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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 이 시집을 들고 있었다. 한 편 한 편 음미하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생각했다. 시인이 바라보는 것들과 생각하는 것들을.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참 따뜻하다. 남편 초상을 치른 친구를 위해 돌아가며 며칠 같이 자주는(「어떤 품앗이」), 우리 텃밭 상추와 배추가 타들어가는 걸 보다 못해 별말 없이 요소 비료를 허쳐주는(「별말 없이」), 병원에 태워다 드린 화자를 찾아 참깨 한 봉지를 들고 일년 넘게 찾아다닌(「참깨 차비」), 누군가 밭 매달라는 부탁을 거절해 놓고 하루종일 나와 풀을 매주는(「마늘밭」) 할매들이 있다. 그런 따뜻한 마을에 시인이 있다. 시인은 지금 호숫가 옆,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살고 있다. 마을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시인은 흙바닥에 돌만 놓고 올린 컨테이너 집에 들어앉았다. 마을에는 자두나무(유일한 총각이 심은)가 있는 정류장이 있다.
정읍 터미널에서 섬진강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내리면 거기가 우리 마을이다. 자두나무 정류장에는 언제나 섬진강 물줄기인 옥정호가 마중 나와 있고, 벚나무를 따라 안길로 몇걸음 더 들어가면 종석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침동(종암)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우리 마을 장금리 수침동은 전북 정읍시 산내면에 안겨 있는데, 산내면은 동으로 성주상, 서로 감투봉, 남으로 종석산, 북으로 왕지봉을 두르고 있다. - 「창문 엽서」, 박성우
시인은 스스로 이 시집을 냈을 당시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아내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월급 받던 일을 때려치우고 시를 쓰기 위해 시골에 들어앉았던 시기이다. 자연이 있고 서툴지만 마음을 채워주는 농삿일이 있고 고향 마을 어른들과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곳에서 시인은 자연과 생명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며 시를 쓴다.
돌밭
돌밭 윗머리에 집을 앉혔다
땅이 풀리자 지붕이 기울어 겨울이 나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
경칩 전에 산개구리가 나와 가을에 심지 못한 차(茶) 씨를 세 알씩 묻었다
산수유나무와 매화나무를 얻어 괭이가 먼저 돌밭에 뜨건 꽃을 핑핑 피웠다
도랑에서 길어 나른 물은 돌밭을 돌돌돌, 도로 도랑으로 갔다
산수유 홍매 피어, 돌밭에 오래 머물러 주었다
차씨 움틀 날 아득했지만 아내는 자꾸 신 것이 먹고 싶다고 했다
돌밭 위에 얹힌 엉성한 집, 계절이 바뀌어도 선풍기 하나 치워놓을 공간 하나 없는 집에서 계절이 바뀌고 아이를 안게 된다. 비록 살림은 궁색하지만 시인은 자연 속에 묻혀 자신 또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그 삶은 무언가 목적이 있는 삶이 아니라 나와 자연, 나와 타인이 함께하는 삶이다.
노루 발자국
사흘 눈발이 푹푹 빠져 지나갔으나 산마을 길에 찍힌 건, 노루 발자국이다
노루 발자국 따라 산에 올라갔으나 산마루에서 만난 건, 산마을이다
아랫녘 산마을로 곧장 내려왔으나 산마을에 먼저 당도한 건, 산이다
먼 산을 가만가만 바라보았으나 손가락이 가리킨 건, 초저녁별이다
초저녁별이 성큼성큼 다가왔으나 밤하늘에 찍힌 건, 노루 발자국이다.
사흘 눈발로 먹을 것이 없어 산마을로 내려온 노루가 걱정이다. 그래서 발자국 따라 올라가 보았으나 보이는 건 다시 화자 자신이 지나온 산마을이다. 산마을에 대한 마음으로 다시 내려 왔지만 다시 산이 보인다. 산을 보다가 이미 해가 지고 별이 뜬다. 별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다 다시 노루를 생각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어느 산골 마을에서 화자는 하루 종일 마을과 산과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자연과의 일상이 자신의 마음을 채워주고 있다.
과거 화자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일이 있었을까? 그것은 자본주의며 문명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일이 딱따구리의 울림과 다름 없다고 말한다.
밥벌이
딱따구리 한 마리가 뒤통수를 있는 힘껏 뒤로 제꼈다가 괴목(槐木)을 내리찍는다 딱 딱 딱 딱딱 딱 딱딱, 주둥이가 픽픽 돌아가건 말건 뒷골이 울려 쏙 빠지건 말건 한 마리 벌레를 위하여 아니, 한 마리 버러지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니, 한 끼 끼니를 위히여 산 입을 울리고 골을 울린다
자신이야 어찌 되었든 말든 버러지가 되지 않기 위해, 한 끼 끼니를 위해 울리고 골을 울리는 딱따구리처럼 밥벌이는 인간의 실존을 위협한다. 월급은 석 달째 깜깜무소식이고 몸푼 아내와 갓난아이가 있어(「쓸쓸한 접촉」)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으로 괴로웠다. 도시에서의 삶은 딱따구리와 다름이 없었다. 이것이 시골행의 배경이 된다. 시골로 내려온 시인은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러모로 서툴다. 서툴다고 불평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다른 농부들에게서 삶의 태도를 배우고 그들이 하는 몸짓 하나하나를 거울 삼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입하
새너디할매가 마늘밭 풀을 맨다
일자도 장소도 틀림없이 지난해와 똑같은 날, 똑같은 밭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미숫가루 한 그릇 타드리고 쓱떡 한 덩어리 얻어먹는데, 해 지기 전에 비차 칠 것 같다는 한 소식 전해주신다 이런 날 모종이 잘된단다 그래요
부랴부랴 읍내 종묘상 다녀와서 고충 모종을 한다 가지 모종을 한다 수박 모종을 한다 호박 모종을 한다 단호박 모종도 단단히 한다 어라, 진짜네
해 지기 전 비가 쳐서 강변에 매어놓은 염소 먼저 들인다
굵은 비 아까워서 물외 모종 심는다 참외 모종 심는다 토마토 모종 심는다 빗방울도 방울방울 방울토마토와 같이 심는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저녁 무렵 입하 비가 마늘쫑 뽑는 소리처럼 온다
초보 농사꾼이지만 계절에 맞게 농사를 짓는다. 농삿일 앞에서 모처럼 화자는 활력이 솟는다. 그리고 작물뿐만 아니라 빗방울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비 소리를 마늘쫑 뽑는 소리와 같다며 정다워한다. 농사꾼에게 비는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가 아닌 반가운 존재다. 비가 오는 날 전에 없던 욕심을 마구 부리고 있다.
풀 잡기
올해만큼은 풀을 잡아보겠가고 풀은 몬다 고추밭 파밭 가장자리로, 도라지밭 녹차밭 가장자리로 풀을 몬다 호미자루든 괭이자루든 낫자루든 잡히는 대로 들고 몬다 살살 살살살살 몰고 싹싹 싹싹싹싹 몬다 팔 다리 어깨 허리 무릎, 온몸이 쑤시게 틈날 때마다 몬다 봄부터 이짝저짝 몰리던 풀이 여름이 되면서, 되레 나를 몬다 풀을 잡기는커녕 되레 풀한테 몰린 나는 고추밭 파밭 도라지밭 녹차밭 뒷마당까지도 풀에게 깡그리 내주고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낮잠이나 몬다
그러나 화자는 마음을 비워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안다. 자연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뜻대로 안 된다고 속상해 하지 않는다. 시인 또한 억지로 자연을 거슬러 욕심을 내지 않는다.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내버려 둔다. 풀이든 사람이든 흘러가듯 그대로 놓아둔다. 마음을 비우면 언젠가 채워지기 마련이다.
----------------------------- 이 시집을 산문집 「창문 엽서」와 함께 읽었다. 시적 상황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인이 들어앉았다는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친절하게도 산문집에는 시인이 직접 찍은 마을 풍경과 사람들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시에서의 인간을 대하는 편안함과 넉넉함들이 이 마을이니까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따스한 호빵 하나 손바닥 위에 얹어 놓고 첫눈을 바라보는 마음과 같은 시를 읽게 되어 읽는 내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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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울기는 참 많이 울었다.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한밤중 방안에서도,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추리 소설을 줄기차게 읽고 찾아서 읽는 나에게 시는 소설 책 사면서 함께 사는 것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그런 녀석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읽는다. "가뜬한 잠"을 읽으면서는 촌에서 자란 나에게 참으로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이 시인 참 마음에 든다라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많이 했다. "사과가 필요해"를 읽으면서 학창 시절이 생각나서 한참동안 깔깔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었는데 그동안 까먹고 있다가 또 이 시인의 시가 읽고 싶어서 "자두나무 정류장" 을 샀다. 역시 그는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나만 그를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 단지 시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눈물이 흐른다. 평일에, 그것도 사무실에서, 그것도 점심시간을 앞둔 그 시간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한참 후에 눈물은 그쳤지만 그 먹먹함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딸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또 펑펑 울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또 울컥한다.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너무 낯설다. 시란 이런 건가 보다. 시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인의 다른 시집도 찾아서 읽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