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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계는 현상 세계라고 했다. 우리는 현상 세계에 있는 것들을 감각을 통해서 보고 듣고 만지면서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이데아의 모사에 불과한 가짜라고 했다. 풀라톤은 몸과 감각에 묶여 망각된 사실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을 철학의 사명으로 삼았다 - p.145
영상으로 본다면 어디선가 본듯한 영상이다. 키아노리브스가 주연을 했던 1999년도에 나왔던 인간의 기억을 지배하는 가상현실세계가 메트릭스였다. 그 영화의 한장면을 철학책에서 만났다.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이데아에서 말이다. 메트릭스가 철학자의 생각이었어? 의문을 품은건 이 책의 중반부가 넘어서서의 일이다. 플라톤 철학과 '역사적 종교'와의 만남이라는 교부 철학을 정립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나오는 부분이니 말이다.
네이버 케스터가 뭔지 모른다. 컴퓨터를 다르기는 하지만, 카페와 블로그 활동이 전부였으니, 인터넷 포탈 사이트가 있다해도 그걸 가지고 내게 도움이 되는 뭔가를 결사적으로 하지는 않는것 같다. 그런데 이책, 선전문군에 네이버캐스트에 연재 중인 '철학의 숲'이 더 친절하고 말랑말랑해진‘철학의 숲, 길을 묻다’로 다시 태어나다! 라고 적혀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보고, 호응을 얻었단다. 인터넷 연재 글이, 책으로 나올정도면, 얼마만큼의 호응을 얻어야 나오는지는 알고있다. 찾아보니, 만명이 넘게 글이 올라오면 댓글을 달았단다. 그래서 궁금했고, 더 혹한건 풀빛 책이라 혹했다. 작년엔가 <동양철학스케치>를 읽었었다. 어려웠다. 그런데, 계속 읽히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의심치 않고 읽기 시작했다.
<철학의 숲, 길을 묻다> 철학이라는 단어자체에 거부감이 드는것은 나만이 아닐것이다. 그런데, 이 철학으로 숲을 만들고, 그 속을 산책 하라니, 보통사람인 나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하지만, 책한권 뽑아들었으니,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형광펜 한자루 손에 들고 학부시절때 처럼 줄을 그어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철학은 문제 지기의 시발점인가, 아니면 문제 해결의 종착점인가로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글을 쓴 네명의 저자들은 시대를 달리하는 22명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제기한 중심 질문과 그들이 제시한 핵심 답변이 무엇인가를 끄집어 내고자 노력을 했단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속에 22명의 철학자의 이야기가, 고대, 중세, 근대순으로 나뉘어서 담겨져있다. 인물 중심으로 철학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어서, 저자들의 말처럼 접근이 용이하다. 그리고 그네들이 이야기하는것처럼 철학적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나에겐 적잖은 재미를 안겨준다.
서양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학문과 동시에 탄생했다. 오늘의 철학의 역사를 기록한 거의 모든 책들은 밀레토스라는 소아시아의 도시에서 서양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데, 그곳에 뛰어난 세명의 인물이 살았다고 한다. 그 들은 서양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그리고 아낙시메네스다. 그리고 사모스 섬 출신의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 학파도 서양철학의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믿을만한 문헌은 풀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에 의해서 체계화 되었다. 철학의 탄생을 말하는 고대 편에서는 탈레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데모크리토스,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마르구크아우렐리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굉장히 재매있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정말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철학을 노골노골하게 만들어 놓았다. 만물의 근본요소라고 하는 아르케로 부터, 피타고라스 철학의 핵심인 코스모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의 근간인 로고스까지 정신을 쏙 빼놓기도 하고, 플라톤이 쓴 <대화편>에 대한 논증들도 재미있다. 소크라테스 사후에 저술한 대화편에 들장하는 소크라테스를 통한 플라톤의 철학역시 그렇다. 이데아를 말하는 플라톤과 현실세계를 탐구하는 아리스토 텔레스를 통해 모든 학문의 예비학인 논리학이 창시된것또한 재미있다.
서양 중세 철학은 기독교 철학과 동의어다. 또 기독교 철학은 기독교 신학과 동의어다. 문제는 기독교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라는 것이다. 중세철학에서는 기독교가 계시 종교라는 사실이 철학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내포하고 있는데, 기독교는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 이것은 이치에 맞고 맞지 않고를 따지는 문제가 아닌 엄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진리를 이야기하는것이다. 이 진리와 이치를 따지는 철학을 어떻게 메울것인가가 중세 철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초기 교회의 아버지로서 기독교에 신 플라톤 철학의 옷을 입힌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철학을 교부 철학이라 하고, 기독교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옷을 입힌 아퀴나스는 기독교 철학을 스콜라 철학이라 한다. 저자들은 중세철학을 "믿음과 이성의 양 날개를 달다"라는 부재아래, 아우구스티누스, 이븐 루슈드, 토마스 아퀴나스, 윌리엄 오컴을 이야기 한다. 이븐 루슈드(아베로에스)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 아니지만,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안 인물인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라틴어로 번역해 유럽에 전한 이슬람의 철학자 이다. 하지만, 정재영작가의 말처럼 너무나 <로슈드 두들겨패기>의 희생양이다. 소통의 길을 연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닫힌 소통 구조에서 큰 피해를 본 철학자. 소통의 부재로 나타날수 있는 집단광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장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원리 찾기로, 근대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암흑의 세대'를 '계몽의 세대'로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근대 철학자들은 근대 이전의 모든 권위와 전통을 의심했다. 3장은 근대 편에서는 이성을 중시하는 근대 합리주의 철학자와 경험을 중시하는 근대 경험주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 철학 시험시간마다 줄기차게 외우던 연역적 사고방식과 귀납적 사고방식의 합지주의 계열의 철학자와 경험주의 계열의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정치와 도덕의 영역은 다른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마키아벨리부터 프랜시스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 존 로크, 라이프니치, 버클리, 마지막으로 서양철학의 갈림길을 내고 있는 데이비드 흄까지. 22명의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끝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철학자들이 꿈꾸던 장밋빛 그림만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빛과 그림자를 함께 고려하면서 이 책을 읽으니, 철학이 노골노골하니 재미있다. 저자들이 이야기하는것처럼 철학적훈련을 한것이라고는 장담을 못하겠다. 워낙에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져있다,철학적 접근을 하지 않았던 터라 22명의 철학자 이름, 인지조차도 쉽지 않지만, 철학이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네라고 고개한번 끄덕인걸로 만족이다. 언제 이 많은 철학자의 생각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겠는가. <철학의 숲>에서 몇일동안 참 잘 놀다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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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숲 길을 묻다. 서양의 대표 철학자 22인과의 리얼한 맛짱 틸레스에서 흄까지 생각과 역사를 한눈으로 정리하다.. 이 책을 첨으로 보면 굵은 글씨가 뚜렷하게 나와 호기심을 돋구워준다. 고대에서 근대까지 22명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던진 질문과 그들이 내 놓은 핵심 답변을 수면 위로 끌여 올린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한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생각과 그들의 진실된 모습을 우리가 좀 더 가까히 잘알수있는 기회가 되는 순간이기도 한다. 솔직히 철학의 흥미를 못느끼고 지루하게 생각한 나이다 고등학교때 륜리 시간에 그렇게 많이 배웠던 철학 시간을 하기 싫고 지루하게 생각한 그때 철학자 역시 나에게는 너무나 관심 밖에 이야기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그런것이 요즘 나이가 들면서 철학에 대해 철학자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이책을 조금씩 읽고 하였다. 이 책은 정말 철학과 철학자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도 좀 흥미를 가지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우리 인간들도 살아가면서 많은 고민도 해 보고 답을 찾아 보기도하기도하면서 이 책에 나오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그들의 중요한 고민이 무엇이며 그 고민의 제기한 질문과 응답은 서로 어떻게 연결 되어있는지 또 그과정에서 철학 개념들은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 눈여겨 볼수있는 기회를 이 책에서 얻을수가 있다는것이 중요하다. 위대한 철학자 그들이 살았던 사회와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품고가는 고민을 생각할수있는 기회가 된다는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많은 철학자들도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도 별다른게 없다는것이 난 이책을 읽고 요즘처럼 고민도 하기 싫고 또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무조건 그냥 포기하려는 요즘 너무나 허약하고 나약한 현대인들에게 이 책을 통해 좀 생각을 할수있는 그리고 해답을 찾을수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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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를 다룬 책들은 많이 있다. 예전에는 주로 철학 전공자를 위한 책이 주로 번역 출간되었지만, 요즘에는 일반인을 위한 책들도 출간되고 있다. 이 책도 물론 일반인을 위한 교양 서양철학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과 다른 책들과의 큰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저자가 여러 명이라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볼 때 철학사를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철학사는 철학을 철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사는 철학자와 그 철학사상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큰 흐름가운데 개개의 철학자를 평가할 뿐만 아니라 그 사상의 경중을 따져 중요한 부분만을 소개해야 하는 작업이다. 게다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통찰과 더불어 그 철학자가 쓰는 용어의 미묘한 늬앙스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철학사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업해야 함과 동시에 주관이 필연적으로 개입되게 된다. 그래서 철학사는 단순히 철학자의 사상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또 하나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단점이 생겨난다. 그것은 중요한 철학자들만 기술한다 해도 모두 다루다 보면 주마간산이 되기 쉽고, 저자의 철학자의 관점에 의해 어떤 철학에 대해 지나치게 경중이 갈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의 숲, 길을 묻다”는 방대한 철학사를 한 사람이 모두 다룰 때 생겨나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4명의 저자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핵심적으로 기술했을 것이고 또한 4명의 관점에서 철학사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물론 이 부분은 자칫하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네이버 캐스트의 ‘철학의 숲’에 연재된 글들을 엮은 것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에 전문적인 철학 개념을 소개하기 보다는 현대적 입장에서 재미있게 철학에 접근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상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대인들인들에게,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핵심주장만 나열하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냥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고민을 하게 된 이유와 과정을 지켜보면 오늘날 우리의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철학을 골치 아픈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난해한 책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철학을 좋아하거나 철학에 흥미를 느끼는 일반인 들에게 이 책은 서양 철학의 길잡이로서 손색이 없다고 할 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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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집에 있었던 '철학에세이'가 너무 낡았고 먼지가 날리다 보니 읽기가 다소 어려웠다. 쉬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번에 아이들 책으로 좋아하던 출판사 '풀빛' 에서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되었던 대한민국의 젊은 철학자 4인의 철학 칼럼을 엮은 책이 나왔다고 해서 보았더니 책 표지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내용에 있어서도 아주 괜찮았다. 철학은 어째 읽을 때마다 생소하니 새로운 것 같다.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잔상과 잔기억이 많이 남게 해주는 철학 칼럼이었다. 철학에세이와 마찬가지로 서양철학의 본류를 거슬러 올라가 그 흐름을 따라 흘러내려오면서 철학자 중심으로 다시 개편하였다.
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서양철학사의 역사를 다 훑는다기 보다는 철학자 개개인으로 바로 들어가 그들의 중심 원리나 논리, 철학을 바로 접하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서 덜 지루하고 원하고 궁금해 했던 철학자의 세계로 바로 들어갈 수가 있다. 물론 깊이있게 철학을 좀 더 알고 싶으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철학자의 저서를 다시 찾아서 번역본이나 원서를 읽으면 될 것이다. 어짜피 인생은 짧고 할 일도 많아서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으니 이런 책으로나마 철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말 만족을 주는 책이었다. 고대철학에서부터 중세철학, 근대철학까지 22명의 사상과 인물을 접할 수 있다.
고대 철학자 하면 떠오르는 탈레스(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등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저자를 달리하여 철학칼럼 내지는 에세이 내지는 간단한 인물서치, 철학이야기를 읽는 느낌인데 글 하나하나가 너무나 재미있다. 술술 읽힌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는 송하석님의 글이 가장 차근차근 깊이있게 와 닿았다. 술술 읽혔고 바로 그 다음 글인 박일호님의 글은 조금 덜 감기는 맛이 있었다고나 할까.
탈레스의 경우는 기원전 6세기의 인물이라 기원전 625?~ 기원전 547? 이런 식으로 적혀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2600년전의 시대는 어땠을까. 지금 보다는 훨씬 유치했거나 덜 문화적이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만물의 근원은 물이니 불이니 흙이니 하는 말에 코웃음을 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이런 것을 생각해 내고 우주와 인간을 생각한다는 자체가 놀라운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앎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는 점과 신비적이고 신화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답을 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를 고대 철학의 원류라고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탈레스의 저작이라고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남아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다만 후대 철학인들이 탈레스가 썼다고 하는 글을 그들의 글에서 만날 수 있는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서도 고대 철학자들의 계보나 사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하니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들의 저서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문화유산적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닐까 한다.
디오게네스 라에티우스가 탈레스의 저작이라고 전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써본다. 이 책에서 읽고 심하게 감동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신이니,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주이니, 신이 창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거대한 것은 공간이니,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가장 빠른 것은 지성(知性)이니, 모든 것을 관통하여 내달리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것은 필연(必然)이니,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가장 현명한 것은 시간이니, 모든 것을 결국 명백하게 밝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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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철학의 숲’이 이렇게 책으로 엮여져 나왔다. 쉽고 간결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었던 그것이, 이렇게 책으로 나오게 되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겠다. 특히 나처럼 네이버에서 하는 모든 연재물들을 보지 않는 경우에는 정말 천우신조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순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쓰여진 서양철학 이야기라니, 기분도 좋고 감회도 새롭다. 사실은 나는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저 고등학교 때 입시를 준비하면서 한 번씩 들어봤던 인물들이 나열되어 나오는 것에 새롭고 신기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책으로 만난 철학가들은 어딘가 달랐다. 내게 생각할 것을, 진리를 찾을 것을 요구했다. 나는 단지 고등학생 때처럼 뭔가를 외우고 정리하는 것을 원했는데...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작업을 한 지 만 3년이 조금 넘었다. 그 동안 나는 무턱대고 철학을 사랑했었다. 쌓아둔 책도 한 가득이고, 좋아하는 철학가나 저자와 저서도 생겼고,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마다 철학을 전파하려는 역사적 사명을 띠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철학책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철학적 사유는 전혀 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내가 끌렸던 철학책의 수준이 낮았던 것일 수도 있겠고, 역사적인 연대 순으로 철학가들을 나열만 해둔 책을 봤던 이유도 있겠다. 아니, 어쩌면 나만의 철학적 사유를 정립, 발전시키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른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철학에 대한 열병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 짧은 시기에, 많은 경험을 했던 개인적인 이유로 철학 책만 보면 가슴이 뛰던 것이 옛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독서 기호를 정하는 데에 나는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걸렸나보다.
내가 철학 책을 손에 들 때는 왠지 내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란 느낌을 가진 적이 잠시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것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내가 읽고 있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고 싶은 그런 나만의 자만심이 그렇게 표출되었다. 그래서 과거엔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저없이 ‘철학’이라고 했던 내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있기는 한 것인지를. 그저 내 침대 위에 나뒹구는 책들을 보면 확실히 철학은 아니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자기계발서 조금, 신앙서적 조금, 고전 조금, 인문학 조금, 과학 조금, 소설 조금, 에세이 조금.... 뭐, 그렇게 내 지평을 넓혀가는 중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과거의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난감했다. 정말로 내가 철학 책을 좋아하기나 했었던가 싶어서. 그 만큼 난해하고도 지리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이 읽기가 지리했던 것이 어쩌면 내가 다 알고 있는 철학가들만 등장했기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한다. 물론 여기 등장한 모든 철학가들의 사상을 하나라도 완벽히 소화해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자신은 없지만,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모르는 것이 나오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나로선 조금 힘들지 않았나 싶다. 고대에서 몇몇 철학가를 제외하곤 중세와 근대 철학가는 다 아는 분들이시니. 만약 내 말을 이 책을 쓰신 저자들께서 들으신다면 얼마나 실소를 하실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솔직히 각 철학가들의 주요 물음과 그 해결책을 나열한 것으로서는 내 지적 호기심이 만족시켜지지가 않는다. 이제는 그런 것말고 그런 여러 물음들이 현대의 어떤 것과 맞물려 돌아가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제껏 철학의 바다에서 뛰놀았던 대가로 이들을 조금이나마 친근하게 느껴진 것이니, 이제껏의 시간이 아깝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히 말해, 서양철학은 머리가 아프다. 현실적인 문제가 아닌 왠지 탁상공론만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사물의 변화를 부정한 파르메니데스의 일자론도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 않는가. 왜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역설을 고수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동양 사상에 등장하는 역설은 상당히 좋아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 말이 그 속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깊은 내용,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를 담고 있기에, 너무나 사랑한다. 그런데 서양철학은 조금 말을 위한 말만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물론 그들도 이것이 현실과 위배되는 것을 아니까 의견의 길을 떠나 진리의 길로 가는 과정을 만들어, 존재론이란 한 분야를 창시했다고 하지만, 꼭 그렇게 힘들게 돌아와야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지적 욕구란 어느 짧은 기간에만 발휘되는 것인지,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이론 공방은 어쩜 인간을 지치게 하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이와는 다르게 동양 사상은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은데 말이다.
내가 여기서 인상깊게 봤던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에게 가리워져 서양 철학의 아버지란 자리를 놓친 프로타고라스이다. 솔직히 고대 철학자들은 대부분의 사상을 다 알고 있어도 그들의 이름 하나를 정확하게 외울 수가 없기에 이 프로타고라스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처음 들어본 것인지, 아니면 처음 뇌리에 박힌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철학의 관심을 자연 영역에서 인간 영역으로 이동시킨 소크라테스보다도 더 이전에 프로타고라스가 그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크라테스에 비해 그 이름이 가리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 놀랍지 않은가! 소크라테스에 비해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그도 소크라테스처럼 덕에 대해 주장했고, 대화법의 달인이었다) 프로타고라스이지만 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졌을까.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그의 주장은 진리의 상대성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정해주고 그에 따라 실천하기를 주장하는 철학이란 학문에서 진리의 상대성이란 철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기에 그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솔직히 보통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 세 사람의 이름만이 그리스 철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말이다. 아예 이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텐데 프로타고라스, 그의 이름을 기억해줄 이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철학 책을 탐독하면서 진리의 상대성에 대한 유혹을 받았다. 내게 아직 옳고 그름이란 분별력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인데, 포스트모더니즘이 딱히 내게 그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내 의견이 절대와 상대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이제는 진리는 무조건 절대적인 것을 인지하고 있으나 그 당시에는 내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 이럴 땐 살인도 용납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든가, 이럴 땐 도둑질도 용서해줘야 한다든지 제 멋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영역에 철학의 초점을 맞춘 프로타고라스가 왜 맞지 않는지 이제는 확실히 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그의 이름을 내 머리에 각인해둘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역량이 있어도 뚜렷한 기준이 없다면 안된다는 것을. 특히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이란 영역에서는 그것이 아주 치명적이란 사실도 말이다.
철학의 숲을 거닐면서, 나는 과연 길을 찾았는가 묻고 싶다. 지금으로선 그 길을 오히려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인터넷에 연재되었던 글의 특색에 맞게 깔끔하고 알기 쉽게 정리해둔 것만큼은 좋은 평가를 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의 후속 작업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과연 언제까지 수동적으로 누구의 어떤 사상만을 익혀야 하겠는가. 어떤 사상들이 있었는지, 어떤 시대에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를 이제야 알았다면, 이제는 그것에 대해 능동적으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밥만 떠먹는 수동적인 역할이 아닌, 내가 현대 사회에서의 문제에 있어서 철학적 사유로 대응하는 능동성을 보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궁금하다. 이 책의 제목은 『철학의 숲, 길을 묻다』인데, 왜 그 안에 서양 철학만 들어가 있는 것인지. 동양 철학도 충분히 길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아쉬운 것은 다음을 기약하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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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인가? 혹자는 사고하는 방법이라고도 하고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인생, 세계 등등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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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면 한때 일반인이 접근하기 왠지 어렵게만 느껴지는 학문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 한참 화두가 되고 있는 하버드교수 강의를 통해 철학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실생활에서 공감할 수 있는 사례를 통한 철학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철학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 속에 녹아있는 사상, 사고를 표현하는 것이란 것이 이해가 갔다.
이 때문에 ‘철학’이란 학문에 지적호기심이 슬슬 발동했다. 하지만 철학에 관한한 많이 문외한인 내게 철학에 관한 좀 쉬운 책이 필요 했다. 중간에 읽다가 어려워 책장을 덮을 일이 없는 책으로 말이다. ‘조금 쉽게 사상과 철학자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없을까?’ 하던 중 네이버케스트를 통해 몇 번 읽어보았던 글들이 묶인 책이 이번에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손에 잡은 것이다.
철학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 제기와 답변의 연속선상에 있는 듯하다. 어떤 철학자가 질문을 던지면 그에 답을 구하고, 또 그 답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 책은 22명의 철학자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과 답을 담는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 절실히 요구한 하나의 물음.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중대한 의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고대 철학의 탄생을 이야기한 탈레스에서 아우렐리우스, 중세 믿음과 이성의 양 날개를 달다의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윌리엄 오컴, 근대에 새로운 세계를 향한 원리 찾기인 마키아벨리에서 데이비드 흄까지 22명의 철학자를 만날 수 있다.
이 중 관심이 갔던 이야기는 고대철학인 헬레니즘기의 스토아학파 이야기다.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은 자연의 섭리와 일치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고, 온 인류의 복지 증진을 위해선 모두가 평등하게 사랑해야한다는 사해동포주의를 이론적 배경으로 한다. 지금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와 동떨어지는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불교의 교리와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명상록]. 그것에는 행복한 삶의 방식에 대해 이런 주장을 한다. 불행의 원인은 생각을 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으로 욕망을 절제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바람직하다고. 그의 삶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낸 황제였기에 그의 글은 현실적 피곤함을 달래기 위한 글들로 인식할 수 있지 않나싶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지금시대에도 동서양 모두에게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적 가치관일수 있다.
잠깐씩 짬 내어 읽을 수도 있고 본격적인 철학 전문서를 접하기 전에 읽어보면 많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대표 철학자와 그의 핵심적 사상이 머리에 쏙 들어오도록 서술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물중심의 핵심적 사상이 담긴 철학사가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다루어져 있어 읽는 속도감도 좋은 편이다. 관심 가는 철학자만 따로 펼쳐 읽어도 무리가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처음부터 차근히 읽어서 머릿속에 자연히 철학사가 그려질 수 있다면 이해하기가 더욱 수월할 듯하다.
그리스 철학용어인 아르케, 로고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토론을 좋아하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며, 서구의 전유물인 합리주의, 정치와 도덕의 영역이 어떻게 다른가? 와 같은 이야기를 사진자료와 함께 흥미롭게 만나볼 수 있다. 아직 철학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읽기에 적당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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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면 웬지 지적인 냄새가 강한것 같다...
그리고 예전 텔레비전 드라마를 떠올려보면 조금은 칙칙하고 꾸밀줄도 모르고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한탄과 시대에 대한 불평불만들을 늘어놓는 사람이 꼭 한명쯤은 등장하는데
알고보면 철학과 학생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ㅋㅋㅋ)
'철학의 숲, 길을 묻다'-는 시대순으로 고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그 시대를 거쳐오면서 가졌었던 철학적 주제들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친근한 이름도 있고 처음 들어 본 이름들도 등장하였다.
특히 중세의 철학자들 중에 이븐 루슈드, 윌리엄 오컴은 처음 접하는 철학자였다.
누구나 듣고 알법한 인물들이 아니여서 조금 더 관심이 갔는데,
이븐 루슈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라틴어로 번역해 서구 전통사상을 이어줬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평가를 받기도하였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나와 다른 사고는 결코 환영받지못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다르게 시대를 거치면서 그 이전세대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의문을 제기하고
혹은 비평, 평가하면서 이야기가 단락지어지는게 아니라 긴밀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탈레스에서 시작하여 데이비드 흄에 이르고, 만물의 근원 역시 '물'에서 시작하여 흄의 귀납논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적 사고들을 접할 수 있었다.
책속에 등장하는 많은 철학자들 중에 관심이 간 철학자는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다.
로마 5현제의 마지막 황제였던 그는 재위기간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으며 5현제가 다스리던 로마는 가장 강성한 시대였다. 그런 계속된 전쟁상황속에서도 명상록 12권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자문을 해보았는데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옮겨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였다.
'불행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행은 영혼의 외투 혹은 오막살이에 불과한 육체의 조절되지 않은 기질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불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불행이 존재할 수 있다는 당신의 확신으로부터 온다.........'이 글에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불행의 원인은 불행하다는 생각 그 자체일뿐이며 불행이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우리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말하곤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신다고'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나는 마음이 복잡하고 어지러울때 철학서를 집게 된다.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생각의 정리를 하게 되고 조금은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은 나에게 비타민이다.
이 책 역시 나에게 비타민 같은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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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모르겠지만, 철학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이 아닌가 싶다. 철학이라는 말이 사실 나에게도 그리 익숙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쉽게 얘기해서 어떤 일을 상상하고 그것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철학이라는 것은 어쨌든, 현재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삶의 기본이 되는 학문인 것 같다. <철학의 숲, 길을 묻다>는 고대- 중세 - 근데의 순서대로 서양의 대표적인 철학자 22인이 던진 질문과 그들이 내놓은 핵심 답변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음미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각기 철학을 전공하거나 관심을 갖고 철학에 대한 서적을 집필한 4명의 작가들이 저술한 이 책은 유명 철학자들의 생각을 친절하게 요약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말하고자했던 핵심적인 사상과 생각을 더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고민한다. 철학자들의 의문과 그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 그들이 내린 결론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식으로 보았을 때 때로는 우습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내던진 질문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인간이 고민하고 궁리해야 할 문제들이다.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인간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는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도 인간의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고, 우리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기에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2500년 전 살았던 탈레스부터 근대 경험주의 사상의 흄까지, 22명의 철학가들의 생각과 고민을 함께 하는 내내 학창시절에 배웠던 내용을 하나씩 떠올려보기도 하고,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나 몰랐던 부분을 다시 확인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의 문화, 사회 등 많은 부분이 서양식이고 서양에서 흘러들어왔다. 서양의 철학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부분의 토대가 되고 뿌리가 되기에 이렇게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잘 풀어서 쓰여졌기에 읽는 내내 지루함은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될 현실적인 문제에 이런 철학적 사고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것인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볼만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잇는 시간이었기에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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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된 철학의 숲 중 고대 그리스철학부터 근대철학까지 연재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철학사를 알아가는 수많은 책 중의 하나이다.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면 철학사의 인물 중심으로 핵심이 되는 질문과 사상을 조금 더 많이, 입문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된 한 철학자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는 화가 나면서 짜증도 났다. 아마 현대철학자에 대한 글 같은데, 포털 사이트에 연재된 수준 치고는 너무나 난해해서이다. 이 연재물의 의도는 아마 대중에게 철학을 쉽게 안내하려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쉽게 인도하는 길마저 따라가지 못하는 독해력에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는 대신에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다시 읽어본 철학의 숲은 정말 재밌다. 네이버에 연재된 기획물은 각 인물 중심으로 수록되어 있다면 이 책은 각 시대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들어있는데 구성과 설명 이유가 명확하게 들어있고 인물 중심의 철학 속에서(철학자들은 아마 철학의 숲이 각 나무에 해당할 것이다)방향과 중요한 문제를 잊기 쉬운데 그 흐름을 잊지 않게 한다. 내 기준에는 고대 철학을 설명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을 통해 플라톤의 철학관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간다. 4인의 저자가 각 인물을 담당했기 때문에 아마 일관성이 떨어지기 쉽다고 생각했는데 한 권의 책으로 보니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이 담겨있어서 일관성이나 수준의 차이는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을 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해결되지 않지만 중요한 문제, 아포리아를 끝까지 주시하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근대 합리론과 경험론을 새롭게 완성하려 한 칸트, 헤겔, 마르크스 등 독일 관념론의 철학자와 19세기 철학자까지 다 수록되지 못한 것이다. 이후의 철학사는 이 기획물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이었던 서동욱의 <철학 연습>에서 현대철학까지 그 맥락을 볼 수는 있지만, 독일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역시 빠져있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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