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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어야 더욱 빛나는 법>
이번 학년도에 두 번째로 참여하는 수학도서마당이다. 저번에는 이언 스튜어트의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을 읽고 방정식이 인류 문명에 기여한 사례들을 알아보았다면, 이번에는 (비슷하지만 맥락이 다르다) 지즈강의 ‘수학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수학이 역사 속 인물 개개인에게 주었던 의미 그리고 이를 통해 전반적인 역사 속에서 수학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본인의 진로가 역사라는 분야이기 때문에 어떤 과목이든지 역사와 관련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난 1년 간 애써왔다. 그런데 수학이라는 교과는 뭔가 인문학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까다로웠고, 애초에 그러한 교내 프로그램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귀가 아프도록 ‘창의융합형 인재’를 기르겠다고 떠들어 대는 시대가 아닌가. 비록 수학적 문제에 접근하는 능력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수학을 다른 학문과 연결 짓는 것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접근해보고 싶었기도 했다. 따라서 본 도서를 선택했음을 알리고, 수학 공부에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교양을 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지금부터 동서양을 아우르는 수학의 흥미진진한 역사를 이야기 해보겠다. 2학년 때 세계사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책에 초반에 나오는 내용은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과 흡사한 부분이 많았다. 인류 문명이 지금과 같이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숫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창기 조상들은 어떤 방법으로 수를 셌을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유물을 통해 주머니에 작은 돌을 던져 넣거나(무슨 소린지는 모르겠다만), 벽에 줄을 긋거나, 동물의 뼈에 또는 매듭을 지어 숫자를 표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수학의 역사의 일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문명의 출발점에 있었던 고대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 인도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학은 단순히 생활방식 속 ‘셈’이었을 뿐이다. 그들의 수학은 ‘어떠한가’만 얘기할 뿐,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사물이든 그것의 근원을 파헤치고 증거를 찾으려고 했다. 이런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에 힘입어 그들은 수학 증명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룩했고 세계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인간이 평소 자신이 굳게 믿고 있던 무언가가 깨지는 순간, 또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어리석은가보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사례를 소개해보자면 이렇다. 당시 피타고라스 학파는 ‘만물은 모두 수’ 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이 남긴 수학사의 첫 번째 이정표라고 할 수 있는 ‘피타고라스 정리’가 만들어 낸 부산물인 무리수는 당대 학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이에 관한 비극적 일화는 이러한 ‘비밀’을 알게 된 그의 학파 중 한 사람인 ‘히파수스’를 피타고라스의 추종자인 한 사람이 바다에 그를 빠뜨려 살해했다는 내용으로 전해진다. 이를 보고 다시금 느낀 것은 때로는 진실이 시대의 상식에 거부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상에도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여전히 어느 한 쪽에서는 진실을 알리려 하고 있고, 이를 묵인시키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이를 모르는 나를 포함한 어리석은 인간들이 있고 그렇게 세상은 흘러갈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내내 머릿속에 있던 생각은 이러했다. 대체 왜 이러한 뭔지도 모르는 문자들에 왜 이리 집착을 하고 호기심을 두는 걸까? 뭔가 나랑은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관점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러한 생각이 들게 한 내용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이에 집착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수학적 증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바로 19세기 5차 이상의 고차방정식의 해를 구하기 위한 증명 연구에 힘쓴 ‘아벨’과 ‘갈루아’의 이야기이다. 아벨의 증명은 5차 이상 고차 방정식의 일반적인 대수적 해법이 존재하지 않음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대수 방정식의 해결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성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더욱 어려운 과제를 후대에게 던져주었다. 왜냐하면 무리식을 이용해 풀 수 있는 특수한 방정식이 여전히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은 과제는 무리식을 이용하여 근을 구할 수 있는 방정식은 어떤 형태인지 찾아내는 일이었다. 아벨이 못 다한 대업을 프랑스의 ‘괴짜’ 청년 갈루아가 이어받은 것이다. 갈루아는 1811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베스피에르, 빅토르 위고 등 프랑스 근대사의 유명 인물을 다수 배출한 명문 루이르 그랑 왕립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개성이 유별났던 갈루아는 교사들의 케케묵은 교육방식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1829년 갈루아는 고등 사범대학에 입학하여 수학 연구에 집중하였는데, 하지만 그해 6월, 파리 근교 도시의 시장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교회의 모욕적인 비난을 받은 데 분노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차례의 입시 실패와 원고 분실, 교회의 모욕 등으로 그의 마음속에는 증오가 쌓여갔고, 이는 공화주의에 대한 열렬한 신봉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1830년 초반 갈루아는 프랑스 과학원의 수학상을 수상하기 우해 5차 방정식에 관한 또 한 편의 논물을 제출한다. 이 논문은 5차 방정식의 해법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갈루아의 탁월한 아이디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들은 논문 원고 분실, 당시 학문계의 거부 등으로 완전히 묻히고 만다. 그는 완전히 절망하여 수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공화제를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국민군 포병대에 가입하고 결투에 휘말린다. 이게 정치 투쟁에 의한 살인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쟁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한 천재 수학자가 21세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비슷한 맥락의 사례로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300년이 지나서야 증명해낸 와일즈가 있다. 그는 10살 때 도서관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접한 뒤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 겸임 교수 시절에 이를 연구하기 위해 7년 간 암흑 같은 건물에 자신의 몸을 가둔다. 그는 1993년 6월 케임브리지 대학 뉴턴 수리과학연구소에서 대수 기하학 학술 강연에서 강연을 하는데, 그는 결론에서 페르마 대정리를 적고는 청중을 향해 “이제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증명 방법이 옳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1년이 지나서야 그는 자신의 증명 방법에 오류가 있음을 알아냈다. 그는 이러한 오류를 잡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작성한 논문을 최종 발표하고 결국 그의 논문이 인정됨과 동시에 20세기 수학은 페르마 대정리의 증명으로 위대한 영광을 얻는다.
단순히 역사 속의 수학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책을 읽었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좀 다르다. 나는 앞서 언급한 인물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속에서 내가 어떠한 삶의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뭔가 정말 궁금해서, 단순히 그것의 본질, 원리가 궁금해서 한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서 몰두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의문을 가져보니 막상 딱히 학문적으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교과의 경우 역시 단순히 눈앞의 시험만을 이해 개념 정도만 이해하고 문제 풀이 스킬만 키워나가는 데만 신경을 썼지, 정말 내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이해하는 것에는 소홀했지 않았나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좋아하는 걸로만 그치지 말고, 나중에 정말 연구하고 싶은 무언가를 스스로 탐색하는 습관이 있었어야 했는데, 관심 분야 역시 소홀했던 것에 이번 독서를 계기로 반성했던 것 같다. ‘수학의 역사’를 통해 본 수학자들은 목숨을 바칠 정도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밝히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들의 삶을 통해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의 시선이 향했던 수학은 내가 그다지 큰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분야 역사, 넓게는 인문학이라는 큰 범주에서 죽기 전에 밝히고 싶은 무언가, 알아내고 싶은 진리 등을 파헤치고 싶다.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그 자체로 정말 행복한 일들을 구체화시키고 싶다.
애초에 수학을 잘하고 싶어서 읽은 것은 아니었기에 큰 부담 없이 읽었는데, 생각보다 수학적 사고력을 요하는 문장들이 도처에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이해가 안 되는 바람에 그냥 지나쳤는데, 그럴 때면 한 챕터를 날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삶은 살았던 인물들의 삶, 그리고 이와 연관된 역사적 상황을 함께 읽어나가는 과정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학교생활로 돌아와서는 정말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이 학교에서 주는 휴가인 시기에 교양을 쌓은 것 같아서 나름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세계사 과목을 수강해야 하고 수능까지 볼 거라 전반적인 역사 지식이 필요했는데, 아주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을 거라 믿는다. 지난 번 수학도서마당의 경우 나는 수학(그리고 과학)을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발전시킬 경우 그것이 가져올 위험성에 대해 우려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번 도서를 읽으면서 느낀 건, 생각보다 목적을 가지고 수학을 연구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인물들,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책에 언급된 수많은 수학자(수학자가 주된 직업이 아닌 경우가 대다수였지만)들은 단순히 어떤 대수 또는 기하의 체계, 원리, 기능을 연구하고 증명하는 ‘그 자체’에 목적을 두었지, 어떤 수학을 수단으로서 이용하려고 한 경우는 드물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이렇게까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현대 사회의 고도 문명을 발달시키는 데 이바지 한 것은 무엇인가? 수학이 전혀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수많은 수학적인 원리가 연구되고 증명되고 발표되는 것 자체로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핵심은 그 이후이다. 그 세대, 혹은 다음 세대가 그 이론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의미를 새기는 지가 핵심이다. 만약 정말 훌륭한 원리, 정리라 할지라도 그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해변 가의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에 불과할 만큼 평범한 녀석일 뿐이다. 수많은 모래알들이 모여 해변을 이루게 하는 것은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다. 즉, 그것은 여러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시간 속에서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우리가 수없이 수학 교육의 목적 -예를 들어 사고력 증진이라든지, 문제해결추론능력 등- 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오지만 그것은 수학을 배우는 사람 자체로서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수학 그 자체 과정을 정말로 즐겁게,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수학사(史)와 같은 여러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의미를 부여한 텍스트가 되어서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수학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을 다양하게 활용해서, 나처럼 삶의 교훈을 얻는다든지 하는 다양한 가치들이 데이터와 정보의 융합의 시대 속에서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서가 아니라 같이 있어야 더욱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끝> |
| 원래 중국 저자의 책은 잘 안보는 편입니다. 몇 개의 책을 접햇을 때의 인상은 구성이 그닥 알차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책은 나름대로 구성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수학의 역사는 그렇게 흥미롭진 않은 주제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