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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타고 싶다, 비행기! 나는 그냥 타고 싶다. 일단 어딘가로 떠난다.. 라는 그 느낌이 좋다. 들뜨고, 설레고, 불안하고, 긴장된다. 그 느낌이 좋다.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기를 바라본다.
저자는.. '라스베이거스', '찬디가르',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세 도시를 다녀왔다. 몇 박 몇 일인지, 얼마의 경비가 들었는지, 어느 숙소가 좋았고, 어디가 맛있었는지.. 하나도 알려주진 않지만.. 그의 여행 속에.. 내가 들어있었다. 그가 걷던 거리를 다리가 아닌 머릿 속으로 걸었고, 그가 마신 차이를 마음으로 같이 느꼈으며, 그가 느꼈던 백야의 밤을.. 나는 낮잠으로 대신했다..^;;;ㅋㅋ
요근래 읽은 여행 에세이 중에서.. 가장 설레였다. 비행기가 타고 싶다. 훌쩍 떠나고 싶다. 그가 일러준 일상의 일탈을.. 나도 시도해보고 싶다.
p.62 환상은 대개 진부하지만 세상은 보다 진부하다 그러니까 쿨하지 않게 보일까봐 걱정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p.95 욕망의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욕망이 다르기에 종종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누군가가 의지할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밖에 없었다.
p.129 일탈은 자기애에서 비롯된다. 일상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혹은 목표를 향해가는 길을 잃고 잠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일탈의 감행을 고려해볼 만하다. 자기에게 결핍된 돌출행동은 단지 현재의 부정일 뿐이다. 일탈은 나름대로 미래지향적 자의식 발현이다.
p.186 일탈은 복제되지 않아야 한다. 복제되고 재생산되는 순간 일탈만이 줄 수 있는 그 미묘한 긴장감은 사라져버린다. 그건 마치 동일한 내용으로 반 아이들의 절반에게 수여하는 상장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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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님은 워낙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분이시라서 따로 덧불일 말이 없지만, 이 책은 그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감성적인 면이 더 두드러지는것 같다.
책 한장한장을 넘길때마다 짧게나마 나의 소감들을 적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노트에 감성을 적어내려가기가 무척이나 쉬워졌다.
그때에 맞는 펜으로 슥슥 그렸을법한 그림들과, 짧막한 건축느낌,또는 여자. 그리고 여행후기. 오기사님 책을 보고 내 다음생에 태어나면 인테리어를 배워 오기사님 밑에서 일하고 마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나, 정말 건축인테리어가 배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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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나 개천절 연휴에 여행을 가기는 커녕, 연휴가 임박한 시점에도 어디를 어떻게 가야할지 찾아볼 시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결국 책으로 여행하기로 하고 주문을 했는데 노느라 바쁘기도 했고 읽어야 할 책이 많아 연휴가 한참 지난 이제야 읽었다. 혼자 시니컬하게 독백하고, 예쁜 여자와 건물을 좋아하고, 근대 모던보이처럼 산책하고 관찰하는 모습이 엿보여 좀 더 오기사다운 여행책이라는 느낌이다. 세 도시와 오기사의 나르시시즘.
생각해보면 우리는 나라를 여행하기도 하지만 도시를 여행한다. 그 나라에서 아무리 긴 시간을 지내도 마음 먹지 않는 한 나라 전체를 여행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미덕으로 삼는 현대에 도시는 서로 닮아가는데 그 속에 아직 살아있는 그 도시만의 역사와 분위기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기사의 여행책은 너무 좋은 게, 세 도시를 여행하고 나서 도시에 단어 하나를 붙여 별명을 지어주었다. 철저히 개인적일 수 있는 인상을.
"욕망의 도시: 미국 라스베이거스 일탈의 도시: 인도 찬디가르 위안의 도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오기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판에 빠진 사람들보다도 건물들을 부수고 거대한 건물 속에 여러 건물들을 쑤셔 넣는 욕망을 읽는다. 찬디가르에서는 르코르뷔지에의 싸고 실용적인 건물들과 인도 답지 않은 도시 분위기를 보면서, 계획된 신도시 프로젝트에 숨겨진 빈부격차의 슬픈 풍경을 읽는다. 그리고 이름을 러시아어가 아닌 독일어로 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유럽식 건물들을 보면서 러시아를 유럽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욕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크니까 최고라는 자만심을 읽고 묘한 위안을 얻는다. 건축가가 읽는 도시 속 건물 이야기가 참 매력적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그 도시의 지도를 선으로 최대한 단순화해서 보여주는 그림이 인상 깊었다. 그림을 다루는 사람들의 이런 시각적인 촉이 참 부럽다. 얼마 전 읽은 고미숙님 책에서도 인간은 유목민처럼 길을 나선 존재라고 했다. 책 속에서 도시를 걷고 또 걷는 오기사의 모습이 부러웠다. 빨리 대만 가고 싶다!! 나도 조만간 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타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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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 오영욱 / 달 삶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떠나지도 않는다 ![]() ![]() 지난 주 휴가를 가장한 노동을 하러 고향 집에 방문했었다. 여행준비를 마치신 부모님께서 해외로 떠나시고 홀로 집을 지키는 신세가 되었을 무렵. 할 일마저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어버리자 마침내 외로움과 심심함이 3 대 7의 비율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무료함을 달래려 서재에 들어가서 책 구경을 했다. 아주아주 예전에 읽어서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책들과 사 놓고는 읽지 않았던 책들이 서재 벽면 한쪽을 채우고 있었다. 왠지 방치된 책들에 애잔한 마음이 들어 그 중에서 가벼워 보이는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오기사, 오영욱씨의 [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였다.
오영욱씨의 책 들이 대부분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은 비교적 컨셉이 분명한 편이다. 그 컨셉은 [오기사가 다녀온 나르시시즘의 도시들]이라는 책의 부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오영욱씨가 다녀온 곳은 모두 미국의 '라스베가스', 인도의 '찬디가르', 그리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책에서 오영욱씨는 이 도시들과 그것에 투영된 인간의 모습/생각들을 본인의 전문분야인 건축을 매개로 해서 바라보고 있다.
그럼 왜 하필 이 도시들이었을까? 이 세 도시는 공통점이 있으니, 모두 비교적 가까운 시간 내에 계획에 의해 새롭게 건설된 신도시들(라스베가스는 자본에 의해, 찬디가르는 르 꼬르뷔지에의 설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름처럼 표트르 대제에 의해)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마치 자기애의 과잉을 보여주는 듯한 분위기를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어색하면서도 인위적인, 억지스럽기도 한 면도 가지고 있다. 부제에 적혀있는 '나르시시즘의 도시'라는 의미는, 세 도시의 건축에 담긴 인간의 의도를 일종의 '과시'로 보았기 때문이다. ![]() 생각해보면 이유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인위적인 것이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도시 속 창작물인 건축물 하나하나마다 (현재와 비교적 가까운) 현대인들의 욕망이 담겨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쯤되면 이 이야기는 여행지의 건축물을 탐구하는 척하지만 결국은 인간을 바라보고 있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건축물을 잘 아는 사람의 시선에는, 과거 건설자들의 모습이나 의도도 더 잘 보였던 것이 아니었을런지.
하지만 더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긍정적인 이미지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도시들 앞에 따라붙는 '욕망의 도시', '일탈의 도시', '위안의 도시'라는 수식어처럼 각각의 도시들은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는, 단점이 분명한 도시라는 것을 저자는 계속해서 언급한다. 어쩌면 인간의 욕심/바람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그럼에도 계획과는 다른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부족함이 존재하는 도시들을 바라보면서, 결국 인간의 바람과 욕망은 완전히 채워지기 힘들다는 것을 작가는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도시들에 보내는 작가의 연민과 애정은 확고하다. 나는 이 역시 한편으로는 허허벌판 위에 터전을 일구어 낸 인간의 열망을 나름대로 존중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찬디가르 편에서 르 꼬르뷔지에의 글을 인용한 것과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실 상 이 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내용으로 마치 저자가 도시로 떠났던 이유를 말해주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다.
나는 이 글을 보고 저자는 분명 위의 세 도시를 [기계적 합리성에 충실한, 그래서 모든 것들을 산업과 연관된 미래지향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만들어진 도시들]로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실 르 꼬르뷔지에는 대량생산이 하나의 시대의 흐름이고 시대의 정신이라고 외쳤지만, 시대정신에 무작정 편입된다는 것은 때론 자신의 특색과 존재성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찬디가르에 붙은 부제처럼 일탈을 위해 떠났다는 그는, 오히려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만든 그 당시의 일탈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현재의 주류를 만들어버린, 그러나 결코 성공적으로 평가되지는 않는 과거의 일탈들을 보면서 그는 분명 묘한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짐작컨데 아마도 이 시대의 새로운 일탈을 꿈꾸지는 않았을런지.
나는 에세이는 과장이 없어야(적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적어가는 것이 에세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과장하는 것은 읽는 이에게 생각과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참 매력적인 에필로그다. 도시를 대하는 태도, 도시에 대한 애정, 도시 속에서 사는 방법, 자신의 삶의 방식까지 하고 싶은 말은 죄다 말하고 있으면서도 글 자체는 무척이나 무덤덤하다. 작가는 이정도의 뻔뻔함?! 같은 것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결국 그 뻔뻔함이라는 것도 건축가의 시선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 내용 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오기사의 책들을 보면 항상 부러운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가지를 쓴 캐릭터'. 또 하나는 자기만의 관점이라 내세울 수 있는 '건축가의 눈'.
캐릭터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한다는 것. 감정이입 할 대상을 만들어 둔 다는 것만으로도 의외로 사람들은 쉽게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기에 감히 캐릭터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 같지만, 상징물을 넣어 사진을 찍거나 하는 방식으로 나 또한 여행기나 글을 쓰는데 도입을 해볼만한 방식인 것 같다. 건축가의 시각은... 뭐 어쩔 수 없다. 나만의 전문성을 가져서 보이는대로 판단하는 수밖에.
가볍게 꺼낸 책이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가벼워져서 그런지 다가 올 여행을 더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반쯤은 떠있는 듯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 ![]() ◆◆ 외로움은 기대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다.
◆◆ 환상은 대게 진부하지만 세상은 보다 진부하다. 그러니까 쿨하지 않게 보일까봐 걱정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 노골적인 상징은 목적에 집착한다. (중략) 상징은 인간을 위한다는 근대 건축이 정작 잃고 있었던 인간성의 영역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즉흥적이고 직설적인 감성들이다.
◆◆ 상징이 공간을 지배한다. 건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간 간의 관계라는 것은 형태보다는 상징에 의하여 맺어지기 때문에, 풍경 속에서의 건축은 형태보다는 상징으로 장소를 규정한다. – 로버트 벤추리, [라스베이거스의 교훈]
◆◆ 욕망의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욕망이 다르기에 종종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누군가가 의지할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밖에 없다.
◆◆ 일탈은 자기애에서 비롯된다. 일상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혹은 목표를 향해가는 길을 읽고 잠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일탈의 감행을 고려해볼 만하다. 자기애가 결핍된 돌출행동은 단지 현재의 부정일 뿐이다.일탈은 나름대로 미래지향적 자의식 발현이다.
◆◆ 궁극적인 새로움이란 다시 말하자면 ‘일상’을 바꾸는 문제다. 수없이 많은 건축적 시도와 실험들은 결과적으로는 ‘일탈’에 가까웠다.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 채 잠시 기존의 질서에 변주를 준 것이다. 물론 부정적인 일은 아니다.많은 시도들은 사유의 깊이를 더하고, 발전을 위한 기반을 다진다.
◆◆ 삼십 대 중반은 그냥 정신이 없는 시기인 것 같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지나간 그런 속성의 시간이었다.
◆◆ 세상은 먼저 걱정해주는 사람들에 의해 나름대로 편하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더 느긋할 수 있는지가 인생의 피곤함을 결정한다.
◆◆ 일탈은 복제되지 않아야 한다. 복제되고 재생산되는 순간 일탈만이 줄 수 있는 그 미묘한 긴장감은 사라져버린다. (중략)개발이 시작된 지 50년이 넘은 찬디가르에는 여전히 다른 인도의 도시들에서는 느낄 수 없을 미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일탈이 줄 수 있는 건강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 찬디가르와 브라질리아. 두 도시는 모두 이성과 합리성이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규정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건설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대체로 썰렁하다는 유사점도 있다. 설계자들은 이상적인 도시를 도면 위의 선들로 구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치열하게 실현해냈다. 이것이 바로 두 도시가 세계에서 가장 황량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비관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애정에 의해 능동적으로 진화한다. 그건 변절과는 다른 것이다.
◆◆ 체념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동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 크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수많은 조언자들이 위로를 하더라도 결국 그 ‘크기’가 사람들을 자신만만하게 하거나 위축되게 만들고는 한다. 마음이란 그리 쉽게 설득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 세상에 완벽한 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로란 정열적 사랑고백처럼 잠시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하지만 속는 줄 알면서도 가끔은 모른 척 넘어가야할 때도 있는 법이기에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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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부터 격하게 공감.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탄 것도 나한테 미안해서였다. 죽도록 마감만 하다가 인생이 종칠까봐 두려웠다.
29살이라는 꽤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봤다. 일본 뱃부로 온천여행을 갔는데 반신욕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온천여행을 선택했고 첫 해외여행이니 안전하게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생각해보라, 일본 온천 패키지여행에 누가 오겠는가. 나이드신 부부들 틈에 낀 묘하게 신경쓰이는 20대 아가씨.
그렇게 첫 해외여행의 스타트를 끊고 나서 두려움을 좀 없애고 난 뒤 에어텔 상품을 예약해 혼자서 호주 여행을 떠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적기로 왕복항공권을 끊었는데 그건 참 잘한 일이었다. 이후로 줄곧 그 항공사 마일리지를 모아서 원 월드 이용권을 받았으니 말이다.
오기사로 더 이름이 알려진 저자의 여행기는 마치 내 친구의 이야기처럼 친숙하게 다가왔다. 잡지사 에디터 시절 각 매체를 돌며 인사를 하던 오기사의 모습만 머리에 남아 있지만 여행지에서 머물며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고 때로는 감상에 젖으며 여행을 만끽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번졌다.
혼자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짧게나마 혼자 여행다녀올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하게 된 오기사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박수를 보낸다.
좋은 곳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추억을 쌓는 둘이라서 더 행복한 여행도 분명 소중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관조자가 되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은 또 얼마나 소중한가!
*편집에서 별 하나 뺀 건 오자 때문이다. 책에서 오자가 나오는 건 뭐 어쩔 수 없지만 하필이면 한 페이지에 딱 한 문장 있는 페이지에 결정적인 오타가.. 그래서 별 하나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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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의 전작,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와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 하다>를 읽으며, 오기사의 책은 '무조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상큼발랄, 재미있고, 유쾌해지니 말이다. 그런 무조건적인 생각으로 이 책 <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은...뭐랄까...연기변신을 시도한 배우를 대하는 느낌이랄까. 가끔 보면 그런 연기자들이 있지 않은가. 아역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게 싫어서 파격적으로 변신했어요, 착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싫어서 악역으로 변신했어요, 하면서, 보는 이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어설픈 변신을 시도하는 것 말이다. 그 이미지로 좀더 가도 되는데, 그게 더 어울리는데, 그런 생각을 해봐도 본인은 이미 지겹고 벗어나고 싶은가보다. 어쩔 수 없다.
그 점이 좀 아쉬웠다. 상쾌한 기분 전환을 꿈꾸며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앗, 그냥 예전 책이나 한 번 더 읽어야겠네.' 생각이 드는 것은 작가 입장에서도 아쉬울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이 3쇄 발행본이다. 나처럼 생각하고 구입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마음이 돌아서지는 않았으면. 별 걱정을 다한다. 나도 소심한 생각 한 번 해본다. '인생은 소심한 도박' '다들 대범한 척 하는 것일 뿐~'이라는 오기사의 그림이 떠오르는 시간이다. 그래도 인도의 찬디가르를 담은 글과 사진, 그림은 관련전문가가 아니면 담을 수 없는 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했기에 책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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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매력을 가진 대두인(大頭人) 오기사의 책이다. 건축가가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하는 건 특이한 일이 아니지만 꽤나 잘팔리는 책을 꾸준히 내는 건 그리 흔치 않은 일. 게다가 본업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오기사의 매력은 왠지 소심하면서도 할말은 다 하고 사물을 보는 시선이나 관점이 허무주의적인듯 하면서도 스스로 속물임을 인정하는 담백함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재능도 많고 능력도 있는데 그걸 스스로가 알면서도 나르시시즘이 도를 넘지는 않은 매력이랄까.
친구중에도 그런 녀석이 하나 있는데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있는 중이고 행복이나 성공에 대한 관점도 뚜렷한 것이 마치 오기사가 이런 성격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구체적으로는 머리 크고 안경 낀게 비슷하달까)사람 만나는 직업에 있다 보니 외모가 닮았다 싶으면 성격마저 같을듯한 묘한 편견이 있다.
이 책에서 오기사는 서울의 일상을 떠나 라스베가스와 찬디가르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다. 일탈 혹은 충동에 의한 여행이라지만 건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도시를 관찰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었을까 한다. 라스베가스에서는 욕망이라는 소재가 기능이라는 외피를 입은 결합을 관찰하고 르코르뷔지에의 찬디가르에서는 철학적으로 기능주의에 접근한 대가가 멍석을 깐 계획 도시에 감탄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를 견디며 산책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유럽에 다가가려 했던 표트르 대제를 읽어내는데 그 독법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고골의 인용이다.
오기사의 그림이 주는 매력에 가려 그가 생각도 많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건 간과되기 쉽겠지만 그림에 따라붙는 짧은 글에서도 그가 참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건 익히 알수 있다. 기분전환을 위한 그의 그림이 아니라 건축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그의 글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픈 책. 지질은 재생지를 사용한 탓인지 깔끔하지 않고 사진이며 도판도 흐릿하지만 이게 책의 컨셉이 아닌가 싶다.
평점 : 85점
구매추천 : 80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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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미안해서....
여행은 항상 나를 설레게 하지만, 특히나 목적이 있는 여행은 더욱더 나를 흥분시킨다. 여행을 하면서 늘 부러워하던 직업이 있었다. 건축가, 미술가, 음악가.... 여행지에서 만난 그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어 온 것이다. 건축가는 보고싶어하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미술가는 미숙작품을 보기 위해, 음악가는 유명한 음악축제를 보기 위해... 이 책의 작가이자 건축가인 오영욱 또한 그랬다.
그가 떠난 미국의 라스베가스, 인도의 찬디가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모두 그가 보고자 하는 건축물이 있었기에 그곳으로 떠난 것이다. 단, 며칠을 있더라도 자기가 원했던 바를 이뤘다면 그 여행은 의미있는 여행이다. 그는, 단순히 여행지에서 본 것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 얘기해 줌으로써 그 여행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 아~ 이 건물은 크구나.... 창문이 많구나... " 하면서 봤을 내 어리석음을 먼저 일깨워줬다고나 할까... 그리고 비행기값을 아까워하면... 이왕이면 오래오래 머물러서 많이많이 봐야겠다는 나의 일방적인 여행습관을 한 층더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단, 며칠만이라도 내가 필요로하면 언제든지 여행을 떠나 한달을 머무른 것 만큼의 그 어떤 감동과 추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젠 나도 그런 여행을 즐기고 싶은.... 그런 여행의 여유가 생겼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무엇보다 제목에 있다.
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자신에게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도 봤니? 미안.... 나도 너에게 미안해하고 있었어.. 난 너에게 무엇해줄까?"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 너에게 미안해서 나도 여행을 가볼까 한다. 난... 힐링이 필요하니까 편안히 힐링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말이다.
환상은 대게 진부하지만 세상은 보다 진부하다. 그러니까 쿨하지 않게 보일까봐 걱정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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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오기사의 책을 집어 들었다. 오기사라 함은 작은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중이나 건축물보다도 귀여운 캐릭터와 그림들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오영욱 님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을 꼭 닮은(?) 캐릭터를 보면서 귀엽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사람은 역시 무어가 되었건 재주를 타고나야 하는 법이라며 한때 나는 그의 책을 탐독했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의 제목은 ‘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살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실수를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왔을 것이다. 착하게 사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정작 내 자신에겐 참으로 못 되게 굴어오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부족한 잠에도 불구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하고, 심지어 5년차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도 단 하루의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나를 일컬어 일중독이라고 했다. 심지어 ‘자기학대’라는 말을 해 주는 이도 없지 않았다. 하지도 아니 한 실수를 혹시나 하진 않았을까 좌불안석하는 데엔 익숙했으나 그 순간에도 가슴에 금이 가고 있는 주체는 남이 아닌 내 자신이었음을 진정 난 몰랐다. 가끔씩은 마치 어린 아이를 어르듯 조심스레 굴어야만 하고 남 아닌 나를 위한 선물도 준비해야 하거늘, 각박하게 굴다 보니 이제 정말로 나한테 미안해할 시점이 온 것도 같다. 여행도 하나의 일상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 일상은 평범함으로부터 조금은 빗기어 섰는지라 영원히 우리의 기억에 남는다. 물론 떠나는 그 순간에는 훗날 기억하기 위함보다는 지금 당장 에너지를 충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겠지만 말이다. 라스베이거스와 찬디가르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 국가를 달리하는 이 세 도시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일단 물리적인 거리가 워낙 많이 떨어져 있기에 세 공간은 서로 다른 문화를 이제껏 향유해왔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는 잘 알려진 대로 한 방 잡아보려는 사람들로 들끓는 도시이다. 반면 인도의 찬디가르는 왠지 욕심이라고는 모를 것만 같은 선한 사람들의 도시라는 인상이 강하다. 두 도시와 또 다른 것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니, 과거의 이름이 레닌그라드여서 그럴까? 왠지 고압적일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다.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도시 세 곳을 저자는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는 물론 잇따라 세 곳을 여행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뒤표지를 한 번만이라도 읽어보았다면 세 도시가 하나로 엮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내 짐작을 하게 된다.
‘만약 누군가 서울에서 불행했다면 / 그건 그가 아직도 세상을 / 공정하고 합리적인 곳으로 보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진보한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공간이라 하여도 완벽하게 공정하고 합리적일 순 없다. 라스베이거스와 찬디가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얼핏 보았을 땐 서로 달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혼란’이라 하는 단어의 연장선상에서 서로 만나고야 만다. 일종의 소실점인 것이다. 라스베이거스는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제어를 모르고 팽창했을 때 낳을 수 있는 결과물을 보여준다. 이 호화찬란한 도시는 아름다운 부를 찬미하기엔 부적절하다. 저마다 한탕을 노리고 달려드는데, 아마도 그들 대다수는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하기 이전보다 더욱 홀쭉해진 지갑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을 것이다. 인도는 중국보다도 앞으로 더 발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국가이다. 미국 첨단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인도의 엘리트들이란 소리를 언젠가 들은 것도 같다. 하지만 이 국가는 아직 ‘잘 산다’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치 않다.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카스트 제도의 그늘 아래 놓인 사람들이 일단 너무 많다. 언어는 또 얼마나 다양하고 종교로 인한 갈등의 골마저도 깊은 나머지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까지 느껴진다. 숟가락이나 젓가락 따위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그것 역시 하나의 문화라고는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이를 ‘미개’라 칭할 따름이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붕괴해버렸다. 철썩 같이 믿고 따르던 체제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걸 경험했을 때의 충격은 얼마나 크겠는가! 아마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무너졌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산 사람은 살기 마련이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도 다시금 기지개를 준비하는 사람들. 비록 지금은 혼란스럽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를 들으며 뿌듯해 할 날을 맞이할 것이다.
아직 미혼이고 정해진 미래는 없다. 여행은 끝이 났지만 일상을 꾸리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린 혼란스럽고 세 여행지가 그러하듯 우리네 삶 역시 정돈이 덜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극도의 혼란도 내 삶의 일부일 수 있으며, 때론 혼란 속에 발을 담그는 선택을 한 나를 아무 말 없이 따라준 내 자신에게 미안해해도 된다는 점만은 깨달았다. 너그러워지자. 나에게, 너에게, 우리 모두에게. 혼란마저도 사랑할 수 있는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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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기에... 아주 삶이 힘들거나 힘들었거나 바쁘거나 뭔가 크게 상심했거나 크게 소모된 뭔가를 채우기 위해 여행을 가지 않았을까, 위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바쁘고 힘든 와중에 대리만족하기 위해, 제목에 팍 꽂혀서 샀다. '오 기사'라는 필명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다.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며칠 전 아침에 하는 라디오에도 게스트로 나오는 것을 들었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가늘구나 했다. 그리고 외서와 함께 사서 일주일이나 기다리다가 배송된 이 책을 오늘 읽었다. 오 기사는 삶이 크게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은 것 같지만... 외로워는 보였다. 훌쩍 떠나기 힘들고 지친 삶에 쳇바퀴 도는 생활에 염증난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의 위로는 줄 수 있겠다. 다만 약간의 괴리감은 들었다. 나는 힘들어도 쳇바퀴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소시민이니까. 건축가다운 세련된 낙서와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 풍경들, 거친 재질의 종이에서도 묻어나는 하늘색의 다양함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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