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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가 부침에도 불구하고 500여 년 동안 유지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단어에서 5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존재감은 실로 크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던 국가도 있다.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 무려 1천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가 하나 있으니 이는 바로 신라이다. 최근 들어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강조로 인하여 신라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통일한 국가가 신라 아닌 고구려였더라면 우리의 지금이 달라졌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드넓은 북방대륙에 대한 그리움, 외세 앞에 굴복하지 않는 기질 등이 지금의 우리가 지니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관점이 부각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에 대한 강조는 일제시기에 들어서 더욱 강렬해졌다. 지금은 비록 주권조차 잃고 나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 때는 대륙을 호령했던 적도 있다, 부디 이를 기억하고 그때와 같이 용렬하게 일어나자는 일종의 반작용?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한때 망각되다시피 했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필요에 의해 부각된 측면도 없진 않다. 학창 시절 한 번 즈음은 경주로 수학여행이란 것을 떠나보았을 것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로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으나, 한 나라의 수도로서 1천년을 버티어온 경주의 저력은 무시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불국사와 석굴암, 천마총 등을 떠올릴 것이다. 수학여행 때도 그랬고 만일 여행 패키지 상품 따위를 이용하더라도 이들 유적지는 여행 일정에서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경주의 유적은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신라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유적은 경주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런데 서울이 개발의 과정에서 과거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충분히 고찰치 않았던 것처럼 경주 역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재산권을 행사하길 원하는 개개인들의 강렬한 욕망이 반영되어 경주는 과거를 잊고 오로지 현대인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조잡하기 그지없었던 발굴기술 역시 한 몫 톡톡히 했다. 충분한 시간과 자금을 들여도 완벽할 수가 없는 게 바로 과거의 복원이다. 따라서 선진국들도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역사에의 접근이다. 헌데 오랜 일제시기와 전쟁까지 거친 우리에게 이는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발굴 기술이 좀 더 나아질 때까지 건드리지 말고 놔두자는 목소리가 현실적인데도, 우린 그리하지 못했다. 왕관이라도 하나 나오지 않을까 성질 급한 티를 팍팍 냈다. 어디서 무어가 나왔다더라 소리에 몰려들 도굴꾼이 무서워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물건들을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쓸어담기까지 했다 들었다. 경주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깎아내리기까지 한 이와 같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여전히 매력적인 고도(古都)이다. KTX 신경주역의 개통 등은 관광객이 줄어들어 고심하고 있던 경주 입장에서는 호재와도 같다. 하지만 교통 인프라 등이 확충되는 것만으로는 아직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 띄엄띄엄, 기존에 관광자원으로 개발된 곳만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뛰어넘어 이제는 도시 전체를 천년의 역사를 품은 장소로 인식하며 복원시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식의 자부심을 어필할 수 있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복원 이후의 모습은 그런 점에서 날 들뜨게 만들어주었다. 지금은 수량이 부족한 형산강과 보문호가 풍족함을 되찾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던 왕성이 옛 서라벌의 위용을 다시금 머금게 된다면 세계 그 어떤 도시와의 견줌에서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전에 신라라는 국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부터 다시금 정립해야 할 것이다. 고구려와 발해가 엄연한 우리의 역사라고 판단하는 것이 신라의 중요도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당나라의 힘을 빌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 하여도 결국 삼국을 통일한 것은 신라였다. 게다가 경주는 지금은 우리 땅 아닌 어딘가에 있는 것도 아닌 우리의 현 영토 안에 있다. 이는 노력하면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는 소리이다. 현재 내 품에 있는 것도 제대로 관리치 못하면서 타국의 영토에 있는 것을 관리하겠다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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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만으로 했던 기대는 경주에 대한 역사와 문화 유적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진을 구경할 수 있겠구나 하는 거였다. 물론 그에 대한 정보는 있지만 이 책은 말그대로 사라진 도시 서라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서라벌이 있었던 곳 경주에 신라의 역사유적이 많이 남아있고 유물이 있다지만 구경을 위한 전시 외에 고도시 서라벌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 유물과 유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 미래에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논하고 있다. 저자가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천년 고도 서라벌에는 왜 왕궁과 왕성이 없는가 하는 문제였다. 서울의 경복궁을 비롯해 중국의 자금성, 프랑스의 베르사유 군전등 세계적인 역사 도시에는 왕궁과 성이 잘 복원되고 유지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신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일한 경주에는 왜 왕궁과 성이 없을까? 경주에 몇번을 간 적이 있지만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없다는 것을 나름대로 합리화 하고 있었던 것같다. 너무 오래 되고 문헌도 없으니까 복원을 못하겠지..복원을 하기 위한 조건보다는 의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저 외면한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의 고분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도굴되었다고 한다. 1971년 무녕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 발굴될 당시 대대적인 보도를 하면서 학계에서 긴장했다고 한다. 그 발굴이 아직까지도 오르내리는 것은 대단한 발굴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번개불에 콩볶듯이 해치운 발굴태도 때문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발굴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아닌가보다는 어떻게 발굴하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가 에 대한 문제를 남기는 발굴이었던 것 같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정말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일제가 아닌 우리 학자의 손으로 가장 처음 이루어진 발굴은 1946년 5월 경주 노서동 140호 고분 호우총이라고 한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호우가 발견되어 호우총이라는 이름이 부쳐졌다.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가 발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적 유물이 나오면 발굴은 해야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발굴이라는 것이 무조건 파헤쳐 유물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드러내는 중요한 과정을 놓쳐서는 안된다.
저자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다지 고민해보지 않았었다. 지금의 경주가 단순히 관광객을 유치하는 정도의 전시를 하는 모습으로 갈 것이 아니라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니 경주에서 과거 서라벌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어느 정권에서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에 따라서 문화정책도 많이 달라진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 노력이 필요한 사업은 하나의 맥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동안 경주에서 유물만 구경하던 관광객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