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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악마조차 감동하는 글쓰기를 하라
"(서평) 악마조차 감동하는 글쓰기를 하라" 내용보기
장석주 작가님의 자전적인 에세이 [나를 살리는 글쓰기] 이 책을 읽고 난 뒤이어선지, 평소엔 용감히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막 썼던 첫 문장이 새삼 망설여진다.어린 시절의 기억은 만4세 이전으로는 없어서 캄캄하지만 아마도 첫 걸음마를 뗐을 때에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상상도 잘 되지 않지만 아마도 그랬으리라 짐작해 본다.글을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작가는, 작가라는 직업을
"(서평) 악마조차 감동하는 글쓰기를 하라" 내용보기

장석주 작가님의 자전적인 에세이 [나를 살리는 글쓰기] 이 책을 읽고 난 뒤이어선지, 평소엔 용감히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막 썼던 첫 문장이 새삼 망설여진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만4세 이전으로는 없어서 캄캄하지만 아마도 첫 걸음마를 뗐을 때에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상상도 잘 되지 않지만 아마도 그랬으리라 짐작해 본다.


글을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작가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첫 문장이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3초만에 첫 인상이 정해지듯이 글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책 속에서,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 이런 생각을 가지니 글 쓰기가 조금은 무서워졌다.

독자는 시시하거나 지루한 글,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는 글이라면 당장에 책장을 덮어 버리는 냉철한 심사단이기 때문이다. 역지사지로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본다면 당연하고 마땅한 일인데 왠지 서글펐다.


분명 잘 쓰여진 문장이든, 못 쓰여진 문장이든 작가는 심혈을 기울여 썼을 테니 말이다.



장석주 작가님은 독서광이자 시인이며 비평가, 에세이스트이시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문장노동자.

30년을 전업작가로 오롯이 글을 쓰며 글에 영혼을 바치며 살아오셨다니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너무 겁이 많아서, 용기가 부족한 평범한 중생인지라 전업작가의 길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전업작가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글 쓰는 것 = 사는 것 <- 이 공식을 따라 살아가는 위인 아닌가.


일정한 수입이 없어 허리 띠를 졸라매며, 처절한 가난과 맞서 싸우며, 세상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마치 숭고한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구도자와 같다.


그래서 '글 쓰는 일'에 대해 표현한 정확한 에세이면서도 무서운 에세이였다.

상당히 직선적인 지라 호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문장들의 점철, 한 점 더하거나 빼지도 않은, 보통의 무른 마음으로는 작가의 길을 걸을 생각도 하지 말고 포기하라는 사실적인 충고들이 나열된 에세이였다.


조금은 미화를 하거나 애둘러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님은 일부러라도 그런 작업을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고통스럽고 힘든 길이고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해선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 애티튜드, 마음 가짐을 가지라는 충고를 해야 했으니까.



이 책은 자서전은 아니다.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경험이 소재이기에 장석주 작가님의 삶도 상당 부분 엿볼 수 있었다.

연배가 워낙 나와는 멀고, 우리 부모님과도 멀어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이 다소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나 읽기 힘들거나 지루한 건 아니었다.


상당히 마음을 흡족하고 뿌듯하게 만들었던 것은 여러 작가의 좋은 작품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많은 문장과 작품이 인용되어 있다. 혹시나 놓쳤을까 봐 마지막 챕터에 글쓰기를 위해 읽어야할 책 202권도 정리되어 수록돼 있다. 이 부분은 따로 혼자 정리해 꺼내 보아야겠다.




68쪽


독자는 문장을 읽어나가는 독서 행위를 통해 존재의 갱신을 이룬다.

이 문장이 진짜 멋있고 창의적으로 느껴져서 사진으로 찍게 되었다.

'존재의 갱신'이라... 과연 그러하다. 수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기 이전에 독서광이었던 사실이 이 문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수 차례 존재의 갱신을 이뤄온 덕에 그들이 '쓰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84쪽


조이스 캐롤 오츠의 충고가 마음에 와 닿았다. "체면치레하지 말고 널리 읽으라... 사랑하는 작가에게 푹 빠져서 그가 쓴 모든 것을 아주 초기 작품까지 읽어버려라."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속이 좁고 다소 치졸하기까지 하다.

좋은 문장을 보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기도 하지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지은이에게 곧 의미없는 질투를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다면 체면치레는 아무 의미도 없어질 것이다.


108쪽


악마를 감동시킬만한 글쓰기.. 과연 멋지지 아니한가. 포부 자체도 멋지고, 그런 마음 가짐도 멋지다. 이러한 단호한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어떤 독자도, 심지어 글을 쓰고 있는 자기 자신도 감동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실에 화가 나서 곧 초고를 박박 찢어 버릴 지도.



114쪽


"읽는 뇌는 어느 순간부터 쓰는 뇌로 '진화'한다."

진화라는 표현을 썼다. 우와... 감탄이 나왔다. 본래 진화론은 믿지도 않고 다윈의 책은 떠들쳐 본 적도 없는 진화론 혐오자이지만 이 표현에는 감탄이 나왔다.

독서의 의미를 이렇게 보아도 되지 않을까. 쓰는 뇌로 진화하기 위해서. 작가가 되는 게 진정한 소망이라면,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라면 꼭 독서광이 먼저 되어야 하겠다.



책은 읽는 데에 어렵지 않았다. 아, 모르는 어휘들이 꽤 많이 나와서 언어에 소질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던 나의 어휘력에 의구심이 생겨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술술 읽어 내려갔다. 전에 자주 썼으나 디지털 시대에 맞춰 가다 잊어 버린 어휘도 더러 있었고, 예스러워서 이질감 느껴지는 처음 본 어휘도 꽤 있었다. 아마도 제대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으니 그럴 터.


작가가 되려는 소망에 더욱 진중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되겠다. 내 영혼을 갈아 넣고, 온 몸을 이용해 쓰는, 창작물 하나를 세상에 배출해 내는 숭고한 작업이니 가벼이 여겨선 절대 안 되리라. 나이도 나이지만 그동안의 방대한 독서량을 뒷받침하는 무게감있는 진중한 사람이 되자.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1 2018.04.27. 신고 공감 12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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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글쓰기; 전업작가는 왜 쉼없이 글을 쓰는가
"나를 살리는 글쓰기; 전업작가는 왜 쉼없이 글을 쓰는가" 내용보기
책 읽는것도, 글 쓰는것도 체질화되어야 한다. 습관이 무서운거다.책 읽는 것은 습관이 되었지만, 아직 나는 글 쓰는 것에 매번 흔들린다.잘 써야되는 부담감도 아닌 '매일'이란 부분과 싸운다.새삼스레 엉덩이 무거운 작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나에게 없고, 무엇이 부족한가를 알기에 자꾸만 그에 따른 처방전을 구할려고 기웃거리고 있다.글쓰기에 대한 책들은 제법 많이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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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것도, 글 쓰는것도 체질화되어야 한다. 습관이 무서운거다.

책 읽는 것은 습관이 되었지만, 아직 나는 글 쓰는 것에 매번 흔들린다.

잘 써야되는 부담감도 아닌 '매일'이란 부분과 싸운다.

새삼스레 엉덩이 무거운 작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없고, 무엇이 부족한가를 알기에 자꾸만 그에 따른 처방전을 구할려고 기웃거리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책들은 제법 많이 읽어보고, 머릿속에 비슷한 내용들이 들어있는데도 나는 글쓰기에 대한

책을 여전히 읽는다.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흐트러진 내 마음과 생각을 무담시 붙잡으려는 방편일지도.

그럼 솔직해지자. 나는 글을 왜 쓰고 싶은가? 내 만족인가 vs 작가가 되고 싶은가.

 

자칭 문장노동자라고 말하는 장석주 시인의 책 <나를 살리는 글쓰기>에서 전업작가로 사는 생활에 대해 엿보았다. 가히 전업작가이고 문장노동자였음을 인증하는 책이다. 모든 삶이 쉬운게 있을까?

거의 40여년간을 글쓰기를 하고, 100권 가까이 책을 낸 토박이 글쟁이의 삶도 고단했고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알게 된다. 그럼에도 글 쓰는 시간들 속에서 진정 행복했다는 것을 느꼈다.

가난했고, 힘겨웠던 젊은 지난 날 자신을 잃지않고 지탱시킨 것은 시립도서관에서 날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순간들이었다고 고백한다. 시인의 삶은 오롯이 글과의 사투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다루며 말의 세계 안에서 산다는 뜻이다.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며 글쓰기를 미루는 자는 게으른 자다.

기약없는 영감을 기다리기보다 날마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자.

단언컨대 하루 4시간에서 5시간씩 꾸역꾸역 쓰지 않는다면 전업작가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체력이나 정신적 내구력이 없다면 아예 전업작가의 꿈을 접는게 좋다.

나의 민낯을 들킨 것 같아 살짝 마음이 따끔거렸다. feel(느낌)이 오지 않아 내일로, 또 내일로....

오늘 안 온 느낌이 내일 오리란 보장도 없는데 계속 글쓰기를 미뤘다. 그나마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게

마땅히 해야 될 일?이라 위안삼아 보지만 어설픈 핑계일 뿐이다. 결국 나는 게으른 사람 인증^^

그렇다고 전업작가라.... 생각을 늘상 했지만, 좋아하는 것과 직업으로서의 삶에 대한 간격이 크다는 것만 확인했다. 별개의 문제이다. 그럼 글 쓰는 것을 즐길 수 밖에^^ 사실 이것은 잘 할 수 있을 듯.

전업작가로서의 삶은 나의 정신적 내구력 상태로 봐서 불합격, 불가능이지만 시인처럼 뭔가 글을 긁적일 땐 가슴이 콩닥콩닥 자꾸만 뛴다. 벅차오르는 느낌!!! 글 쓸 때는 행복하다.

 

작가는 자기만의 글 쓰기 스타일과 가치관이 있다.

그것은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것도 아니다. 역시나 귀결은, 끊임없이 쓰고 또 쓰는데 있다.

진심으로 글을 쓰야하는 것은 마땅하고,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본다는 말에 공감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것이 작가의 철학이 되고, 개성이자 스타일이 되는것이다.

30여년동안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글쓰기였으니 그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글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지금까지 읽는것 또한 소홀히하지않는 시인의 생각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시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써야 한다. 제 피와 무의식을 망각 속에 담아 검정 잉크로 변화했을 때

그것을 뜸뿍 찍어 써내려가야 한다. 제 손끝을 통해 피와 무의식이 분출되는 것,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나가는게 바로 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l*****5 2018.05.02. 신고 공감 6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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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또 쓰는 글쓰기..
"쓰고 또 쓰는 글쓰기.." 내용보기
‘읽고 썼다. 그리고 살았다. 내 인생은 이 단문 두 개로 요약할 수도 있다. 내 삶은 다른 세상을 꿈꾸며 읽은 것과 쓴 것의 누적으로 이루어졌다.’ (9쪽) 문장노동자라는 장석주 시인이 자신의 삶을 요약한 말이다. 지금까지 쓴 책이 100권을 넘었다고 하니 가히 시인의 삶은 말 그대로 읽고, 쓰며 살아온 삶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 하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범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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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썼다. 그리고 살았다. 내 인생은 이 단문 두 개로 요약할 수도 있다. 내 삶은 다른 세상을 꿈꾸며 읽은 것과 쓴 것의 누적으로 이루어졌다.’ (9) 문장노동자라는 장석주 시인이 자신의 삶을 요약한 말이다. 지금까지 쓴 책이 100권을 넘었다고 하니 가히 시인의 삶은 말 그대로 읽고, 쓰며 살아온 삶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 하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범람한다. 그런 책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글쓰기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소개하는 방법들을 보면,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저자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었을 텐데 아직도 그런 책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이 책은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쓰기 방법에 관한 책은 아니다. 물론 글쓰기에 관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왜 쉼 없이 글을 써야 했는가에 대한 고백이다.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고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런 전업작가의 삶이 자신에게 만족과 행복을 준다는 저자, 그래서 책 제목도 [나를 살리는 글쓰기]가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30여년의 세월 동안 꾸준하게 이어온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술회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글쓰기는 글을 쓰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글쓰기의 지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전업작가로 살아오면서 지켜온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원칙이기도 했다. 운명적 글쓰기, 감동을 주는 글쓰기, 나 자신을 증명하는 글쓰기, 그리고 행복을 주는 글쓰기. 소제목들만 보아도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바로 저자의 삶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문학청년이 된 이후 글쓰기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하지도 않았다는 저자. 생계를 위해 출판사에 취직을 하고, 직접 출판사를 차린 적도 있지만 전업작가로 들어선 이후에는 글쓰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글 쓰는 법을 누구한테 배우지 않고 혼자서 많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깨우치려 했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글쓰기는 삶의 도약이고, 새로운 삶의 창조로 나아가는 일 (29)이었기에 멈출 수 없었다. 또 글쓰기는 내 즐거움을 위해서, 더 나아가 자기발견이나 자기치유의 한 방편으로 글을 쓴다는 생각을 오래 견지해왔다.’ (33)는 말처럼, 그 자체의 즐거움과 자신이 살아있기에 쓸 수 있고,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오직 쓰기 위해 밥을 먹고, 쓰기 위해 숨을 쉬며, 쓰기 위해 잠을 잔다 (145), 글은 영감을 받아 쓰는 게 아니라 생명과 에너지로 쓰고, 글쓰기는 존재의 심층을 드러내는 일이다 (177)라고 자신의 존재자체를 글쓰기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저자는 왜 그렇게 글을 쓰려고 했을까?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이 물음에 백 개도 넘는 답변을 쓸 수가 있지만, 단 하나를 들라면, 그것은 나로 온전하게 살기 위함이다.’ (188) 한 마디로 운명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글 쓰는 것이 운명이라는 말 일 게다.

 

  저자는 이처럼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 그의 삶이 가능하게 했고, 또 지탱해 주었던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애착과 그 과정 등을 진솔하게 술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시인으로써, 또 작가로서 우리에게 그 방법의 일단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그 중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몇 개 있다.

 

많은 작가들이 작가가 되기 전 공통적으로 엄청난 독서광이었다.’ (23) 독서광이라는 것은 책의 수련시대를 통과했다는 것으로, 읽는 인간을 거치지 않고는 쓰는 인간의 단계로 도약할 수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아무 느낌의 울림도 없는 문장을 쓰느니 차라리 낮잠을 자는 게 낫다!’ (93) 절박성이나 진실성이 없을 때 글쓰기는 표피적인 생각을 담은 글쓰기, 관습적인 글쓰기에 머물게 되고, 이는 영혼 없는 글쓰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진부함은 글쓰기에서 피해야 할 가장 큰 악덕이며 따라서 꾸준하면서도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문체로, 자신의 스타일로 글을 쓸 수 있기까지 읽고 쓰기를 반복하라는 말에 다름아니다.

 

글쓰기는 몸으로 하는 창의적 노동이다. 머리로 무엇을 쓸까 생각하기 전에 먼저 써라.’ (43)

 

결국 쓰는 일은 자기가 겪고 산 경험에서 시작하는 몽상과 창조적인 해석행위다.’ (40) 자신이잘 아는 것, 그것은 바로 내 이야기이다. 내가 겪은 일을 나보다 더 잘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경험을 찾아내고 그것에 귀를 기울이며 상상력을 뒤섞어 이야기를 발효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글쓰기라고 한다.

 

 

  어느 책에선가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삼다(三多)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독, 다상량, 다작 즉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는 것이다. 저자 역시 삼다를 말하고 있다. 그는 젊어서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스스로 남독(濫讀)을 했다고 했을까? 나 역시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려고 하지만 글쓰기만은 잘되지 않는다. 아마 절박함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저자의 자전적 글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와 글쓰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런데 저자도 마찬가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서 전두엽을 후려치는 깨우침을 주는 책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런 책을 만나지 못한 걸까? 감정이 메마른 건지, 남독을 해서 그런 건지 나 자신도 아리송하다.

 

 

(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k*****1 2018.04.24. 신고 공감 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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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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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혁명이다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한다는 것보다 더 심오한 생生의 함의다. 글을 쓰고부터 읽고 쓰는 행위의 문학이 시작되었다.  문자는 곧 문명이다. 이것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글을 쓰는 행위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왔다는 것을 과거의 시간에서 보아왔기 때문이다. 니체와 비견되어지는 일본의 사사키 아타루는 문학을 혁명이라 부르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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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혁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한다는 것보다 더 심오한 생生의 함의다. 글을 쓰고부터 읽고 쓰는 행위의 문학이 시작되었다.  문자는 곧 문명이다. 이것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글을 쓰는 행위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왔다는 것을 과거의 시간에서 보아왔기 때문이다. 니체와 비견되어지는 일본의 사사키 아타루는 문학을 혁명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역사에서 인간은 쓰고 읽는 행위를 통해 혁명을 완성시켜왔다는 것을 그의 철학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증명해 보임으로써 글쓰기의 위대함을 설파한 적이 있다. 루터의 대혁명은 성서를 읽고 다시 쓰면서 시작된 것이었고 무함마드의 코란은 대천사의 ‘성서를 읽어라’는 계시로 인해 ‘코란’을 쓰게 되면서 이슬람제국을 탄생케 하였다. 이처럼 인류문명사에서 읽고 쓴다는 것은 더 위대한 함의가 담겨있다. 읽고 쓰는 행위로 인해 문학이 탄생되었고 그 문학의 힘은 다시 혁명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이것은 비단 역사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삶도 그러하며, 그것을 직업으로 삼은 ‘전업 작가’에게도 같은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글쓰기는 혁명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장석주의 책은 빠지지 않고 읽어왔다. 아마 장석주 작가의 글쓰기는 혁명이다라 정의한다해도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의 책에서는 초지일관 전업작가로 산다는 의미와 글을 씀으로 해서 달라진 삶을 말하고 있으니까.

“사람이 더 이상 그 자신 위로 동경의 화살을 쏘지 못하고, 자신의 활시위를 올릴 줄도 모르는 그 시기”가 닥치더라도 기어코 활을 들어 올리는 자, 바로 작가이다.-p19


작가의 뇌를 가져라

장석주의 글쓰기가 혁명인 이유는 ‘작가의 뇌’가 따로 있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장석주는 날마다 꾸준히 술을 마시는 사람의 뇌가 알코올 중독자의 뇌로 바뀌듯이 스스로 30년간을 전업작가로 살아보니 둔한 뇌가 작가의 뇌로 변환된 것을 깨달았음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 나름 일리있는 말이다. 실제로 인간은 오랜 습관과 경험에 의해 몸과 마음이 최적화되게 만들어진 생물이다. 그것은 우리의 뇌 자체가 반복적인 경험과 학습으로 인해 변환이 쉽게 되는 체질이고 실재로 과학실험을 통해 밝힌 결과도 있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뇌는 두정엽 피질과 해마가 커진다고 한다.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의 뇌는 당연히 그 분야에 최적화 된 뇌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읽고 쓰고 하는 삶이 뇌에 미친 영향은 자연적으로 ‘작가의 뇌’를 갖추게 된다.

‘작가의 뇌란 한마디로 우리 무의식 본성과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 장인의 뇌다. 장인의 뇌는 천재 작가라는 착시를 만들어낸다. 내 생각에 카프카도, 보르헤스도, 하루키도, 오르한 파묵도 다 지난한 단련 과정을 거쳐 평범한 뇌를 작가의 뇌로 바꾸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p47

글쓰기를 할 때 독선과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자주 쉽게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 산다. -p14

나도 가끔은 글만 쓰는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밥벌이의 지겨움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현실이 내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서평이라도 쓰는 지금의 삶에 그저 감사하다. 시지프스의 돌멩이와 비견되는 작가라는 운명의 돌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한 십여 년 읽고 쓰는 것이 어떻게 내 안에서 혁명을 일으켰는지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조용하고 느리고 소리없이 내면에 축적되어 어느 날, 이미 혁명은 시작되어 있었고 잔잔하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글쓰기란 그런 것이다. 조용하고 느리고 소리 없이 이미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오랜 세월 글쓰기는 이미 내면에 스며들어 하나의 층위를 이루며 내 삶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장석주의 『나를 살리는 글쓰기』로 다시 돌아보는 것이다.

먹고산다는 크나큰 중압감 속에서의 글쓰기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일이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같은 인생이었다면 글쓰기는 피하고 싶었을 테다. 하지만 나는 써야만 했고, 쓰려는 욕망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p20

삶이 수수께끼라면 마음에 내재한 불가해함 때문일 테다. 삶은 마음이 그린 설계도를 옮기는 도정(道程)이다. 죽음은 삶이 그 중심에 품고 있는 씨앗이다. 삶은 그 죽음마저 끌어 안고 있는 총체적 그 무엇이다. 죽음에서 삶은 응축되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홀연 죽음을 맞는다. 죽음은 생명의 한계를 그어주는 수평선이다. 우리는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기쁘고 보람과 의미로 가득 찬 삶을 살아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죽음은 삶의 가장자리에 밝은 빛을 뚤러준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비로소 의미를 얻고, 감미로운 것으로 변한다.-p189


-책을 읽으면서 쓴 시-

접목 椄木

봄꽃이 지며 낙담이 
가슴에 금 긋는다.

지는 꽃 슬퍼하다 
자라날 푸른 잎들의 비담금이 
더욱 목마를 듯하여
푸른 잎사귀들을
끌어다 처마아래 받쳐놓는다.

왔던 것은 별리의 슬픔을.
간 것은 생장의 깨달음을.
오고 가고 주고 받고,
꽃이 지고 연초록이 세상을 켜면
가슴에 난 상처도 
희망에 접목椄木되어 새살이 날터이니
꽃이 진다 슬퍼말자.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8.04.2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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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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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글쓰기   이 책은    시인 장석주의 글이다. 글이 책이 되어 나오는, 그래서 저자를 살리는 책이다.   저자는 전업작가다. 글을 써서 살아간다. 글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말이다,따라서 『나를 살리는 글쓰기』라는 제목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된다.하나는 절망을 딛고 일어나 살아가게 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게 한다는 뜻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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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글쓰기

 

이 책은 

 

시인 장석주의 글이다.

글이 책이 되어 나오는, 그래서 저자를 살리는 책이다.

 

저자는 전업작가다글을 써서 살아간다. 글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나를 살리는 글쓰기라는 제목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된다.

하나는 절망을 딛고 일어나 살아가게 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게 한다는 뜻도 있다.

 

어쨌든 글쓰기는 저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의 내용은 

 

그런 의미는 단지 저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있다.

저자도 그리고 독자 중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으니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자세가 독자에게도 거울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글쓰는 일의 어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알게 해준다.

더하여 이 책에는 글쓰기 이외에 저자가 이미 경험한 책읽기가 들어 있어, 독서에 관한 지침서도 된다.

 

어떤 문장은 독서에 대한 여러 생각들, 그간 머릿속으로 맴돌던 것들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내 앞에 나타난 것 같다.

 

이야기는 실제 현상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작가의 허구적 창조물이다. 한편으로 현실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 같고, 개츠비라는 불행한 사내도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이걸 '개연성'이라고 한다. 독자는 현실에서 있음직한 이야기를 읽는데서 뜻밖의 재미를 느낀다.>(23)

 

저자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언급한 말 중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나오니 다시 한번 새겨 읽을 수밖에. 내가 책을 읽으면서 뜻밖의 재미를 느꼈던 것들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

 

내가 쓴 게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 즉 타자의 지평을 향해 울리는 전언임을 깨닫게 되었다. (33)

 

 

글쓰려는 사람에게 부치는 글

 

저자는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전업작가다. 그러기에 그가 글쓰기에 들이는 공은 남다르지만 글 쓰려는 사람은 그가 말한 것은 반의 반이라도 실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에 관한 글을 여기 옮겨본다.

 

<작가가 되려면 자기를 날마다 글쓰는 사람으로 조련해야 한다.> (43)

 

<작가는 책상 앞에 앉아서 적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 정도를 일해야만 한다.>(44)

 

<첫 문장이 일인칭 시점으로 시작한다면 그것은 독자에게 건네는 다정한 어조여야 한다.> (65)

 

독자는 보는 사람이 아니라 느끼는 사람이다.> (67)

 

이런 말은 읽음과 동시에 천둥치는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 글이다.

독자는 문장을 읽어나가는 독서 행위를 통해 존재의 갱신을 이룬다.> (68)

 

여러 문학의 모습들

 

저자가 섭렵한 문학의 여러 모습들이 저자의 손에 이끌려 이 책에 등장한다. 그 중에 알고 있는 작가들, 작품들이 나오면 반갑기 이를 데 없다.

 

셰익스피어는 불행은 견디는 힘이 약하다는 것을 간파하면 더욱더 내리 누른다.”고 했는데, 문학은 불행을 견디고 저항하는 항체를 만들어준다.> (23)

 

위에서 저자가 인용한 대사가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리처드 2.

내가 가진 번역본에는 비통은 견디는 힘이 약하다는 것을 알면 더 무겁게 짓누르는 법이다.(1,3,280)>라고 되어 있는데, 저자가 인용한 문장으로 읽어보니, 훨씬 입에 잘 붙는 것 같다, 새로운 번역의 발견이다.

 

요즘 읽었던 안톤 체호프의 작품도 여기 등장한다.

안톤 체호프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서 누구나 밤의 덮개 같은 비밀 아래서 자신만의 가장 흥미로운 진짜 생활을 살고 있다라고 쓰는데, 이렇듯 첫문장은 그 진짜 생활을 보여준다는 기대를 갖게 해야 한다.>(64)

 

다시, 이 책은 

 

저자는 하루 온종일을 글쓰는 데 바친다,

실로 어려운 일이다. 글이라는 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써지던가 

그런 고난의 행군을 통하여 나온 책을 우리는 앞에 두고 있다.

 

그래서 위에 인용한 것처럼, 이 책은 단지 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느껴야 하는 책이다.

글쓰기를 주제로 한 여러 책을 읽었지만 이 책처럼 읽고 또 읽고, 음미해 가면서 정말 문자 그대로 느껴 보면서 읽었던 책은 처음이다.

 

글에 대하여, 문학에 대하여 느껴 보고싶은 사람은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뜻밖의 재미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s***h 2018.05.0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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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세이] 나를 살리는 글쓰기_장석주
"[글쓰기&에세이] 나를 살리는 글쓰기_장석주" 내용보기
"글쓰는 것을 업으로 혹은 취미로 갖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읽어 보아야 할 책. 작가는 힘들게 썼을텐데  그래서인지 문장이 참 쉽게 읽히면서 마음에는 오래도록 남는다." 장석주 작가의 글을 처음 읽게된 것은 우연이었다. 나는 도서관에가서 서성이다가 아무 곳에나 멈추어서서 책을 고르는 습관이 있다. 나는 그것을 의식처럼 행하는데 나에게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과 나의 운명적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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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업으로 혹은 취미로 갖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읽어 보아야 할 책. 작가는 힘들게 썼을텐데

 그래서인지 문장이 참 쉽게 읽히면서 마음에는 오래도록 남는다."

 

장석주 작가의 글을 처음 읽게된 것은 우연이었다. 

나는 도서관에가서 서성이다가 아무 곳에나 멈추어서서 

책을 고르는 습관이 있다. 

나는 그것을 의식처럼 행하는데 나에게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과 나의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년 5월의 어느 날, 에세이 코너를 돌고 있다가 장석주 작가의 

책을 빌려왔다. 

 

제목이 기억나지는 않는데, 

꽤나 심오한 내용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휙휙 읽혀졌다.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쓱- 읽어내려가는 것 만으로도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 

그는 너무나 쉽게 문장을 풀어서 쓰면서도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글쓰기의 달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 

 제목부터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짐짓 짐작해 볼 수 있다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서 살기위해 글을 쓰는 작가. 

대부분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그런 소명의식 안에서 

글을 써 내려가겠지. 

 

다작을 하는 작가의 습관은 역시나 성실함이었다. 

끊임 없이 읽고, 끊임 없이 적어나가는 것. 

이 책을 읽고, 

나도 처음 작가가되기를 꿈꾸었던 그 날을 되새겼다. 

 

조금 더디가더라도 

이렇게 꾸준히 읽다보면, 언젠가는 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에게 나의 글들이 전달되는 순간이 있겠지 - 

 

초심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도 되었다. 

포기하지 않으리라, 꾸준히 쓰리라, 성실히 쓰리라. 

책은 나에게 다짐들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삶이자, 노동이자, 직업이다. 

생계를 글로만 책임지면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테지만. 

그의 글을 읽고, 

삶의 한 순간 만큼은 나도, 전업 작가로 살아보기를 소망해 본다. 

 

(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c***4 2018.04.24.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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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글쓰기 -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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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난 글을 쓰고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 뭔가를 의도하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고 싶어졌다고 할까. 당시에는 그런 걸 몰랐다. 꽤 긴 시간동안 책을 읽으며 다음 단계를 모색하다보니 글쓰기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썼던 것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게 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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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난 글을 쓰고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 뭔가를 의도하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고 싶어졌다고 할까. 당시에는 그런 걸 몰랐다. 꽤 긴 시간동안 책을 읽으며 다음 단계를 모색하다보니 글쓰기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썼던 것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게 한 비결이기도 하다. 누구에게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다.


내 최고의 스승은 책이었고 나 자신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여부는 몰라도 어떻게 개선해야 할 지도 책을 통해 배웠다. 스스로 글쓰며 무엇인가 발전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내가 무엇을 못하는지 스스로 알기는 힘들었다. 그나마 몇몇은 쓰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의식하며 개선했다. 그 이외는 거의 대부분 책으로 해결했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으며 알려진 팁을 스스로 적용했다. 여전히 미진하지만 그 덕분에 예전보다는  한결 매끄러운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한다. 의도치 않게 내 글은 미사여구가 거의 없다. 담백하게 쭈우욱 이어지는 글이다. 그 이유는 난 퇴고는 없다.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쓰고 끝낸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내 독서 스타일처럼 글도 한 번에 쓰고 끝낸다. 다시 읽으며 오타 정도는 가끔 체크하는 정도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지 괜히 궁금하다. 그 궁금증은 다행히도 작가들이 써준다. 나와 다른 사람이라 생각되지만 그들도 똑같이 글 쓰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된다. 무엇보다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치열함이 느껴진다. 생존을 위한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어하지만 쉽게 시작하지도 이어가지도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업이라면 싫어도 해야 한다. 회사 가는데 싫다고 안 갈수는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다. 이처럼 전업작가들도 싫다고 안 쓸수 없다. 회사원보다는 다소 여유가 있고 시간적 조절은 가능하지만 만만치 않은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이 책인 <나를 살리는 글쓰기>는 전업 작가의 책이다. 전업 작가가 알려주는 글쓰기 팁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어보니 그보다는 전업 작가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책이다.

책 제목과 부제에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 저자는 글쓰기 덕분에 먹고 살 수 있었으니 나를 살렸다. 거기에 전업작가로 먹고 살아야 하니 쉼 없이 글을 써야만 한다. 그 이외는 아무런 방법도 없다. 책을 읽으면 울림보다는 치열함이 느껴진다. 인생은 사실 그렇다. 울림 따위는 일순간이다. 그보다는 생존을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하지만 반복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절대로 멋지거나 우아한 것이 아니다.


어느 분야든, 어느 삶이든 대부분 남들이 볼 때는 우아하고 멋진 삶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본인은 끊임없이 반복적인 일을 하며 생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덧없다. 모든 분야에서 일정 이상의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그저 매일같이 치열하게 쓴다. 글감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일단 앉는다. 억지로라도 머릿속에서 빼낸다. 그 와중에 좋은 글이 나올 때도 있고, 맘에 들지 않은 글이 나올 때도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100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출판사도 차렸지만 전업작가로 살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 모든 것은 결국에 독서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가끔 안타까운 것은 글을 그토록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독서를 게을리 한다는 점이다. 독서는 쓰기에 앞서 기본이자 너무 당연한 거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독서를 해야 한다. 굳이 독서를 하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고 좋은 글도 쓸 수 있다. 이건 일시적이지 지속적일 수 없다.


책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려 쓴 책보다는 일기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한 느낌이다. 글을 쓴다는 것, 글쓰는 삶을 산다는 것,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나도 거의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단 하루도 아무 글도 쓰지 않은 적은 극히 적다. 스스로 작가라는 인식을 하진 않지만 글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은 한다. 더 좋은 글을 쓰고, 내 글로 인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 어디까지나 생각만이지 솔직히 큰 노력은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글도 쓰고 싶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이다. 저자도 이야기한 것처럼 그보다는 계속 쓰면서 더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한다. 글을 쓴 다음에 공개되었다면 이미 내 손을 떠난거다. 어떤 비난과 비판과 칭찬도 다 내가 감수할 몫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안 쓰면 안 썼지, 쓴 글은 변경하지 않는다. 장석주 저자의 책은 처음은 아닌데 좋다. 글쓰기 최전선에서 생존을 위한 날것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너무 거룩하게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글쓰려면 책을 읽자.


함께 읽을 책

https://blog.naver.com/ljb1202/220480261203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작가


https://blog.naver.com/ljb1202/220298627448

뮤즈를 기다리지 말자 - 그냥 써라


https://blog.naver.com/ljb1202/220239150243

유혹하는 글쓰기 - 왕의 이야기



l*****2 2018.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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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확실한 행복, 독서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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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의 뇌구조를 알고 싶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족할 듯하다. 그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거대 영역에서 작은 점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분야를 촘촘하게 톺고 있어 얼개를 잡고도 남음이 있다. 글의 힘이 얼마나 강렬하고 인간적인 매력의 흠인력이 어느 정도인지 흠씬 느낄 수 있다. 장석주의 글은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갈래가 나뉜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그것이다. 연유와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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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의 뇌구조를 알고 싶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족할 듯하다. 그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거대 영역에서 작은 점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분야를 촘촘하게 톺고 있어 얼개를 잡고도 남음이 있다. 글의 힘이 얼마나 강렬하고 인간적인 매력의 흠인력이 어느 정도인지 흠씬 느낄 수 있다.

 

장석주의 글은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갈래가 나뉜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그것이다. 연유와 과정, 의미와 방법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조근조근 풀어나가고 있는데 범위와 폭이 예사롭지 않다. 허투루 넘길 만한 대목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대작가가 비급을 전수하는 형국인데 어떻게 된일인지 전혀 낯설지가 않다. 곰곰 짚어보니 많은 부분 나의 경험과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단번에 감정이입이 이루어지며 빨려든 이유가 거기 있었다. 물론 작가에 견줄 만큼 내공을 쌓았단 얘기는 아니다. 책 읽기를 즐기고 시답잖은 글 나부랭이라도 끼적거리곤 하는 이라면 누구든 겪고 치렀을 법한 과정과 관문 차원에서 말이다. 이를테면 작가가 고백한 내밀한 경험을 누려본 자라면 이런 얘기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그냥 좋아한 게 아니라 푹 빠져서 탐닉했다. 왜 그렇게 읽었을까? 책 읽기가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방편이고, 재미와 내적 충만감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뒤 책이 무라는 지복이 품은 정적을 선물로 준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일렁이는 불안과 공포 같은 감정이 고요해지는 것을 자주 경험했다. (21쪽)

 

책 읽기에 몰입하는 순간, 젊은 날의 고뇌나 번잡한 세상 염려 따위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몽상의 빛으로 물들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그런 아련한 상념이 교차하며 장석주가 뿜는 아우라에 매혹돼 버렸다. 그가 일으킨 자장 안으로 빨려들어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 귀기울이게 되었다.

 

좌절과 굴곡을 두루 경험한 작가는 그예 글쓰기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발견한다. 전업작가로 글을 써서 밥을 벌며 살아온 충일감에 기꺼워한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는 전혀 젠체하지 않고 담백하고 진솔하다. 그래서 경계심을 풀어버리고 공감하게 이끈다. 그러다 작가는 가끔 벼락을 치기도 한다. 영혼 없는 글을 쓰느니 차라리 낮잠이나 자라고 불호령을 내린다.

 

어떤 글은 지루하고 권태에 빠뜨린다. 밋밋한 사유를 담은 상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글을 읽을 때 그렇다. 관습적인 사유로 얼룩진 글에는 분명 뭔가가 빠져 있다. (중략) 새로운 인식과 분별도 없을 때 사람들은 쓰나마나한 무의미한 글쓰기를 반복한다. 이제 냉정하게 말하자. 아무 느낌의 울림도 없는 문장을 쓰느니 차라리 낮잠을 자는 게 낫다! (92~93쪽)

 

고승의 죽비처럼 따갑지만 한소식 들으려는 마음 조금이라도 있는 자라면 새겨들어야 할 권고다. 그리고선 어떻게 써야하는지 평생에 걸쳐 터득한 비급을 아낌없이 전수한다. 눈길을 끌고 마음을 움직이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라는 부탁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라는 조언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곱씹을 것 뿐이다.

 

실제 써먹을 수 있는 창작 기법을 두루 알려주고 있지만 작가의 글엔 기교가 빠져 있다. 아니 읽히지 않는다는 게 맞겠다. 대신 글에 혼이 담겨 있다. 자신의 아픈 과거, 드러내기 힘든 치부도 솔직히 고백한다. 악전고투하며 의식을 벼려온 과정도 소상하게 들려준다. 그러니 더욱 공감할 밖에.

 

군데군데 심어둔 작가의 살아온 내력이 흥미롭고 내밀한 심경도 신비스럽고 깊어서 빨리 읽어야 하겠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름다운 문장, 지혜로운 사유의 결이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문에 잠언까지 곁들였으니 주저앉아 한참을 쉬어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인간 장석주의 영혼을 투명하게 들여다본 값진 경험이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a*****7 2018.05.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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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글쓰기 / 장석주 / 중앙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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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묻는다. 당신은 왜 글을 쓰십니까. "저는 현재 리뷰를 적기 위해서 이고, 생각을 정돈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고, 말을 하기 위해 원고를 적기도 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대답하니 "그런 이유도 있군요." 조금 더 생각해보면요? 왜 글을 쓰세요    "음...글쎄요. 전 전업작가가 아니라서요... 글을 적어야만 하는 강한 열망이나 그런건 없지만, 저에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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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묻는다. 당신은 왜 글을 쓰십니까.

"저는 현재 리뷰를 적기 위해서 이고, 생각을 정돈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고,

말을 하기 위해 원고를 적기도 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대답하니 "그런 이유도 있군요."

조금 더 생각해보면요? 왜 글을 쓰세요 

 

"...글쎄요. 전 전업작가가 아니라서요...

글을 적어야만 하는 강한 열망이나 그런건 없지만,

저에겐 때때로 즐겁기도 하고, 적어도 삶이 적지 않으면 휘발되어 버리니까요.

그냥 잊어버리는데 적으면 기억이 나요. 그리고, 그냥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아요."

작가는 말합니다. "예 그래요. 그렇군요. 좋은 이유네요

 

저는 글쓰는 것으로 직업을 가지고 삶을 꾸려가는 작가에요.

제가 글쓰는 이유 들려드릴께요. 들어보세요."

 

이 책은 글쓰기로 먹고 살아가는 '쓰는 존재' 이면서 살기위해 써야만 하는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에티튜드에 관한 이야기다. 구지 태도 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데 애티튜드라는 영어를 사용한 것은 애티튜트라고 우리가 평소에 쓰는 느낌이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어서였다.

 

글을 어떻게 쓰고 이렇게 쓰고 문장은 이렇게 고치고 라는 테크닉적인 측면보다는 쓴다는 것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쓰는 이유는 무엇인지,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감수해야할 태도,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글을 계속 써야한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쓰고, 밥을 먹고 쓰고, 운동하고 쓰고, 슬퍼도 쓰고, 기뻐도 쓰고, 하루에 대여섯시간을 쓸 각오를 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라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묻는다. 당신은 왜 글을 쓰고 싶냐고...

 

그래서 읽는 내내 글은 왜 쓰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볼 수 있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내면에서 오르는 끊임없는 강렬한 열망... 즉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그런 강한 욕망은 없는것같다. 글을 쓰지않아도 사는데 큰 지장은 없는 것 같기도하니까.

하지만, 끊임없이 휘발되는 내 인생에 글쓰기는 내 사라지는 인생을 붙잡는 수단이기도 하고,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기도하고, 때때로 즐거움의 수단이기도 하다. 뭐 이정도만 해도 글을 쓰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아마도 글을 쓰다보면 더 많은 이유가 생길것이고, 작가처럼 이렇게 책 한권 쓰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함께 받은 같은 저자의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도 함께 읽고 있는데 글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 책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 더 잘나온 것 같다.

왕성한 책읽기는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다. 독서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글쓰기의 세계로 이끈다.’ 서두부터 강조하는 다독의 중요성과 무조건 쓰는 것에 중요성은 계속 반복적으로 이야기 되어진다. 날마다 글을 쓰고 그 글을 쓰려는 원동력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 쓰여져있다. 이때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글쓰는 자세에 대해서 아쉬웠는지 나를 살리는 글쓰기라는 책을 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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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a*****3 2018.05.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