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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별5개 리뷰들의 전반적인 무식이 너무도 커 하나하나 짚으며 이야기하자니 끝이 없다. 한국군을 침략군으로 규정하여 일본제국의 악행과 비교하는 것도 그렇다. 한국군은 남베트남군과 같이 싸웠다. 남베트남 군은 베트남인이 아닌가? 그들도 베트남 인이고, 그들을 도와 싸웠는데 어떻게 “침략군“인가?” 이 책은 거창하게 한국군의 “양민 학살“을 언급하며 월남전 참전 용사들에 대한 악마화를 독자들에게 호소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제시하는 학살의 숫자는 1000명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 북베트남군이 포로 수용소에 아무 재판없이 가둬 학대한 “베트남 인”의 숫자가 200,000명이다. 베트남 전은 베트콩들과 북베트남군이 양민들 사이에 섞여들어가 사병들로써는 적과 아군을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전쟁이었다는 특징이 있는데, 그렇게 미국마저 도피한 전쟁에서 한국군이 가장 높은 전공을 세울 수 있었던 방법은 모든 참전국 중에서 양민들에게 가장 친화적이었던 군대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 당시 군사 전문가나 저널들의 보도와 기록에서도 숱하게 찾을 수 있다. 양민들의 농사를 위해 댐을 지어준 기록이나, 양민들을 완전히 우리편으로 만들어 베트콩들이 양민 사이에 섞여들어가기 힘들게 하는 한국군의 전략을 외신 기자들이 보도했던 기록들이 있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특수상황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글 게릴라전이라는 특수성과, 베트남 양민의 한 집에서 아빠는 남베트남군이고 형은 베트콩이고 동생은 북베트남군일 정도의 분열이 비일비재했던 현장 상황에서, 하나의 군대가 사살한 양민이 1,000명이라는 것으로 국군 전체를 학살군으로 호도할것이면, 그 당시 한국군에 대한 양민들의 신뢰도가 너무 높아져 노략한 한국군의 군복을 입고 자국 마을들을 습격한(한국군에 대한 거부감을 심기위해) 베트콩들의 전략이나,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군 사이의 피튀기는 전투들이나, 서로 상대방의 포로들에 행했던 잔인한 고문이나, 상기했듯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도 남베트남인을 200,000명 씩 포로수용소에 5년 이상 재판없이 가둬 아사시킨 북베트남 정부는 왜 학살자로 비난하지 않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숱하게 벌인 잔인한 행적들은 “전쟁이니까 어쩔 수 없는것”이고, 한국군이 외국의 정글땅에 놓여져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오인사살한 민간인이 1,000명 남짓인것은 ”가혹한 전쟁범죄“이며 ”침략군의 씻을 수 없는 죄악“ 이라는 이중잣대를 지성인의 양심으로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절제력을 칭찬하고 그정도에서 멈출 수 있었던 군기를 높게 사야 하는것 아닌가?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잔인성을 이야기하자면, 남베트남 군 포로를 잡아 심문한 후 얼굴에 대나무로 만든 박스를 씌우고 그 안에 쥐를 여러마리 넣어 산 체로 얼굴을 파먹게 하여 처형하고, 미군을 사로잡아 그 포로의 비명이 미군부대에 들릴 거리에서 고환과 성기를 갈라 피가 빠져 죽을때까지 묶어놓는 등의 행적등은 Carlos Hathcock의 수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런 류의 잔인한 행위를 하는 군대를 상대한 사람들이 그 당시 국군이었다. 게다가 저런 행위는 베트남 인이 다른 베트남인들에게 숱하게 저지르는 짓이었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전쟁터가 그 당시 베트남이었다. 나는 이런 현장 상황을 알면 할 수 없는 주장을 초장부터 하면서 책 소개에는 “그렇지만 국군들도 피해자”라며 짐짓 중립적인 척을 하려는 이 일체의 행위를 순수한 지성인의 양심으로 높게 살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딴 사람이 지금 이걸 모르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 의도적으로 이러는 것인가? 두 경우 다 내가 다른 소우주에 대한 존경으로 읽을만한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 작가가 주장하려는 바와 다르게 양민 학살을 하지 않은 한국군의 수가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양민 학살을 하지 않은 이 대다수의 참전 군인들은, 6.25를 겪고 공산당에 의해 가족과 민족이 산산이 찢긴 비참한 가정에서 자라나, 그나마 있는 가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가기 싫은 전쟁에 참전했던 위대한 군인들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엔 한국이 파병을 하지 않을시 주한미군이 베트남으로 옮겨간다는 이야기가 정설이었다. 2024년 현재에도 주한미군이 전부 후퇴하면 무슨 군사적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1960년대 당시 휴전선에서 실제로 남북한 양측의 침투요원들이 붙잡히고 사살당하고 실종되던 시대적 상황에서 그들이 그나마 있는 가족이라도 국가적 위협에서 지켜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그리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들이 지원했겠는가? 당시 국군장병들이 베트남에서 받던 월급은 대략 2달러 정도였고 이는 그 당시 남베트남군이 받던 월급보다 적다. 이들이 돈을 벌러, 그저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국가주의의 광기에 미쳐서 참전했다는 해석들은 그저 철저히 무식에 불과하다. 누가 알지도 못하는 외국 땅에 죽으러 가고 싶었겠는가? 이들은 말 그대로 자기 가족을 지키러, 단 십년전에 온 국가를 초토화시켜놓은 공산당이 또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걱정 앞에서 자원하여 참전했던 것이다. 이 책과 별5개 리뷰들의 전반적인 무식이 너무도 커 하나하나 짚으며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한국군을 침략군으로 규정하여 일본제국의 악행과 비교하는 것도 그렇다. 한국군은 남베트남군과 같이 싸웠다. 남베트남 군은 베트남인이 아닌가? 그들도 베트남 인이고, 베트남인들을 도와 싸웠는데 어떻게 “침략군“인가? 물론 그 숫자가 몇이든 전쟁중에 희생당한 양민들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내 말은 베트남 사람들이 다른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는 그런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엄연히 어떤 베트남인들의 편에 서서 싸운 한국군을 왜 베트남 전체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가혹한 학살자 취급을 하느냐이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적군”들과만 싸웠고 수많은 베트남 양민들을 구했다. 북베트남군은 수없이 많은 남베트남 양민들을 죽였다. 이들은 베트남 인이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왜 이들은 베트남전의 모든 특성을 무시하고,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들의 (한국군과는 비교도 안되는)전쟁범죄들은 무시하는지 그 의도가 심히 의심스럽다. 남의 나라를 말 그대로 침략하여 식민지화하고 아무 저항 없는 자들에 대한 수십 수백만의 희생자를 내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잔인성으로 역사에 오명을 남긴 일본제국과 파월용사들을 같은 선상에 놓는 이런 일은, 멍청함은 죄악이라는 말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하는 일이다. 나는 이 작가와 이 리뷰들을 “베트남인”인 남베트남 인이 보고 무슨 말을 할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그 “베트남 인”에게 이 작가는 무슨 대답을 할지도. 전쟁 직후에는 참전군인들을 국익을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한 정부에게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무시당해, 그 이후에는 좌파들의 군사독재정부를 향한 비판을 위해 이용당해, 이후 고엽제의 후유증에 미국의 거대기업들과 싸우지만 그 마저도 국가의 지원이 없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전쟁을 모르는 아랫 세대들의 이유없는 혐오와 무시의 대상이 되고, 그 얼마 없는 이 억울한 자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책도 결국 와서 “일본,광주,독재” 얘기만을 해낼 사람들의 정치성 놀음의 도구가 되니, 이들에 대한 동정이 끝도 없다. 민족적인것도, 국가적인것도, 남성적인것도 아닌 순수히 인류애적인것만으로도 이들이 받을 상처가 걱정돼 내가 오히려 고개숙인 창피함을 느낀다. 배울만큼 배웠을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아직도 이 불쌍하고 위대한 사람들에게 합당한 존경을 보내지 않고 학살자라는 오명만 씌우는 이 매체가 내가 “월남전 참전수기”를 검색했을 때 찾게되는 유일한 책이라는 것이 이 나라의 역사인식의 실태를 보여준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될 남은 군인들을 위하여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은 최선을 다했고, 누구보다 잘 해내었다는 걸 기억하는 젊은이들은 있다는 것을. 당신들은 위대한 군인들이었다는것을. 이 책을 쓴 자와 별5개 리뷰를 달며 일본 침략군과 본인들을 동일시하는 자들이 월남전을 기억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들을 위대한 군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