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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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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8. 다 읽음. 읽고 싶다 한지가 1년이 넘은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배송을 받자 마자 오늘 다 읽었다. 무엇보다 분량이 부담이 없다. 글 흐름도 물 흐르듯 매끄럽다.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계속 이런 좋은 글을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야웨주의자들의 위대성은 바알 숭배로부터 받은 영향을 완전히 배격하지 않고 적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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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8. 다 읽음. 읽고 싶다 한지가 1년이 넘은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배송을 받자 마자 오늘 다 읽었다. 무엇보다 분량이 부담이 없다. 글 흐름도 물 흐르듯 매끄럽다.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계속 이런 좋은 글을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야웨주의자들의 위대성은 바알 숭배로부터 받은 영향을 완전히 배격하지 않고 적절하게 토착화를 시도해서 제의에 편입시킨 것이며, 오히려 바알 숭배자들에게 야웨가 바알을 능가하는 분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역시 바알에게 적용되던 표현들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92쪽) 바알에게 적용되던 표현들을 인용한다는 것은 수긍할 수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이요, 언어라는 것이 공통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도 ''로고스''를 쓰지 않았는가! 문제는 앞의 것이다. ''바알 숭배를 완전히 배격하지 않고 적절하게 토착화를 시도해서 제의에 편입시켰다''가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집이 필요없다고 했는데도 끝까지 우겨 ''성전''을 짓는다. 기술이, 목재가, 석재가 없다 하여 이방족속에게서 수입하고 그 기술자를 환대한다. 그 가운데 바알과 똑같은 양식의 두 기둥을 만든다 등등. 지은이와 견해를 달리하는 것은 이것이다. 결론적으로 야웨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여러 가지 종교적인 의식을 선택했을 것이다.(78쪽) 야웨주의의 위대성은 그러한 가나안의 제의와 종교행위를 야웨를 위한 제의에 매우 적절하고 유용하게 토착화했다는 데 있다. ... 야위스트들은 이러한 면에서 야웨주의를 보호하면서도 고대 근동의 종교적 유산을 적절하게 토착화한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79쪽) 지은이의 글은 그 토착화가 ''잘 된 것이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 토착화야 말로 이스라엘 왕국의 쇠퇴 및 유수와 방랑의 ''시발점''으로 본다.(내가 잘못 읽어 지은이의 뜻을 곡해하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길 빈다.) 말과 글을 빌려 쓴다 하더라도 잃지 말아야 한다. 발은 땅을 딛고 서되, 눈은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크고 넓은 길로 다 가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또한 진정한 ''야위스트''가 그러할 리가 없다. 있다면 ''야웨주의''를 가장한 곧 양의 털을 뒤집어 쓴 늑대에 불과할 것이다.(표현이 격했나?) 우리가 서로 문화적인 차이점을 인정해주고 공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다면 각 종교 간의 배타적인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93쪽) 는 지은이의 말은 일리가 있어 고개를 주억거릴만 하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s***0 2006.12.0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앙, 문화, 종교의 대립속에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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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자그만 책들이 한 구석에 꼽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주제들로 엮어진 소책자들이었는데 책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흥미로울 것 같아서 몇권을 샀다. 그중에 두번째로 읽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읽는데 빠르면 얼마 안되서 다 읽어버리는 짧은 내용이지만 한 주제에 관해 일관된 주장을 밝힘으로 작은 분량속에 알차게 담아내었다. 저자가 전제로 깔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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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자그만 책들이 한 구석에 꼽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주제들로 엮어진 소책자들이었는데 책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흥미로울 것 같아서 몇권을 샀다. 그중에 두번째로 읽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읽는데 빠르면 얼마 안되서 다 읽어버리는 짧은 내용이지만 한 주제에 관해 일관된 주장을 밝힘으로 작은 분량속에 알차게 담아내었다. 저자가 전제로 깔고 있는 것과 같이 성서에서 바알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바알을 하나의 종교의 대상으로서 바라보기 보다는 타파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인 성서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책은 성서 속에 그리고 고대 근동지역에 나타난 여러 문서들을 비교함으로써 성서속의 야웨와 바알이 서로 갖는 역할과 의미들을 밝히고 있다. 고대 근동의 역사속에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바알신앙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영향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밝히고 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종교의 '문화적인(비본질적 문제의) 토착화'의 관점에서 바알신앙이 어떻게 야웨신앙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과 가나안이 같은 지역 안에서 살면서 거의 유사한 문화를 형성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통해서 문화적 교류란 결국 종교적 교류를 포함한 것이었고, 그 결과 구약성서에서 표현된 야웨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바알에 대한 묘사와 매우 흡사하거나 거의 동일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웨 주의자들의 위대성은 바알 숭배로부터 받은 영향력을 완전히 배격하지 않고 적절하게 토착화를 시도해서 제의에 편입시킨 것이며, 오히려 바알 숭배자들에게 야웨가 바알을 능가하는 분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역시 바알에게 적용되던 표현들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p92) 종교학적인 관점에서 야웨신앙이 갖는 유일신 신앙은 뚜렷한 특징을 갖는다. 일반적인 토템이나 다신교 혹은 자연신 신앙을 넘어선 창조주와 지존자를 동일시하는 세계관은 탁월한 경쟁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다신교의 대표주자였던 바알과 야웨의 대립 갈등은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 바알신앙의 영향력 안에 야웨신앙이 살아남았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주목되는 작업이다. 특별히 현재에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는 문화적, 종교적 갈등안에서 기독교 변증법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과거 동일한 근본원리의 대립속에 살아남았던 신앙인들의 발걸음 속에 있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p******b 2004.03.0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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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와 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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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와 바알.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알이라는 신에 대하여 많이 들었다. 이방신이라고 말하는 바알인데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하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한다.   맞다. 모른다. 그냥 있으니까? 어쩌면 그 이름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 옛날에는 중요한 단어였는데 이제는 모르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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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와 바알.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알이라는 신에 대하여 많이 들었다.

이방신이라고 말하는 바알인데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하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한다.

 

맞다. 모른다. 그냥 있으니까? 어쩌면 그 이름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 옛날에는 중요한 단어였는데 이제는 모르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중요한 단어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

즉 바알이라는 신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고 하나님도 이들을 미워 하였다.

그렇다면 이 바알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발전이 되었는가?

 

책을 보면 자세히 나와있다.

바알신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매음에 대한 이야기, 유혈목욕에 대한 이야기 등이

나와 있다.

또 야웨신앙과 바알신앙과의 비슷한 점들을 비교하면서 서로 닮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것을 설명하면서 솔로몬의 성전을 지었던 사람들이 페니키아인들이 공사를 주도 했다는 것이다. 즉 백향목을 이동하고 가지고 와서 일했던 전문가들이 이들 바알신전을 만들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솔로몬의 성전이 바알 성전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편 29편의 시도 거의 바알의 찬양시와 비슷하게 흡사하다고 이야기 한다.

 

고대 근동의 신들이 많이 나오는데 편만하게 나오는 바알이라는 신이 가나안의 신인 바알, 농사의 신이며, 바다의 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바알신앙이 사라진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문화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즉 전쟁과 포로와 식민지의 생활속에서 그것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문화적 수용이 되지 못하여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즉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종교는 문화적 산물'이라는 이야기와 동일시 하고 그것의 발전도 문화적 진화와 합일화 하려는 저자의 생각인가 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화에 적자 생존이 있다는 것. 어느정도 이해는 할 수 있겠지만 이것으로만 해결을 볼려고 해서는 않될 것 같다.

 

m****0 2008.05.0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