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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문제가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너무도 평범한 이와 같은 말이 책을 읽은 이후로도 여전히 뇌리를 떠날 줄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무엇인가 답을 찾고자 노심초사하였다면 문제가 무엇이었던가를 항상 잊지 말아야 함이다. 이는 마치 용서는 용서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연 삶에 대한 답을 찾았는가? 그렇다면 추구하고자 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생각키로는 도올 김용옥이 신(神)의 의미를 말함에 있어서 신이라는 주어의 술부(述部)적 속성이 기술될 때 비로소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리라. 하지만 막상 자신 앞에 펼쳐진 수많은 문제와 생각의 실타래 중에서 어느 것을 붙잡고 늘어져야 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면 막막하게 되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살다보면 아주 사소한 자연현상이나 혹은 너무도 자명한 논리가 때로는 기쁨이 되어 우리를 감사의 조건으로 만들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은 또 어찌 설명해야할까?
그럴 때 기독교적 세계관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답변은 삶의 문제 해결에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저자인 제임스사이어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기독교 전도용 소책자를 통해 한번 접하고 적지 않게 계몽 받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더 나아가 본격적인 기독교 변증을 시도한 다거나 이성적 신앙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에게 충분한 오리엔테이션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논리적으로 기독교를 변증하는 것은 이미 체험적 직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흥미 거리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변증이 아직 유효하고 힘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신앙의 확실성을 담보해내지 못하는 세계관(혹은 논리)에 기초한 믿음은 한낱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책 내용에는 그 어디에도 기독교적 세계관을 강요하는 듯한 문구나 감상적 문구의 나열 혹은 묵시론 적인 요구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그 점이 바로 이 책이 설득력 있게 읽혀지고 생명력을 가지게 하는 최대의 장점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도 기독교적 세계관이 그저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어간다면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 책을 읽어낸 독자의 수고는 별다른 보상을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 우려를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각자 자신의 삶을 반추함을 통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한 점검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즉 생각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사랑하지만 증오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진리나 개인적 성취에 대한 갈망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지에 관하여, 쾌락이 완전히 채워질 만큼 충분한 경우는 왜 그리 드문가에 대하여, 왜 우리는 더 많은 돈, 사랑, 즐거움 등을 원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사람들이 비도덕적 행동양태를 거부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개개인의 입장이 그것이다.
누구든 이러한 물음을 피해갈 수 없다면 이에 대해 강요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풍겨 나오는 향기로 인해 자연스레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의도하는 바,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로 그러한 방법론을 통해 충분히 성취해 낸 듯이 보인다.
소제목을 따라가 보면 범신론으로 대표되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비롯해서 허무주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동양적 세계관 등 다양한 관점들에 대한 저자의 지적 통찰을 보여주면서 기독교 세계관의 유용성을 증명해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계관을 어느 한사람이 홀로 책 한 권에 다 담아 점검해 낼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허나 누구보다도 저자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유한한 인간은 어떤 세계관에도 문제점이 항상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겸손해져야만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유신론은 왜 사람들에게 그러한 질문과 문제점이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저자에게 있어 이에 대한 설명의 근거는 물론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인식의 한계 내에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무한하시고 인격이 있는 분으로서 그 분 안에서 모든 이성, 모든 선, 모든 소망, 모든 사랑, 모든 실재, 모든 구분 등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이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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