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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현씨의 박사논문을 책으로 엮은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 그동안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신사유람단에 대한 상세한 연구조사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시찰단'이라는 이름 대신 '유람단'이라 불러야 했고, 공금이 아닌 국왕의 사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신사유람단의 처지, 당시 청년 사대부들이 일본의 개화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내용, 그들이 귀국해서 우리 근대사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자세히 짚어봄으로써 신사유람단이 오갈 때의 한국과 일본의 시대적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둘째, 이제껏 '온건개화파' 또는 '시무개화파'의 한 사람으로만 알려져 왔던 어윤중의 개화 의식에 대해 조명하였다. 온건개화파는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개화파와는 달리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되 기술적 분야에만 국한하고, 동양의 정신을 고수해야 한다는 '동도서기론자'들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어윤중이 당시 일본의 발전상을 냉정하게 꿰뚫어보았을 뿐 아니라 유교 대신 기독교의 국교화를 검토했을 정도로 급진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준다. 뒤에 김옥균 등이 갑신정변에서 추진하게 되는 급진적 개혁안들도 어윤중이 처음 고안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윤중에 대한 집중적 연구는 아직 별로 없는데, 이 책의 분석이 맞다면 우리나라의 근대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서 철저한 재조명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셋째, '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는 고종의 질문은 두 가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는 당시 어윤중과 홍영식 정도를 제외하고는 직접 일본을 보고 온 신사유람단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조선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서양문물에, 그 위력과 제국주의적 태도에 무지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 진실로 강한지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경제동물', '역사왜곡' 정도가 일반상식의 대부분이 아닌가? 그리고 일본을 넘어서, 서구의 정신과 사상, 제도의 진면목을 우리는 지금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서구 제도의 겉모양만 한껏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둘째는 신사유람단 사람들이 지적했던 일본의 약점이다. 전통적 화이관에 따른 편견이 일부 작용하기는 했으나, 그들은 일본이 철도, 공장 등 인프라를 구축하느라 외채를 무분별하게 쓰고 있으며 그러다가 곧 재정파탄이 날지 모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마구잡이의 서구 문물 수입으로 일본의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는 일부 일본인들의 개탄도 옮기고 있다. 뒤에 군국주의와 아시아 침략의 길로 나서고, 세계대공황을 만나자 세계대전으로까지 줄달음친 일본의 어두운 행로가 이 때 어느 정도 파악되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일본식 자본주의 모델을 취한 결과 IMF의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다. 경제성장 지표만 좇으며 어설프게 넘어갔던 우리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근본적으로 반성해볼 상황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일부 면에서 지나친 속단을 내리는 점도 보이지만(가령 유교 관료제의 비효율성 문제), 대체로 많이 조사하고 신중히 분석한 책이다. 동양 근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도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인상깊은구절] 일본이 서양 탐험에 열중하던 1860년부터 20년 동안 우리는 알렌과 후쿠자와의 지적처럼 미몽에 사로잡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시간을 허송했으며, 서구 근대문물을 능동적으로 섭취하는 데 미흡했다. 여기서 한 세기 전 우리의 참담한 실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구 국가들이 두 세기 전에, 그리고 일본이 한 세기 전에 달성한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을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떠안고 있다. 한 세기 전 우리 선조들은 동시대의 서구 열강과 일본에 비해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경우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근대국가를 이룩하는 데 자신들의 힘을 쏟을 수 있었던 반면, 우리에게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에 맞서 국가를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부과되어 있었다. 반봉건과 반외세라는 이중의 과제가 우리 선조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