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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인 이상 근무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이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일과 가정의 양립 없이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해결이 요원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를 두고 왈가왈부가 많다. 유연근무제도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업무량이 줄어들 리는 없기 때문이다. 혹 월급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하는 이들도 꽤 된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물가를 감안한다면 지금의 월급으로도 삶이 빠듯한 탓이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다분히 기업의 입장을 대변한 표현이 한동안 세계를 주름잡았다면, 이제는 인간을 바라볼 차례다. 가족을 가족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아실현은커녕 자잘한 취미활동조차도 할 여력이 닿지 않는 지금에 대한 불만이 폭주 중이다. 과감히 직장을 때려치우고 제3 의 길을 찾아 떠난 이들도 있기는 하나 그들의 도전 또한 불안하긴 마찬가지요, 모두에게 그들처럼 살 것을 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전 세계 모두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안이다. 보다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파 전 세계인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책은 ‘2017년 유럽 최고의 문제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주4일 근무시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토일요일에 일을 안 함을 감안한다면 하루 더 쉬는 것에 불과함에도 전혀 다른 삶의 패턴이 가능할 듯했다. 3일을 연달아 쉰다면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증가한다. 월화를 일하고 수요일에 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왠지 이러한 상상은 너무나도 이상적으로 느껴진다. 만일 단골 음식점이, 슈퍼가, 약국이 단 4일밖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면 어떠하겠는가. 내가 덜 일하는 건 좋지만 남도 그래서는 생활이 피폐해질 것만 같다. 프랑스인 저자는 주4일 근무에 도전한 몇몇 기업의 사례를 제시했다. 남녀노소, 직급 불문. 아직은 소수에 그치고 있으나, 주4일 근무로 인한 악영향은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일례로 한 회사의 CEO가 사무실을 일주일에 3일씩이나 비우면 큰일이 날 거 같았는데,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직원들이 중요 결정을 직접 해가며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자존감 또한 올라갔다. 일에 파묻혀 제 생활이라고는 없었던 CEO 입장에서도 배우자와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음이 좋다 했다. 무엇보다도 한 노동자의 근무일수가 줄어듦에 따른 추가 고용의 필요성이 증대한 점을 저자는 높이 샀다. 더는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없는 시대이므로 현재 혼자 하는 업무를 여럿이 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혼자서도 잘 해내고 있는데 굳이 추가 인력을 투입해야 할 필요성을 기업은 당연히 느끼지 못할 것이요, 노동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임금이 대폭 삭감될 수도 있음을 감안한 탓에 일자리 나누기에 결사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소폭의 임금 감소는 감안해야 한다. 지금 100을 받고 있다면 그 수준은 97, 98 정도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새로이 채용된 노동자 또한 97, 98 수준의 임금을 받게 된다. 그럴 경우 기업이 추가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고 저자는 보았다. 저자는 5일을 내리 출근해야 하는 때보다 교통비가 줄어들며, 식비 또한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근무 시간이 감소했지만 전문 인력이 조직에 더 증가하였으므로 오히려 생산성은 향상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과연 주4일 근무시대를 꿈꾸어도 괜찮은가. 서글프게도 오늘날 시장은 인간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지녔다. 시장은 오직 숫자만을 헤아린 끝에 한 개인을 비능률적이라며 내친다. 그렇게 해고당한 이들이 우리 사회에도 상당수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장에 의해 결정된 무질서한 노동 분배’가 우리 사회에 이미 팽배해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국민투표와 협상으로 결정된 세련된 노동 분배’로 바꾸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신자유주의 측에서는 몸서리치겠지만, 거짓 해결책을 세뇌시키려는 모든 획책에는 지적 투쟁으로 맞서야 한다고 저자는 결연히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물었다. 내가 원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단지 짧은 시간 일하는 게 좋은 게 아니다. 노동과 노동 사이에 지친 나를 보듬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싶다. 남들만큼 강하지 못한 나에게는 그와 같은 시간이 필히 필요하다. 노동시간 단축이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할 수 있는 해법이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