. 레이아는 피터에게 나야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후 지속적으로 나야의 꿈에 나타난 제닛을 통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게 된다. 피터는 나야에 대해 알기 위해 그녀의 외삼촌을 만나게 되고, 나야와 피터의 인연 그리고 피터의 전생에 대해 듣게 된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많은 것들이 증명되고 있지만, 우리는 종종 초자연적인 현상을 접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영혼이 있다?없다?라는 것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증명할 수 없는 많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영화 '사랑과 영혼'이나 우리나라 영화 '헬로우 고스트' 등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떤 기대감이나 호기심이 만들어낸 소재가 아닌가 싶다. <<영혼의 사슬>>은 이렇게 우리가 증명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영혼'이라는 소재로 흥미를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이런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가정환경과 성장환경을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내면이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슬프고 아픈 어린 시절을 겪어왔다. 그 힘든 유년 시절로 누군가는 의사가 되고, 누군가는 악마가 되었다.
"힘들고 폭력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서 꼭 살인 충동을 느끼는 건 아니에요." "맞아요. 오히려 그 중 일부는 아이들에게 강한 보호본능을 갖게 되죠. (중략) 그런 아이들이 두 가지 부류 중 하나로 자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정신적 트라우마라는 게 사람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몰라요." (본문 470p)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는 나야, 그리고 아동정신과 피터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이야기니만큼 이 책 속에는 정신적인 질환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저자 프리담 그란디는 청소년 상담을 통해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소설로써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피터의 실체와 예측할 수 없었던 범인으로 놀라운 반전을 가진 <<영혼의 사슬>>은 공포와 서스펜스를 보여줌과 동시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읽어도 절대 질리지 않을 이 작품은 흥미와 인간의 내면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를 너무도 잘 풀어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는 굉장한 힘을 가진 책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 책이 가진 강력한 힘을 거부할 수 없으리라.
(사진출처: '영혼의 사슬' 표지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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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범죄수법도 다양하고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과정도 좀 더 스릴 있고 등등 점점 더 추리소설의 형태에 따라갈 수 없을만큼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한동안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둘러싼 범죄를 그린 범죄 스릴러 소설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러면서도 또 보게 되는데, 사실 소설이니 망정이지 이 책 속의 일들이 실화로 벌어진다면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어느 일상의 한자락이었을 그 시각에, 꽃처럼 어여쁜 소녀 하나가 호기심을 못 이기고 들어간 창고 안에서 너무도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노예'라고 이름 불리우는 그 정체모를 범인에 의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범인을 쫓기 위해 파견된 FBI요원은 열심히 사건을 쫓아가고 단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한편, 이야기와 전혀 관계없어보이는 소아정신과 병동의 의사 피터와 그의 새로운 환자인 일곱살 나야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등장해서 의아하게 만든다. 그러던 사이에 범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어 절단된 소녀의 시신을 찾게 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특이할 것은 '아동 청소년 담당 정신과의학 박사인 저자의 작품으로 실제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을 심리 치료하면서 축적된 경험을 통해서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하니, 그러한 부분에서는 보다 리얼하게 정신병동의 아이들의 심리를 묘사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범죄 스릴러의 경우, 범인이 가지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라던가 정신적인 이상 등이 원인으로 어린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하거나 강간해서 죽이는 일등으로 사건을 다뤄가는 범죄 스릴러를 얼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와 다른 이야기라면, 이책은 보다 몽환적이면서도 인간의 과학으로는 증명하지 못하는 소녀의 꿈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구성이 독특했다. 조금 현실성이 없어보이는 부분과, 소름돋는 우연의 일치가 맞물려서 읽는 내내 정말로 소름이 돋았다. 심리스릴러의 묘미를 담은 듯한 느낌과, 살짝 동화적인 판타지도 보여서 읽는데 복잡하지 않아서 술술 읽히는 구성인 듯 하다. 특히 제목과 내용이 맞아떨어지는 부분에서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고나 할까. 어쨌든 소설은 소설이니,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도록, 이 세상에 어른들로 인해서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로인해 상처받거나 2중 3중의 범죄로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염원하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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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YES24 리뷰어클럽 리벼C의퀴즈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1. <영혼의 사슬>은 프롤로그를 포함해 총 75개의 장으로 나뉜다. 마치 인터넷에 연재되는 소설처럼 짤막하게 장을 나누어 구성됐는데, 정말로 인터넷 연재 소설이었다면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했을 듯하다. 게다가 '1. 어느 가을날 오후'처럼 각 장의 이름을 통해 시간대를 알게 한 점이 독특했다. 같은 날의 일이지만, 각 장마다 주인공이 되는 등장인물이 다르다거나 시간대가 미묘하게 다르다거나 하는 점으로 장을 나누고 있다. 그걸 보니 예전에 영화 <밴티지 포인트>를 봤던 때가 생각나 꽤 재미있었다.
2. <영혼의 사슬> 속 범인은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노예'로 칭해지는데, 사건이 전개되면서 노예의 정체를 밝혀줄 단서들이 하나씩 제시된다. 마치 내가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사소한 단서라도 빠뜨리지 않고 과연 범인이 누구인지 조심스레 접근하다가 마침내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내 예상에 맞았을 때 느끼는 쾌감이란! 이것이 추리, 스릴러 장르의 매력인 듯하다.
3. 사실 범인의 정체에 대해서 뭔가 반전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주어진 단서대로 따라가다보니 정말로 그 사람이 범인이어서 뭔가 2%로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태껏 내가 읽어왔던 추리소설들은 범인의 정체나 사건의 동기 등을 추리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혼의 사슬>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것이 주가 됐다. 아마 처음으로 심리 스릴러 장르를 접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싶다.
4. 사건 해결의 열쇠를 가진 '나야'라는 아이는 잠시 아동 정신과 병동에 머무르게 된다. 그때 그 병동에 함께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과격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만 표현했다. 결국 그 이유로 가족들과 격리되어 그 병동에서 생활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부딪히다가 약물이나 격리를 통해 진정시키고. 그 모습이 나도 모르게 참 속상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잘못된 감정 표현의 원인이 부모의 방종 또는 잘못된 양육방식 등이었기에 '아이들은 죄가 없는데 너무 짠하다' 싶어서 나야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잠시 집중이 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