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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오클라호마에서 콜로라도로 이어지는 주간도로를 달렸던 기억을 떠올려가면서 <분노의 포도; http://blog.yes24.com/document/7474929>를 읽던 기억이 있습니다. 황량하기 만했던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던 조드의 가족에게 희망은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읽었던 <찰리와 함께 한 여행; http://blog.yes24.com/document/7461305>에서는 작가가 미국과 미국인에 대하여 품고 있는 사랑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기억들이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을 읽게 만들었던가 봅니다.
이 책에서는 번역을 맡으신 안정효교수님이 ‘존 스타인벡과 아메리카 다소간 개인적인 시각으로 살펴본 작가론’이라는 제목으로 쓴 꽤나 긴 해제를 덤으로 읽을 수 있기도 합니다. 안정효교수님은 이 책에서 생태의식과 자연숭배 성향을 실감하게 된다고 하였고, 그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으며, 아메리카의 역사를 얼마나 자랑으로 삼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타인벡은 역설적으로 ‘이 책은 수치심을 초월한 개인적인 견해를 담고 있다’라고 머리말을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제목 하나하나에서도 옮긴이가 말한 조국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저자는 E Pluribus Unum(여럿에서 하나)라는 미국의 표어를 제목으로 하여 미국이라는 나라가 온갖 종족과 인종이 모여 이루어진 나라임을 되새깁니다. 또한 400여년에 걸친 고된 노동과, 피흘림과, 외로움과, 공포가 이 땅을 창조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만 ‘인디언은 그들을 말살시키려는 우리의 노골적인 의도를 이겨냈다(103쪽)’라고 적은 부분은 그들을 미국인의 하나로 인식하지 않은 것인가하는 의구심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모순과 꿈’에서는 미국인들이 ‘불안정하고, 불만으로 가득차고, 항상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편견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공적으로는 청교도적이지만 사적으로는 방탕자인 국민처럼 보일 때가 적지 않다(117쪽)’라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고, 의롭고, 자비롭고, 숭고한 인간에 대한 막연한 열망을 여전히 꿈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미국인들은 ’예외 없이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관료적인 권력이 지속되면 두려움과 증오를 느낀다(136쪽)‘라고 적었습니다.
왕조시대에서도 민란의 형태로 이러한 두려움이 표출되기도 하였습니다만, 최근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도 권력이 교체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 사회로도 전이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전이가 아니고 모든 사회에 내재된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자연을 숭배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옮긴이가 짚었습니다만, ‘아메리카인과 땅’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이 땅으로 이주한 ‘초기 사람들은 이 땅을 마치 그들이 증오하기라도 하듯이, 일시적으로만 차지하고 있어서 당장이라도 쫓겨날 처지인 듯 약탈했다(227-228쪽)’라고 비판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미국인들은 ‘아직도 조상이 한 행동을 그래도 되풀이해서, 확실한 현재의 이득을 얻으려고 미래로부터 도둑질을 한다(28쪽)’라고 비난합니다.
‘아메리카인과 세계’라는 글에서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모든 예술과 모든 문화와 모든 지식이 유럽에서 기원한다고는 믿지 않는다’라고 적어 미국인들이 이룩한 문화적 학문적 성과에 자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아메리카인과 미래’에서는 미국이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으며 뿌리채 뽑아버리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남지 못할 심각한 질병에 대하여 논합니다. 저자의 이런 생각을 읽으면서 작금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역시 이와 같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는 스타인벡과 같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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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과 플리처상을 수상한 스타인벡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분노의 포도>를 안읽어 본 사람이 있을까.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면 까마득한 옛날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대작이었던 것 만큼은 확실한데 안정효라는 사람이 스타인벡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며 그의 작품을 파헤치고 있다.
존 스타인벡의 작품들은 인간의 감성을 포착하고 잔잔한 어조로 독자를 감동시키는 화법을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훌륭한 스승이요 교과서였다.에서 시작하는 저자는 또한 다음과 같이 스타이벡의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그가 구사하는 어휘와 부드러운 문장,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간결한 문체, 그리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설득하는 그의 논리적인 전개 양식... (p.15)
스타인벡은 부모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한다. 독서의 결실때문이지 그의 글(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딱딱할 것같지만 딱딱하지 않고 설득력이 느껴진다. 그가 쓴 작품이 전투를 종용하는 전투교본으로 사용됐다고 하니 그의 설득력이 증명된 셈이다.
'아이를 잃은 산모가 죽어가는 병사에게 젖을 물렸다.'라는 시대를 뛰어넘어 독자인 나로서도 이해되지 않으며 충격적었던 문구였다.스타인벡을 연구하면서 저자 또한 이 문구를 거론하고 있는데 저자의 해석을 통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미국을 이해하고 연구한다고 하나 이는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것이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스타인벡이 느끼는 바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타인벡의 글을 통해 번영과 풍요의 상징인 미국의 내면에 있는 자아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대륙의 개척자인 인디언을 내쫓겨나 고립시키고 문명과 거리가 먼 민족으로 치부하고 흑인을 노예로 삼으로 농토의 영역을 넓혀갔던 미국은 부와 풍요의 산물로 자신들의 신분을 자랑거리로 삼았지만, 세계대전과 남북전쟁을 겪으면서 노예폐지와 함께 평등의 나라로 변모해 갔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제 2의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고 몰려올 때도 미국은 민족성의 우월함으로 이들을 허용했지만, 궁극적으로 이민자들과 흑인들 그리고 미국인들의 삶의 목표가 동일했기에 이들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아메리카라는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가정에 대한 꿈과 펑화, 안락함, 그리고 사랑을 소망한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의 꿈을 실현하기위해 조국의 영토를 개척하고 산림을 파괴하는 행위로 이어졌으며 이는 오늘날에 이어 미래의 삶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이에 스타인벡은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의 과거와 오늘 날 삶의 모습을 통해 문명의 이기와 편리가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장난이 심한 어린아이처럼 파괴적이고 부주의하고 극성스러운 민족이다.(p.239)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아기를 잃은 산모가 죽어가는 병사에게 젖을 물린다는 표현 뒤에 모든 사람들이 모태에서 태어나면서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더럽고 추하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진정한 미국인들은 그들의 자아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을 읽으면서 스타인벡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머리와 가슴이 느끼는 것과 다르게 글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뿐이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은 부디 그의 작품을 통해 그와의 큰 교감을 느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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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표 작가 라는 존 스타인벡의 명성답게 미국의 냉혹한 현실을 비판하면서 그 고통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아메리카라는 나라의 인종과 그들의 땅, 세계, 미래를 말한다. 그들이 이루어낸 정부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모순을 가지고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마치 미국의 초창기 역사책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 속에서 아메리카인들의 정신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 치밀하게 파고들고 있다. 무정부 시대에서부터 지금의 아메리카가 이루어지기 까지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아메리카적 정신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엊그제 삼성이 애플을 비방하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런 비방광고는 미국에서 흔한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슈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미국인은 참 블랙 유머를 좋아하는구나, 투쟁을 즐기는 구나 하고 살짝 느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문제에 대해 짚어져 있다. 미국인들은 예외없이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관료적이라는 것이다. 광활한 영토에서 출발해서 도시를 지어야 하는 그들에게 도덕적인 선함 보다 반항과 의심이 기본적인 성질이 되었다.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자연을 개척해야 했으며, 텃세를 극복해야 했고, 많은 전쟁을 겪어야만 했다. 영국에서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런 과정에서 아메리카인들은 아픔과 고뇌가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 미국이 가진 애국심이 나오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누가 자신들을 공격하면 똑같이 보복해 주는 것을 최고로 치고, 애국가가 시도때도 없이 울려퍼지는 우리나라가 아닌 또 하나의 나라이며, 국기를 디자인화까지 시켜가면서 사랑하는 그들이다. 이 모든 것이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위해 일했던 그들의 선조 아메리카인들이 내려준 그들의 정신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어려운 환경 속에서 존 스타인벡은 미국인들의 무도덕함을 꼬집었다. 개척정신과 독립정신을 너무나 숭고하게 여긴 나머지 도덕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미국은 정치인들이 유독 많이 로비와 루머에 빠지는 것 같다. 개인의 정당이나 정치적 이념보다는 순간의 인기가 더 중요해 보이는 나라이다. 마치 탤런트처럼.. 이런 현상 또한 무도덕함이 배후에 깔려 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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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미국 작가인 나는 (지난 24년동안) 기억을 뒤져가며 아메리카에 대한 글을 써 왔는데,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하더라도 기억은 부정확하고 왜곡된 저장고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아메리카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풀과 나무와 하수구의 냄새를 맡지 못했고, 산과 강을 보지 못했고, 빛과 색채도 보지 못했다. 나는 책과 신문을 통해서만 변화를 접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나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대상에 관해서 글을 썼고, 작가라는 사람의 그런 태도가 나에게는 범죄 행위처럼 여겨진다. - 본문 중에서 -
* 평생을 살아도 그 속까지 다 알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다. 말 속에 숨겨진 진의를 유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우리가 다 알고 이해해줄순 없는 것이기에 항상 오해와 갈등을 겪는 요소가 되곤 한다.
어디 그뿐이랴. 몇십년을 함께 살아온 가족간에도 몰랐던 습관과 기억이 있음을 알게되는 경우도 있고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간에도 서로 모르는 버릇과 감정의 골이 있을수 있으니,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언제나 겸손함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 복잡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서로가 일하는 깊이와 분야가 달라져 각각의 분야가 아니면 상대방의 업무를 이해하고 상황을 고려하기 힘든 현실이 되버렸다. 또한 일분 일초가 아쉬운 상황 속에서 언제나 한발 앞선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시나마의 사유를 누리는 것도 이젠 사치가 되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 시간을 판단을 해야 하고, 누군가를 평가하고, 진실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이해했음을 주장하고 피상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누군가에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허상을 쌓고 타인이란 존재에 자신만의 논리로 결정을 짓고 결정을 지어버린다.
이 얼마나 우습고도 안타까운 현실인가...
** 미국 문학의 중심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지성의 한사람이기도 하였던 "존 스타인벡"의 마지막 작품이자, 자신을 있게한 미국이라는 사회를 주제로 써내려간 산문집이다. 시대의 변화와 아픔, 그리고 문제점들을 총체적이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70년대 미국이 처한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2010년대의 한국 사회에 좋은 거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디언과 유럽에서 이주한 앵글로 색슨계 백인, 스페인계 및 아일랜드 인, 1900년대 이후 미국사회에 입성하기 시작한 아시아계 사람들과 아프리카인까지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사는 아메리카는 그 자체만으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수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가 1장의 후반부에 보여주는 인디언과의 이야기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소소한 판타지랄까...
이어지는 장에서는 미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흑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 사회의 상당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노예문제와도 얽혀있는 부분이라 조금 민감하지만 저자는 사회문화적 시각으로 접근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예전에 미국으로 넘어와서 살고있는 흑인들은 우성중의 우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서해안에서 비좁은 노예선안에서 생존하였고, 힘든 노예생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스타인벡 역시 이부분을 살짝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그러한 민감한 부분이 사실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특히 노예를 길들이는 방법 4가지를 열거한 부분은 이러한 잔인한 방법이 한때는 역사적 진실이었음을 상기시켜 주는데 이를 통해 아메리카에서 있어서 인종간의 평등이란 지금도 해결중인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 책을 읽다보면 분노의 포도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처녀의 젖가슴을 낮선이에게 내주는 장면에 대한 저자의 언급이 나온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는 한번도 자기 자신이 이 것에 대해 불결한 의미를 지닌적은 없다고 말한다.
**** 도덕적 수준이 떨어진 미국 사회를 보며 저자는 아메리카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그 다음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단순한 사건을 가지고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 이어져 온 사회상과 총체적 구조와 문화를 바탕으로 서술하는 부분이어서 어떠한 정답도, 아메리카 미래의 명확한 모습도 제시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몇백년간의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회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할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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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이 주는 느낌은 기존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었던 인디언과 신천지를 향해 몰려들었던 청교도, 현재의 미국인과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했는데 나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고 말았다. 특히 내가 재미있게 봤고, 그래서 내 나름대로 고전 명작영화로 손꼽았던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의 원작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놀랐다. 책표지에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는 적혀 있었던 걸 건성으로 봐서 그런가 보다.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거장의 마지막 걸작을 읽게 되어 마음이 뿌듯했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미국 촌놈 - 해제 쓴 안정효 작가가 그렇게 부른다 - 성향을 뛴 존 스타인벡 저자가 미국, 아메리카를 개인적으로 시각으로 살펴보고 고찰한 이야기이다. 자기 나라를 잘 아는 사람이 자기 나라 국민들을 위해 현재 상황을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마치 이어령 교수나 이런 분들이 한국인에 대해서 쓴 글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저자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병적인 현상들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통해서 노예해방을 시켰지만 흑백대립이 지속적으로 계속 된 이유, 어떤 이유와 비극을 맞아도 굴복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국민성을 갖게 된 이유, 누구나 평등한 대접을 받아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유등 읽다 보면 전체적인 그림이 머리속에 잘 정리가 된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이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은 1966년이다. 아주 오랜된 책이지만 들려주는 감동은 무지 크다. 저자인 스타인벡은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든 고학의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가 되었지만 객관적인 기사보다 주관적인 기사만 쓴다고 해고되기까지 한다. 그후 육체노등올 하며 각지를 전전하며 살아가는데 이런 경험 때문인지 그의 책 전반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반영되어 있다. 냉전시대에 소련에서 조차 프롤레타리아 작가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런 여러가지 이유 때문인지 책 주제에 대해서 냉철한 분석과 날카로운 시각으로 전개되어 있어 거장다운 솜씨를 맛볼수가 있다. 특히 '하얀전쟁'의 작가인 안정효가 해제를 통해서 저자의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배경 지식을 소개하고 있어 이해를 돕는다. 나의 경우 본문을 먼저 읽고 해제를 나중에 읽었는데 책에서 왜 그렇게 이야기 했는지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되어 좋았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이 처음 출간시 미국의 정체를 파악하는 내용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거기서 언급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면서 거치는 과정이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 또는 다른 나라가 똑같이 겪을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각성하고 나아가는 반면교사의 거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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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흔히 미국을 로마와 비교하기도 한다. 다문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인종의 통합을 이루었고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세계 패권을 장악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두 패권국은 시민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지향했고 어느 국가보다 소수민족에 관대했다. 로마의 꿈이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하지만 최근 급격히 침체되고 있는 미국경제를 로마의 몰락과 비견하는 성급한 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영원할 것 같았던 로마도 1000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역사에 묻혔다. 우리에게 미국이란 어떤 국가일까?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이랄 수 있는 미국의 근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미국이 선택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직은 그 어느 것도 예측할 수 없지만 무려 50년 전에 쓰인 책 한권을 통해 미국의 진정한 내면을 보게 된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존 스타인벡 최고의 마지막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쟁 후 폭발적인 성장가도를 달리는 미국의 내면을 속속들이 파헤친 본 작은 50년간 이루어낸 아메리카 인들의 꿈에 대한 진정성을 시험대위에 올려놓는다. 스타인벡은 미국과 미국인이 ‘여럿에서 하나’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소중한 유산’ 이라는 현란한 어구와는 달리 초기 미국인들이 밟은 땅은 결코 우유와 꿀이 흐르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초기 정착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절대적인 과제를 수행했다.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동에서 서로 이동했으며 그들을 가로막는 모든 종족과 자연을 파괴했다.
먼저 간 이민자는 수가 많아지면 텃세를 부렸고 수가 적은 집단을 공격했다. 거대한 땅덩어리는 처음부터 소중한 유산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들은 거대한 군집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멀리 간 민족은 저마다의 세력을 키웠으며 수가 적은 이민자를 흡수했다. 그들이 행한 가장 큰 모순은 인디언에 대한 살상이다. 그들보다 우월한 문화를 가진 인디언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상상했음직한 인디언의 모습은 괴물과 다르지 않았다. 정복자와 정복된 자의 차이는 삶과 죽음뿐이었다. 스타인벡이 첫 번째 주제로 선택한 ‘여럿에서 하나’는 미국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독립전쟁 후, 세계대전 후, 미국이 취한 모든 행동엔 이와 동일한 주제가 암시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부는 하지만 구걸하는 사람에겐 한 푼도 줄 수 없다. 힘으로, 돈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아가며 약에 의존한다. 공격적이면서 무방비상태다. 아이들은 지나치게 부모에 의존적이지만 좋아하지 않는다. 하수도에 빠진 개나 고양이를 위해 법률을 바꾸거나 막대한 돈을 내놓지만 길바닥에 쓰러져 살려 달라 외치는 소녀에겐 냉담하리만치 차갑다. 너무도 뚜렷한 미국인들의 양면적인 특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의존하되 자유는 존중해달라는 미국인의 특성은 최근의 위기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한때 GM은 세계최고의 자동차회사였다. 당시 GM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GM에 좋으면 미국에 좋다는 말이 화자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은 미국에 좋으면 세계에 좋다는 말로 대체되었다. 미국은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거대한 관료집단으로 금융자본주의를 앞세워 개도국에 미국의 이념과 자본주의 정신을 심어주기에 바빴다. 이는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를 적절히 활용한 국가는 새로운 기회를 잡았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철저히 무너져갔다. 스타인벡은 마치 먼 미래를 꿰뚫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말한 ‘여럿이서 하나’라는 미국인의 특성이 변함없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변하지 않았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민족성이 한데 묶여 예측할 수 없는 도전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안정효님의 해제가 돋보이는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그들의 진정한 내면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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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는데 이 책의 표지에서처럼 성조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수영장에서는 성조기가 그려진 수모를 쓴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거리에서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 사무실에서는 머그컵, 볼펜, 노트 등 우리 주변에서 성조기 디자인 용품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각적인 요소들이 알게 모르게 의식에 각인되고 미국의 이미지로 고착되고 있다. 무서운 것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미국은 이렇게 무의식 중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
거부할 수 없는 존재, 미국에 대한 분석과 연구는 그간 많이 있어 왔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는 많은 나라들의 본보기가 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작가 존 스타인벡이 남긴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미국인이 바라본 미국과 미국인의 이면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무엇보다 작가가 존 스타인벡이라는 사실은 이 책이 지닌 내용에 앞서 무시하지 못 할 힘을 부여한다. 여기에 이 책을 번역한 안정효가 책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해제를 기술해 놓음으로써 이 책이 갖는 의미와 존 스타인벡의 문학사적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나는 그의 작품은 책보다 영화로 접했다. 따라서 소설이 아닌 비평서의 일종인 이 책으로 존 스타인벡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부족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이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에서 영국 작가인 이스라엘 쟁윌에 의해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고 표현되기도 한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모습 등은 미국이란 국가를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개척과 투쟁은 지금의 미국에게 다른 단어지만 같은 의미로 작용해 왔으며, 현재의 미국을 형성함에 있어 원동력이 되었다. 평등과 자유를 외치며 민주주의 표상으로 비춰지는 그들이 여전히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과 부에 의해 차별적 평등을 유지하는 미국과 미국인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들에 대한 스타인벡의 주관적인 분석들은 꽤 흥미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역시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가 1960년대의 미국을 바라보며 미래의 미국을 예견한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미국의 '도덕성 상실'을 자국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로 꼽고 있다. 한 때나마 의로운 국가로 평가받았다는 미국이 지금은 어떤 행보를 걷고 있는가! 세계 평화라는 꽤 거창한 명목 아래 전쟁으로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국가의 권력을 무기로 새로운 식민지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스타인벡이 말하듯 그들은 미래로 향하는 길을 아직도 찾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애시당초 도덕, 윤리, 자비심 등은 무시하고 오직 이익만을 쫓기로 작정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인벡은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메리카는 결코 만족을 모르며 한 번도 뒷걸음질 친 적이 없다는 그의 믿음대로 미국은 여전히 욕망하고,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 과연 스타인벡이 현재의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서는 어떤 비평을 내놓을지 결코 알 수 없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으나, 책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담은 진솔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
#1. 존 스타인벡의 적나라함을 만나다. 그의 눈에 비친 미국과 미국인을 만나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존 스타인벡의 마지막 유작입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아직도 존 스타인벡의 작품을 하나도 접해보지 못해서 이 작가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써낸 작가인지 감이 없습니다만 이 저서 하나만으로도 저자의 기본적인 성향과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 있고 폭넓은 안목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사실 지루한 미국 역사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스러워 책을 펼쳐 읽으면서도 곧장 꿈의 나라로 인도하는 티켓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으로 들어가자 시작부터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강렬하면서도 적나라한 평가와 비판이 가미된 이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아, 이양반... 쎈데...' 이런 생각이 절로드는 내용이었고, 미국의 역사와 성향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뼈속까지 친미라며 권력과 부에 가까운 분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해 볼때 타국민이 아닌 오리지날 미국인의 시각으로 쓰여진 자폭스러운 비평서의 내용은 참으로 통쾌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렇게 통렬한 글을 전개하는 저자는 그러나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자신의 주장들이 모두 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견해이자 추측이자 추론일 뿐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피력합니다.
"이것은 적어도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들의 정열적인 사랑과, 호기심과, 짜증과,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빚어내는 시각이며 아메리카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견해들이다. 그 까닭은 우리들이 지닌 과거의 갖가지 특성과 의견 충돌, 그리고 수많은 관심과 취향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었으며, 그 총체에서 무엇인가 온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것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복잡하고, 역설적이고, 고집이 세고, 소심하고, 잔인하고, 시끄럽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매우 아름다운 것. 아메리카다." p81
그러니까 미국은 복잡하고, 역설적이고, 고집이 세고, 소심하고, 잔인하고, 시끄럽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매우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 전반에 계속 미국의 역사, 문화, 인종 등의 흐름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뭔가 좀 과했다 싶었는지 슬슬 부드럽고 좋은 쪽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슬그머니 내놓습니다. 이런 전개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할배가 막 쓰다보니 살짝 쫄으셨나보군'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단예님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고 하신 모양입니다.
#2 복잡다난한 미국의 특성과 미국문화 미국인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견해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을 읽다보면 이 양반이 참으로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향자체가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사실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보수와 진보는 무언가 기본적인 정의에서 많이도 벗아나 있는 느낌이라 이 뉘앙스가 잘 전달이 되어질지 모르겠지만 존 스타인벡의 시각은 부드럽고 휴머니즘 넘치면서도 현실 체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비판이 아낌없이 쏟아진다는 점에서 진보적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진보를 위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스타인벡이 이 글에서 설명하는 미국의 여러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양한 인종이 모여 이룬 세로운 종족, 아메리카인
- 항상 불안정하고 불만으로 가득차고, 항상 갈망하는 민족이라는 편견을 듣는 아메리카인
- 400년이 넘는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노동과, 피 흘림과, 외로움과, 공포가 창조한 땅 아메리카
- 평등하게 태어나서 평화, 안락함, 안정, 그리고 사랑을 추구하는 아메리카인
- 발전에 밑바탕이 되는 필요와 빈곤을 통해 변화와 복합성을 촉진하는 아메리카인
- 아이들을 유별나게 우선시하는 아이병에 걸린 아메리카인
- 과거부터 땅따먹기에 열을 올렸던 땅 정복자 아메리카인
- 예술과 문화의 우수성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졌다고 믿는 자신감 넘치는 아메리카인
- 과거의 수많은 실수와 과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가능성이 많은 아메리카인
뭐 이정도 쯤 되겠네요. 가만보니 우리도 우리나라의 역사나 특성을 기술하면 뭐 이정도는 충분히 나오지 않을까요? 공무원식으로 작성하면 장점이 단점의 몇배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위와 같은 여러가지 특징을 기술해 나가면서 저자는 아메리카가 완벽하지도 완벽했던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때 들었던 '의롭다'라는 값지고 아름다운 자질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해줍니다. 또한 누구나 지적하는 미국의 전형적인 문제점인 물질만능주의에 대해서도 꼬집습니다.
"우리는 온갖 물건을 보유하게 되었지만, 그것들에 대한 사고의 방향을 정리하고 발전시킬 시간이 없었다." p279
이뿐 아니라 도덕의 문제를 비롯해 다양하게 산재되어 답이 없는 미국의 여러가지 총체적 난국에 대해 염려합니다. 그런 한편 이 글의 최 말미에 아주 적은 분량을 통해 아직까지 희망은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희망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는 실패한 듯 하지만 말입니다.
#3. 날것 그대로의 원문을 접하는 기회를 주는 것의 미덕을 생각하다.
에 또... 어떤 유명한 가수가 있다고 칩시다. 이미 고인이 된 이 가수의 노래를 들으러 추모콘서트 장에 갔어요. 그런데 노래는 안들려주고 진행자가 나와서 계속 이 가수의 생애와 마지막에 남긴 곡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아마 진행자는 이 가수가 남긴 마지막 역작이 너무 난해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듣고 오해하지 않고 더 잘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 저것 막 설명을 하는 모양새가 된 것 입니다.
추모콘서트에 온 사람들이 과연 이 가수의 마지막 유작곡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을까요? 아마도 그 곡이 어떤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주로 어떤 내용인지, 가수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설명을 듣는다면 더 귀에 쏙쏙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훌륭한 곡은 잡다한 설명이 아니라 곡 자체로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감동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진행자가 가타부타 말없이 유작곡을 먼저 들려준 다음, 그 곡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이나 소회를 덧붙였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어떤 진행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 더 유익한 진행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후자의 경우가 더 적절한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노래가 아니라 책이라고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문학작품이 되었건 에세이가 되었건 작가가 남긴 작품 날 것 그대로를 번역해 전달해 주는게 무엇보다 우선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소화하느냐는 독자의 몫입니다. 저자의 의도를 오해하더라도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각자의 수준과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 될 수 있는 자유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원하는 사람들은 작품을 읽고 보다 배경지식이 풍부한 평론가나 역자의 해제라던가, 후기 등을 추가로 읽으며 독서를 더 풍성하게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초반 80페이지 이상이 역자의 해제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 이후 본문이 약 200여 페이지 정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초반 1/3 정도가 본 내용에 앞선 해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역자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저처럼 존 스타인벡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에게 미리 어느정도 배경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책의 경우는 조금 지나치다고 느껴집니다.
마치 "이 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렇게 이해하고 이런 관점에서 읽어야 되는 것이야"라고 제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말입니다. 저처럼 빈정이 잘 상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배치라고나 할까... 그냥 내맘대로 읽고 내마음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해설을 읽으면서 오해한 부분은 수정도 하고 더 풍성하게 이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 존스타인벡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을 보기도 전에 주의사항을 너무 과하게 전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건 좀 아닌데 싶었습니다. 참, 그런데 작품해제의 내용 자체는 참 훌륭했습니다. 다만 배치 순서가 좀 마음에 안들었을 뿐입니다.
#4. 끝으로
저자는 그 많은 시간동안 다양하게 잘못을 저질러 왔던 미국과 미국인들의 과오를 처절하게 내놓고 평가하고 반성하면서도 미국인 특유의 자존심은 여전히 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구? 우리가 누구~~~~~~~~? 하며 자존심 한번 세우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전반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와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미국인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는 이 책은 흥미롭고 내용도 충실하며, 술술 읽기에도 무척 좋은 훌륭한 작품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실패했고, 길을 잘못 들었고, 기운을 차리려고 멈추었고, 배를 채웠으며 상처를 치유했지만, 우리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뒷걸음질을 친 적은 없었다." p292
*PS : 이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저 문장에서 왜 자꾸 상속자들의 마지막 문장이 생각나는 걸까요? 너무 흡사한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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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세 왜 이 책을 샀을까? 미국은 어린 시절의 동경하는 나라였고 유학을 한다면 당연히 미국 외엔 생각한 바가 없던 나라지만 돈 쓰러 가주겠다는데도 공항에서 전신검색을 하며 무례하게 대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별로 가보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요즘들어 부쩍 영어와 미국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이 책이 눈에 띄길래 주문했다. 존 스타인벡은 너무 유명한 작가다. <분노의 포도>나 <에덴의 동쪽>은 영화화되어 전 세계인을 열광시킨 작품이 아닌가. 그런데 그가 이 책을 지었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 미국인이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 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고 화제작이었을까.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이 책이 출간된 시대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책을 읽고서 그리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긴 그렇다. 아마 1968년에 출간된 작품이라 그런 평가를 내린 것 같다. 이미 미국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미국에 대해 미국인에 대해 어쩜 저자보다 더 많이 아는 독자들이 많아진 시대에 살고 있어서 이리라. 물론 번역가인 안정효님이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로 돌아간다면 미국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것을 충족시킬 충분한 내용을 담았을 유일한 책이었을테니 그런 평가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인생 말미에 자신의 역량을 다해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 소명의식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 저자의 탁월함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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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코너에 들러보면, 미국을 그리고 미국인에 대해 말하는 책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군사력 등 전방위적으로 이정도까지 전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무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테러와의 전쟁, 경제위기 등을 겪으면서, 미국은 여전히 전세계 화두의 중심에 놓여있다.
이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이라는 책은, 노벨상 수상 작가인 '존 스타인 백'이 사망하기 2년전에 쓴 미국에 관한 에세이다. 미국인인 스타인백의 눈으로 자신이 나고 자란 아메리카를 시니컬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서술하고 있다. 60년대, 당시까지의 상황에 기반해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보면 시대착오가 아닐까 싶은 부분도 더러 있다. 현재의 미국을 말하기에는 다소 모자란 것은 아닌가하는 기분은 든다. 저자가 생각하고 있던 미래보다, 현대사회는 훨씬 더 어두운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