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내용보기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지만 성인에게도 도움되는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혐오,문명, 정치,결혼, 전쟁, 호명, 규범, 운동, 노동 등 9가지 주제를 통해 역사에서 소외된 여성의 역사를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여성들의 역사는 망각되고, 남성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역사는 선택적으로 기억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는 말처럼 기억이 왜 중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내용보기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지만 성인에게도 도움되는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혐오,문명, 정치,결혼, 전쟁, 호명, 규범, 운동, 노동 등 9가지 주제를 통해 역사에서 소외된 여성의 역사를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여성들의 역사는 망각되고, 남성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역사는 선택적으로 기억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는 말처럼 기억이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기억한 것, 의미 있다고 강조한 것, 과거에 빠뜨린 것은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p.6

 

망각된 역사도 우리를 구성하는 한 부분임을 강조하는 저자의 머릿말을 보고 깊이 공감했다. 그동안 우리는 남자의 역사, 승자의 역사만을 배우며 자라왔다. 여성, 노동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의 역사는 곁다리로 잠시 취급되거나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지워진지 오래다. 우리는 그동안 반쪽짜리 역사만을 배우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만성적인 실업, 높은 물가고, 낮은 임금이라는 현실은 여성 노동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했습니다.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물러나기가 어려운 현실임에도 가정으로의 복귀를 강조한 것은 여성 노동을 일시적이고 보조적인 것으로 여기려는 태도 때문입니다. 이는 여성의 사회 활동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의 표시였습니다. p.31 여성혐오는 언제부터 일어났는가?

 

세계2차대전 후 사회활동에 나섰던 여성들을 억압하고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낸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남성 부재 시에는 여성의 노동력을 빌려왔지만, 다시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얻기위해 여성의 노동력, 목소리를 억압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여성을 성녀와 창녀 이분법으로 규정지어 '말 잘듣는 여성'화하는 사업에 몰두했다.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전후 질서를 안정시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전쟁 피해자를 모른 체하면서 특정 대상 곧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환향녀가 '화냥년'이 된 것처럼,한국 사회에서 '위안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쓰인 것처럼,정절을 지키지 못했고, 행실이 바르지 못했고, 사치하고 방탕하다고 비난하면 되니까요.일본군'위안부'가 전후 45년이 지난 뒤에야 생존자 증언이 처음 나오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은 전후 재건과 질서 그리고 희생양 찾기와 연관된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p.114 '환향녀'는 어떻게 '화냥년'이 되었는가?

 

이 또한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구분지어 본질흐리기화 하는 것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시기 제도적으로 보완하여 고칠생각은 하지 않고 특정 집단을 차별하여 논점을 흐리는 것은 현재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이 차별과 혐오와 맞물려있다는 것을 늘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다 1909년 여성도 호적에 이름을 올려야 했습니다. 이름이 없는 여성이 많았기 떄문에 세례명을 가진 여성들은 세례명을 이름으로 신고했습니다.그래서 유독 이 시기에 서양식 이름을 가진 여성이 많았던 것이지요.개화기에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하고 여성 교육이 행해지면서 남녀ㅕㅇ등의 한 방법으로 여성도 이름을 가졌습니다. 1920~1930년대의 신문을 읽으면 이성녀, 김성녀, 임성녀 따위로 '성녀'라는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중략)임성녀의 한자는 林姓女로 '임씨 성의 여자'라는 뜻입니다.'언년','자근애기','간난'으로 호적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성녀'라고 불리는 여성은 여전히 이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p.119-120 일제강점기에는 왜 '성녀'라는 이름이 많은가?

 

제일 인상깊었던 챕터의 내용 중 하나이다. 김마리에, 박에스더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중에서 유독 서양식 이름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뿌리깊은 여성 차별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름이라는 것은 별것 아닌 것같지만, 참으로 별것인 것이다. 내게로 와서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호명한다는 것은 한 존재를 인정하고, 그가 그답게 있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면 돈을 들여서라도 철학원에 가서 좋은 뜻의 이름을 지어오지 않는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자아를 갖지 못한 채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학습의 기회가 생기고, 자기 자신의 이름을 갖게될 기회를 가진 여성들은 그때 비로소 새롭게 태어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단발은 여성이 남성화되거나 여성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 행위로 비쳤고,단발한 여성에 대해서는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투사적 의지이건,여성 억업에 대한 반발이건, 정절의 증명이건, 생활의 편리함을 꾀하기 위해서이건 단발은 당시 여성들에게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 대한 도전이요 반항이었으며 여성해방의 표상이었습니다.

p. 156  금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저 문장에서 단발이라는 단어를 숏컷이라고 바꾸면 2022년 현 세대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다. 아이러니하다. 여성은 태어나서부터 죽을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열을 받는다. 심지어 패션을 위해서이건 아니면 의지의 표현을 위해서 선택한 것이든 내가 내 맘대로 할 자유가 없다. 머리 모양을 하나 하더라도 하나하나 검열을 받는다.

 

혹자는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불온서적으로 낙인찍으려 할 수도 있다. 여성사는 누구를 차별하자는 것이 아닌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치를 배우는 과정이다. 반쪽의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다양하고 넓은 시각으로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는 과정이다. 불편하다하지말고 배우려는 노력이 있을 때 평등하고 발전적인 미래가 가능할 것이다.

b*****0 2022.01.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하루도 안 쉬고 일한 사람들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하루도 안 쉬고 일한 사람들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내용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7하루도 안 쉬고 일한 사람들―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이임하 철수와영희, 2018.4.25.2011년부터 2014년까지 남성 혐오 표현이 월평균 1∼2회인 데 반해 여성 혐오 표현은 월평균 600∼3000여 회였답니다. 2015년에는 여성 혐오 표현이 월평균 8만 회에 이를 정도로 늘었습니다. (14쪽)(1930년대에) 왜 사회는 신여성을 이토록 조롱하고 비난했을까요? 이러한 시
"하루도 안 쉬고 일한 사람들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내용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7


하루도 안 쉬고 일한 사람들
―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이임하
 철수와영희, 2018.4.25.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남성 혐오 표현이 월평균 1∼2회인 데 반해 여성 혐오 표현은 월평균 600∼3000여 회였답니다. 2015년에는 여성 혐오 표현이 월평균 8만 회에 이를 정도로 늘었습니다. (14쪽)

(1930년대에) 왜 사회는 신여성을 이토록 조롱하고 비난했을까요? 이러한 시선은 이전과 다르게 살아가는 신여성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고의 표현입니다. (22쪽)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이임하, 철수와영희, 2018)은 참다운 평등으로 가는 길에 ‘여성 혐오’라는 덫을 자꾸 깔아 놓는 바보스러운 짓을 멈추자고 하는 이야기로 글머리를 엽니다. ‘여성 혐오’를 누가 할까요? 바로 성차별로 가부장 권력을 누리는 이들이 하겠지요.

  참다운 사랑으로 민주·평등·평화를 어릴 적부터 배우지 못한 삶이기에 성차별뿐 아니라 ‘여성 혐오’가 불거진다고 느껴요. 우리가 슬기로우면서 참답게 사랑살림을 지을 줄 안다면, 이제 ‘함께 짓는 보금자리 살림길’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느껴요.

  여자는 노리개일 수 없습니다. 여자는 심부름꾼일 수 없습니다. 여자는 집안에 갇혀 부엌데기나 애보개로 한삶을 마칠 수 없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도 마찬가지예요.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노리개나 심부름꾼이나 부엌데기나 애보개로 살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함께 가꿀 살림이라고 여깁니다.

  ‘가정주부·주부’ 같은 이름은 성차별을 고스란히 담는다고 느낍니다. 이 이름은 오직 여자를 가리킬 적에만 쓰거든요. 이런 이름이 낡은 줄 느끼면서 새 이름을 남녀 누구한테나 붙일 수 있을 때에, 바로 작은 집부터 평등하고 평화하고 민주를 이룰 만하지 싶어요. 오랜 한국말 ‘살림꾼’처럼, 사내도 가시내도 모두 살림을 넉넉하며 즐겁게 지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아이도 어버이 곁에서 ‘살림이’가 되고, 집집마다 ‘살림님’이 사랑스레 보금자리를 돌볼 줄 알아야지 싶어요.


신라는 골품제 때문에 더는 발전하지 못한 데다가 진골 귀족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는 바람에 나라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도 후대 사람들은 진성여왕 때문에 신라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55쪽)

7세기의 동아시아 삼국을 통치했던 여왕(황)들은 비슷한 통치술을 통해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들 통치술의 특징은 새로운 인재 등용, 불교·도교·무속 신앙을 포용한 문화 정책과 다각적인 외교 정책의 시행, 경제의 활성화 등입니다. (69쪽)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은 책이름처럼 여성사를 다룹니다. 그리고 이 여성사를 남성 학자가 밝혀서 적는 틀이 아닌, 여성이 걸어온 길에 맞추어 바라보려고 합니다. 남성 학자가 신라 임금(여왕 아닌 임금) 가운데 진성 임금을 깎아내리려 하는 속내를 살핍니다. 신라를 비롯해 이웃 임금이 여성이던 무렵 여러 나라가 얼마나 넉넉하고 알차고 아름다웠는가를 역사로 짚으면서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에서 오늘날 삶터를 바라보면 좋겠어요. 여성 참정권을 늘리려는 뜻은 그저 성평등 때문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숱한 남성 정치꾼은 인맥이나 학맥 같은 끈에 얽매여 참답거나 착한 정치길을 못 걷기 일쑤였어요. 얄궂고 엉성한 정치와 사회를 바르게 세우자면 ‘일하는 여성’이 정치에 함께하도록 권리를 늘리는 길을 널리 펼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보다 자신들이 닮고 싶은 대상을 골라서 사용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한 여성이었습니다. (73쪽)

조선시대에는 내외법에 따라 여성은 장옷, 쓰개치마, 천의, 삿갓 따위로 얼굴을 가렸지만 개화기 여성들은 장옷의 불편함을 내세워 장옷 벗기 운동을 했습니다. (154쪽)


  하루도 안 쉬고 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입니다. 남성도 하루조차 안 쉬고 일만 했다고요? 아니에요. 여성하고 남성이 똑같이 바깥일을 하고 집에 들어와도 밥짓기 살림하기는 고스란히 여성이 도맡아야 했어요. 젖먹이 아기는 누가 도맡아서 돌보았을까요? 아기가 자라 어린이로 꿈을 키우는 동안 아버지는 무엇을 했을까요? 아기가 자다가 기저귀에 쉬를 하면 누가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고, 이 기저귀를 빨아서 널까요?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은 우리 삶터가 걸어온 발자취를 짚으면서 ‘여성한테 시킨 일’이 무엇이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왜 여성한테 커피 타기를 시킬까요? 왜 버스안내원을 갑자기 여성으로 바꾸었을까요?

  그리고 조선 무렵에 왜 여성한테 장옷이며 쓰개치마를 씌웠을까요? 마치 ‘차도르’처럼 여성 얼굴을 가려야 할 까닭을 생각해 보자고 우리한테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 여성사를 제대로 바라보자고 묻습니다.


(1961년에) 버스안내원을 여성으로 바꾼 것은 ‘상냥하고 친절함’이 요구되는 서비스업이나 단순 작업에는 여성이, 숙련과 강한 힘이 필요한 작업에는 남성이 알맞다는 논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에 따라 역할이 달라야 한다는 논리로 여성과 남성이 해야 할 일을 구분했던 것이지요. (199쪽)

노동은 인류를 유지시킨 중요한 삶의 동기이자 고리입니다. 여성은 단 한 번도 노동의 역사에서 벗어난 때가 없었고 지금의 역사를 일구어 왔습니다. (192쪽)


  가만히 보면 지구별 뭇가시내는 ‘하루도 안 쉬고’가 아닌 ‘눈을 붙일 틈마저 없이’ 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눈을 붙일 틈마저 없이’ 일한 사람인 여성이 있었기에 우리 삶터를 가꾸거나 지킬 수 있었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역사를 ‘가부장 남성 역사’ 아닌 ‘늘 일하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지은 여성 역사’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제부터 새롭게 역사를 살필 수 있다면, 평등뿐 아니라 평화하고 민주도 멀리 있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싸워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평화롭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평등을 이루지 못합니다. 다만,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싸움은 부질없어요.

  이제 사내들이 눈을 뜨고 마음을 열기를 바라요. 바늘하고 실을 손에 쥐어 봐요. 손수 옷을 짓거나 손질해 봐요. 빨래비누를 쥐어 걸레를 빨아서 집안을 훔쳐 봐요. 도마질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김치를 담그면서 춤을 춰 봐요. 아이들을 학원에 그만 내몰고, 집에서 아이들하고 함께 배우고 놀고 생각하고 꿈꾸고 책도 읽고 영화도 나란히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워요.

  앞으로는 함께 일하고 함께 쉴 수 있기를 바라요. 앞으로는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참다운 평등, 슬기로운 민주, 사랑스러운 평화를 우리 보금자리부터 가꾸어 온누리에 고루 퍼지도록 마음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여성들이 커피를 타거나 책상 닦는 일 따위를 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아예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직장도 많습니다. 이런 흐름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싸움이 있었지요. (188쪽)


  여성사는 ‘여성만 높이는 역사’가 아닙니다. 여성사는 여성하고 남성이 같이 읽으면서 새롭게 배울 옛 발자취입니다. 어제를 살아온 여성사를 다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읽기에, 앞으로 살아갈 길에 참하고 착하며 아름다운 걸음걸이로 피어날 수 있지 싶습니다.

  여성 사무직 노동자가 힘겨이 벌인 싸움은 여성 사무직 노동자한테만 이바지하지 않았어요. 모든 사무직 노동자한테, 또 모든 노동자한테 이바지합니다. 여성사란 ‘평등하지 못한 삶터가 평등을 바라보며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면서, 슬기롭게 삶을 짓는 길을 배우도록 북돋우지 싶습니다. 새롭게 태어날 한국사를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제대로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2018.5.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8.04.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