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제2의 아담, 짜라투스트라 니체의 고백
"제2의 아담, 짜라투스트라 니체의 고백" 내용보기
죽은 사람의 유고를 뒤척여 보는 일은 설레임과 더불어 미세한 떨림을 일으킨다. 최후의 기록에는 대개 숨길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우리들이 지난날 죽은 이에 대해 알고 지냈던 기존의 사실들을 전복시키는 마력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먼지로 가득 찬 서랍을 열고 비밀스런 노트 한 권을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순간에 그 느낌이란. 만약 그것이 한 세기의 시작
"제2의 아담, 짜라투스트라 니체의 고백" 내용보기
죽은 사람의 유고를 뒤척여 보는 일은 설레임과 더불어 미세한 떨림을 일으킨다. 최후의 기록에는 대개 숨길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우리들이 지난날 죽은 이에 대해 알고 지냈던 기존의 사실들을 전복시키는 마력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먼지로 가득 찬 서랍을 열고 비밀스런 노트 한 권을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순간에 그 느낌이란. 만약 그것이 한 세기의 시작을 알리고 한 세기의 철학을 지배하며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사상가의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니체를 읽은 것은 스무살 언저리였었다. 아직 철이 없던 시절 [선악의 피안]을 읽으며 나의 체내 속에 깊숙이 박혀 있던 기독교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던 일을 기억한다.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다, 인간이 그럴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혹은 '인간은 언제나 초극해야 할 그 무엇이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또는 '세계는 무한히 해석 가능하다, 해석의 다수성이야말로 힘의 징후이다(권력에의 의지)' 같은 니체의 경구들은 한참 예민하고 날카로웠던 나의 20대 초반에 질풍 같은 변화를 일으켰었다. 그 떨림의 순간들을 나는 아직 잊지 못했으며 짜라투스트라 니체의 잠복된 숙주로서 그의 가치 전복 실험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1900년. 19세기는 마감되었고 니체는 죽었다. 지난 8월 25일은 그가 죽은 지 만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니체-최후의 고백'이란 책을 발견했다. 20년 전 이덕희 씨의 번역으로 '나의 누이와 나'로 소개된 이 책이 작년에 새로운 판본으로 다시 출판되어 나온 것이었는데 여지껏 출판소식을 몰랐다가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이 우연히 눈에 띤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니체의 마지막 유고. 첫 페이지를 넘겨볼 때 그 떨림과 두근거림이란. 그리고 연이어 전해지는 전율과 경악이란. 니체 철학은 페미니스트의 비판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한다. 그의 여러 저서 속에 '여자는 고양이처럼 채찍으로 다스려야 한다', '여자는 아직 동물성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다'라는 직설적인 어투가 고스란히 쓰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니체는 낭만적 사랑에 이끌려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나약한 덕(德) 역시 비판한다. 그가 낭만파 음악의 거장인 바그너와 결별한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여성성과 낭만적 사랑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니체. 그의 생리적 오기는 내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이제 그가 남긴 마지막 유고에서 그 미스테리의 실체가 드러난다. 근친상간. 니체는 엄격한 홀어머니 밑에서 사랑에 목말라 하는 누이 엘리자베트에게 처음으로 동정을 잃게 된 것이다. 한편에는 엄격한 기독교 윤리와 도덕이, 한편에는 거스를 수 없는 누이 엘리자베트의 손길이 그의 정신을 쉼없이 갉아먹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헛된 망령 사이에 존재하는 튀기(159쪽), 하나님이 되려는 욕망과 벌레로 머물러야 하는 숙명 사이의 투쟁(312쪽). 이런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니체가 선택한 길은 두 가지 모두를 배반하는 것. 그는 기독교의 윤리와 여성의 사랑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길, 줄곧 주장하던 초인의 길, 영원한 비존재(Not-Being, 330쪽)로서 그 스스로 신성을 획득할 수 있는 초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로서의 삶이 아닌 제2의 아담, 짜라투스트라 니체의 탄생. 그것은 한층 더 진화된 인간 정신으로서, 신성한 아름다움의 현신으로서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근친상간이라는 금기, 봉인된 우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니체의 철학은 이후 그의 말마따나 현대철학의 신화가 된다. 하이데거의 실존, 푸코의 포스트구조주의, 데리다의 해체, 들뢰즈의 차이, 이밖에도 아도르노, 하버마스, 알튀세르 등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비롯한 20세기 지성계를 이끌었던 대부분의 철학과 사유는 짜라투스트라 니체의 후광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전생애는 자유와 숙명,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벌레로서 머무는 - 비록 눈부신 날개를 단 벌레이긴 해도 - 숙명 사이의 투쟁이었다. 나의 낭만주의는 나의 고뇌가 되었으며 - 그것은 바로 내 시대의 고뇌로서, 그 자체를 초월하려고 애쓰나 파멸과 절망의 구덩이로 떨어지고야 마는 - 세기의 회의주의 속에 산 채로 매장당한 오베르만과 아미엘의 먼지투성이 고뇌인 것이다.
e***a 2000.09.1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서전같지 않은 자서전
"자서전같지 않은 자서전" 내용보기
니체의 자서전은, 사건의 배열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서, 자서전을 읽는다기보다, 수상록을 읽는 느낌이다. 그의 명료한, 정확한 개념들의 글을 읽다 보면, 이걸 정신병원에서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광인이란 뭘까...?'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 니체 사후 100주년, 그가 말한대로, 그의 사상의 뜰을 얼쩡거리며 어지럽히는 돼지는 되지 말아야겠다.
"자서전같지 않은 자서전" 내용보기
니체의 자서전은, 사건의 배열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서, 자서전을 읽는다기보다, 수상록을 읽는 느낌이다. 그의 명료한, 정확한 개념들의 글을 읽다 보면, 이걸 정신병원에서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광인이란 뭘까...?'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 니체 사후 100주년, 그가 말한대로, 그의 사상의 뜰을 얼쩡거리며 어지럽히는 돼지는 되지 말아야겠다.
c****r 2000.02.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철학자의 비명.
"철학자의 비명." 내용보기
니체가 털어 놓는 루 살로메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은 나에게 별 충격으로 와 닿지 않았다. 실상 이 책이 내가 접한 니체의 최초의 책이기에 그 이전까지 니체가 여자를 아주 하찮은 것인양 비하했다는 둥 하는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야 강도에선 못미칠지언정 나도 이해할만 하다. 한때 자신의 모든것이었던 것에 대한 처절한 증오. 그러나,
"철학자의 비명." 내용보기
니체가 털어 놓는 루 살로메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은 나에게 별 충격으로 와 닿지 않았다. 실상 이 책이 내가 접한 니체의 최초의 책이기에 그 이전까지 니체가 여자를 아주 하찮은 것인양 비하했다는 둥 하는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야 강도에선 못미칠지언정 나도 이해할만 하다. 한때 자신의 모든것이었던 것에 대한 처절한 증오. 그러나, 역시 여동생 일은 충격이다. 그러고 보면 여기저기서 접한 그에 대한 짧막한 일화들에서 그의 여동생은 자주 언급되었었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참 헌신적인 동생도 다 있군. 결혼 안하고 독신으로 살았나보지? 했더랬다. 그러나 속 내막은 결국 이랬군-_- 책을 읽다보면 비명이 들린다.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자신의 글이 가족들에게 발각되지 않기를 빌며 몰래몰래 글을 써내려가며 지난날의 일을 회상하는 천재의 비명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내 가슴이 다 시려온다. 그리고 늘 덥수룩한 수엽을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났던 그가, 실상 평생동안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후론 이 책속의 그의 모습이 유일하게 수염속의 맨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니체를 알게된 보통 사람들이 그의 다른 저작부터 알게 된 것과는 반대로, 난 이 책을 접한 후 니체의 글들을 찾아 읽는 중이다. 그래서 그의 자신만만하고 드높은 자긍심이 번뜩이는 글에서조차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하는 그의 어두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게 니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는지 방해가 될는지는 알 수 없다. 하긴, 그의 사상을 이해하길 바라며 그의 글들을 읽는것도 아니다. 그저 너무 인간적인 한 철학자의 모습에 한편 혐오심으로 한편 애정으로, 상반되는 감정을 가지고 점점 빠져들어 갈 뿐이다.
a******e 2000.05.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