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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두의 “미 투”를 읽고 이 책은 옴니버스 형식이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을 등장인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김영두의 “미투”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요즘에 ‘미투“운동이 떠오르는데 여기에 그런 개념은 안나오고 그 유사한 개념이 나온다. 권력으로 여자를 위압적인 성폭행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은 없다. 이 책의 제목을 먼저 봤을 때 이 책이 무슨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고발하기 위한 것으로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성추문을 다룬 것 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요즘 미투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우선 이책은 청소년 도서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 책의 본문 첫머리에 보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부터는 이 책이 애들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차례에 “햄버거와 파라치온”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내용이 있는데 거기 보면 거기에 나오는 남자의 말이 너무 여자를 인신공격하고 희롱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동생이 어쩌다가 새 옷이라도 한 벌 사 입고 오빠 앞에서 자랑을 할라 치면 오빠는 “옷은 괜찮은데 옷걸이가 엉망이다. 저놈의 수통 다리. 자라목, 목 좀 빼봐라” 가 그것이다. 아무리 친남매라지만 이건 일종의 언어폭력인데 가족 간일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소통을 가로막는다. “미투”를 읽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6.25 시대에 비해서 많이 발전했고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의 겉표지 뒷부분에 보면 혼자서 거대한 사회의 곪은 부분을 치유하겠다고 메스를 든다. 표출하지 못한 분 노는 행간에 묻고 한없이 나약하게 부당을 고발한다. 절 좀 바라봐 주세요. 제 말을 들어 주세요. Me too. “미투”라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랄까? 난 이 책을 펼쳐보기 전 겉표지를 보면서 제목에서부터 우리에게 말해주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의 내용을 모르고 제목에서만 이 책의 내용을 생각해보려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일까? 아니면 성폭행 묘사를 피해자 대신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로 이 책의 첫 장을 넘겼다. 첫 장에는 길 가의 민들레는 밟혀도 꽃을 피운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대충 얘기하자면 폭력과 억압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시대에 여자들의 운명은 정말 기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야기를 읽고 몇가지 충격을 받았던 것이 생각 난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빠가 대학에 떨어져 재수 삼수 사수하는 동안 여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오빠가 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지던 해에 여동생은 대학시험에 붙었으나 오빠의 대학등록금으로 마련해 놓은 돈을 여동생이 차용할 수는 없었고 입학금만 융통해주면 다음 학기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융통하겠노라는 애소도 통하지 않았다. 얼굴도 신통찮은 게 대학 나오면 시집갈 일이 더막힌다는 어머니 주장이 너무 집요해 난 고졸의 학력으로 공부는 끝을 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 그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자동차회사의 실적없는 영업사원으로 있던 오빠가 광부였던 아버지 사망보상금으로 카페 차리고 나이트 클럽하다가 망하자 미국으로 도망가고 그것도 흑인 여자와 위장 결혼해서 건너가고 결혼은 안했지만 아들이 딸려 있고 미국에서 마사지 팔러를 했다는 여주인공 1인칭 화자의 친오빠에 대한 충격이었다. 차례에 보면 “자크 프레베르의 아침식사”라는 타이틀의 이야기가 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이웃끼리 말도 안하고 그러는 사회인데 여기 나오는 여주인공의 재수시절 동기인 “진영”이라는 이름의 그는 인간은 정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자기를 사랑한다면 자기의 뜻을 따르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여주인공을 설득했지만 여주인공은 그를 설득할 수 없었으므로 잘 어울렸던 한 쌍은 멀어졌다.삶의 목표와 방향이 달랐던 것이다.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상처만 남긴 채 헤어지고 만다....이 책은 인간의 약함과 그것으로 빚어진 슬픈 운명. 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이라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담긴 오랜 주제를 다시금 던진다. 이야기 중의 진영은 대학에 들어가서 변해갔고 정의를 위해 결혼을 포기하고 그에게 여자가 필요했다면 사상과 이념에 행동으로 동참할 여자였다는 것이다 아직 서툴렀기에 서로를 비난하고 이별을 고하는 것은 참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겉보기엔 매우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지만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는 너무나 잘 안맞았던 커플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인간을 감동시키는 마지막 무기는 소설이다. 소설은 구원이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다. 역시 김영두는 인물이다.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지키지 않고 있는 것들을 예리하게 끄집어 유교관념 (남존여비사상)같이 전근대적이고 고루한 사고 방식을 고수해 온 지난 날의 우리네 어르신들의 말씀에 수치심을 자극한다. 그녀의 지적을 지금이라도 많이 늦었지만 들어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평범한 두뇌를 가진 내가 이 험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진리를 일깨워 준 이 책으로 인해 많은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 있어서 잠시 행복했다. 앞으로 얼마나 그녀의 말을 쫓을 것인지가 나의 나머지 행복을 책임질 듯하다. 소설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가장 예민한 안테나 역할을 한다. 그러한 측면으로 볼 때, 김영두 작가는 “미투”라는 작품의 작가의 말을 통해 현 시대의 아픈 이슈를, 억압 받고 탄압 받는 피해 여성들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내 말에 귀기울여주지도, 아무도 나를 바라봐주지도 않는다. 관계의 거리가 좁을수록 폭력과 억압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 부모자식 간에도, 부부 간에도, 형제자매 간에도, 사회적 계급 간에 행해지는 폭력과 억압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인간다움이 제거되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며 생산수단으로 살았던 아바타들의 이야기이다. 분연히 일어나 깃발을 들고 양지로 나오려 해도, 음지에 남겨진 분신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해서, 자신에게 씌어진 굴레를 정직하게 감내하는 약자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다. 차례에 보면 “햄버거와 파라치온”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야기가 있는데 거기 보면 거기에 나오는 남자의 말이 너무 여자를 인신공격하고 희롱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동생이 어쩌다가 새 옷이라도 한 벌 사 입고 오빠 앞에서 자랑을 할라 치면 오빠는 “옷은 괜찮은데 옷걸이가 엉망이다. 저놈의 수통 다리. 자라목, 목 좀 빼봐라” 가 그것이다. 아무리 친남매라지만 이건 일종의 언어폭력인데 가족 간일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소통을 가로 막는다. 세 번째, 이 책의 “암탉이 울면”이라는 타이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시대에 우리 여자들이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살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아들도 아닌 딸에게 과외 공부를 시킨다는 것에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의 마찰. 아들인 오빠는 그냥 그 도시의 고교에 다니고 있는데 딸을 단신으로 서울로 내보내겠다는 어머니의 결정에 할머니가 펄쩍 뛰었다는 이 대목에 대한 충격이었다. 어머니가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교편을 잡고 있던 중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을 보면 6.25전쟁 때 태어나신 울어머니와 비교해봤을 때 여주인공의 나이는 예순에서 일흔 가량의 여성인 듯 하다. 할머니가 “여자가 언문이나 깨치면 되었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해”하시는 할머니. 그러나 그 다음 이어지는 할머니의 말씀에 내 속은 뒤틀렸다. “똑똑한 계집, 팔자가 드세단다. 여자는 시집 잘 가는 게 최고여” 라고 말씀하시는 구닥다리 케케묵은 할머니의 언사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런 일들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닌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이야기를 하나 고르라면 난 이 “암탉이 울면”을 꼽을 것이다. 여주인공의 고모 할머니의 어릴 적 별명이 똑똑이었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신식 공부도 했고 부인이 있는 남자하고 연애를 해서 애를 낳으셨다는 고모할머니의 삶을 여주인공이 답습할 것이라는 암시가 현실로 정말 됐다. 물론 여주인공은 유부남이 아닌 첫사랑 대학 동기의 딸을 낳았고 잠적한 남자는 나중엔 다른 여자와 결혼 해 애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었으니...여주인공이 이렇게 고단하게 인생을 유전하는 동안 어머니만이 그래도 자식이라고 서울 걸음을 할때면 가끔 찾아주셨지만 나날이 깊어가는 어머니의 주름 고랑은 여주인공 탓 인 것만 같아 “엄마 난 후회 안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갈았고 그래서 현주도 생겼고 결혼식 못 올리고 산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 전쟁 통이었다지만 엄마도 그런 건 사실이잖아. 현주아범만 아니었더라면 내가 엄마가 원하는 딸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옛날에도 지금도 나 열심히 살고 있어. 오빠야 말이 좋아 고향을 지키는 종손이지...”라고 말한다. “여주인공인 1인칭 화자에게 무엇이 있을까?” 라고 내게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 있기 떄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조금 덜 힘들고 견딜 수 있고 위로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그애서 나는 그 답을 “사랑”이라고 하겠다.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또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생각하며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을 현재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 낸다. 우리는 미래의 일을 내 손으로 창조하는 것이며 개척하는 것이지 미래의 일들을 그냥 순응라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유교적 전통에 절어 있는 사대부 집에서 아들과 딸과의 구별, 차별이 그러하듯이 오빠와의 차별에 줄기차고 당차게 항의했다는 여주인공 1인칭 화자의 행동은 정말 그 시절 그러한 아들과 딸의 차별에 대해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세뇌돼지 않고 할머니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불만을 품고 집안 어르신께 할 말 다하는 여주인공은 남동생과 차별 대우에 어머니의 대놓고 하시는 불공평하고 부당한 대우에 대해 눈물을 머금고 대차게 항의했던 사춘기 시절 친언니와 비슷했다. 남자 형제 있는 이 세상의 여성 여러분! 공감 가지 않는가? 그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 각각의 1인칭 화자인 여주인공인들이 답답하고 안타까워 책을 읽으며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태 도와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여자로 태어난 숙명으로 폭력과 억압의 희생양으로 살아왔던 여성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렇게 집안의 밝은 미래를 위해 큰 일을 하고 있는데도 “햄버거와 파라치온”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야기에 보면 꼭 뒤에서 방해하거나 가난한 여성이 한 푼 두 푼 모아둔 돈을 꿔달라며 못 살게 구는 회사 사장님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은 정말로 없었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벌을 받을 것이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서 난 무엇보다 집안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나라를 사랑하기에 그렇게 희생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모든 걸 다 바쳐 내 나라, 내 마을을 위해 헌신적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도 편안한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적인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 내 안에것에서만 만족하지 않고 좀 더 넓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크게 내다보고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암탉이 울면”이라는 타이틀의 이야기에서 할머니의 반대에도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고향의 같은 과외 동기인 첫사랑과 동거해 미혼모가 돼고 교사가 됐으나 교감선생님의 무모한 중매로 결혼한 남자는 바람기 다분한 남편이어서 딸과 함께 집을 나오고 여주인공이 서울로 대학 진학해도 본인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흔들리지 않고 혼전 동거 안고 본인 학업과 일에 충실하며 제 갈 길 가서 집안을 더욱 발전 시키는 것이 할머니와 마찰을 빚어가시며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신 어머니께 효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평소 미혼모나 미혼부만 보면 보통사람과는 다르다는 인식만으로 피하기에만 급급했던 나를 보면서 이 책은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결과는 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다. 참 슬픈 내용이었다. 소설이라 할지라도 나의 가슴을 울린 내용이었다. 책을 다 읽고도 한참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여주인공의 딸아이 현주가 슬픈 기색도 없이 빨리 가야하잖냐고 내가 설거지는 마저 마치고 방도 치울게 엄마도 서둘러라며 고무장갑을 끼는 여주인공의 딸 현주는 할머니의 운명하심이 슬프지 않았을까? 손녀와 할머니는 아무런 애착관계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건 뭐라고 딱 정의 하기 어려운 것 같다.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것처럼 딱 한마디로 표현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의 차례 중 “부활”이라는 타이틀의 이야기 말미에 보면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이다.이 배려의 결여는 사랑의 결여이다.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책은 옴니버스 형식이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남녀 차별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어 둔 여인들의 꿈을 되살리고자 하는 저자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 만들어낸 엄청난 파국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를 충격으로 몰고 간다. 해피엔딩 같은 극적인 요소는 아예 없지만 한층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난 “미투”라는 이 책은 여러 모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상처를 준 사람은 뭘 그렇게 까지 ...하며 그 사실을 잊거나 왜곡시켜 버리지만 상대방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착하게 살아야지 라고 결심했다. 이 책은 각각의 다른 여성이 1인칭화자가 다 다른 사연이 있는 이야기이다. 주제를 내가 생각해봤을 때 변화는 온다. 우리는 변화를 잃고 두려움을 없애고 뛰어들어라 인 것 같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이고 언제 변화할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변화”는 우리시대의 화두이다. 저자 김영두는 사라진 옛 것을 간과하지 말고 미지의 것을 향해 용감히 떠나라고 조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