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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관심이 많은 지인으로 부터 입이 닿도록 들었던 <침묵의 봄>을 구입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하다.읽어야지 읽어야지 품었던 생각만 해도 벌써 몇 번은 읽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렀다.우스개말로 등산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 현관문 밖으로 나오는 거라던데..<침묵의 봄>을 읽는다는 것이 내게는 그처럼 어려웠던 모양이다.알쓰신잡에서 <침묵의 봄>을 거론해 주지 않았다면 여전히 책장에서 해바라기만 하고 있었을 <침묵의 봄>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 건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에서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이란 책이 출간된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침묵의 봄>을 알쓰신잡에서 거론하면서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지만,저자의 글솜씨의 탁월함이 놀라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그리고 이 책 서두에서 레이첼 카슨의 원래 꿈이 문학도였음을 알게 되었다.아직 <침묵의 봄>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환경이란 주제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딱딱한 이론서는 아니겠구나 싶은 마음이... 생각해 보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기대이상으로 재미나게 읽혀서 놀랐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침묵의 봄>을 읽기가 두려웠던 건,어려운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만은 아니었다.인간의 잘못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들을 정신차리고 읽어낼 자신이 없어서였다.환경이 파괴되는 것에 일정부분 기여를 했을 테고,여전히 적극적으로 환경운동에 나서지도 앞으로도 나설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읽기만 하는 것이 소용이 있을까 싶어서였다.그런데 전혀 뜻밖(?)의 지점에서 나에게 재미를 선사해 주는 지점을 만나게 될 줄이야...소설<나를 보내지마>를 읽으면서 복제인간에 대한 문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여러 질문을 해보고 있던 터라,과학이란 과학윤리와 환경윤리에 대해 홍성욱 교수의 주장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었다."(...)두 번째 과학에 유물론적 성향이 강해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세 번째 과학의 방법론이 자연이라는 객체와 인간이라는 주체를 분리해서 다룬다.두 번째 세 번째 지적은 인간 더 나아가 자연을 단지 탐구의 대상으로만 본다는 뜻이다.(...)"/67쪽 과학의 일면을 과학의 전부로 오해한 면이 있다고 지적한 글인데,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를 보내지마>와 같은 소설 속 상황이 실제 가능해진다면,그것은 과학이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그럼에도 생명이라는 문제를 던지게 되면 여전히 뾰족한 답을 찾을수 가 없겠지만,무튼 과학의 순기능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레이첼 카슨이 끝임없이 주장한 것은(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부분을 전제로) 과학이 발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닌거다.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그러니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거였다.
100 여쪽도 되지 않는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였을까? 어렵지(?)않게 '침묵의 봄'을 읽어낼 수 있는 이정표를 만날수 있기를 바랐다.'침묵의 봄'에 어떤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다는 것 보다 '침묵의 봄'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조금은 깊게..그러나 100여쪽도 되지 않는 분량을 감안한다면 애시당초 욕심이었을 지도 모르겠다.(이부분은 레이첼카슨의 평전을 읽어보는 것으로^^) 최대한 인간의 관점이 아닌 시선으로 <침묵의 봄>을 읽어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 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겠다.왜 읽어야 하는지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를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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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혁명과 함께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마치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환경 파괴와 같은 어두운 면면도 있었으니...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므로 자연과 더불어 공존해야 할 것이다. 후손들에게도 이 자연을 물려줘야하므로 환경 문제와 같은 깊은 고찰을 하게 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