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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화계의 위대한 개척자 나 군이여.
1926년 10월 1일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나운규(羅雲奎)의 영화 <아리랑>!!
<아리랑>의 열기는 단성사에서 상영이 끝난 이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내내 전국 방방곡곡에서 상영되었던 이 영화는 1942년 조선인들이 징용으로 끌려와 있던 홋카이도의 탄광에서도 상영되어 조선인 노무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한국 영화사를 이야기 할 때 맨 먼저 업급되는 인물이며, 영화다.
<아리랑> 영화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준 충격은 대단했다. 예컨대 카프 소속의 평론가 최승일(崔承一)은 소설이 하지 못한 것을 영화가 하고 있다며 이전의 조선영화 모두를 불살라버려도 될 정도의 거상(巨像)이라 극찬했다. 이렇듯 <아리랑>은 식민지 조선영화인들에게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넘어야 할 산이었다. 36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살다 간 나운규는 <아리랑>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선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인으로 기억되었다.
36년이란 생을 살다간 춘사 나운규가 갖는 한국 영화사의 의미와 그의 작품 '아리랑'이 갖는 의미는 시대가 갖는 아픔과 그 아픔에 대한 항거, 독립정신등이 아우러져 우리에게 큰, 너무나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 시대의 아픔을 갖고 있는 춘사와 아리랑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