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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자체를 읽은 건 정말 까마득하다. 어떤 작품은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도 헷갈린다. 주로는 읽은 게 잘 기억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읽지도 않았는데 마치 읽은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자체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나,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 제임스 샤피로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 찰스 니콜의 『실버 스트리트의 하숙인 셰익스피어』, 박홍규의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와 같은 책들이다. 셰익스피어 자체를 읽지도 않고, 그에 관한 책을 읽는 게 조금은 편법 같아 보이고, 잘못된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는 것은 있다. 셰익스피어에 관해서 읽기도 하지만, 그 셰익스피어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읽게 된다. 그건 셰익스피어를 통한 세상 보기, 세상 읽기에 관한 읽기가 된다. 더불어 그 책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을 잘 끄집어내준다. 그래서 앞서 얘기한 대로 작품을 실제 읽은 것처럼 여겨지게 하기도 한다.
황광수의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도 그렇다. 아니 제일 그런 측면이 강하다(스스로 “해석자들은 마치 등록상표라도 얻으려는 사람들처럼 저마다 특이한 해석을 특수한 언어로 포장”한다고 쓰고 있다, 221쪽).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런던으로, 스트랫퍼드로, 파리로, 덴마크의 코펜하겐(근처의 크론보르성)으로, 베를린으로, 프라하로, 베로나로, 베네치아로, 로마로, 아테네로 쫓아다닌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스트랫퍼드에서 태어나 그곳과 그의 흔적을 알 수 없는 몇 년을 제외하고는 런던에서만 살았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의 자취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긴 하다. 정확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도시와 국가들을 찾아 다녔다는 말이 옳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가보지도 않은 그 도시들을 자신 연극의 배경으로 삼은 것은 그 도시의 어떤 매력이라든가, 특징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단지 이국적인 배경이 필요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베네치아 정도가 다르려나. 베네치아의 상업적이고, 국제적인 면모가 <베니스의 상인>이나 <오셀로>에 딱 적합하긴 하다). 그러니 셰익스피어의 자취를 찾아서 유럽 곳곳을 누빈다는 것은 그곳에서 해당하는 작품을 떠올리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셰익스피어의 자취는 그곳에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저자가 셰익스피어만을 위해 유럽 곳곳을 누빈 것도 아닌 듯 하다. 셰익스피어, 혹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자취가 전혀 없는 암스테르담을 간 것이나, 중간중간 비는 일정이 그렇다. 난데없이 카프카를 떠올리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황광수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전한다. 다양한 해석에 하나의 해석을 더한다기보다는 나름대로 셰익스피어와,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셰익스피어의 문장, 단어를 이해하고자 한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셰익스피어를 제국주의자로 본 박홍규의 셰익스피어의 읽기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셈이다. 그래서 헷갈리는 게, 이를테면 유태인을 부정적으로 그린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그가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그것은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똑 같은 장면과 문장이 전혀 반대로 해석되는 것이다. 내 생각은, 셰익스피어가 큰 정치적 의도나, 철학적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써대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작품을 썼고, 그것을 무대에 올렸고, 직접 연기를 했던 셰익스피어였다. 예술성보다는 대중성이 훨씬 우선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게 그렇게 써댄 작품들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히 자신의 생각이 들어가고, 그게 다양하게 해석되고, 시대상을 반영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 당시에 또 다른 극작가인 벤 존슨이 평했던 대로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위해 존재”한다. 정말 그렇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 중의 하나는 스트랫퍼드에 걸려진 현수막의 글귀다. “Shakespeare 450 years young”. 나이를 얘기할 때 쓰는 ‘old’ 대신 ‘young’을 써서 매년 젊어지는 셰익스피어를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셰익스피어 장사로 유지되는 마을일 텐데,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의미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시대를 위해 존재하는 셰익스피어이기에 그는 오늘도 젊어지고, 오늘도 다시 해석되고 있다. 영원한 현대인인 ‘햄릿’을 창조해낸 셰익스피어이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참고로 황광수가 셰익스피어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베니스의 상인>, 특히 샤일록에 대목에서 드러난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유태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비난했던 인물이 아니라 그 차별과 비난을 격렬히 비판했던 작가로 인식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대금업에 종사하는 유대인을 악당으로 그리는 데 미묘한 심리적 저항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207쪽) “셰익스피어는 기독교 사회의 편견 속에서 끝없는 모욕과 무시에 시달린 샤일록의 내면에서 영혼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샤일록의 엽기적인 요구는 반유대주의에서 비롯된 원한과 고통의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의 절규를 기독교인들의 흉내 내기를 통해 반복하면서, 두 종류의 언어 층위에 미묘한 차이를 심어 놓았다. 하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자의 절규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삼은 자들의 잔인성이다.” (209쪽)
끝으로 갈수록 작품 설명으로 경직되어 버렸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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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화려한 색채'에 끌린다고 한다. 모던한 화풍이 포인트인 책표지를 비롯해서 책속을 장식한 수많은 '도감'이 풍족한 것에 만족감을 넘어 '소유욕'을 자극한다면서 말이다. 이렇게나 예쁜 책인데 책내용을 들춰보면, 한 인물에 담겨진 '삶의 정곡'을 찌르는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오롯이 돋을새김하고 있어 다른 책들과 '비교불가'할 정도의 감동을 선사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더구나 '기행문' 형식의 글을 통해서 '인물의 발자취'를 더듬어 거슬러오르는 느낌을 받을 때엔, 마치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생생함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이 책의 글쓴이는 '현지 가이드'가 되어 까막눈과 다를 바 없는 독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래서 '관심인물'이라면 특히 더욱더 이 시리즈의 매력에 풍덩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어찌 매력만 가득한 책일 수 있겠는가. 나처럼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기행문'은 더더욱 관심밖인 독자들에겐 '지식의 목마름'을 충분히 해소하기도 전에 '다른 곳', '빠듯한 일정'에 쫓기듯 따라가기 바쁜 여정이 마뜩찮기도 하다. 차라리 '한 곳'에 눌러 앉아 정지된 듯한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낯선 여행지'가 주는 감상을 충분히 만끽할 수도 있는데, 굳이 이리저리 질질 끌려다니며 녹초가 되는 '독서'가 피곤한 느낌마저 느껴질 수도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이 책만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린 나는 어쩐 일인 걸까?
무엇보다 '비하인드 스토리'에 솔깃해졌다. 영국이 자랑하는 셰익스피어의 매력이 어디 그가 남긴 글에서만 찾을 수 있겠는가. 그가 살던 동네, 그가 머물던 극장, 그리고 그의 생의 전반에 걸쳐 작품에 영향을 주었던 시간적, 공간적 배경들과 인물들에게서도 셰익스피어가 겪었던 삶을 관통하는 '멋'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뒤쫓는 '풍문'들의 진위를 글쓴이의 나름의 판단으로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즐거움도 또 다른 재미였다. 특히, 그의 생애를 바탕으로 각색했다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영화와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는 글쓴이의 주장은 매우 신빙성이 높았다. 다름 아니라 '앤 해서웨이'라는 아내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작품이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셰익스피어보다 8살이나 연상인 아내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지 않고서야 스토리 전개조차 되지 않는 그 작품은 '상상의 산물, 그 잡채'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단다. 그도 그럴 것이 셰익스피어는 아내인 앤 헤서웨이와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게 잘 살았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너무나도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해설하고 분석한 내용은 이 책만의 '백미'였다. 누구나 알만 한 '4대 비극'과 '5대 희극'은 물론이고, 수많은 대본과 시까지 열거하며 일일이 '주석'을 달아놓은 점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궁금증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너무나도 반가운 대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햄릿'은 우유부단의 대명사라 부를 수 없다. 왜냐면 복수를 할 때는 우유부단할지 몰라도 비난을 할 때는 신랄하고 열정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말하고, <맥베스>의 주인공은 맥베스가 아니라 그의 부인이었다. 왜냐면 맥베스가 '운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왕의 가슴에 단검을 찌를 때조차 망설이고 머뭇거릴 때,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단검을 내리꽂은 이가 다름 아니라 그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란다. 아직 '문학'에 한해서는 스승도 없고 문외한에 불과한 나로서는 이런 번뜩이는 해석에 더욱 끌릴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여행으로 만족할 여행객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잘 짜여진 계획에 충실하였다고 하더라도 '놓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날마다 다니는 출근길도 '똑같은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 법인데, 스치듯 지나친 첫 여행에서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난 하나의 풍경도 놓치지 않을 '느릿느릿'한 여정을 좋아하고, 갔던 길도 다시 되돌아가는 '반복적인 일상'을 좋아라 한다. 지겨울 것 같다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때론 '반복되는 일과'가 늘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물론, 좋아할 경우에만 말이다. 내겐 이 책, 이 시리즈가 그럴 것 같다. 그 여정이 빠르진 않을 테지만, 100권에 다다르는 그 길, 그 끝에 나는 서 있을 것 같다. 아직은 반(현재까지 31권 출간)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읽고 또 읽으며, 그 매력을 만끽하고 있을 테다. 물론 그 사이에 '셰익스피어 작품'도 좀 읽고 말이다. 셰익스피어, 좀 읽겠다고 다짐한 것이 재작년이구만, 아직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셰익스피어가 좀 많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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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클라우드의 1권은 세익스피어 이다. 향후 99인의 거장에 대한 책이 출판될 예정이고, 이미 나온 책도 있다. 그 100인의 거장중 1권으로 선정된 셰익스피어는 이 시리즈의 상징과 방향성이 될것 같다. 사실,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는 푸치니와 클림트를 먼저 읽었다. 그들의 생애와 그들이 머물렀던 곳을 함께 마주하니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너무나 유명한 만큼 작품으로도 접한 인물이기에 그이면에 가려진 그의 생애가 궁금하기도 하여 기대가 컸다. 그러나, 세익스피어 작품에 대해 왜 남들은 감동이고 극찬의 부분을 나는 공감할 수 없는가 하는 자괴감 때문인지 본문 중간중간의 발췌된 부분과 설명된 부분이 뚝뚝 끊어져 읽기가 어려웠다. 앞뒤 문맥 파악이 어려워 몇번씩 돌려읽기도 하는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히 희극과 비극으로 점철된 그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관점, 해석뿐만 아니라 삶의 풍경과 사생활(?)까지 들여다 볼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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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너무 익숙한 이름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영국 문학을 공부하면서 질리도록 마주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솔직히 더 새롭게 알게 될 건 없을 거라는, 정말 근거 없는 자신감이 꽉 차 있었다. 이런 약간의 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내 안에서 무언가를 대할 때 마땅히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가 잠시 지워졌다. 배움엔 끝이 없다는 걸, 잠시 망각했다. 웁스. 사실 ‘셰익스피어’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은 4대 비극이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을 따라 여행을 한 황광수 작가의 말을 읽고 반성했다. 4대 비극과 같이 틀에 박혀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 읽기에서 벗어나 선입견 없이 작품들을 만나는 것이 바람직한 독서법일 텐데. 왜 꼭 어딘가에 사로잡혀서 공식처럼 외우듯 셰익스피어를 마주했을까. 왜 우리는 400년도 더 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어야 하나? 왜 꼭 셰익스피어야만 할까? 왜 꼭 셰익스피어야 했을까? 훌륭한 극작가들도 많고 유명한 작가들도 많은데, 왜 꼭 셰익스피어일까?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셰익스피어>를 만나고 나서 그 해답을 찾았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이 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의 문학에는 예술성과 대중성이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있고, 근대문학이 삭제해버린 인간의 세속적 욕망과 본성이 풍부하게 녹아들어 있다. 이것을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문학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셰익스피어 전과 후가 될 것이다. 이 정도로 셰익스피어는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삶이 잘 알려지지 않은 셰익스피어였지만 클래식 클라우드 <셰익스피어>는 억지로 그 공백을 메꾸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그냥 여백의 미를 즐겼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배경을 따라, 런던부터 아테네까지 여행했다. <리어왕>, <맥베스>,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 작품들에 사용된 셰익스피어의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서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던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 인간의 욕망과 그 본성에 집중했다는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을 다른 시각으로도 바라볼 수 있구나, 좀 더 문학적으로 접근하면 이런 해석까지도 가능하겠다고 하게 되었다. 문학적인 이해도가 늘었다는 말보다는 꽤 많이 읽어 익숙한 작품이어도 그 시대를 이해하게 될 때, 언어를 해부하듯이 살펴볼 때, 훨씬 더 풍부한 그 내용을 더욱 더 활짝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여전히 진귀하고 신기한 것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셰익스피어. 450년 젊은 셰익스피어라든가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친숙했던 셰익스피어.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를 잡은, 세상을 매료시킨 셰익스피어.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셰익스피어>를 다 읽고 나니, 문득 이 책을 들고 황광수 작가가 그랬듯 셰익스피어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모조리 다 섭렵하고 반드시 또 한 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은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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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자취를 좇으며 여행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저자인 문학평론가 황광수의 필력과 식견이 돋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었으며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해설할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생존 당시 영국의 사회상까지 유창하게 설명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로 진입하는 입문서로도 좋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다 읽은 다음에 정리하는 용도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제1부 '영국, 소란스러운 나라의 영광스러운 이야기'에는 셰익스피어가 생가가 있는 영국 스트랫퍼드 여행기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생애가 소개된다. 셰익스피어는 명성과 업적에 비해 생애에 관한 정보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1564년에 태어나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학업을 중단했으며, 열여덟 살에 결혼했다. 스물여섯 살에 런던의 극장가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사이 8년 정도의 공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무하다. 이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여자다, 셰익스피어는 개인이 아니라 단체다 등등의 추측이 난무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며 알려진 것으로만 그의 생애를 추정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제2부 '파리에서 빈까지, 영원과 사랑을 향한 발걸음'과 제3부 '지중해, 끝없는 이야기의 바다'에선 각각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 각국이 배경이 된 작품들을 소개한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인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오셀로>, <한여름 밤의 꿈> 등은 물론, <페리클레스>,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 <아테네의 티몬>,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등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에 대한 해설도 실려 있다(개인적으로는 <코리올라누스>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어 반가웠고, 분량이 적어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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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의 클라우드 클래식 시리즈의 '셰익스피어'편으로 그의 문학이 스민 도시와 작품을 충실히 다루었다. 작가의 생가인 스트랫퍼드부터 런던, 덴마크의 헬싱외르, 베네치아, 그리고 아테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의 배경이 된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너른 여정이다. 거의 모든 그의 희곡이 챕터별로 할애되어 있어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에 빠진 독자라면 문학 작품을 곱씹어가며 읽는 맛이 있다. 작품 속에서 벗어나 당대의 문화와 배경을 거슬러가는 450년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이 반가운 까닭이다. 그의 작품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이 책의 챕터를 곁들이면 더욱 풍성한 독서의 깊이를 전해줄 것이다. |
| 여행을 갈때도 책을 들고 다닌다. 여행을 할 때 읽는 책은 읽기에 편한 책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게 된 여행과 문학의 콜라보 같은 이 시리즈는 재미를 더한다. 셰익스피어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바로 그 이름.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곳을 따라서 그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기록한 문학작품의 글귀를 떠올려 보는 것도 흥미가 있다. 이번 셰익스피어를 시작으로 더 많은 시리즈의 책들을 읽어 봐야겠다. |
| 셰익스피어... 책은 많이 읽었지만 작가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더라구요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가 되게 좋다는 얘기도 굉징히 많이 들었구요 여러모로 한번쯤 읽어볼 만 할 것 같아 구매했습니다 ... 이 시리즈에 나오는 카뮈와 클림트도 보고 싶고... 철학에 관심이 아주 먼 사람인데 철학자들도 좀 읽어보고 인문학 소양을 좀 넓혀보고 싶습니다... 이 책은 사진도 제법 있어서 이북으로는 안될 것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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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베니스의 상인' 때문이었다.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로 유명한 소설이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베니스의 상인'은 왜 희극일까. 누굴 위한 희극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도 '베니스의 상인'은 과연 희극이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샤일록이 좀 안타까웠다. 그는 억울할 것 같았다. 현명한 재판을 내렸다는 포셔도 바사니오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까지 했을까? 그보다 그렇게 현명함으로 치장된 포셔는 왜 바사니오 같은 인물을 택한 것일까? 그의 현명함은 거짓이었던 것은 아닐까? 바사니오가 아니었다면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돈을 빌릴 이유도 없었고, 돈을 빌리지 않았다면 재판은 처음부터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평소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등 샤일록에게 무례함이 덜했더라면 어땠을까.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와 바사니오는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되는 특권을 가진 인물들이었고 거기엔 게토와 같은 사회적 영향이 있었기에 당시엔 희극이 되었울지 몰라도 지금은 희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몇번을 다시 생각해보아도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이 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글을 쓴 셰익스피어가 궁금했다. [베니스 상인에 대한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0348335 ]
[책소개] 황광수 저자의『세익스피어 』는 하나의 여행 기행문처럼 쓰여진 도서다. 저자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누어 책을 서술하였는데, 첫번째 지역은 영국으로 세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와 그의 활동 무대였던 런던이 들어있다. 두번째 지역은 파리에서 빈에 이르는 중서부 유럽으로 『끝이 좋으면 다 좋다』『햄릿』『법에는 법으로』등의 무대인 파리, 헬싱외르, 빈이 들어있다. 세번째 지역은 이탈리아에서 그리스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으로 『오셀로』 와『베니스의 상인』의 무대인 베네치아 『로미오와 줄리엣』무대인 베로나, 『줄리어스 시저』의 무대인 로마,『한여름 밤의 꿈』과 『아테네의 티몬』의 무대인 아테네가 들어있다.
[책 내용 살피기]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 스트랫퍼드에서 태어나 일곱살에 초등학교를 들어갔고,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직전에 학업을 중단했으며 열여덟 살에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전후로하여 스트랫퍼드를 떠난 이후 윌리엄이 스물여섯 살에 런던의 극단 배우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기까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단서들이 없기에 8년 정도의 기간은 어둠에 묻혀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가 스트랫퍼드로 이사 온 1550년대에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은 카톨릭 신자인 메리 여왕의 통치기에 온갖 고문 끝에 화형에 처해졌다. 그 불길 속에서 갓 태어난 아이는 타들어가는 시체 위로 다시 던져졌다. 스트랫퍼드는 그런 화형장들이 있는 코벤트리, 리치필드, 글로스터, 워튼언더에지, 밴버리, 옥스퍼드, 노샘프턴, 레스터에 둘러싸여 있다.
1558년 스물다섯 살에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기에는 카톨릭 교도들이 유사한 곤경을 치뤘다.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진 종교적 박해로 인해 지역 사회들은 서로 반목하고 우정이 깨지고 가족이 흩어지며 숱한 생령들이 공포와 연민에 시달렸다.
종교의 광란이 지나가고 나면 페스트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헨리 가는 중세 이래 흑사병의 통로였다. 윌리엄이 유아기 일때도 흑사병이 창궐했고 그의 어머니가 윌리엄 이전에 낳은 아이들도 모두 죽었다. 창문들은 봉해졌고 거리 곳곳이 불탔다.
장갑 장인이었던 존 셰익스피어가 스트랫퍼드 최고 행정관 자리에 오른 것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은 노동을 천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업이 기울면서 그는 양모의 불법 거래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렀고 많은 부채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존 셰익스피어는 윌리엄이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직전에 아들의 학업을 중단시켰다.
당시 존 셰익스피어는 채권자들에게 시달릴 것이 두려워 교회에도 나가지 못하였는다, 이때 윌리엄은 가업을 거들면서 아버지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뼈져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의 생애에 일관되게 유지된 근검절약의 태도 또한 그 시절 몸에 익혔을 것이다.
장갑은 그의 작품들에서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으며 때로는 빼어난 비유의 매개가 되기도 하는데, 『십이야』에서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장갑은 너무나도 쉽게 뒤집히는 언어의 속성에 대한 절묘한 비유가 된다.
1596년 아들 헴넷이 죽자 셰익스피어의 내면에 심대한 변화가 찾아온다. 고통에 대한 생각이 지적 복잡성을 띠게 되었고 등장인물들의 치유할 수 없는 고통도 자신의 것인 양 울림이 깊어졌다. 그는 헴넷이 죽은 직후에도 작품을 썼다. 『존왕』이다. 이 연극에서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가 절절하게 울려퍼진다.
셰익스피어는 작가 생활 전반기 10년 동안 영국의 역사를 다룬 사극을 7편이나 썼다.그 밖의 희극은 모두 영국 밖이다. 그 무대들은 지중해 지역, 특히 고대 로마 및 이탈리아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이탈리아는 문화의 선진국이었고 거기에서 태동한 르네상스적 세계관은 유럽 지식인들의 교양의 원천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비추어보면 아테네는 철학적 사유 (『아테네의 티몬』)와 심미적 깊이 (『한여름 밤의 꿈』) 가 있는 작품들의 배경지이고, 로마는 수많은 장군들(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우스, 브루투스, 옥타비아누스, 코리올라누스, 안드로니쿠스)의 활동 무대였다.
37편에 달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당시에 유행하던 주제나 극단의 경제적 요구에 맞춰 쓴 것으로 셰익스피어는 가까운 영국의 역사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본성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이탈리아를 거쳐 철학과 미학을 탐색하기에 알맞는 아테네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을 지중해 미지의 섬에서 마무리한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원래 시인이었다고 한다. 그의 희곡 외에도 4편의 이야기 시와 154편의 소네트를 썼는데, 괴테는 시인으로서의 셰익스피어를 '세계정신'과 동급의 자리에까지 올려 놓을 만큼 그의 시적 상상력에 감탄 했었다.
1616년 그가 죽은 지 7년후 그의 동료 배우였던 헤밍즈와 콘델이 그의 희곡들을 모아 2절판을 출간한다.
<베니스의 상인> 해상 교역이 활발했던 당시 베네치아는 교역의 중심이자 십자군의 집결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돈으로 '새끼치기' 를 하는 대금업이 성행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기독교 사회에서 대금업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와 그의 친구들은 샤일록의 고통과 분노에는 무감각하다. 살라리노가 샤일록에게 빈정대듯이 묻는다. "아니, 설마 그 사람이 채무이행을 못해도, 나는 당신이 그 사람의 살을 잘라 가지 않을 거라고 믿소, 그걸 뭐에 쓰겠소?" 자신이 당한 모욕을 겨자씨 만큼도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샤일록의 심정은 뒤틀릴 수 밖에 없다. p206
셰익스 피어는 대금업에 종사하는 유대인을 악당으로 그리는데 미묘한 심리적 저항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기독교 사회의 편견 속에서 끝없는 모욕과 무시에 시달린 샤일록의 내면에서 영혼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안토니오에게 살을 요구하기 전 샤일록은 이렇게 말한다. " 당신은 나를 개라고 했어요." 그러자 안토니오가 내뱉는다. "지금도 당신을 그렇게 부르고 싶어, 다시 당신한테 침을 뱉고 걷어차버리고 싶어." 이 문장으로 보면 안토니오는 예전부터 샤일록을 개라고 부르고, 걷어차기도 했다. 그는 돈을 빌리면서도 샤일록을 모욕한다.
그러니 샤일록의 엽기적인 요구는 반유대주의에서 비롯된 원한과 고통의 측면에서 해석 되어야 한다. 샤일록은 그에 대한 조롱을 낙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안토니오의 친구인 솔라니오는 딸과 재물을 함께 잃고 넋이 나간 샤일록을 재연하며 희열에 빠진다. 곁에 있던 살라리노 역시 맞장구를 친다. 샤일록은 구경거리를 넘어 떠들석한 오락거리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의 절규를 기독교인들의 흉내내기를 통해 반복하면서 두 종류의 언어 층위에 미묘한 차이를 심어 놓았다. 하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자의 절규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삼는 자들의 잔인성이다.
베니스의 법은 기독교도와 유대인에게 천칭처럼 공평하지 않다. 샤일록은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안토니오에게서 받은 모욕과 경제적 손실, 그리고 베니스 기독교인들의 인종적, 종교적 편견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내면서 자신이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며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샤일록 그도 자신의 요구가 비인간적이란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일까? 그는 법정에서 조리있게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알 수 없는 충동과 마주친다. 그것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온 침전물일 때가 많다," p213
샤일록은 자신이 '손해보는 송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 할 수 없는 것은 그의 내면에 "분명한 이유"를 댈 수 없는 어떤 응어리 같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식을 초월하는 요구 조건, 그에 상응하는 명백한 손실이나 무가치한 것의 선택을 통해서만 겨우 그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20세기 저명한 비평가 아우어바흐는 샤일록의 증오에서 인간적인 동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위대한 인도주의적 사상"과 연관 짓는다. (p215) … 아우어바흐는 샤일록의 인도주의적 발언을 극찬하는 만큼 그를 비극적 주인공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고 셰익스피어를 비판한다. p217
[책을 덮으며] 베니스의 상인은 어떻게 5대 희극 중 하나로 자리 잡았는가.? 샤일록에 대한 어떤 안타까움으로 <셰익스피어>를 알고자 책를 찾아 보게 되었으나, 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아 낼 수는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베니스의 상인> 부분만 발췌하여 읽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부분들은 또다른 희극 혹은 비극을 읽어갈때 참고하기 위해 그냥 두었다.
앞서 아쉬움이 남는다고는 했으나 <셰익스피어> 도서를 통해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한번 면밀히 살펴 볼 수 있는 시간은 되었던 것 같다. 여전히 왜 <베니스의 상인>이 희극이 되어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지만, 당시 시대상이 그리하였고, 극단에서도 지금의 결말을 원했으리라 추측하게 된다.
또한, 적어도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인물이었고, 샤일록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베니스의 편견과 싸운 인물이었음을 다시 한번 살피게되었다.
살 1파운드라는 엽기적인 요구는 베니스의 편견과 싸우기 위한 발언권을 얻기 위한 값비싼 수단과 다를 게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위안이 된다. 셰익스피어가 책을 통해 정확히 남기려 한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의 희극은 통속적 주제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힘을 갖도록 하는것 같다.
[이 책의 밑줄] -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작품이나 읽어가는 것은 지도 없이 떠나는 탐험처럼 막막하고 두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p19 - 강요된 결혼이 지옥이 아니면 무엇이겠소, 불화와 끊임없는 싸움의 시기 아니겠소. p66 - 작가의 특정한 내용으로 작가의 생각과 삶을 유추하는 것은 과잉 해석 오류에 빠져들기 쉽다. p67 - 법은 사소한 예외들까지 하나의 대의 속에 포괄할 때에만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 된다. p216 - 대가 없는 선행으로서의 자비는 법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의자할 것이 법 밖에 없는 사람들은 권력자들의 자비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p217 [Q and A] 1.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아버지 ? - 존 세익스피어 (p49) 2. 존 셰익스피어가 했던 사업의 상품은? 장갑 (p52) 3. 아들 헴넷이 죽은 후 이사 간 집 '뉴 플레이스'의 음산한 분위기를 지워 버리기 위해 심은 것은? - 여덟 종류의 장미와 사과나무 (p53) 4.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다녔던 학교는 어떻게 불리었는가? 킹스 뉴 스쿨 (p56) 5. 윌리엄이 다닌 학교에 편중된 언어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 라틴어 , 당시 라틴어는 교양이자 품위의 상징이었고 출세의 상징이기도 했다.(p57) 6. 셰익스피어의 아내 이름은? 앤 해서웨이 (p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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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게는 온 세상이 하나의 무대였다. 이 책은 그의 문학의 주 무대였던 유럽을 따라 셰익스피어 루트를 구성하였다 - 스트렛퍼드, 셰익스피어 생가와 묘지 : 셰익스피어 생애의 시작과 끝. - 런던,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 거장의 이름을 따 옛 극장을 복원하다. 원 명칭은 글로브 극장으로 1599년~1642년. 1997년 셰익스피어 글로브로 새로 건립. - 파리,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 늘 붐비는 유서 깊은 관광명소. 1919년 문을 연 유서깊은 서점.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등의 작가들이 즐겨 찾음. - 헬싱외르, 크론보르 성 : 세계문화유산이 된 햄릿의 성. 북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르네상스식 왕궁으로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 바이마르, 괴테 하우스 : 괴테가 본 셰익스피어. 괴테는 시인으로서의 셰익스피어는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지만,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 베네치아 : 산마르코 광장 : 휴머니즘과 참담한 비극의 무대.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의 무대. 이 도시를 배경으로 유대인의 휴머니즘과 무어인의 질투가 빚어내는 비극을 놀랍도록 강렬하게 그려냄. - 로마,콜로세움 : 장군들의 비극적 운명을 탐색하다. 줄리어스 시저, 코리올라누스,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등에서 로마 장군들의 비극적 운명을 탐구. -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 희곡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 한여름 밤의 꿈, 아테네의 티몬은 아테네의 숲과 바다를 배경. 셰익스피어는 가까운 영국의 역사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본성을 마음껏 펼쳐보일 수 있는 이탈리아를 거쳐, 철학과 미학을 탐색하기에 알맞은 아테네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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