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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유래
‘일본의 신사’라고 하면 우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테키[東條 英機, 1884~1948] 등 각종 전범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떠올리게 된다. 신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변하는 이 곳은 막부와의 싸움에서 숨진 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869년[메이지 2년] 설립한 도쿄 쇼콘자[東京 招魂社]를 전신(前身)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신사가 다 이런 곳은 아니다. 원래 ‘신사(神社)’는 신과 인간의 중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교회, 성당, 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신사는 오히려 무당이 자신이 섬기는 신을 모시는 무당집에 더 가깝다. 여기에는 일본인들의 종교 관념은 초월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신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오히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신을 더 선호한다는 점이 작용했다. 즉, 신도(神道)는 종교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무속신앙과 같은 ‘기복 종교’ 혹은 불교처럼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는 ‘신앙 없는 종교’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사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한국의 서낭당, 몽골의 오보(OBOO) 또는 아오바오처럼 고대 일본인들은 큰 나무나 산 혹은 큰 바위 등에 신(神)이 깃들어 있다 하여 신성지역으로 간주했다. 이때 상록수를 심고 울타리를 두르면 ‘히모로기[神籠]’, 큰 돌을 세워 원형 또는 방형으로 두르면 ‘이와사카’라고 불렀다. 최초의 신사는 우지가미[氏神], 즉 씨족의 조상신이 모셔지고 공동체적 제사가 중심을 이루는 우지가미형 신사였다. 그러다가 헤이안[平安] 시대(794~1193) 이래 지역적 경계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신사가 널리 출현했는데, 이를 간조[勸請]형 신사라 한다. 여기서 간조란 신의 분령(分靈)을 맞이하여 모신다는 말이다. 즉, 간조형 신사는 본사(本社)와 독립적인 분사(分社)로 이루어진 일종의 대리점 체제인 셈이다. 따라서 이런 간조형 신사는 공동체적 요소가 강한 우지가미형 신사에 비해 아무래도 현세이익적인 개인 기원이 강조될 수 밖에 없다. 과거 농경민의 신이었고 근세 이후 상공인의 신으로 알려진 우카노미타마노카미[宇迦之御魂神, 倉稻魂神]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의 번성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인 교토[京都]의 후시미이나리[伏見稻荷] 대사만 해도 32,000개의 분사가 있을 정도다.
신사의 명칭
일본의 신사는 ‘XX신사”라는 명칭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그 밖에도 ‘XX신궁(神宮)’이라든가 ‘XX궁(宮)’, 혹은 ‘XX대사(大社)’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먼저 ‘신궁’이란 3대 신사 가운데 일본 신사의 총본산인 이세[伊勢]의 신궁이나 도쿄의 메이지[明治] 신궁 등과 같이 주로 일본 황실과 관계가 깊은 특별한 신을 모신 신사를 말한다.
이에 비해 그냥 ‘궁’이라고만 붙어 있는 경우는 두 종류가 있다. 궁을 ‘미야’라고 읽을 때는 보통 신사를 가리키며, 닛코[日光]의 도쇼구[東照宮]처럼 ‘구’라고 읽을 때는 신궁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대사’라는 명칭은 1871년 나라로부터 봉물을 받는 관사(官社)의 사격을 대/중/소로 나누었을 때 대사의 사격(社格)을 부여 받았던 신사를 가리킨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신도(國家神道)로의 변질
메이지 유신 이후 많은 신사들이 창건되었는데, 이들은 일본 군국주의 및 천황제 국가신도(國家神道) 체제 확립에 앞장섰다. 대표적인 것이 앞에선 언급한 야스쿠니 신사라고 할 수 있다. 정부[군부]에 의한 민중동원 정책의 일환으로 소위 ‘군신(軍神)’을 모시는 신사가 설립되기도 했다. 일본 최초의 군신으로 추앙 받은 히로세 다카오[廣瀨 武夫, 1868~1904] 중좌를 모시는 히로세[廣瀨] 신사(1935), 러일전쟁 해전의 영웅인 토고 헤이하치로[東鄕 平八郞, 1848~1834]를 모시는 토고[東鄕] 신사(1940), 러일전쟁때 육군대장이자 메이지 천황이 죽자 부부가 순사(殉死)한 것으로 유명한 노기 마레스케[乃木 希典 1849~1912]를 모시는 노기 [乃木] 신사(1923) 등이 대표적이다.
메이지 정부와 그 뒤를 있는 일본 정부는 이렇게 새로 신(神)을 만들면서 기존 신사에서 민중적인 성격을 거세해나갔다. 대표적인 것인 황조신(皇祖神) 아마테라스오오카미[天照大神]을 모시는 내궁(內宮)과 곡물신 도요우케노오오카미[豊受大神]을 모시는 외궁(外宮)으로 구성된 이세[伊勢]의 신궁이다. 정복자의 신과 피정복자의 신이 표면상 대등하게 모셔졌던, 이 신궁은 1871년 국가에 의해 전국 신사의 사격(社格)이 정해지면서 국가기관화 하였다.
일상생활에서의 신도
“일본인들은 ‘하츠모우데[初詣]’라 해서 정초(正初)에 신사나 절을 참배하면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신도와 관련된 중요한 절기가 또 하나 있는데, ‘세츠분[節分]’이라 불리는 입춘 전날이 그것이다. 이 날에도 사람들은 액풀이를 위해 신사를 참배한다.“ [p. 5]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신사를 참배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일정 기간(통상 남아는 32일, 여아는 33일)이 지난 다음 모친과 조모가 아기를 안고 신사를 참배하여 건강한 발육과 행복을 기원한다. 이를 ‘오미야마이리[お宮參り]’라 한다. 또한 아이가 3세(남녀 공통), 5세(남아), 7세(여아)가 되는 해의 11월 15일에도 신사를 참배하는데, 이런 관례를 ‘시키고산[七五三]’이라 한다. 게다가 성인이 된 후에도 남자는 25세와 42세 때, 여자는 19세와 33세 때에 액땜을 위해 신사를 참배하는 관습도 있다.” [p. 6] 평상시에도 신도(神道)는 일본인의 일상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일반 가정에도 통상 신단이 설치되어 있다. 거기에는 신사의 오후다[御札, 일종의 부적]가 봉안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을 한 뒤 이 신단을 참배하면서 가미[神]와 조상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고 하루의 안녕을 기원한다. 입학이라든가 진학, 졸업, 취직, 환갑 등의 날에는 각 가정마다 신단 앞에 가족들이 모여 감사와 축하의 기원을 올리기도 한다.” [p. 6]
이처럼 신도는 일본인의 삶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동시에 이는 우리가 일본, 그리고 일본인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신사, 신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일본의 신사>는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 역할을 하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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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정자들의 신사참배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나라는 극한의 혐오를 보인다. 왜일까? 일본 신사는 어떤 성격을 갖길래? 신사가 뭔데? 태평양전쟁 패전 이전까지 일본이 국교로 내세운 신도(神道)의 사당으로, 신도의 신을 제사 지내는 곳을 말한다. 현재 일본에 산재한 신사는 전설의 인물 또는 신격화된 실존 인물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고, 누구를 내세우는지 불분명한 곳도 있다. 위의 글은 아주 사전적인 의미의 알본신사에 대한 정의다. 신도라는 종교의 하나인 사당이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전설의 인물이나 신격화된 실존 인물을 모시고 그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란 의미다. 여기까진 이해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왜 일본위정자들의 신사참배에 민감하는가는 위의 글에서 신격화된 실존 인물에 대한 제사를지내는 곳에가서 참배를 한다는 것에 있다. 한국을 식민지화 하고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용 전범이 있는 신사에 가서 참배를 드린다는 것에 돌아버리는 것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민족이란 소리다. 다른 해외 여행지에 가서 절이든 사당이든 교회, 성당에서 예를 갖춘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 하는가? 일본 신사만은-전범의 위패가 있는 곳-안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