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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진화론을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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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철의 유쾌한 수업은 생물학에 이어 진화론에 이르렀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리뷰를 했기 때문에 딴에는 뻔한 책내용에 뻔한 리뷰를 써야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읽기 전부터 지배했었다. 너무 많이 읽어 익숙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근래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처구니 없게도 '믿음'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까지는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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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철의 유쾌한 수업은 생물학에 이어 진화론에 이르렀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리뷰를 했기 때문에 딴에는 뻔한 책내용에 뻔한 리뷰를 써야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읽기 전부터 지배했었다. 너무 많이 읽어 익숙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근래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처구니 없게도 '믿음'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까지는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사회에서는 과학수업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면 안 되고, 대신 '창조론'을 가르치는 주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도 일부 교회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명목 아래 '지구의 탄생'과 우주 만물의 모든 현상을 '신의 섭리'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신앙은 신앙이고, 과학은 과학일 뿐인데도 말이다. 암튼 이에 대한 자세한 정황은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에 자세히 적혀 있고, '창조과학', '지적설계'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치면 장황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렇게 신앙과 과학이 대립각을 세우는 통에 우리는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난무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원숭이가 진화를 해서 인간이 된다]는 상식인데, 결론만 얘기하면 터무니 없다. 굳이 인간과 원숭이를 묶어서 설명하려면, [인간과 원숭이는 '공통조상'이 있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인해 인간과 원숭이로 다르게 진화과정을 거치게 되었다]로 설명할 수 있다. 한마디로 현재의 원숭이는 수백만, 수천만 년이 지난다해도 인간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잘못된 지식을 널리 퍼뜨리게 된 것중에 하나가 바로 <혹성탈출>이라는 영화 덕분이다. (나는 일본식 한자어인 '혹성'을 우리식 한자어인 '행성'이라고 고쳐쓰길 바라지만, 이미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터라 처음 뒤침(번역)한 그대로 전한다.)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가 바로 인류를 대신해서 '원숭이'들이 지구를 지배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더욱 널리 퍼지고 지금까지도 잘못된 사실을 널리 전파하는 일을 톡톡히 해낸다고 본다. 다시 한 번, 딱 잘라 얘기하지만 원숭이는 절대 인간으로 진화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진화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라는 표현이다. 이 말도 다윈이 언급한 말이 아니다. 다윈은 그저 '자연선택'과 '도태'라는 표현을 했을 뿐이다. 이 자연선택이라는 말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이 '흰나방과 검은나방 이야기'다.

 

  옛날에 같은 종인 나방이 살고 있었다. 원래는 온몸이 하얀 흰나방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검은나방도 비록 소수지만 함께 살고 있었다. 이렇게 흰나방이 주류를 이룬 까닭은 천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유리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검은나방은 자신의 몸을 보호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연 덕분에 주위 환경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푸르고 밝은 숲이 매연에 의해 검게 그슬른 것이다. 그 덕분에 검은나방은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었다. 반면에 오래도록 숲의 보호를 받던 흰나방은 더는 숨을 장소를 찾지 못해 천적에게 잡아먹히기 일쑤였다. 이렇게 검은나방은 개체수가 점점 늘고 흰나방은 점점 줄게 되었다. 그러다 환경파괴로 인해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지자 공장의 매연을 감축하는 방안 내는 등 환경을 정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인 결과, 숲은 다시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흰나방과 검은나방의 개체수는 다시 역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흰나방과 검은나방이 '진화'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다만 주위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 다시 말해, 변화한 자연의 선택을 받은 개체는 번식에 유리해지지만 그 반대인 경우에는 심할 경우 멸종이 이르게 된다는 점이 바로 진화론의 핵심이란 얘기다. '자연도태'도 이와 같은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적자생존'이니 '약육강식'이니 하는 말은 어찌 된 것인가? 그건 과학자들이 아니라 '사회학자'들 때문이다. 특히, 공산주의 사회학자들이 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도 '진화'를 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여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원시공산사회-고대노예제사회-중세봉건제사회-근대자본주의사회-공산주의사회]. 여기서 자세한 설명은 불필요할테니 골자만 이야기하자면, 먼 옛날 씨족사회, 부족사회 시절에는 공동생산, 공동분배가 원칙이었다. 그러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국가가 형성되면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형성되어 발전하다가 근대자본주의사회 때에 자본가와 노동자, 즉, 유산자와 무산자로 대치되는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해 무산자(프롤레타리아)들이 유산자(부르주아)를 폭력으로 제압하여 완전한 '부의 평등', 즉, 공산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사회의 모델'들도 진화를 거듭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적자생존', '약육강식'과 같은 부연설명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이른바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는 룰을 적용해서 사회의 변천과정을 나열하고, 이를 진화론으로 타당성을 갖춘 결과로 수많은 오해를 낳게 된 것이다. 마치 다윈이 이 모든 것을 '증명'이라도 한 것 마냥 말이다.

 

  그러나 이런 오해들은 요즘에 와서는 많이 수그러들고 있다. 말 잘하고 글 잘쓰는 과학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런 오해를 불식하게끔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장수철도 그런 노력에 한 몫을 단단히 하였다. 거기에 진화론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덤이다. 지금까지 읽어온 '진화론' 책 가운데 가장 쉽고 가장 재미나게 풀어놓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재성의 코믹한 질문이 한 몫을 더하고 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18.05.0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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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명쾌한 진화론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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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아주 특별한 생물학 수업>이 농담도 많고 딴소리도 많아 가벼운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그런 것들이 별로 없어서,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느껴졌고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용 자체는 6차 교육 과정 하이탑 생물2에 수록된 진화 파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고 어려운 내용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전작에서부터 장수철 교수가 상당히
"아주 명쾌한 진화론 수업" 내용보기

 

전작 <아주 특별한 생물학 수업>이 농담도 많고 딴소리도 많아 가벼운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그런 것들이 별로 없어서,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느껴졌고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용 자체는 6차 교육 과정 하이탑 생물2에 수록된 진화 파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고 어려운 내용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전작에서부터 장수철 교수가 상당히 세게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느껴졌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과학의 핵심에는 실험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실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진화도 여느 분야의 과학처럼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중요하다. 일상에서 진화는 종교에 대항하는 도그마의 하나로 취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이다. (...) 진화론은 (...) 거의 모든 생명과학의 분야에서 증명되어 왔다. 가히 만류인력의 법칙이나 상대성 이론의 반열에 있는 이론이며, 그 당위성을 더는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 학문이다.」 (P. 06) 


 특히 '당위성을 더는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이라는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한편 의외였던 것은 진화론이 19세기에 탄생한 상당한 신생 학문이라는 점이다. 이미 19세기라면 계몽주의 시대가 아니었는지? 오히려 중세에 따른 반작용으로 비종교를 넘어 反종교로까지 나아가던 시대가 아니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이 불러온 커다란 파장을 생각하면, 솔직히 많이 혼란스럽다. 저 시대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믿었고 무엇을 알았던 것일까? 궁금하다. 또, 진화론에서 유독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저자 또한 서두에서부터 그것을 이야기하는데, 나로서는 이제 슬슬 이런 얘기들은 그만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종교를 갖고 싶어도 도저히 갖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인데 (솔직히 때론 아쉽다고도 느낀다. 실제로 종교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통계도 있다.) 종교와 과학에 대한 세간의 대립 도식이 비논리적이고 허황되며, 그 자체로 비과학적이고, 작위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멍청한 사람이 짜낸 이 실없는 도식을 계속 사람들이 듣고 떠들어야 하는 걸까.


3점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2 2018.05.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