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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가면서 왜 이 책이 2017년 퓰리처상(논픽션 부문) 수상에, 펜/진 스타인 도서상, 폴리오상까지 수상하고 영미권 유수의 언론 매체로부터 완성도 높은 논픽션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고 출간되었는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리비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으면 더욱 감동이 크게 다가 올 듯합니다. 리비아는 한반도의 8배나 되는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인구는 650여 만 명에 되지 않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입니다. 과거 로마에 의해서 멸망당한 카르타고가 위치했던 지역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 20세기 초 이탈리아에 의해서 식민지가 되어 역사가 반복하는 불행을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서구문명과 마주하고 있는 관계로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서구문명의 침략을 받아왔습니다. 저자의 가족들도 이러한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펼쳤던 할아버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아버지, 그리고 이들의 뿌리를 더듬어가는 저자들이 모두 리비아 역사의 주역이면서 희생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세계 4위의 석유생산국이라고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넉넉할 듯한 산유국이지만 저성장 저개발 된 이유 중 하나로 부패한 정치권력을 들 수 있겠습니다. 1969년 9월 27세의 나이에 육군 대위로 복무 하던 중 동료들과 쿠데타를 결행하여 왕정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한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이후 42년간의 장기집권과정에서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혹독한 철권통치와 반대세력에 대한 철저한 탄압으로 일관했습니다.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2011년 2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카다피 군은 유혈 보복을 선언하며 시민군과의 내전이 벌어졌고, 결국 나토(NATO)와 세계 각국의 지원 속에 시민군이 수도인 트리폴리를 장악했고 도주한 카다피가 살해당하면서 리디아 시민들의 독재에 대한 처절한 항쟁의 역사는 끝나게 됩니다. 이 책은 짧은 외교관 생활을 거쳐 반체제인사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이집트에서 체포된 후 1996년부터 연락이 끊긴, 시인이자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일종의 미스터리 탐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히샴 가족은 가까스로 1979년 리비아를 탈출했지만 1990년 아버지는 카이로에서 납치되고 세 통의 편지만을 전한 채 소식이 끊긴다. 1996년 수감자 1270명을 죽인 아부살림 교도소 대학살 때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아버지를 비롯한 독재에 저항하다가 희생된 모든 리비아인들을 추모합니다. 카다피가 아버지를 빼앗았을 때, 그는 아버지가 갇힌 감방만큼이나 아주 작은 공간에 저자인 아들을 가둔 것이며 저자의 분노는 독약을 푼 강물처럼 우리가 리비아를 떠난 뒤로 내 삶에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감정을 억제하는 문체를 통해 오히려 카다피가 리비아를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았는지, 그럼에도 리비아인들이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의 기록해 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내 모든 세대를 대신해서 전투에 나서야 했던 모든 어린 소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전합니다. “우리는 좀 더 일찍 승리해야 헸습니다. 그랬다면, 여러분들이 이처럼 죽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이 책은 안전하게 살아온 망명자인 저자가 어느 리비아인의 말을 빌어 아버지와 모든 리비아인들에게 전하는 가슴아프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보겠습니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최근 미국과 정상회담을 준비 중인 북한이 ‘리비아식 핵해법’을 거부한다고 전해집니다. 즉 미국이 리비아에게 요구하고 리비아가 수용한 선(先) 폐기, 후(後)보상 방식의 핵해법입니다. 리비아 카다피 정권은 2003~2005년 스스로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핵관련 시설 및 장비, 자료 등을 미국으로 이전했고, 그 대가로 체제 보장과 관계 정상화, 경제 지원 등의 보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후 카다피 정권은 무너졌죠.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북한에게 한마디 묻고 싶은 것은 그 유지하고자 하는 정권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권인지? 대다수 인민들이 원하는 것인지? 그래서 더 행복해지고 있는지? 물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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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으로 권좌에서 내려온 대표적인 인물 무아마르 카다피. 1969년 27세에 쿠데타로 왕정을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한 카다피는 42년의 통치 기간 내내 반대파 숙청, 테러조직 지원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자 히샴의 아버지는 카다피 정부에 의해 체포된 후 돌아오지 않았다. 외교관을 지냈고 사업가로도 성공한 아버지는 카다피가 집권한 후, 정권의 매수와 협박을 받는다. 그러나 거듭된 회유에도 아버지가 뜻을 굽히지 않자. 협박이 이어지고,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리비아를 떠난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반체제인사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시작하고, 결국 이집트에서 아버지는 납치를 당한다. 재산의 대부분을 아낌없이 후원했던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가 체포된 후, 아버지가 도왔던 단체와 친구들은 교류를 모두 끊어버린다. 일순간에 가장을 잃고 표류하게 된 히샴의 가족들, 어린 히샴이었지만 히샴은 그때,,,,세상을 배웠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러 가타피 정권이 무너지마 히샴은 가족들과 함께 삽십여년 만에 리비아를 찾는다. 아버지가 체포될 때 삼촌과 사촌들까지 체포되 모진 고문을 당했다. 막내삼촌은 21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우리나라도 독립운동가들 뿐 아니라 가족들도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리비아라고 다를 바가 없다. 독재권력은 존재하는 곳에선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의 삶은 똑같다. 자유와 정의를 주장할 수록 그 배의 핍박과 폭력이 가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기약없는 기다림이라도 하는데. 야반도주하듯 떠난 조국과 그곳에 남겨진 아버지. 그 기나긴 세월의 고통과 무력감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쩌면 잊고 사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었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잊지 않아고 마침내 그를 찾아나선다. 오랜 시간을 담은 만틈 책은 느리고 잔잔하게 진행된다. 히샴은 친척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없던 시기. 고향에서 벌어진 일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 그것은 작가 개인뿐 아니라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개인의 역사와 시대의 역사는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즉 이 책은 개인의 회고록일 뿐 아니라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제목인 귀환은 그런 점에서 작가 개인의 귀환일 수도 있지만, 리비아의 역사를 귀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낯선 리비아. 그 굴곡진 역사를 아버지를 기억하고자 하는 아들의 관점에서 만나보자. 개인을 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던 수 많은 이들의 귀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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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니, ‘The Return: Fathers, sons and
the land in between’이라는 부제가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그 감각들이 글로 잘 전해지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네요.
사실 저는 리비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와 아랍의 봄에 대해서 겨우 들어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책에 금방 빠져들게 된 것은, 우리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또한 그가 이
책을 통해서 반체제운동을 하다 투옥 중에 사라진 자신의 아버지의 작은 흔적이나마 찾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부모님이란 그런 존재니까요.
저 역시 책을 읽으면서, 리비아에 대해서 꽤 많이 알게 되고, 알아보게 되었는데요. 2차 세계 대전 이후, 중동에 등장한 신생 국가 중에 리비아가 있었다고 해요. 석유생산국인만큼
부존자원이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이지만, 1969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수립되고, 카다피의 독제체제가 40여년을 이어오게 되죠. 반정부시위인 아랍의 봄을 통해 카다피가 실각하지만, 독재정권시절에
실질적으로 후계자로 활동했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는 등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성공, 그리고 시를 사랑하던 자신의 삶마저 뒤로하고 반체제
운동을 하던 아버지는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라는 아부살림에 수용되는데요. 아버지가 체포되기까지 남아있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도, 또 가까스로 탈출을 했지만 체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가족들도
참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희생당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도요. 카다피가 죽어도 돌아오지 못했던 아버지, 그래서 1996년 아부살림에서 벌어진 학살에 희생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지고 있을지는 미루어
짐작조차 할 수 없네요. 담담하게 자신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기에 그가 보여주는 리비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쩌면 미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던 거 같아요.
이 책의 저자 히샴 마타르는 리비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온 자신의 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귀환>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묻고 싶은 것은 아버지에 대한
것이겠지만, 어쩌면 궁극적으로 묻고 싶은 것은 리비아의 선택이 아닌가 해요.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 그리고
외교관으로 사업가로 승승장구하지만 카다피의 실체를 파악하고 저항의 길을 선택한 아버지의 아들답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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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심신이 지친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지, 우리가 얼마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 또 우리가 거짓말을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권력은 결국 우리가 진상을 알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권력은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세상은 정의나 책무, 진실을 찾아 사실을 캐고 다니는 사람들보다 가해자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믿고 있음에 틀림없다. 권력은 그런 시도들을 한심한 짓으로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p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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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는 왕정에서 이탈리아 식민지 그리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카다피의 철권통치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귀한의 무대는 카다피 독재정권에 저항한 한 가족의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이자 주인공인 히샴 마타르의 기억을 통해 가족과 국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탈리아 통치에 저항한 할아버지와 카다피 독재 통치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에 생을 마감한 아버지와 가족의 역사가 그가 머물렀던 국가의 역사에 존재한다. 주인공인 마타르가 유년시절부터 겪는 감정의 표시가 혼란기에 겪어야 했던 거짓의 혐오감까지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불확실한 고국의 운명에 뜻을 함께한 동료들도 아버지가 왕성한 활동과 재정적 지원이 있을 때였다. 가족이 위기에 있을 때 그들은 옆에 없었다. 아버지의 뜻에 함께한 가족들이 함께 고통을 당하는 모습은 주인공 가족의 역사가 리비아의 역사가 됨을 말해주고 있다. 영국 유학시절 끝까지 함께 하자던 친구에게 마타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눈물을 쏟던 양 체재의 아들들의 모습은 어린 나이에 가기 자신의 설자리가 어딘지 알게 한다. 카다피에 동조하는 아들의 위치와 반대하는 자식의 위치는 달라도 너무 다른 생활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도 마음의 벽을 쳐야 하는 그들이다. 위선의 삶을 살며 위선의 삶으로 오히려 잘 살고 있는 부역자들도 있다. 저자가 영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카다피 정권에 기쁨조 역할을 한 아버지의 아들처럼 말이다. 반면 어려울 때 불행을 사서 한 사람이 있다. 주인공의 가족처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위인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당 이회영 독립운동가와 손자 이종걸이 스친다. 우리는 그동안 부역자들에 고개를 숙였는지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국가의 영웅에게 고개를 숙였는지 한 번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움직이는 사람들을 본다. 어느 쪽인가? 상대방의 감정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내면의 갈등을 잔잔하게 풀어 나가는 『귀환』의 서술 방식 또한 특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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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낯선곳 타인의 땅에서 헤메이는 생활이 어떤것일까 상상으로는 그 느낌을 알기가 어렵다 텔레비전에서 가끔씩 나오는 남의 나라 이야기들은 조금 안타깝고 망명객들이 정치사나 여러상황으로 난민신청을 한다고 할 때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넘기기 마련이였다. 이책을 읽으면서 소설이기는 하지만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마음둘곳 없이 떠도는 망명의 생활과 자신을 숨기고 숨죽여 살아야 하는 모습등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또 가족을 잃고 가족의 감금과 석방을 바라는 마음과 행동 등이 그저 영화처럼 멋지게 보이기 위한 장치가 아닌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독재 정부가 들어서고 그 정부를 반대하는 아버지를 따라서 고향을 떠난 히샴 은 런던에서 생활하게 된다. 망명의 생활은 그 어떤 말로 표현해도 다 표현할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였음을 알수 있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모든 것을 숨기고 자신의 이름도 가명으로 생활하며 친한 친구에게 조차도 자신을 내 보일수 없는 암흑의 시간이였다 고향을 떠나 피신의 몸으로 런던에 살고 있지만 그곳에 완전 적응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이 주인공의 혼란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납치되어 감금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향하는 주인공과 가족들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는 과거를 회상하며 아버지에 대한 감상과 아버지의 행적등을 서술하고 있다. 감옥이 열리고 많은 반군인사들이 풀려 났지만 아버지는 찾을길이 없고 돌아가셨는지 어디로 숨겨진건지 알수 없는 상황은 주인공을 더욱 비참하고 불행한 생각을 떨쳐 버릴수 없게 만든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지못한 히샴은 죽음과 장례절차에 따른 종결을 부러워 할뿐이다 아버지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수 없는 그 종말은 주인공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 뿐이다.. 풀려난 삼촌과의 대화에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은 눈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감옥에서도 어떤 감정이였을지 감옥에서조차도 서로를 못믿고 상황을 낙관할수 없어서 서로를 인지하는 과정조차도 조심스로워하는 장면은 그 고통이 고스란히 들어난다. 리비아에 관한 소설은 처음이라서 낯설고 신기 했다. 그들의 가족관계나 생활 풍습등이 흥미롭기도 했고 그들의 정치 상황이 매우 힘든 상황임들 짐작할수 았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알수 있는 좋은 시간이였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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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시대는 내부에서 간간히 들끓을 뿐 잔잔한 바다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의 시대는 격동의 시대로, 팔팔 끓다 못해 사방팔방으로 튄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남북 분단으로 이어지는 혼란의 시대가 있었다. 그것들도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닌 증조부모 세대의 이야기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시대라는 말은 적절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이야기는 옛날도, 미래의 이야기도 아닌 현대의 이야기니까. 조금 먼 동네인 리비아에서 일어난 이야기지만,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2018년도, 7년 전인 2011년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다. 귀환은 3대의 걸친 격동의 시기를 서술한다. 리비아의 이탈리아 식민 통치, 카다피의 독재정권이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는 3대의 이야기를 다룬 알렉스 헤일리의 장편소설 '뿌리'나 장융의 소설 '대륙의 딸'을 연상시킨다. 리비아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보도를 통한 짤막하고 단순한 기술이 아닌 작가의 상세한 서술과 감정의 변화를 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 혈연의 유대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다. 이것이 논픽션이라는 것을 알면, 그렇지 않아도 뻑뻑하게 읽히던 글이 퍽퍽하게 읽힌다. 책은 상세하고 밀집되어있는 만큼 가혹하고 감정이 억눌리다가도 폭발하는 시점이 존재한다. 책 속에서 볼 수 있는 전쟁의 모습은 구체적이어서 그 비극이 가슴에 와닿는다. 한 노인의 이야기가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카다피 사람들이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 태웠을 때 그는 아들이 자기 방에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다행처럼 들렸다. 오늘이 3일째야 지금 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 아이 시신에서 냄새가 난다는 뒤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책을 읽다 잠시 멈춰서 이 이야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예전에 헤밍웨이가 썼던 짤막한 소설이 생각났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리비아라는 나라를 끝까지 몰랐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 덕분에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그 역사를 배운 것에 감사히 생각한다. 책은 생각의 폭을 넓히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는 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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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사회를 경험하고 나면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 알게 되고, 철벽처럼 세워진 기존의 기득권 혹은 지배계층의 대단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압박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지내고는 한다. 사실 잘못되었던 일에 대한 저항한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타협과 협상을 하지 않고 저항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와 책임은 누가 지는가 리비아의 독재정권 이야기는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약간은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겠다. 그렇지만 그 내밀한 사정은 정확히 모른다. 그리고 그 독재정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 부분은 우리나라의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귀환을 선택한 건 리비아라는 나라와 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한국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겠다. 아니다. 꼭 옛날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겠다. 얼마 전에도 답답하고 암울한 시기가 있었으니까. 아버지의 실종! 자식과 부인들의 귀환! 무엇을 위한 귀환인가? 책의 내용은 한 가족의 삶을 보여주면서 국가 전체를 조망하게 해준다. 나무와 함께 숲을 보여준다고 할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래도 보고 느껴왔던 것들을 생각하기 마련이겠다. 책의 내용은 리비아를 다루고 있지만 참으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선다.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내용들이기 때문이겠다. 그리고 독재정권에 저항을 한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남겨진 가족에 대한 아픔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귀환을 했지만 그건 오히려 깊은 구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느낌! 아픔과 절망으로 향하는 길인 셈이다. 황량하면서 환영받지 못 했던 길!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너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글로 인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과도 같은 이미지 들이 안타깝다. 책장을 넘기면서 글이 주는 힘이 참으로 강렬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참혹한 역사의 진실이 주는 무게감은 대단하다. 저자가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는 내면의 성찰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거인처럼 위대한 작가가 기록한 한 편의 대서사시라고 할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를 새삼 깨닫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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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도 없고,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 평생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그런 도망자와 같은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시간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리비아는 정치적으로 불안했고 충격적인 시기로 묘사된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은 반체제 인사로 여기저기로 쫓겨 다니기도 하고 국외로 달아나거나 납치당하고 암살당한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 독재정권에 맞서 강경한 무장 저항을 하는 단체에 속해 있었고 어디를 가나 총을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조심해야 했다. 망명한 반체제 인사들을 집요하게 뒤쫓는 카다피 정권의 작전으로 반체제 인사의 가족까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형 지아드는 15살이었고 스위스에서도 알프스 산맥의 고지에 고립된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어느날 카다피 소속 요원들이 형의 학교로 찾아왔다. 지아드는 밤늦게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바젤행 기차를 타야했다. 결국 1990년 아버지는 카이로의 아파트에서 이집트 비밀경찰에게 납치되어 카다피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트리폴리에 있는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아부살림 교도소는 악명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여러 사람들이 아버지의 편지 세 통을 가족에게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 1996년까지 아버지는 아부살림 교도소에서 살아 있었지만 그 뒤로 아버지는 이감되었는지 처형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2011년 혁명 세력이 아부살림을 점령했고 감방 문이 열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나는 리비아로 떠나 아버지를 찾기로 한다. <귀환>은 반체제 세력의 중요 인사였던 아버지를 둔 히샴의 이야기다. 리비아가 고향이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유럽에서 생활한 히샴에게 리비아는 낯선 나라일 수 있다. 영국의 학교를 다니지만 본명을 말할 수 없었고 아버지에 대해선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납치되어 감옥에 있다는 것도 가족들은 몇 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고 겨우 소식을 접했을 때도 더이상 아버지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을 안고 리비아로 돌아간 히샴은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위해 친척들을 만나고 삼촌들이라 불리던 아버지의 동료들도 만난다. <귀환>은 소설이긴 하지만 작가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전세계의 문제로 여겨지는 '난민'이라는 문제가 히샴의 가족은 새로운 형태의 난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비극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지금 풀어야 할 숙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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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상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품은 그 상의 무게 때문인지 읽어보면 늘 괜찮았고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귀환] 이 작품도 2017년에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퓰리처상을 신뢰하니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