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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의 전반적인 개념, 그리고 사회문화적, 철학적 함의, 특히 우리에게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성찰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농축된 개괄(槪括)서라 할 수 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기본적 정의와, 그 사유체계가 지니는 의의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 저술은 아주 효율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수월한 문장표현으로 대중적 이해를 제고시켜준다는 특징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오늘 우리한국사회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에 대해 자문한다. 우리사회는 그 어떤 진지한 성찰도 없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문화, 예술적 유행처럼 오용과 남용을 일삼다가 마치 지나가 버린 사조정도로 치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배경 하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식체계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의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우리가 극복하고 새롭게 갖추어야 할 대안적 사유를 모색하고 성찰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것이 된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을 이해하기 위해 ‘모더니즘(modernism)’, 즉 ‘근대’를 설명한다. 근대의 어떤 정신으로 인해 근대 '이후(post)'의 정신이 요구되었는가? 그리고 근대를 '반대(anti)'하고, '극복(trans)'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대의 시기를 15세기에서 시작되어 계몽주의에 의한 이성중심주의 시대로 파악하고 있는 저자는 근대정신의 배경을 일차적으로 인간의 자기이해에서 발견하고, 자신을 타자와 구별된 자아, 나누어 질 수 없는 '개체(individual)'로 이해하는, 즉 인간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근원적으로 개체로 구별되는 단독자로 자신을 인식하는 인간상을 설명한다. 결국 인간은 자연과 사물을 소유하고 장악하며, 자연은 처리가능성의 대상에 불과한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인간중심의 이론으로 변질되어 자연은 탈인격화, 사물화 되고, 모든 실재를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중심부 이외의 것을 타자화하고 궁극에는 타자를 배제하는 차별의 보편성으로 나아갔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보편 이성의 원리에 상응하게 만드는 일원성과 동일성의 원리로서 다원적 세계를 부정하고 차이를 무시하는 억압의 기제로 작동하기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차별의 보편성, 이성중심주의, 주체와 타자의 도식에 대한 반발에서 출현 한 것이다. 즉 근대 문화 전체를 반성하는 움직임으로 근대라 이름하는 ‘시대정신(mordenity)' 전체에 대한 반성으로, 사회체계, 문화의 이해, 과학과 지식체계 전체에 관계하는 철학적 경향보다 포괄적인 현상으로 중심성의 해체, 다원성과 다양성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하는 ’탈근대‘의 사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근대정신을 넘어서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성중심주의의 대한 비판, 즉, 전통형이상학의 해체,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의 전환, 탈 중심문화 즉 다원적이며 전체가 서로 역동적으로 관련을 맺는 다층적 총체성의 문화로의 이행, 주체와 타자의 도식 해체로 인간의 주체성에서 근대의 초월적 형이상학의 구성물의 부인(否認)과 무의식이라는 타자의 기호에 의해 자율성을 박탈당한 존재로 나아간다. 결국 “나는 타자일 뿐이다.”로 해석된다. 이렇듯 보편주의와 중심주의에 대한 반대, 전체주의와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는 그저 일회성 유행사조로 인식되면 되는 것일까? “우리의 근대는 서구의 근대를 수용하고 변화시켜온 근대이다.” 그래서 서구근대의 원리에 대한 수용 없이 그 성과와 결과물만을 단순 수용한 우리는 “지체된 근대이며 착종(錯綜)된 근대”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우리는 서구의 근대와 우리의 근대가 지니는 문제를 이중으로 극복하려는 성찰적 사유가 요구되는 것이며, 더구나 “물질중심의 자본주의와 세계의 내적 원리에 대한 성찰의 결여, 그 결실만을 유입하는 일방적 과학기술주의 때문에 생기는 착종된 현상이 우리의 근대”라는 인식하에 그 근대의 원리를 성찰하는 것이 근대극복의 첫 출발이 될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탈근대 문제를 성찰하고 나아가 그를 극복할 대안적 사유의 노력이 절실 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긍정적 동기와 그 지적 논의들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도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문화, 철학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은 책자의 풍부한 논의와 그 명쾌한 설명과 정리에 놀랄 것이다. 니체와 하이데거,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원류로서의 철학적 고찰, 리요타르의 ‘포스트모던조건’을 비롯하여 라캉, 데리다, 푸코, 하버마스에 이르는 설명은 심화학습을 위한 유익한 배경지식으로 손색이 없다. “우리가 지난 세기동안 영광을 누렸던 이성이 사고의 가장 완고한 적대자라는 것을 체험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유는 시작된다.“ - ‘하이데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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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프랑스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촉발된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과 계기, 철학사적 이해와 철학적 함의, 우리 문화에 끼친 영향과 의의에 이르기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을 전 방위적으로 광범위하게 다룬 책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하에서는 현대 철학의 한 부류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간략하게 다룰 뿐더러 다른 시대의 철학에 비해 그 중요성 또한 낮기 때문에, 나 역시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할 기회나 동기 부여도 적었고 따라서 이 책은 나에게 항상 꼭 독서해야 할 리스트 목록에 올라 있었다. 짧은 분량에 너무 많은 주제를 넣은 탓인지,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할만한 공통적인 특징이 생각보다 적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애매모호하고 동어반복적인 서술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아쉽게도 독서하고 나서도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미지에 반전은 없었다. 독자로서의 나는, 저자가 과연 포스트모더니즘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예컨대, 데카르트나 헤겔 류의 근대 이성의 합리성에서 비롯된 '객관성'의 철학에서 벗어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인식 주체에 의한 의식의 철학이며 '주체성'의 철학이라고 설명하는데, 근대 합리주의 철학 비판의 근거나 '주체성'의 철학이라고 하는 그 특성에 대한 예시나 사유 방식 제시에 있어서 불충분하다. 이는 저자도 본문에서, '이성 중심의 전통 형이상학의 독단을 비판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는데 부족하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획은 불완전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보통 '탈근대'로 번역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름 자체가 '모더니즘(근대)'의 전제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일관되게 이성을 비판하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과 그들의 사상적 조상인 니체와 하이데거마저도 당시 대학 교수이거나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이성적인' 지성인들이었다는 것은 지독한 패러독스다. 다만 다원성을 기반으로, 우리 시대의 과학 · 이성 만능주의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문화 지평을 넓히는 데 소스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보편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점철된 서양 철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역사 가운데 서양 스스로 반성의 여지를 마련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전무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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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4.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 포스트모더니즘. 20세기 말에 많이 쓰였습니다. 21세기로 넘어오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예전에 비해선 많이 보이진 않습니다. 이건 제 느낌이라 확실하진 않습니다. 한 때 유행처럼 쓰이던 용어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는지,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이고, 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포스트라는 말이 붙었다는 건, 앞에 다른 개념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더니즘이라는 것을 넘어섰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아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 아는 방법이 되겠군요. 모더니즘은 근대성, 근대주의?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르네상스시대와 산업혁명 시대를 거쳐, 신이 지배한 중세시대에서 벗어나 보다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이 모든 것을 앞선다는 생각과 함께 원칙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여, 이 원칙에 맞게 모든 것을 재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되는 그런 개념을 의미합니다. 사실, 근대의 사상이라는 것은 매우 다양한 생각들이라, 모더니즘적으로?(일률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위의 경향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여러 측면에서 넘어서길 원하는 목소리들과 행동들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런 목소리와 행동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더니즘의 근간이 되었던 과학에 있어서의 원리원칙에서도 불규칙성. 자연에서 절대 일률적인 규칙으로 재단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타나고, 틀에 박힌 일률적인 건축이나 디자인등에 대한 비판과 자유로움에 대한 시대의 요구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낳았다고 하겠습니다. 포스트.. 라는 말에 담긴 한계가 있지만 – 넘어선다는 것은 넘어설 대상이 있다는 것이고, 그 이상의 사상적 발전은 반대의 근거가 될 뿐.. 새롭게 정의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 기존의 질서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듯 싶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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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저, 살림, 가격 : 삼천삼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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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 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이 한 편으로 신선하고, 또 한 편으로는 컬트만큼 난해하면서(그 당시에는 그랬단 말임), 다른 한편으로는 잘 알아두면 있어보이는 그런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들먹이며 잘난 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뭐예요?"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다시 내가 말했다.
"기둥현대주의?"
요절복통.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분위기전환용 접대용 멘트라고 생각하며 실컷 웃었지만, 정말로 뜻을 잘 모르고 그 뜻을 간절히 알고 싶었던 나는 그 웃음소리가 비웃음으로 들렸다.
그로부터 2년 뒤, 우체국에서 방위를 마치고 나온 누군가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우체국의 현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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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난리법석을 떨던 그 문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지금에 와서 언급하는 것은 새삼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 정도로 지금은 누구도 여기에 대하여 말을 꺼내지 않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척 "old-fashioned"(일본말로 구가다)해보인다. 마치 "386세대"라는 말과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퇴색은, 그것이 소위 '지식인'의 현학의 장난감으로는 이미 진부해졌기 때문인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내 생각에는) 이미 Post-modern한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아직도 니체로부터 출발하여 서구철학자들의 사상들을 열거하는 이 책의 방식이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는지는 몰라도, 예전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다가 실패한 허탈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는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근대정신의 주요한 특징인 일원성과 동일성을 부정하고, 다원성에 기인한 다양한 생각들을 포괄하고 있음으로써 일견 우리가 이해하기에 어려워보일런지 몰라도, 동시대에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에 그것은 우리가 걸어온 근대화과정을 반성하고 그 부작용을 극복하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다시말해, "Post-modernism"이라는 용어 자체를 우리말로 옮기기는 매우 어렵지만, 우리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와같은 맥락에서 볼 때에는 얄짤없이 "탈근대화"라고 번역되어야 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이런 위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문고판의 한계' 탓인지, '탈근대화'에 대한 해명에는 크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 않았다. 논리전개의 단초를 이 점으로부터 시작하여 "탈근대화"의 입장에서 한국형(?) 포스트모더니즘을 기술하였으면 의미있는 책이 되었을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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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금 우리의 삶을 근대주의의 보편성과 동일성의 관점에서 보는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입장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으로 들여다본다고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남의 것들을 설명하던 분석틀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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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을 그저 탈근대 지향주의로 치부하고, 그런 맥락에서 서구지향적인 이분법주의를 탈피하여 동양사상의 미덕을 추구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저 이런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생각한다면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이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영향력은 어떤지에 대해서 모르는채로 그저 보고 들은 것들로 지식화하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살림지식총서를 처음 접하는데, 책이 얇지만 내용은 무척 알차고 좋아서 밑줄 그은 부분이 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주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이토록 엑기스만 뽑아서 책으로 만들었으니 무엇보다도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꼭 읽어보아야 할 시리즈인 것 같다. 그 중 한권인 27번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은 언제부터인가 등장하여 오랜 시간 하나의 담론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포스트 모더니즘을 '철학적 시각'으로 성찰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적은 양의 내용임에도 수없이 곱씹어보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저 사회학적 시각으로 보기에 적절할 것 같았던 하나의 사상을, 그 속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 철학적 사유를 이용해서 파헤쳐보니 그 뿌리 속까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근대 사상의 유래를 더듬어보고 탈근대를 지향하기 까지의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그에 따른 인용을 접해보면서 어쩌면 탈근대화는 이미 예언 되어 있었던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근대의 핵심이지만 폐해일 수도 있는 나와 너의 이분법적 시각은 자연스레 인간을 주체로 그리고 자연을 객체로 변화시켰고, 인간은 이성을 중심으로 수학적 원리를 끌어들여 쉼없이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했다.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레 탈근대주의에서는 '타자에 대한 책임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포스트모던적 분석의 기점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타자에 대한 책임성은 다원성을 낳게 되고 인간의 헛된 보편주의가 아닌 개체성과 차이성을 중요시하는 어우러짐을 이끌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포스트모던이 지향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철학적인 사유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살펴보니 그저 겉모습이 아닌 뿌리깊은 역사와 인간 근원의 정신까지 탐구할 수 있게되었다. 철학은 좀 더 가까이서 세밀하게 하나의 세상을, 인간을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사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런 의미로 이 책이 내게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철학에 대한 재인식의 계기도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