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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릇한 대중문화를 통해 본 유쾌한 근대사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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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흥미로운 담론이다. 우리사회에‘대중적’인 근대적 자극이 본격화 된 시기는 대략 1930년 전후의 시대라 할 수 있는데, ‘에로’와‘그로’,‘넌센스’는 당시의 대중적 화두였던 모양이다.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를 일본식으로 줄여 쓴 이 외래어가 식민지 사회를 휩쓸게 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첨예한 이념대립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세계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의 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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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흥미로운 담론이다. 우리사회에‘대중적’인 근대적 자극이 본격화 된 시기는 대략 1930년 전후의 시대라 할 수 있는데, ‘에로’와‘그로’,‘넌센스’는 당시의 대중적 화두였던 모양이다.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를 일본식으로 줄여 쓴 이 외래어가 식민지 사회를 휩쓸게 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첨예한 이념대립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세계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의 불황, 게다가 식민지민으로서의 불안과 서구자본주의의 침투로 인한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 등으로 사회 전체가 극단적인 의기소침에 시달리고 있을 때 압도적 시각문화를 동반한 새로운 감각적 자극은 당대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일본의 향락산업과 성 풍속의 식민지로의 이동, 근대화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와 대중사회의 도래는 시대환경과 결합하여 현대적인 것의 맹목적 지향과 눌려진 욕망의 분출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고, ‘에로 그로 넌센스’는 당시 모든 문화적 현상들의 배후에서 욕망을 압축한 말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저작은 바로 이를 근대성의 징후로서 인식하고 당시 대중 연예잡지라 할 수 있는『별건곤(別乾坤 』, 문예지 『동광』을 비롯하여 각종 미디어 매체, 산업의 현상, 대중의 일상적 풍경을 통해 한국사회의 민중문화를 해독하고 있다.

 

3차 산업의 확대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었지만 이들이 주로 향한 곳은 도시의 소비문화 및 향락산업에 치중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예로 그간의 전통적인 상인이 갖추어야 할 전문적 지식보다는 여성의 애교를 통한 판매력 증진이 더 효과적인 상술이 되고, 숖걸(점원), 데파트걸, 바걸, 헬로걸(전화교환수), 티켓걸, 카페여급(웨이트리스)과 같이 첨단직업부인 ‘걸 전성기’를 맞이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1931년‘낙원’이라는 카페가 문을 열면서 “가벼운 우울, 살이 미소하며 엉덩이가 춤을 추는 날카로운 육감, 상대자를 탐색하는 야릇한 피로, 귀가 멍멍한 음향, 농염한 색채, 환각적 말초신경의 기괴한 발동으로 가득찬‘청춘의 놀이터’”로서 향락을 구비한 곳, 에로에 대한 욕망을 합리적으로 만족시켜주는 곳으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다채로운 시대배경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회적 열기에 대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모던의 색등(色燈)에 시각을 빼앗긴 그들은 드디어 맹목이 되고 과민한 백치가 되었다.”는 비평이나, 이상(李箱)의 “타락으로 이루어진 축제”라는 시선, 웃음마저 자본주의 체제 속에 편입시켜버린 “카페와 흥행물을 통해 복제되고 대량생산되는 상업화된 웃음”과 같이 조롱과 냉소, 자성이 잇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저작에서 주목할 만한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당대를 대표하는 한 묶음의 ‘에로 그로 넌센스’에서, ‘넌센스’가 지니는 의미의 고찰이다. 즉 넌센스는 에로와 그로와 같은 향락산업의 진전과 어울려 이를 진작시키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상황을 넘어서려는 욕망으로서 에로그로로 대변되는 현실의 떠들썩한 상류계층을 풍자하고 전복하는 냉소적 태도로서 작동하였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열기는 강력한 근대적 감각으로서의 시각문화로 다른 감각들이 퇴화됨에 따른 반작용으로 그렇게 퇴화된 감각들에 대한 향수, 즉 현대적 감각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가깝다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성찰은 집단의 공동체성을 강화시키고 재확인하는 유력한 수단이었던 전통적 민속적 축제를 단절시키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 에로그로, 즉‘불야성의 별천지’라는 새로운 이 근대의 변질된 축제는 개인을 공동체에 동화시킬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편 이처럼 고대의 신성성으로부터 멀어지기는 하였지만 삶의 권태와 피로를 떨치고 위안을 얻는 축제의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매체로서 유성기, 영화, 연극의 대두는 비근대인들을 근대인의 삶으로 체화시키는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읽어내기도 한다. 반면 새로운 매체이긴 하나 라디오라는 청각 매체는 소설이나 신문을 읽어주고, 전통 가락이나, 민속적 고적 문화를 들려줌으로써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재현하게 하는 등 전통적 유산을 부활시키는데 기여함으로써 외래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들이 부딪치고 굴절되어 대중문화로의 근대적 요소의 침투를 완충하는 기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 저술의 대미라 할 수 있는 이상(李箱)과 채만식 두 문인의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민중문화가 지니고 있던 급진성과 전복성을 거세시킨‘에로 그로 넌센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분석으로서, 고유의 비근대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 ‘죄지은 자의 징벌’이라는 구조를 통한 풍자와 자조의 경향이 앞서는 냉소라는 작품 고유의 틀을 통찰하여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당대의 걸작들에 대한 독법은 귀중한 문학적 지식기반을 제공하여 준다.

1930년대 우리사회를 깊숙이 들어가서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 그리고 넌센스라는 시대의 문화적 현상이 근대화를 어떻게 촉발하고 사람들을 변화시켰는지, 또한 그 변화과정에서 충돌하였던 시각문화와 청각문화의 조화, 현실의 불만과 우울을 해소하려는 욕구로서 이들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압축적으로 명쾌하게 서술되고 있는 이 저술은, 21세기 오늘의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소비과잉과 과시적 사회의 현상이 당시대의 야릇한 화두가 발설하고 있는 의미를 반복하고 있는 것만 같아 낯설지 않은 공감을 형성한다. 수사를 제거한 깔끔한 대중문화 연구서이자 유쾌한 문화역사 담론서로 어떠한 손색도 없는 훌륭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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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왜 "레몬 향기를 맡고 싶다" 하였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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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왜 '레몬 향기가 맡고 싶다' 유언했을까라는 질문   대학 새내기 문학 시간에 선생님 왈, "이상이 '레몬 향기가 맡고 싶다'고 유언했다는데, 그 이유가 뭘지 생각해 보세요"라는 과제를 주었다. 틀에 박힌 공교육의 축복을 듬뿍 받고 굳은 머리를 대학으로 위치 이동만 시킨 난, 딱 전형적 지식 안에서 억지논리를 짜냈다.    [레몬의 향과 맛이 좋으나, 식민지 현실이 엄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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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왜 '레몬 향기가 맡고 싶다' 유언했을까라는 질문

 

  대학 새내기 문학 시간에 선생님 왈, "이상이 '레몬 향기가 맡고 싶다'고 유언했다는데, 그 이유가 뭘지 생각해 보세요"라는 과제를 주었다. 틀에 박힌 공교육의 축복을 듬뿍 받고 굳은 머리를 대학으로 위치 이동만 시킨 난, 딱 전형적 지식 안에서 억지논리를 짜냈다. 

 

  [레몬의 향과 맛이 좋으나, 식민지 현실이 엄혹해서  죄책감이나 무기력 때문에 그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을 겁니다. 자유 조선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독립된 나라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말인 듯 합니다.]

 

  땡! 틀렸다. 백 번을 양보해도 이상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아내 변동림 여사는 '레몬'이 아니고 '멜론'이였고, 먹고 싶다기에 사다 줬는데 기력이 다해 죽어가는 마당이라 먹진 못하고 냄새만 마셨다고 했단다. 

 

    1930년대 조선에 대한 우리의 기대 또는 착각   

 

  한국사 교과서나 TV 드라마, 영화는 일제 강점기의 일부만 강조해 보여준다. 민족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 독립운동, 인력과 물자의 수탈, 일제에 억압되는 자들의 고통과 좌절과 노력을 위주로. 모던보이, 모던 걸, 사의 찬미, 활동사진과 변사의 목소리는 당시의 풍경을 보여주는 부수적 장치에 머물곤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상도 당연히 반일정신이 투철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해버린 거다.

 

  그러나 치명적인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일상'은 존재했으며,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곤 익숙한 억압 속에서 평범하고 비루한 삶을 살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쪽바리 앞잡이가 그 시대를 잘 적응한 건 절대 아니고!) 이 짧은 연구서는 강점기 조선의 대도시, 특히 경성의 신문물을 누린 이들이 공유한 '평범하고 비루한' 일상을 알려준다.

 

    에로틱, 그로테스크, 그리고 넌센스

 

    제1차 세계대전(1914~1919) 이후 도시문화는 국제 간에 이전보다 빠르게 전파됐다.간토대지진(1923) 이후 일본에서 음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 미국의 재즈, 댄스 문화가 유행했고. 조선 대도시에도 전파된다. 1930년대 '여러 이념 대립과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정치적으로 혼란했고, 1929년 대공황 이후 경제적 불황기에 빠졌기' 때문에 조선에도 저급, 비열, 음란, 사치스러운 에로와 그로 문화가 팽배했다고 한다. 그런 사회상을 냉소하거나 풍자하는 형식으로 넌센스 ㅡ가볍게 웃거나 심각히 비웃거나ㅡ도 유행했다는 거다.

 

  당시 출판됐던 잡지들에 그 시대를 살았던 도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고학력에 직업을 얻지 못하고 거리를 유랑하는 룸펜, 학비를 벌거나 백화점 물건을 사기 위해 몸 파는 여학생, 1원에 술을 따르고 자유연애의 체험을 파는 카페 여급, 우후죽순 생겨난 카페에 몰려들어 여급을 희롱하는 데만 골몰한 학생과 지식인들, 음울한 현실을 잊기 위해 말초적인 욕망을 탐닉하는 사람들.   

 

    소수의 문화일지라도 근대를 대표하는 풍경

 

  1930년 대 조선인의 문맹률은 평양, 개성, 경성, 대구 같은 도시만 해도 50%에 달했고, 전국 평균 문맹률이 거의 80%였다.(1930년, 통계통 자료, 미취학 아동 포함 조사) 도시 비율은 5.6%고. 소위 모던의 에로, 그로, 넌센스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라든가, 일본을 거쳐 들어온 외국언어들을 읽고 이해할 능력은 대부분 조선인들에게 없었다. 그들은 유별났고 낯설었다. 당시 조선인보다 현재 우리에게 에로, 그로, 넌센스의 풍경이 차라리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다수였던 노동자나 농민이 아니고, 우리 머리 속의 전형인 민족주의자나 독립운동가도 아니면서 [근대]라는 걸 대표하는 이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냥 '사람 사는 세상'이었을 뿐이다. 씁쓸하고 허무하고 때론 한심하게.

 

    단순한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1930년대에 대한 환상이나 착각을 걷고 보면 이상의 유언에 대한 요란스런 해석조차도 헛수고가 아니었나 의심이 된다. 그냥 멜론이 먹고 싶었을 뿐인 거 아닌가? 그나저나 당시 레몬이니 멜론이니 찾을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느 세계 사람일까 싶기도 하고. 하하.




  ㅡ 나는 이 책을 살림지식총서 150 <모던걸, 여우목도리를 버려라> 151 <누가 하이카라 여성을 데리고 사누>와 함께 읽었다. ㅡ

 

k*****i 2017.07.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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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 그로 넌센스: 근대적 자극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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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본이어서 부담 없이 집어들었다. 내용도 제목처럼 흥미롭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이다.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이것들이 어떠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한 책의 제목으로 묶이게 되었을까 궁금해하기 시작하면 이 글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이 책 역시 우리 나라 근대를 그린 책이다. 이번에는 잡지를 다루었다. 1930년대 하면 다들 식민지 조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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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본이어서 부담 없이 집어들었다. 내용도 제목처럼 흥미롭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이다.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이것들이 어떠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한 책의 제목으로 묶이게 되었을까 궁금해하기 시작하면 이 글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이 책 역시 우리 나라 근대를 그린 책이다. 이번에는 잡지를 다루었다. 1930년대 하면 다들 식민지 조국의 상황을 슬퍼하며 생활을 내팽겨친채 구국운동만 했을 것 같지만 '잡지에 에로가 빠지면 안될' 정도로 대중문화에 근대적 자극이 만연했던 것을 보면 새삼 그 시대에도 삶이라는 것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참담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더욱 그러한 자극에 탐닉했던 것일까, 아니면 식민지 상황에 지쳐서 슬슬 체념해갈 때 쯤 서구, 일본을 통해 접하게 되었던 근대 문물들이 마냥 좋아보였던 것일까. 에로틱과 그로테스크를 갖추지 못하면 모던보이, 모던걸이 아니었다. 이렇게 에로틱과 그로테스크가 자극을 부추기는 것들이었다면 넌센스는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넌센스는 '에로 그로를 해체하는 웃음'이었던 것이다. 야한 이야기가 우스워져버리면 그것은 넌센스가 에로틱을 뛰어 넘은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상과 채만식의 작품들을 예로 들면서 풍자를 통해 에로, 그로를 뛰어넘으려던 그 시대 지식인들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05.09.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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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 그로 넌센스 - 살림지식총서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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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 그로 넌센스 - 살림지식총서 154   현대의 자극적이고 성적인 것만 쫒는 풍조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것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에 대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이러한 풍조가 있었는데 어쩌면 이러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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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 그로 넌센스 - 살림지식총서 154

 

현대의 자극적이고 성적인 것만 쫒는 풍조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것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에 대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이러한 풍조가 있었는데

어쩌면 이러한 것이 자칫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조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t********6 2018.05.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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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을 깨는 것은 넌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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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의 담론 “에로 그로 넌센스”에 대한 짧은 문고판 책이다.  30년대에 이 3개의 단어를 연결하여 에로 그로 넌센스란 하나의 단어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에로는 에로티시즘, 그로는 그로테스크의 일본식 줄임말이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은 일본 내지로부터 이 단어를 수입 받고, 널리 사용되게 된다.   이 책에서도 <별건곤>의 잡지가 소개되는데, 이것이 선정적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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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대의 담론 에로 그로 넌센스에 대한 짧은 문고판 책이다.  30년대에 이 3개의 단어를 연결하여 에로 그로 넌센스란 하나의 단어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에로는 에로티시즘, 그로는 그로테스크의 일본식 줄임말이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은 일본 내지로부터 이 단어를 수입 받고, 널리 사용되게 된다.

 

이 책에서도 별건곤의 잡지가 소개되는데, 이것이 선정적인 내용이 반드시 필요했나 보다. 그래서 에로 그로 넌센스를 묶어 소개하는 것이었다.   

 

런던의 커피하우스가 일본의 차(커피)와 술을 파는 형태로 수입되고, 다시 한국으로 카페 형태로 수입되는 과정을 겪는다. 여기서 카페걸의 유행이 에로티시즘의 시작이었다. 소위 소비 문화의 서구식 더하기 일본식의 수입이다. 에로티시즘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신여성인 고등학교 여인의 교복이나 많은 직장 여성들(숍 걸, 데파트 걸)이 입은 복장과 패션이 구세대에 대비한 새로운 것이여 관심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에로를 조장하고 확대한 것은 자본주의 서구 문화인 카페 걸일 것이다. 카페 걸 중 잘 나가는 사람은 영화 배우들이 주로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영화 배우의 수입이 작아서 부업(생업)이 필요했고, 또 카페 주인의 이해가 맞아 활성화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향락 퇴폐 사업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 다르게 소개되는 것이 넌센스이다. 에로 그로를 해체하는 넌센스의 웃음이다. <별건곤에 소개되는 우스운 이야기를 보면, 사회에 대한 비판과 냉소를 볼 수 있다. 넌센스는 그렇게 인식의 부조화를 느끼게 함으로 우습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이상과 채만식의 문학을 통해서 넌세스의 예가 소개되고 있다. 그중 채만식의 소설을 통해 넌센스의 구조적인 면과 냉소적인 면등을 소개하고 있다. 에로와 그로를 넌센스로 해체한다는 것이다.

 

30년대 식민지 지식인이 사회에 기여할 곳은 없고, 반대로 노동 계급에 참여할 수도 없는 참 안타까운 현실이 채만식의 소설을 통해 나타나는 것 같다. 모던 걸과 모던 보이가 떠 오르는 이상이였지만, 식민지 지식인이 다가가기에는 허상이 아니었나 함부로 생각해 본다.

 

z******g 2011.06.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