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번에 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게 선물하려고, 아내가 구입한 것이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주말에야 집으로 돌아올 것이기에, 내용도 궁금하고 제목도 흥미로워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남자이면서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는 현실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고등학교 교사이며 남성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면서, 저자가 가족과 직장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맞부딪히는 현실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남성인 저자가 쓴 페미니즘 관련 책자를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페미니즘에 관하여 남성들이 쓴 책들이 간간히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머리말의 제목처럼 ‘남자가 무슨 페미니스트야?’라고 하는 반응이 되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겠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그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에는 남성중심적인 제도와 습속들이 깊이 자리를 잡고 있다. 때문에 ‘남자’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남자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경우도 아직까지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남자아이들의 놀이보다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하는 것이 더 좋았지만, 주위에서 놀리는 것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기억을 털어놓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성 역할을 고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에서, 저자는 ‘페미니즘은 남성의 삶과도 맞닿아 있으며 여성만큼 남성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남성들에게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고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억압할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기를 권유하기도 한다. 같은 남성으로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일부 남성들에 의한 ‘여성 혐오’ 현상은 그동안 남성중심 사회에서 누려왔던 특권을 잃지 않으려는 ‘기득권 지키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모두 5개의 항목으로 이뤄져 있는데, ‘1장, 어머니와 아들’에서는 자신의 가족 특히 어머니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저자가 페미니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와 갖은 고생을 하며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억척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저자는 그럼에도 때로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부부 사이의 이혼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예전에는 이혼을 하면 여성에게 결함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저자 역시 어머니의 이러한 현실을 목도하고, 그것을 통해 불합리한 여성의 현실을 목도하였던 것이다.
‘2장,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자’에서는 저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페미니스트로 살게 되었던 과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만연했던 성폭력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에게는 관대하고 피해자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현실을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친지들이 모이는 명절에 여성이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남성들은 그저 편하게 차린 음식을 먹는 것에 익숙한 풍경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학 시절 밤거리를 걸으면서 남자가 뒤에 따라오는 것이 겁이 났었다는 여자 후배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저자 역시 남성이었던 대학 후배를 통해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되면서, 이러한 현실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모순과 수백 년을 내려온 악습’의 결과물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페미니즘은 단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만 의미가 있는 운동이다. 2016년에 발생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서, 일부 남성들의 여성 혐오의 문제가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다. ‘3장, 선생님, 혹시 주말에 강남역 다녀오셨어요?’에서는 이를 비롯해 여성에게 불리한 한국 사회의 각종 제도와 현실의 문제를 짚어보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남성인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며, 실제로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결국 ‘건강한 사회는 남의 아픔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많은 사회’이기에, 그동안 남성과 여성의 처지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이 사회적 약자였음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오랜 고민과 행동의 결과, 저자는 국어 교사로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통해 그 당위성을 펴나가기로 한다. 즉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 작품이나 글쓰기 수업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학생들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제4장, 800명의 남학생과 함께’에서 제시되고 있다. 나 역시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수업 방식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5장, 혐오와 싸우는 법’에서는 페미니즘이 남성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 이를 위한 저자의 실천 방식을 상세히 논하고 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운동이’이기에,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또한 ‘남성 페미니스트는 자신을 협력자로 정체화하고 여성이 하기 힘든 역할을 보조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기득권이’며, 그렇기에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쥐고 있는 것들을 좀 내려놓자’고 권유한다. 그래서 저자는 나에게 ‘유리한 쪽보다 유익한 쪽에 서기’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은 여성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문제이지만, 저자가 남성이기에 조금 특별한 것처럼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천국으로 인식될 수 있는 환경이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서 본다면, 다른 이들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에필로그의 제목으로 삼은 ‘함께 지옥에서 살아가기 위하여’라는 의미를 곰곰이 따져봐야 할 이유일 것이다. 책을 출간할 당시에 뱃속에 있었던 저자의 딸은, 아마도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자신의 딸이 ‘여자라서 꿈을 꺾지 않고, 여자라서 참지 않으며, 여자라서 자기를 단속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존엄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또한 책의 말미에 첨부된 ‘남 페미를 위한 커리큘럼’에 소개된 책들은 아직도 페미니즘에 대해서 거리감을 지니고 있는 남성들에게 읽기를 권유하고 싶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저자 최승범은 남자인데 페미니스트다. 내가 사는 지역 고등학교 선생님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책의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부장제의 수혜자이자 가해자, 그리고 공모자
우리나라 여성 해방 운동의 역사에서 현재를 과도기로 본다면 나는 전형적인 낀 세대다. 물론 가부장제의 수혜자이자 가해자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는 남녀 차별이 상존한다. 그래도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가 사회 생활하던 시기보다는 다소 나아졌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당연시 여기던, 무의식적으로 지나쳤던 사실들이 여성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성 외모 품평회, 남성들과의 음담패설, 가사의 여성 편중, 여자다움에 대한 강요와 편견 등 성차별과 성폭력의 사례로 지적된 일들에서 대부분 자유롭지 못했다.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했던 언어에도 뿌리 깊은 성차별 논리가 박혀 있다는 것도 이제서야 정확히 알게 됐다. 특히 저자가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가 됐다는 어머니의 고단한 삶은 더 공감이 됐다. 우리 세대 어머니들이 그랬듯 나의 어머니 역시 가부장제의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2017년부터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단연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페미니즘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성찰은 없었다. 강남역 살인사건, 홍대 누드모델 사건, 이수역 폭행 사건 등 이슈가 된 사안들을 통해 파악한 표피적 수준의 정보가 전부였다. 아니 본질보다는 여성과 남성의 과격한 성대결 양상에만 주목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리부트한 페미니즘의 거대한 역사 흐름 속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공부하고 성찰해야 한다"라고 남성들에게 촉구한다. 나아가 "페미니즘은 남성의 삶과도 맞닿아 있으며 여성만큼이나 남성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라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남자들은 왜 술에 취해야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까. 힘들어도 혼자 이겨내는 것, 슬퍼도 울지 않는 것이 왜 남자다운 행동이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남성성의 스펙트럼에 갇힌 남성 역시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페미니즘은 여자만을 위한 게 아니었어? 굉장히 신선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거부감도 상쇄됐다.
설거지 잘하는 남자가 되겠습니다.
나는 당장 페미니스트가 되기에는 역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준비도 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처럼 남녀평등의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거창한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다. 두 딸의 아빠로서 극히 개인적인 소망이다. 이기적인 동기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으며 한 인격체로서 충분히 존엄 받는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형식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활 페미니즘을 실천하겠다. 남성의 기득권을 조금씩 내려놓겠다. 우선 설거지를 잘하는 남자가 될 것이다. 설거지뿐만 아니다. (그동안 돕는다는 생각에) 간헐적으로 해왔던 청소와 요리 등이 나의 일임을 깨닫고 주체적으로, 의무적으로 해야겠다. 남성 우월주의에 젖은 말과 사고 습관 역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 공부를 더 열심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같은 평범한 남자에게 페미니즘이란 그렇게 거창한 담론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대로 생활 속 작은 실천들이 여남 평등의 새 시대를 여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한가지 첨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소위 일부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에 대해서다. 분명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는 때론 급진적인 주장과 행동, 희생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분법적인 남녀 성대결적 사고는 우리가 원하는 남녀평등의 시대를 이루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특히 그것이 극심한 혐오를 바탕으로 한다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아무리 옳은 방향과 의견이라고 해도 다수의 동의와 지지 없이는 그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 적과 동지, 편가르기식 구분이 아닌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매우 은근하게, 슬며시 얘기"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
|
몇 권의 페미니즘 책을 읽어봤지만, 이 책처럼 구구절절 맞는 말을 온화하게 적어둔 책은 없었습니다. 다른 어떤 책들은 여자들이 저자이긴 하지만 너무 말을 세게 한다거나, 불편한 현실을 억지로 모두 꺼내어 더 불편하게 만드는 점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책도 그런 건 아닐까 했는데, 이 책은 남자의 언어로 적은 여자들의 현실에 모든 말 하나하나 공감되네요. 정말 매 페이지 줄을 긋게 만드는 책입니다. 페미니즘을 아는 사람이든 알고 싶은 사람이든 기울어진 운동장을 못보는 사람이든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제 주변에도 직접 사서 선물해주고 싶어요!! |
내가 청소년기에 저자와 같은 선생님을 만나 조금 더 일찍 페미니즘에 대해 접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져 있을까?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한계 없는 희생과 헌신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습니다. 왜 우리 어머니는 저렇게 힘들게 사실까? 속된 말로 '미련하다', 나라면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희생에 기생하며 편하게 살아왔습니다. 가슴 한 구석에 부채감이라는 짐을 갖은 채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취업 준비를 앞둔 대학 동기들 입으로부터였습니다. 왜 같은 스펙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단순해 보일 수 있는 말이지만 이 짧은 문장 하나가 우리에게 큰 파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페미니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뭐 하나 뒤지는 것 없는 우리를, 이 사회는 왜 항상 뒤지도록 만드는가? 뒤지듯 보이도록 만드는가?
하지만 저는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친한 남사친에게라도 제가 느끼는 불편함이나, 남사친이 악의 없이 되묻는 "그건 몇몇의 특이한 사람들 때문이잖아", "섣불리 일반화하는 거 아냐?" 등의 말에 제대로 대처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냥 불편한 마음만 있었지, 차근차근 설명해나갈 내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가려웠던 부분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저자께서 쉽게 풀어 설명해주셔서 저도 제 안의 억울함, 제 안의, 이 세상에 대한 불편함의 근원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교사이다 보니 여러 관점에서(문학 작품을 들고 와 설명해주시는 부분) 페미니즘을 접할 수 있었는데, 색다른 구성도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조금 더 즐겁게 페미니즘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몇 권 더 사서 친한 지인들과 제 남자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사실 남자친구에게는 오프라인에서 한 권 더 구매해서 선물로 줬고 오늘 1장까지 읽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는 페미니즘이란 단어의 뜻도 잘 모르면서 그냥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무지를 이해하고, 조금 더 열심히 읽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말주변이 없어 남자친구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잘 얘기해주지 못했는데, 명쾌한 해법서가 되어준 느낌입니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좋은 글 읽을 수 있도록 책 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이 책은 페미의 ㅍ도 몰라서 ㅍ이라도 알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것도 아니면 요즘 세상에 남자를 혐오한다고 외치는 사람이 읽어도 좋고요. 읽으면 알겠지만 작가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자신도 페미를 몰랐고 그걸 깨닫는 과정을 쉽게 글로 풀었어요. 읽으면서 느낀점이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하구나..를 느꼈어요. 여자인 저는 너무 당연해서 그냥 넘어갔던 것도 사실은 당연한 부분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7p. 페미니즘은 남성의 삶과도 맞닿아있으며 여성만큼이나 남성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 *8p.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신 인류라지만 남학생들이 남성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아재'나 '할배'와 다를 게 없다. 다른 남자를 폭력적으로 대하거나 다른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둘 중 하나다. *11p.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더 많은 사람에게 보편 인권을 보장해온 역사의 물줄기에 올라타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막거나 외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김치녀'가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단속했던 여성들이 이제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데, 남성들은 '한남충'이 되지 않기 위해 여전히 여성을 단속하려 든다. *20p. 우리집이 이상하다. 며칠 뒤 어머니는 우리에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도 괜찮겠느냐 물었다. 나와 동생은 울며불며 싫다고 부르짖었다. 그날 이후 우리집은 다시 평소로 돌아갔다. 남자 셋에게는 더없이 안온했으나 어머니에게는 위태롭고 잔혹했을 일상으로. *25p. 페미니즘 사고의 시작 매일 부딪히고 수시로 요동쳤지만 집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다. 행여 가족들이 걱정할까 싶어 힘들다는 말은 일절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자기 삶은 늘 뒷전이었다. 그보다 먼저 엄마이고 아내이기를 강요받았다. *29p. 중년 여성의 자리 중년 남성이 멋있으려면? 아내가 있어야 한다. 중년 여성이 멋있으려면? 남편이 없어야 한다. 아내는 남편이 없어야 장수하고 남편은 아내가 있어야 장수한다는 한 대학의 연구 결과를 보면 결혼이라는 이름의 착취 구조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가 명확해진다. *33p. 다른 집도 다 이러고 산다고? 나쁜 엄마 되는 건 정말 쉽다.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고, 젖몸살을 앓으면서도 모유 수유하고, 면 기저귀를 일일이 빨아가며 사용해도, 답답해서 잠시 외출했다가 아기가 감기라도 걸리면 금세 이기적인 엄마가 된다. 나쁜 아빠 되는 건 정말 어렵다. 애가 울거나 말거나 귀 막고 잠을 자도, 젖병 소독이며 목욕 한 번 안 시켜도, 유모차 끌고 동네 한 바퀴만 돌면 금세 자상한 아빠로 소문난다. 백 가지 중 하나만 잘못해도 나쁜 엄마가 되는데, 백 가지 중 하나만 잘해도 좋은 아빠가 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썼고 돌보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엄마나 누나처럼 여겼다. *35p. 어머니의 우울증 아버지는 풍류를 아는 사람이었지만 한평생 노동에 시달린 어머니는 놀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는 걸 알지만 집 말고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식들을 키워낸 후 많은 어머니들이 우울증에 걸린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경로가 자식의 성공뿐이었던 현실에서, 자신의 삶과 자식의 삶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그들을 조롱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어두컴컴한 텅 빈 집에 홀로 앉아 자주 지난 삶을 돌아봤다. 거기서 가엾은 여자 아이를 만났다. 자기 인생을 살지 못했던, 고단한 삶에 지친 아이를. *48p.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다수의 표현이 남성을 인간의 기본값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생각 없이 써왔던 무수한 말들이 실은 차별 투성이었음을 깨달았다. 페미니즘은 현실을 객관화하는 도구다. 무조건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잘못한 쪽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유용하다. 우는 남자, 말 많은 남자, 힘 없는 남자도 괜찮다고 토닥인다. 군대가라 떠밀고, 데이트비용과 집 장만의 부담을 주고, 아담한 키와 작은 성기에 주눅 들게 하는 주체가 '김치녀'가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남성의 삶도 자유로워진다. *52p. 각성은 괴롭다. 쇠사슬을 끊고 광야로 향하는 발걸음은 자유로운 동시에 배고프다. 그러나 한 번 깨치고 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새로운 길로 향하게 될 것이다. *89p. 피해자에게 따지는 한국 사회 다시 말해 성범죄는 권력 관계에서 일어나는 범죄다. 실수였다는 말, 충동적으로 저질렀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술에 취해 사장 뺨을 때리는 사원은 없고, 이사장의 딸을 더듬거리는 교장은 없다. 그런데도 여성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책임을 묻는다. 폭력사건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으면 신체적 · 정신적 피해를 배상받은 것이지만,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으면 처음부터 돈을 노리고 접근한 꽃뱀으로 취급한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진지하게 묻고싶다. 그럼 격투기 도장에서 스파링하는 사람은 길 가다 얻어맞아도 폭력사건 피해자가 될 수 없는 거냐고. 우리는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왜 잃어버릴 짓을 했냐고 몰아세우지 않는다. 길가다 맞은 사람에게 왜 맞을 짓을 했냐고 힐난하지 않는다. 살인, 방화, 강도, 사기, 협박 등 어떤 범죄도 피해자에게 '왜 조심하지 않았냐'고 따져묻지 않는다. 오직 성범죄 피해자에게만 왜 옷을 그렇게 입었냐고, 왜 화장을 그렇게 했냐고, 왜 그 늦은 시간에 귀가했냐고, 왜 술을 마셨냐고, 왜 혼자 다녔냐고, 왜 저항하지 않았냐고 따진다. *103p.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언제 어디서나 기득권인 사람은 없다. '난 한국사람이니까 이주노동자의 고충에는 관심 없어.' '난 경상도 출신인데 전라도 사람이 어떤 취급을 받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팍팍해진다.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아?' '혼자 아무리 애써봤자 어차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더 차가워진다. '난 남자니까 여자의 삶 같은 건 몰라도 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더 망가진다. 건강한 사회는 남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많은 사회다. 크기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환부가 있다. 이 상처에 바르는약과 저 상처에 바르는 약은 다르지 않다. *140p. 남초 집단에서 발언해야 하는 이유. 세상이 바뀌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 평등하려면 더 가진 쪽이 불편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은 기득권이다.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쥐고 있는 것들을 좀 내려놓자. 남자가 바뀌는 만큼 새날은 빨리 온다. *157p. 학생들의 비난에 대처하는 법 남성ㅡ여성 관계에서는 우리 남자들이 문화적 · 사회적 젠더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려 한다. 늦은 밤 귀갓길이 무섭지 않은 것, 몰래카메라의 공포를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것, 불쾌한 말과 터치에 기분 상하지 않는 것, 옷매무새를 단속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월등히 높아진다는 것을 설명한다. 남자 교사에게는 차마 하지 못할 말과 행동을 여자 선생님에게 할 수 있다면 그게 성차별이고 젠더 권력의 발현이라는 말도 전한다. 우리는 결백할지라도 남성들이 가해자가 되어 여성을 괴롭히는 일이 잦다는 것, 여성의 입장에서는 얼굴만 보고 누가 가해자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모든 남성을 경계하게 된다는 것, 그러니 나 또한 싸잡혀 욕을 먹으면 여성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 남자들'을 향해서 분노하는 것, 그게 도덕적이고 정의롭다는 것 이런 얘기를 자꾸만 전해주려 한다. *160p. 동지는 어떻게 규합하는가. 리베카 솔닛은 그의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흑인 남성이 백인 남성보다 페미니즘을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별도 받아본 사람이 잘 안다.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가 연대하는 것. 페미니스트 중에 채식주의자가 많은 것도 자연스럽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니까. *부록* (페미니즘 도서를 쓴 작가님들은 대부분 끝부분에 페미니즘 도서들을 같이 추천해주신다. 짱!_) <거리에 선 페미니즘> 물 흐르는 대로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한국 남자'가 된다. 거기까지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눈감고 귀 막는다면 그때부터는 공모자다. 나는 차별 안 해. 나는 좋은사람이야. 나는 달라. 그렇게 자부하는 사람이 더 무섭다. 성찰하고 연대하자. 혹시 책을 읽었는데 '이거 너무 극단적인 사례만 모은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운이 없는 거 아니야?' '내 주위에서는 이런 얘기 안 하던데?' 이런 생각이 든다면 한말씀 드리고 싶다. 그러니까 여성들이 당신에게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184p. (부록) "난 여자는 안 때려"라고 은혜를 베풀 듯 말하는 이들에게 권한다. 그거 하나도 안 멋진 말이다. 성별을 떠나 모든 생명체는 때리면 안 된다. '요즘 맞고 사는 여자가 어디 있어?'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여자가 그렇게 많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의 무지를 이 책들이 중화해주기를.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한국여성의 전화, 오월의 봄 일베는 '삼일한'을 좋아한다. '여자와 북어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천박한 말에서 온 조어다. 진짜 '삼일한'은 따로 있다. 한국 여성은 삼 일에 한 번씩 남편이나 남자친구의 손에 죽는다. 그런데도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일은 사적이고 사소한 문제로 취급된다. '가정폭력'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남편의 일방적 폭행을 지우는 것이 그렇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집안 문제라는 말에 그냥 돌아가는 것도 그렇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아주 친밀한 폭력> 정희진, 교양인 아내가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상식적인 주장을 수백 년째 목 놓아 외쳐야 하는 이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엄마됨을 후회함> 엄마가 되는 것이 무조건 적이 축복이 아닌 이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을 송두리째 후회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이유를 알자.
|
. 내가 대여섯살쯤? 엄마가 울고 있는 뒷모습을 본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한밤중에 잠이 깬 나는 무의식중에 엄마를 찾았는데, 엄마가 어두운 방 구석에 혼자 앉아서 소리를 죽이면서 울고 계셨다. 어린 나이에도 무언가를 직감적으로 느꼈던 나는 소리내어 엄마를 부르지 못하고, 조용히 다시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면서. 다음날 눈을 뜨고 본 엄마는 다시 어제랑 변함없는 모습이었고 조금은 안심했었던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울음의 깊이, 눈물에 담긴 진짜 마음을 진정으로 공감하고 같이 울게 된건 그로부터 20여년의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20여년간의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몰랐으니까. 무지했으니까.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밤하늘의 별도 따줄 것 같던 남편은 아이가 울면 짜증을 내는 사람으로 돌변했을 것이다. 잠든 남편을 방에 둔 채 가슴과 등에 나와 동생을 달고 숱한 새벽을 났을 것이다. 육아와 가사는 자연스레 여성의 일로 치부되어 독박을 썼을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집은 증조할머니까지 모시고 살았으니, 그 가사의 노동은 가히 내 상상이상일 것이다. 엄마에게 늘 자기 삶은 뒷전이었다. 그보다 먼저 엄마이고 아내이기를 강요 받았다. 중년 남성이 멋있으려면? 아내가 있어야 한다. 반대로 중년 여성이 멋있으려면 남편이 없어야 한다. 아침밥 차린다고 난리를 피울 것도, 뒷바라지한다고 억척스러울 것도 없다.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의 부담은 절반 이하로 준다. 나쁜 엄마 되는 것 또한 정말 쉽다.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고, 젖몸살을 앓으면서도 모유 수유하고, 답답해서 잠시 외출이라도 해서 아기가 감기에 걸리면 금세 이기적인 엄마가 된다. 나쁜 아빠 되는 건 정말 어렵다. 애가 울어도 쿨쿨 자고, 목욕 한 번 안시켜도, 유모차 끌고 동네 한바퀴만 돌면 금세 자상한 아빠로 소문난다. 이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엄마는 어두컴컴한 방에 홀로 앉아 얼마나 혼자서 울면서 눈물을 삼켰을까.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24살에 결혼을 했고 이 모든 것을 홀로 겪어낸 엄마의 삶은 나를 계속 울게 만든다. 패미니즘. 여성과 남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다. 평생 한국 남자로 자라며 공기처럼 마신 여성혐오는 그들의 사고의 기저에 뿌리박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자 이 책의 저자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런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부럽다. 내가 조금 더 일찍 깨닫아서 엄마의 아픔을 덜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