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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전태일, 그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각기 다르다. 노동투쟁을 위한 제몸을 불사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소수가 아닌 소수를 위해 희생한 사람일 수도 있다. 심지어 운동가적인 측면을 떠나 노동자 시절 동료들에게 따뜻했고 가족에게 세심했던 인간 전태일의 순수한 면모를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15편의 작품은 그런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국내 노동자들의 암울한 현실을 그리는듯 싶었지만 결국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이틀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은 15인의 소설 김남일씨의 작품이다. 천재토끼 김상문을 읽었던 게 불과 한달이 채 안되다보니 토끼를 넙죽 서명에 갖다놓고는 난해한 사상과 말투로 독자를 혼란시키는 그의 작품에 연거푸 당한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왜, 김남일씨의 작품이 이 작품집에 타이틀이 되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김남일씨의 작품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럭 머리부터 아파올 것 같다. 난 당연히 머리가 아팠다.
강윤화의 '지금은 여행중'의 경우는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인데 다소 무거울 수 있는 키워드를 덤덤하게 그렸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어찌보면 현실을 다른 인물들에 비해 유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두 여인의 일상적인 삶과 그 안에서 적당히 감동도 주는 내용이 편안해서 좋았다. 그런가 하면 김도언의 '그건 아니야 오빠'의 경우는 노동자였던 동생이 스스로 겪은 험난한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과 같은 이들을 부려먹는 위치에 놓인 오빠에게 지금의 행동을 반성하라는 편지형식의 내용은 넓은 강에 던져지는 힘없는 돌멩이의 작은 파문처럼 덧없이 느껴져 글 자체는 와닿았지만 그만큼 안타까운 맘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기실 그 두남매 뿐 아니라 뒤에 나오는 이시백의 '전태일이 밥 먹여주냐' 역시 자신도 힘들게 살아왔으면서 정작 그것이 못된 시어머니가 더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처럼 자신의 처지와 같은 직원들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지배자의 모습을 그렸다. 정도상의 '어떤 순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입이 썼다. 망루사건은 아직 오래된 과거가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위의 언급된 작품들 외에도 한 편 한편이 전태일이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15편의 이야기가 서로 제각각인듯 싶지만 결국은 소외받은 대상에 대한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현실이 고단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윤이형의 '은지들'에서 아마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혹은 자신이 노동자 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인격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 책을 덮고 부끄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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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열사 전태일. 그를 기리는 소설이다. 15명의 작가들의 짧은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예전에 나는 광화문에 가서 시위를 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들의 모임에서 무대에 올라 시를 읊은 적도 딱 한번 있었다. 물론 내가 활동한 기간은 기껏 3달 정도였다.
나는 그들처럼 진지하게 임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허나 그것이 내게는 뼈아프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 소설집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가슴에 울림을 느낀다.
1.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 김남일.
이 소설은 토끼가 화자로 나온다. 왼발만 사용하는 토끼가 0.7평 무덤에 죽었다. 그리고 이 무덤이 무한한 가치가 있음을 기득권들에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풍자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는 웃음이 나기도 하고 작가의 풍자솜씨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건, 아니야 오빠 - 김도언
이 소설은 아주 중요한 대목을 짚어냈다. 왜 기득권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그 기생충 같은 인간들은 왜 불사신처럼 계속 나타나는 것일까? 그 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노동자 집안의 오빠는 성공해서 하청업체의 사장이 된다. 그런데 그 오빠 회사에서 파업이 생긴다. 이를 안 여동생이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의 핵심은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서울,기차 - 조해진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현실은 비참하다.
인간의 최소 기준이라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배 - 최용탁 농민이 나온다. 그들만큼 인류역사에서 오래된 노동자가 있을까? 그녀의 남편은 아이 둘을 남긴 채 죽었다. 그녀는 홀로 아이를 키우기가 감당이 안 된다. 농사 일이란 것이 부채를 안고 가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농민들이 행복하게 산 적이 있었던가?
農者 天下之大本(농자 천하지대본) 농사가 천하의 으뜸이라는 것은 맞다. 그 으뜸을 위한 적이 있었던가? 기본을 무시하면 언젠가는 큰 일이 나고야 만다.
2.
15편의 소설들 중에서 내 마음을 움직였던 소설들이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계급사회는 계속 되지 않겠는가. 또 지루한 싸움도 계속 될 것이다.
바뀌려면 국민이 바꿔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바꿜 것인가.
가랑비에 옷젖는다고 조금씩 노력하면 바뀔수는 있다.
허나 그 세월이 언제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차라리 하늘에서 성군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
이 책은 노동자들의 삶과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했다. 지금도 그들은 아퍼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저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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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삶이보이는창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소금에 절여져 풀 죽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무더기 소금으로 얻어맞아 정신을 잃은 한 겨울 배추처럼. 껌 값도 안 되는 땅 한 뙤기에 눈독들이며 고속 행진하는 부르주아들이 득시글거리고, 물대포가 활보하는 사각지대를 채운 흑과 백들이 가득하고, 왼발을 준 토끼에게 오른발마저 내어달라는 사냥꾼들이 빈번하고, 잠잘 시간 좀 달라는데 기계 가동은 누가 하냐며 윽박지르고, 인간도 아니야 라는 말을 남발하는 인간을 심장으로 쳐 죽이는 일이 다반사고, 적을 알아야 나를 안다 무쉰 소리를... 적일지라도 나는 공부하러 간다는 신념으로 조국을 떠난 남자에게 국가보안법에 의거하여 그 놈의 법정, 법정에 출두하라는 도그새끼들이 넘쳐났다.
제 둥지를 만들지 않고 다른 둥지에 제 새끼를 살짝 갖다 놓는 비열한 저 뻐꾸기 같은 도둑놈들. 미련한 거북이보다 늘 한발 빨랐던, 저 약삭빠른 토끼새끼들. 그래서 그 거북이들은 매번 고놈들에게 추월당하고 배신당하고 말았다. 부지런한 땀조차 이겨낼 수 없는 놈들이었기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언제 황새를 따라갈 수나 있었나), 그야말로 이판사판 난장판이란 이런 것이다, 를 제대로 보여준 시범케이스였기에(그들의 시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음... 참 장하기도 하지. 그렇게들 식탐을 부리더만, 배들 부르겄소이다!
9만 9천 9백 9십 원을 가진 수전노는 10만 원을 채우려 분주하고, 9만 9천 9백 9십 평의 땅를 가진 부동산 업자는 10만 평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더라. 왜 우리는 진드기와 개미처럼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공생관계나 협상을 못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단물만 쏙 빼 먹은 채 딱새에게 진드기소굴을 바치는 간사한 개미밖에 못 되는 것일까. 왜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은 없을까. 도대체 언제까지 닿을 듯 말듯 보일 듯 말 듯한 신기루에만 그쳐야할까. 한 송이의 전태일을 피우기 위해 울었던 소쩍새들이 얼마나 많은데... 도대체 몇 송이의 꽃을 더 불살라야 살만한 세상이 온단 말인가. 언제... 혹 수만 수천 송이의 염화炎火를 바라는가.
제발 인간답게 좀 살자.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부탁인가. 왜 싫어? 이건 니들이 잘하는 청탁과는 질이 다르다. 청탁에 돈세탁을 말아먹으니 그렇게도 좋더냐. 제발 그러지들 말자. 소경이 될래 장님이 될래 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어디 그것뿐이었더냐. 정신도 놓았고 팔다리도 고장내주지 않았더냐. 심지어는 집도 내주었다. 그러고 나니 우리네 집은 저 황량한 길바닥뿐이더라. 그래놓고 니들은 잠이 오더냐. 밥이 넘어가더냐. 얼씨구! 그렇다 뿐이겄어. 부럽지도 않다, 행여 넘보지도 않으마. 그러니 제발 일할 곳과 밥만 좀 먹게 해도! 제발 잠만 자게 해달라, 이말이다!
전. 태. 일. 붉은 화염 속에서, 그는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그의 육신과 심장의 잔분마저 오늘도 지하에서 통곡할지도 모르겠다. 여기 15인의 작가들과 더불어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기 어디에서라도 편하게 잠들었기를... 바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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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전태일을 키워드로 한 소설가 15인의 짧은 소설. 전태일이 세상의 개화를 위해 불살랐던 그의 삶과 희망들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꿈꾸고 바랬던 세상은 어떤것이었을까.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작은이들을 위한 꿈을 키워주고 희망을 안겨다 줄 작은 몸부림은 우리는 보아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소설가 15인의 글이 아닌 우리들의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은 여행중 -강윤화의 글을 보면 룸메이트와 생활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삶의 이야기이다. 진주라는 여자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모습들을 그려냈다. 지금은 할수 없지만 언제가는 나의 희망을 꿈꾸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것 같다.
그건 아니야 오빠- 김도언 가부장적인 사회와 남호선호사상으로 빚어진 장남에 대한 기대가 많았음을 여실히 보게 되고 오빠에 대한 자랑과 집안의 대한 자랑보다는 이제는 성인이 되어 느끼는 오빠에 대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 동생에 대한 바람을 본다. 못배웠고 가진것 없는 이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소박한 꿈이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에 대한 불합리하고 열악한 문제들을 꼬집고 그들의 고통을 알려주며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바라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비명 -이재웅 버스를 통해 일어난 일들. 그안에서 벌어지고 일어나는 작은사건들을 통해서 조금은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지만 버스를 통한 일상의 힘든 모습들을 잘 표현하고 아픔을 그려 내고 있었다. 버스라는 매개체가 어찌보면 서민들의 삶인것이다. 힘든생활과 지침을 바라보며 삶을 지탱해야 하는것이다.
우리네들의 삶의 다양한 모습속에서 웃고 울고 아파했던 모습들을 작가들을 통해 때론 기쁨으로 때론 슬픔으로 함께 하고 있다. 세상속에 버려진 자신을 보는것처럼 힘겨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단 한사람이라도 나를 보아주고 안아줄수 있다면 얼마나 큰 행복이며 아름다운 빛이 되어 주는지를 생각하게 만든 시간이 되었다. 우리안에 있는 작지만 소중한 마음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을 비춰주는 작은 기초가 되었으면 하고 연말이 되는 이 시점에 소외되어 있는 이웃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며 도움을 줄수 있는 모습이 되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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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노동자의 고뇌 노동의 현장, 그리고 권리 주장, 대한민국의 노동의 현실이 지금까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노동 3권 보장과 함께 근로기준법 준수, 그들의 아픔과 삶의 역경이 숨 쉬어 있는 작업장. 대한민국의 결코 하루아침에 선진국이 되거나, 부강한 나라가 발전되어 질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노동의 현장에서 자신의 몸과 젊음을 바쳐 온 근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좌익, 우익도 어느 정파에도 분리할 수 없는 것인데도 항상 그들에게 자신들과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성향을 노래를 한다. 때론 그들에게 가정의 삶을 박탈하고, 노동현장에서 이단아라고 부르면서 직장에서 퇴출시키고 또는 그들의 다시한번 일어날 자리를 내 주지도 않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소통의 언저리에는 항상 국민이 있다. 또한 그들의 목소리는 생존의 목소리와도 같다. 땀 한방울, 그들의 열정 속에서 대한민국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노동자! 작은 소망, 그들의 꿈은 원대하지 않다. 매우 소박하면서도 간절하다. 개인의 욕심도 아닌 평온과 가정, 직장 생활의 보장이 되어져야 한다. 사회는 그동안 전태일이 살신성인한 근로자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야 한다. 참으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어 지는 건지, 정의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 있게 노동자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없을까? 어떤 계층과 계급이 필요하지 않는 것 같다. 따뜻한 사회, 배려하는 사회, 소통하는 사회 저편에는 언제나 기름 때 묻히고, 자신의 직분을 다해서 사회 구성원으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정의를 부르고 ! 아픔을 함께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노동자들의 함께 하고 있다. 전태일 젊은 날의 초상 그가 남겨진 의로운 행동으로 그가 죽은 평화시장에서부터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당신의 남겨진 뜻과 함께 대한민국의 노동자의 가슴 한구석을 가득 채울 뜨거운 피가 스며든다. 열사가 만들어 낸 참다움을 함께 짊어지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 오늘도 노동 현장에서 근로자들의 귀중한 땀방울을 생각하게 한다. 모든가 우리 가정에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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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을 읽고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내 자신의 나이 육십대를 향하여 부지런히 가고 있다. 시골 농촌에서 중학교를 다녔었는데 가정 형편의 어려움 때문에 운이 좋게도 도전에 성공하여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할 수 있었다. 3년간의 서울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많이도 서울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공부를 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보았던 많은 것들이 훨씬 나중에 직업을 교사로 바꾸어 정착하게 되면서 사회과를 맡게 되었고, 교과 시간에 활용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간은 정말 어떻게 변화될 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느 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바로 실천으로 보여주는 용기와 함께 그 혜안을 존경하지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자신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청계천 쪽으로도 많이 갔던 적이 있었다. 당시는 매우 어려웠던 우리의 시대적인 모습이었다. 현재와는 완전 다르게 당시 가장 활기를 띄었던 것이 가벼운 경공업 쪽이었고, 대표적인 것으로 합판, 신발, 섬유 등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손이 직접 갈 수밖에 없었고, 많은 노동력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보수는 아주 형편이 없었던 것이다. 더더구나 당시 근로 여건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보니 많은 불만이 쌓였어도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전태일 열사이다. 당시의 참혹했던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고, 사람을 나사못 동강이쯤으로 여기던 일터를 바꾸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감히 목숨을 바쳤던 열사 전태일을 기리기 위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15명의 작가들의 짧은 소설들이 수록된 제목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이다. 지금은 당시의 상황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발전과 함께 법제화 등 획기적인 안정책도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에게도 다른 변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늘어만 가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일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다시는 전태일 열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정책 당국이나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먼저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로서 다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좋은 분위기로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다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정을 나누면서 이익을 공존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 나가는 그런 멋진 모습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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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강윤화 깅경은 김남일 김도언 김종광 김하경 손홍규 윤이형 윤정모 이시백 이재웅 정도상 조해진 최용탁 한상준 삶이보이는창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과반이었던, 나는 여고시절에도 남산아래의 학교를 다니면서도, 매일 지나다니는 명동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그 뜨거운 광주사태에 대해서도, 그리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학생운동에 대해서도 아무 관심도 아무런 인식도 없었다. 오죽하면, 이 책의 서평단을 글귀를 보기 전까지는 '전태일'이라면 '분신자살' 말고는 달리 딱히 아는 것이 없었다. 서평단 응모를 하기 위해, 검색을 해보고야, 전태일이, 그저 막연하게 알고 있던, 대학생 운동가가 아니고(아마 이한열, 박종철과 혼선을 빚고 있었나보다.), 나보다도 훨씬 나이도 많은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의 무지에 대해 너무 놀라웠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지금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더니, 고대사 보다는 오히려 근 현대사에 더 흥미를 느끼고, '전태일'에 대한 책을 읽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 로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그가 분신자살로 수많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여놓은지가 40년이 흘렀다는 걸 왜 인지하지 못했는지...... '전태일'을 키워드로 하여 15인의 소설가들이 짧은 소설을 써서 모았다. 다음이 열다섯 편의 소설이다. 1. 지금은 여행 중|강윤화|11 이 책을 읽으면서도 사실, 어떤 글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책<은지들-윤이형> <비명-이재웅>도 있고, 어떤 글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글<게으름뱅이 형-손홍규>, <어떤 순간-정도상>도 있고, 또 어떤 글은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서, 가슴 한 저리가 시린 글<배-최용탁>도 있다.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무지한 독자임이 부끄럽다. 특별히 어떤 글이 좋았는지는 말하기 힘들고, 대부분의 글들이 비록 짤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와 생각을 담고 있어서, 단편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왜 우리 주변에는 이토록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리 많은 건지...... 이유도 모른채, 아무런 해명도 듣지 못하고, 힘들게 분노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이웃이 많은 건지...... 열심히 살면, 노력한 대로 댓가를 얻어야 하는 것이 인생의 이치이거늘, 왜? 가난은 반복되야 하는지......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 15편의 짧은 소설을 통하여, 내가 얻은 생각은 세상은 참 살아가기 힘들구나. 내가 받은 해택을 참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나는 너무 오만하고, 무지하고, 나태하게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깊게 하게 만들었다. 여러 사람들의 고통을 모른 채, 타인의 피와 땀을 인지하지 못한 채. 조금씩이라도, 세상에, 이웃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아침이다...... 늦은 밤 독서를 마치고...... 2011.12.14.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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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에 하는 TV 드라마 중에 1970년대 정도를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이 있다. 만날 출생의 비밀에 불륜에 가정 불화에 관한 이야기만 보다가 예전을 배경으로 하여 꿋꿋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니 신선하다. 그중에 여주인공은 가내수공업 정도의 작은 봉제공장에 다닌다. 지지리도 못살면서도 다른 사람의 어려운 형편을 알아주고 자기 것을 기꺼이 나눠주는 여주인공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 그 사람을 보면서 전태일 열사가 떠올랐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이미 40년이 넘은 과거가 되었다. 그때와 지금은 달라진 것이 있을까? 1인당 국민소득은 많이 늘어났지만,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는 더 심해지지 않았을까? 이제는 청계천이라는 단어에서 봉제공장 대신 복원된 하천과 거대한 다슬기 조형물을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씁쓸한 마음과 함께,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2011, 강윤화, 김경은, 김남일, 김도언, 김종광, 김하경, 손홍규, 윤이형, 윤정모, 이시백, 이재웅, 정도상, 조해진, 최용탁, 한상준 지음, 삶이보이는창 펴냄)을 읽게 되었다.
총 240쪽의 많지 않은 분량에 15분의 작가가 쓴 이야기가 모여 있으니, 이야기 한 편당 분량은 아주 적다. 그래도 그 안에 이야기가 완결된다. 학비를 벌기 위해 또는 먹고살기 위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젊은이들(지금은 여행중, 영희의 조건), 가치관의 변질(그건 아니야 오빠, 태일돌멩, 전태일이 밥 먹여주냐), 촛불집회(지를 자자! 찌찌!, 화이바), 이주 노동자(서울, 기차), 정치적 신념(……그 뒤,), 철거(어떤 순간), 고문(게으름뱅이 형), 자아의 분열(은지들), 삶의 고난(배), 전태일 열사를 잊은 현실에 대한 풍자(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학비를 마련하느라 과외 외의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한 학기 돈을 벌어서 한 학기 다니는 학생도 본 적이 없다. 내 교제폭이 좁아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학교 안에서도 빈부 격차가 확연하다. 학교에서 벌어진 격차는 사회에 나와서 더 벌어진다. 한번 미끄러지면 올라가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다시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고, 그를 닮은 현실의 전태일들을 둘러보자. 내 앞가림을 하기에도 숨이 차지만, 다른 이들도 챙겨서 함께 나아가는 여유를 갖자.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이다. 2012년은 모든 이들에게 더 따뜻하고 더 행복하기를.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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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주제 중심의 책과 스토리가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멈출 수 없는 책. 그 두 가지가 환상적으로 결합한 책이라면 최고의 선택이겠지만, 굳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르게 될까. 나의 대답은 ‘때에 따라서’ 이다. 생각하고 싶은 날과 생각 없이 쉬고 싶은 날이 있듯 책읽기도 사고와 재미에 대한 비중이 늘 달라진다. 이 책은 전자의 책이다.
‘전태일’ 이라는 주제로 15명의 한국작가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태일은 없지만, 아직 남아 있는 우리 시대의 ‘지금-이곳 전태일’의 이야기는 쉼 없이 많은가보다. 학비를 위해 내래이터 모델을 하는 학생부터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가족, 공장노동자, 외국인노동자, 사상적 경계인으로 살아온 교수까지. 때로는 노동자의 시선이 되고 때로는 가족의 시선이 되고 때로는 반대편 이해관계자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작가에 따라 노래하는 주체도 시선도 문체도 다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 짧은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두드린다. 여기 전태일이 있다고.
이 책과 함께하는 시간동안 가슴이 괜스레 먹먹해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리석다 미련스럽다 탓하며 누군가를 향해 삐딱했던 나의 시선도 돌이켜보고, 잊고 싶었던 이야기들도 하나씩 꺼내보았다.
그런데 말이다. 나중에 이 단편은 각각 얼마나 기억에 남을까? 이번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글쎄...’이다. 단편이라는 옷이 적합한 이야기이기에 단편으로 쓰인 것이 아닌 단편으로 써야하기 때문에 단편이 된 이야기들. 길이에 대한 제약이 눈에 보여 불편 아닌 불편이 때로 느껴졌다. 또한 인상 깊은 아이디어들은 있었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스토리’는 적다. 단편소설이 주는 매력 중 하나가 특유의 치밀함이라 생각되는데 주제를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탄탄한 스토리가 아쉽다.
단편모음이기에 조금 쉬어 가려 읽기에는 마음이 무겁다. 조각조각 읽어갈 때마다 조각 각자의 재미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았다. 작은 조각천으론 낡고 촌스러운 천이지만 이어붙이고 나면 따라할 수 없는 특유의 따뜻함이 넘치는 조각보처럼 전체로 하나가 된 단편집이기에 좋았다. 그래서 단편들이 아닌 하나의 큰 이야기로 기억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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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왼발잡이 토기의 무덤』은 고 전태일 열사를 키워드로 한 테마 소설집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 현장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건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들의 심리 치료 과정을 담은 다큐멘타리다. 상담을 위해 모인 그들의 모습에선 어떤 감정의 형태도 찾을 수 없었다. 무서운 침묵만이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절망으로 몰았을까.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변화를 요구하며 몸을 던진 전태일이 떠나고 41년이 지났다. 세상은 변했지만 여전히 노동자는 고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15명(강윤화, 김경은, 김남일, 김도언, 김종광, 김하경, 손홍규, 윤이형, 윤정모, 이시백, 이재웅, 정도상, 조해진, 최용탁, 한상준)의 작가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시대의 노동 문제를 이야기한다.
수록된 소설을 소개하면 이렇다. 이 시대의 대학생 영희는 하루가 모자라다. 출석뿐이 아니라 졸아서도 안되는 수업도 빠지지 말아야 하고, 새벽엔 지하철역에서 토스트를 팔고 밤마다 편의점에서 졸린 눈으로 일해야 하다, 결국 다단계에 빠져버린 수많은 영희를 그린 <영희의 조건>, 집안의 모든 기대와 지원을 받아 성공한 오빠가 노동자를 거리로 내쫓는 모습에 실망한 동생 영옥이 충고의 편지를 보내는 김도언의 <그건 아니야, 오빠>는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기사를 보는 듯 하다. 실낱 같은 청춘의 간절함을 농락하고 생계를 담보로 노동자를 협박하는 사회 말이다.
은지1은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자신이 노동자인지 헷갈린다. 그저 별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은 단어다. 은지3은 적극적으로 노동자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다. 다른 은지는 먹고 살기도 힘든 현실에 노조나 집회는 다음 문제다. 그렇다. 윤이형의 <은지들> 속 각기 다른 은지들은 하나의 은지다.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니 불안하여 쉽게 용기가 나지 않는 은지로 살고 있는 이는 얼마나 많을까.
은지4는 높은 이상을 세우는 것과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며 자학하는 것 말고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늘 혼자 고민하고 혼자 초라해진다. 뉴스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고 있는 저 사람들은 뭔가 신념이란 게 있어 보인다. 자기 입장이 하나로 확실히 정리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 은지4는 그럴 수가 없다. 아무래도 자신은 그런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저 뉴스에는 죽음이 관련되어 있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지 상상도 안 된다. 은지4는 자신이 벌레임을, 따라서 죽음이라는 붕산에 가까이 갈 수 없음을 안다. 그 말만 보면 어깨가 움츠러들고, 나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 131
술에 찌든 아버지의 폭력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가출한 강철은 철거민을 쫓아내는 현장을 지휘한다.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들을 떠올리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철거현장에서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망루에 불길이 닿는 순간, 그 곳에서 어머니를 본다. 정도상의 <어떤 순간>은 서울 용산 철거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각각 다른 모습의 전태일을 그린 것이다. 여전하게 개선되지 않은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시들어 가는 노동자,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서울에 왔지만 병을 얻고 불법 체류자로 남은 이주 노동자의 모습, 학비를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젊은 청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작업 현장에서 다쳐 결국 움직이지 못하는 노동자, 촛불 집회 현장의 모습, 어떤 희망도 없는 비정규직의 현실, 개발이라는 이유로 살 곳에서 쫓겨나는 노동자는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름없다. 그러니까 세상은 변한 듯 보여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건 309일 만에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이 있고 희망버스를 응원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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