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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삼위의 하나님에 의해 쓰여졌고, 그 분에 대해 쓰여진 책을 넘어선 그 분 자체의 말씀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삼위의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결합되어 삶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존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강조하였고 삼위의 하나님을 성경에 비추어 소개하였다. 이 책 또한 하나님을 아는 데에 좀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삼위의 하나님에 대한 바른 예배와, 그가 세운신 교회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잘 설명하고 강조하고 있다. 유해무 교수님은 고려신학대학원(예장 고신) 교의학을 가르치던 학자로서 삼위의 하나님께 대한 송영과 예배를 강조하고 공교회의 회복을 강조한다. 그리고 목회자인 목사이자 설교자로서 교우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잘 전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책 또한 믿고 읽어도 된다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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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듯 삼위일체론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기독교를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삼위일체론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뜻이고,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이다. 단일신론(유일신론)이라는 점에서 유대교, 이슬람교와 공통점이 있지만, 삼위일체론에서 기독교와 공유하는 종교는 하나도 없다. 심지어 기독교 내부에서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삼위일체론이다.
문제는 기독교의 유일한 텍스트인 성경에 ‘삼위일체’에 대한 문자 자체와 구체적 언급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관한 증거를 수합하여 그 관계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이므로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에 명확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삼위일체론이 진리로서 교리화 되기까지 많은 토론과 논쟁을 낳았다. 바로 이 점에서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삼위일체를 하나님의 정체가 아닌, 교회가 만들어낸 (또는 선택한) 인위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한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의 핵심인 삼위일체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단일신론’적으로만 따르고 있어 교리와 삶, 교회와 세상이 통합되지 않는 한계를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신앙의 기초인 성경, 삼위일체론의 내적 현장인 예배, 교회사, 외적 현장인 교회와 세상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삼위일체론의 본질과 의미를 설명한다. 분명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교회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학자들의 해석과 논쟁은 문자 언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메시지는 삼위 하나님을 주(主)로 시인하고, 믿고, 예배드리게 하신다. 이러한 과정을 독후감상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매우 조심스럽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에 이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삼위일체론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결고리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 이 책과 저자에게 감사하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누리고 있는 신자라면 ‘삼위일체론’을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지식이 아닌 신앙의 차원이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자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달려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경에 없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이유가 궁금한 신자에게는 이 책을 추천한다. 하나님을 더욱 알고 싶어 하는 그 소망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배하고, 풍성한 은혜의 삶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하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