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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어렵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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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 그렇게 높이 평가할만한 심리상태는 아니다. 지적인 허영심도 역시, 남부끄러워 해야할 특성일까? 독서에 있어서는 잡식성이지만 내겐 '빌려 읽을 책'과 '사서 읽을 책'의 목록이 별개로 구성된다. 그 경계를 결정짓는 가장 큰 기준이 바로 그 지적 허영심일 것이다. 서가에 꽂혀 있는 게 남부끄럽지 않을 만한 책. 지하철에서 누군가 읽고 있으면 그 사람 자체가 왠지 다시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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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 그렇게 높이 평가할만한 심리상태는 아니다. 지적인 허영심도 역시, 남부끄러워 해야할 특성일까? 독서에 있어서는 잡식성이지만 내겐 '빌려 읽을 책'과 '사서 읽을 책'의 목록이 별개로 구성된다. 그 경계를 결정짓는 가장 큰 기준이 바로 그 지적 허영심일 것이다. 서가에 꽂혀 있는 게 남부끄럽지 않을 만한 책. 지하철에서 누군가 읽고 있으면 그 사람 자체가 왠지 다시 보이는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그런 나의 지적 허영심을 200% 자극하는 책이었다. 들어본 적 없는 저자와 특이한 제목, 내가 평소 굳게 믿어마지않는 문학사상사 출판, 게다가 읽어본 사람들이 '나름대로 재미있다'라고 평가하는 책. yes24에서 얻은 사전지식이 전부인 상태로 덥썩 구입했다. 하지만 결과는 2/3를 읽고 지지부진, 진도가 없다. 근대의 일본 사회라는 배경 자체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나 흥미가 없을 뿐더러,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행태와 언어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게다가 그 고양이, 고양이치고는 되게 고리타분한 녀석이다. 짜식이 조금만 더 기발하고 재미있었어도 독서를 중간에 중단하진 않았을텐데. 한 수 배웠다. 멋져보인다고 관심도 없는 분야의 책을 덥썩 사지 말 것. 하지만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상, 언젠가는 심호흡을 한 번하고 다시 덤벼봐야겠지.
0********y 2002.05.21. 신고 공감 1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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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부탁해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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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부탁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이름도 없던 나는 새해 들어서 다소 유명해진 덕분에 비록 고양이지만 좀 코가 높아진 것 같아서 좀 흐뭇하다.(47쪽)     그는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하마터면 길고양이가 될 뻔했다. 인생은, 아니 묘생(猫生)은 기묘(奇妙)하여 여전히 이름은 없으나 지금은 백년도 넘은 고전 속에서 주인공이자 화자로서 영생(永生)을 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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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부탁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이름도 없던 나는 새해 들어서 다소 유명해진 덕분에 비록 고양이지만 좀 코가 높아진 것 같아서 좀 흐뭇하다.(47쪽)

 

  그는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하마터면 길고양이가 될 뻔했다. 인생은, 아니 묘생(猫生)은 기묘(奇妙)하여 여전히 이름은 없으나 지금은 백년도 넘은 고전 속에서 주인공이자 화자로서 영생(永生)을 누리고 있다. 독특한 책제목에 끌려 처음 그를 만났던 때가 스무살 무렵이다.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나쓰메 소세키가 쓴 수필집 『유리문 안에서』를 새해 첫날에 다시 꺼내 읽으며 '그', 그러니까 소세키가 아니라 '무명이면서도 유명한' 고양이와 잠시 재회할 수 있었다. 수필집에는 소세키네 집에서 기른 제1대 고양이가 바로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짧은 소개를 끝으로 제3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그'와는 언젠지 모를 다음을 기약했다. 그런데 묘생, 아니 인생은 기묘하여 이번 2월 북클러버 활동에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선정됨으로써 금새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두에 인용한 문장은 「2장, 인간이란 왜 이 모양으로 생겼을까」를 여는 것으로, 1907년 소세키가 소설을 발표할 때만 해도 1장으로 끝낼 예정이었으나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워 신문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장편소설로 출간했다고 전해진다. 작품 속 고양이가 마치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인기를 체감하는 듯한 표현이 퍽 흥미롭다. 또한 소설을 읽는 동안 각기 다른 재료를 얹어 만든 스시들이 한 상에 올려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승전결의 형태로 하나의 굵직한 이야기가 펼쳐진 게 아니라, 시종일관 묘지(猫知)적 참견 시점을 유지하면서 집주인이자 중학교 영어 선생인 구샤미와 그의 집 문턱을 제 집 드나들 듯하는 여러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총 11장에 걸쳐 한 편 한 편 모여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구샤미네를 중심으로 한 동네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20세기초 근대화 물결 속에서 봉착한 여러 문제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갔던 일본 사회의 축소판으로 읽혀졌다.

  서재에서 어떻게 글을 쓸 것인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문장을 수염에서 비틀어짜내보리라 하는 기세로 맹렬히 비틀어올리고 비틀어내리는(109쪽)' 구샤미가 아닌 소세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당시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종다양한 인간 군상의 겉과 속을 들여다본 주체는 대개 동종 동물인 인간 자신이었다. 만일 이종 동물, 즉 일본인에게도 친숙한 고양이의 시선을 빌어본다면 어떨까. 무장비 상태에서 인간보단 훨씬 자유롭게 어디든 다닐 수 있는 고양이의 발걸음으로 사람들의 마음 안팎을 오가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작가의 눈과 발이 되어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관찰하여 묘사(猫寫)하는 능력을 가진 '고양이군'이 탄생한 것이리라.

  그의 눈에 비친 인간은 네 발을 갖고 두 발만 사용하는 사치스러운 동물이며, 부러 애써 우습지 않은 것에 웃거나 재밌지 않은 것에 기뻐하는 이상한 족속이다. 심지어 자신이 미치광이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들 또한 저마다의 광기를 품은 존재라고 자위하면서, 어쩌면 세상은 미치광이들이 모여 사는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집주인의 심중을 읽어내기도 한다. '정신 병원에 갇혀 있는 것은 보통 사람이고, 병원 밖에서 날뛰고 있는 쪽이 오히려 미치광이다(387쪽)'라고 말하는 구샤미에게, 안톤 체호프의 소설 『6호 병동(1892년작)』 속 "감옥과 정신 병원이 있는 한, 누군가 거기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문장을 전해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인간의 무릎 위에 타고 앉아 잠자고 있는 중에, 나는 나의 부드러운 털옷을 살그머니 인간의 배에다 비비댄다. 그러면 한가닥의 전기가 일어나 그의 마음속 생태(生態)가 손바닥 보듯 나의 심안(心眼)에 내비친다.(388쪽)

 

  친절하게도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마음까지 꿰뚫어 볼 줄 아는 고양이군이 혹시 궁금해하는 독자를 위해 자신이 터득한 묘기(猫技), 곧 독심술을  별 거 아니라는 투로 공개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처럼 인간이 아님에도 인간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고양이가 또 있었으니,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2018년작)』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고양이들과 인류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피타고라스'다. 다만 피타고라스는 머리에 꽂혀 있는 USB 단자로 인터넷을 이용해 인간을 탐구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출간된 지도 어느덧 백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현재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돈독한 모습이다. 20세기에 살았던 이름 없는 고양이군이 21세기 반려묘를 본다면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격세지감을 토로할 듯하다. 반대로 오늘날의 집사가 이 책을 읽는다면 20세기 고양이군을 홀대하는 구샤미네 가족의 모습에 연신 미간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실뭉치를 희롱하는 고양이가 머릿속에 어른거렸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소설 속 복잡다단한 이야기들은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실처럼 누구도 한 데 모으려고도, 모을 수도 없어 보였다. 고양이군은 그러한 인간들에게 냉정과 동정을 가지는 동시에 그들보단 내가 한 수 위라고 여겼다. 그 역시 묘생은 처음이라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순간들을 거듭 겪으며 결국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인생과 묘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보인다. 책을 덮으며 작품을 통해 근대화와 전쟁의 격변 속에서 일본 사람들이 느꼈을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을 햇볕에 꺼내 말리고 싶었던 소세키의 '마음'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동족은 물론 비고양이동물의 안녕을 바랐을 고양이군의 속마음도 함께. 

 

한가해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507쪽)

이달의 사락 k*****o 2023.02.12. 신고 공감 1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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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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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2004년에 한번 읽었고, 요번에 짬을 내서 다시 읽었다.근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한번 집어들면 일주일은 꼬박걸린다.아무래도 이미 100년전에 씌여진 소설인데다 워낙에 현학적인 말로 뒤범벅된 소설이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익숙치 않은 용어도 많고... ㅡㅡ;게다가 하이쿠나 우타이는 잘 모르므로... 음.. 이런 비유면 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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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2004년에 한번 읽었고, 요번에 짬을 내서 다시 읽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한번 집어들면 일주일은 꼬박걸린다.
아무래도 이미 100년전에 씌여진 소설인데다 워낙에 현학적인 말로 뒤범벅된 소설이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익숙치 않은 용어도 많고... ㅡㅡ;
게다가 하이쿠나 우타이는 잘 모르므로...
음.. 이런 비유면 적당할까? 우리나라의 1900년대의 신체시나 신소설등을 접하는 기분이다. ^^

어쨌거나 고양이의 시각에서 본 인간사는 참으로 쓸데 없이 복잡하고 위선적이다. 물론 등장인물들중 하나같이 멀쩡해 보이는 인간은 없다. 전부 어딘가 비뚤어지고 모자란 인간투성이다. 사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지만...

예전에 읽을때는 일하는 짬짬이 읽느라 전투적으로 읽어서 참된 재미를 사실 못느꼈다. 사실 좀 지루한 면이 있기도 하다. 번역판 소설이긴하나 분량이 500쪽이 넘으므로...
게다가 이상한 주제로 떠들어대는 걸보면(아마도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서 일본의 풍속이나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최 이해도 안되고 무슨말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면이 꽤나 많은 부분을 차지 한다. 특히 메이테이가 나오면 어이없을 정도로 허풍을 치므로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런부분을 잘 고려해서 끝까지 읽어본다면 이 소설의 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두번째 읽으면서 혼자 많이 웃었다. 첨엔 그냥 그랬는데, 두번쯤 읽으니 이 작품의 풍자성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한 번만 읽을게 아니라 두 번정도는 읽어보는게 낫지 않나 하고 권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100여년전에 이 소설을 썼다. 즉 메이지 시대, 일본이 서양에 국호를 개방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던 혼란의 시기였다. 따라서 그 당시 지식인들의 설 자리가 좁아져갔다. 그리고 새로이 부흥한 상인세력등... 그전에는 구샤미 선생이 그러하듯 사업은 천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미 돈이 중심이 되어 가는 사회...등등.. 이런속에서 책이나 파던 서생들이라든지 하는 사람들이 설 곳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되겠다. 이러하다 보니 오히려 구샤미, 메이테이, 간게쓰 같은 사람들(逸民、いつみん:세속을 피해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 더 생겨났는 지도 모른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사회의 단면은 이 시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더욱더 '돈과 다수에 복종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구샤미 선생는 속세에 달관한게 아니라 적응을 할 수 없었을 뿐이란 생각이든다. 겉으론 달관한척 무심한척 하지만 사실은 변화하는 세상이 너무도 무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달관한척 해도 신선이 되지 않는 이상은 그건 척일뿐이니까.  

이건 여담인데...
우리 집에도 고양이 두마리가 있다. 흠.. 혹시 우리 고양이도 이런 시각으로 우릴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야옹소리만 한다는게 다행이다. (笑) 
y*****5 2009.10.05.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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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고양이로소이다-날카롭고 재미있는 세상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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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사회의 세태를 그린 소설입니다. 고양이의 나이로는 2살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양이와 인간의 수명을 고려했을 때, 그 정도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고양이 치고는 더구나 문리가 터진 고양이니 만큼 그만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양이지만, 인간의 몇 수 위에서 인간의 행동과 세태를 분석합니다.   등장인물 역시 문리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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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사회의 세태를 그린 소설입니다.

고양이의 나이로는 2살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양이와 인간의 수명을 고려했을 때, 그 정도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고양이 치고는 더구나 문리가 터진 고양이니 만큼 그만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양이지만, 인간의 몇 수 위에서 인간의 행동과 세태를 분석합니다.

 

등장인물 역시 문리가 터진 고양이에 못지 않은 면면이 걸출한 인물들 뿐입니다. 고양이 역시 박학다식한 고양이로 일찍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구샤미'와 같은 주인을 만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양인이 하는 방식은 적극적이다 - 중략 - 그건 커다란 결점을 갖고 있다고. 첫째, 적극적이라지만 한이 없는 얘기야. 언제까지 적극적으로 버티어 나가더라도, 만족할 영역이라든가 완전한 경지까지는 갈 수 없는 법이거든.

적극적 진취적 사고 방식이란 좋은 것이고, 수동적이 피동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의 지금에 있어서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책속에서는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 의문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단지 지금과 달라진 점이라면, 당시에서는 그 양면이 서양과 동양으로 대별되었다면, 지금은 그러한 경계가 없어졌다고 할까요?

 서양의 문명은 적극적이요, 진취적일지도 모르지만, 필경은 만족하지 못하고 일생을 사는 사람들이 만든 문명이거든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란 것이 돌다리를 두드려 보지 않고 무조건 앞으로 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고, 수동적이고 피동적이란 것이 그저 가만히 앉아서 마냥 기다리기만 하자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렇다면 그 둘은 같은 것일까요?

 

 

은행가는 매일같이 남의 돈을 다루고 있는 중에, 남의 돈이 제 돈으로 보이게 된다고 한다. 관원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용무를 처리하기 위해, 어떤 권한을 위탁한 대리인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위임된 권력을 등에 업고 매일 사무 처리를 하고 있노라면, 이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이며, 국민은 이에 대해 아무런 참견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차츰 착각하게 된다.

지난 한 세기에 이루어낸 인문과학적 발전이 엄청난 것이라고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찌 100년 전에 쓰여진 책이 요즘 세태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별반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니면, 발전하는 기술과 이론을 따라가는 만큼 인간들의 사고(思考)가 발전하지 못한 탓일까?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만나면, 네가 인간이라면 나도 인간이어야 하고 마음속으로 싸움을 걸게 된다. 그만큼 개인이 강해졌다. 개인이 평등하게 강해졌기 때문에 개인이 평등하게 약해진 셈이다.

인권이니, 평등이니, 하는 말을 침범하려면 추호의 용서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인권, 평등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리고 오늘 거리에서 본 '인권'이란 푯말을 들고 있던 'NGO'는 과연 어떤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찌 지루한 이야기만 늘어놓게 되었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알기 쉽게 그리고 익살스럽게 그려놓았으며, 고양이의 시각에서 들여다 본 인간 세상은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깨닫지 못한 여러 사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가끔씩은 일상에서 한 걸음 벗어나 제 자신을 돌아보는 것부터 실천해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t********n 2012.03.11.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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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에 흠뻑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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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이 되어서야 문단에 등단하고, 불과 10년 정도 열정적으로 글을 쓰다가 젊은 나이에 위내출혈로 세상을 떠난 나쓰메 소세키.. 평생을 위장병으로 고생했고, 병을 다스리기 위해 온천으로 요양을 자주 떠났으며, 먹고 살기 위하여 정말 내키지 않았던 교직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국비 장학생에 뽑혀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될 상황에서도 안 가려고 기를 쓰다가 어쩔 수 없이 유학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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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이 되어서야 문단에 등단하고,

불과 10년 정도 열정적으로 글을 쓰다가 젊은 나이에 위내출혈로 세상을 떠난 나쓰메 소세키..

평생을 위장병으로 고생했고, 병을 다스리기 위해 온천으로 요양을 자주 떠났으며, 먹고 살기 위하여 정말 내키지 않았던 교직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국비 장학생에 뽑혀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될 상황에서도 안 가려고 기를 쓰다가 어쩔 수 없이 유학을 떠났던 사람. 자신의 신경증과 자기분열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라며 그것에조차 감사한다고 말했던 치열한 작가로서의 삶.

 

내가 위장이 좋지 않아서인가. 그에게 더욱 공감이 간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그의 대표작으로 오래 전부터 제목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내 손에 직접 들고 읽은 것은 처음이다. 그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의 눈으로 위장이 약하고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하며 별볼일 없는 지식인인 자신의 모습을 주인이라는 등장인물로 놀림감을 삼는 그의 자의식이 놀랍다. 문장이 얼마나 쫄깃쫄깃하고 시니컬하며 재미있는지 침을 삼키며 읽었다.

 

이 글이 메이지 유신 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글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문체는 세련됐고, 위트가 넘친다.

 

고양이의 눈으로 사물을, 사람을,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가?

두말할 것 없이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YES마니아 : 골드 p******e 2010.09.25. 신고 공감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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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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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책을 읽다보면 책속에서 흔하지 않게 나쓰메 소세키란 이름을 접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여러번 있어왔어서, 또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을 전부터 관심있게 눈여겨봐서 이번에 요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의 표지는 어느 출판사건 고양이인 경우가 많은데 (혹시 아닌 곳도 있는지 모르겠다) 웬지 고양이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여기에는 대략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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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소설책을 읽다보면 책속에서 흔하지 않게 나쓰메 소세키란 이름을 접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여러번 있어왔어서, 또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을 전부터 관심있게 눈여겨봐서 이번에 요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의 표지는 어느 출판사건 고양이인 경우가 많은데 (혹시 아닌 곳도 있는지 모르겠다) 웬지 고양이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여기에는 대략 10명 내의 인물이 등장한다. 저마다 개성(?)이 있어서인지 하나의 등장인물이라기보다는 인물군이라고 해야 옳을 듯 싶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인물은 메이테이인데 온갖 잡다 지식으로 막힘없는 화술을 펼치는 그가 참 코믹스러웠다. 처음에는 싫었다가 점점 좋아진 인물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 화술이 궤변인 경우가 많고 또 갖은 뻥 및 풍자가 있어서인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유쾌하지만은 않을 듯 하다.


  고양이 주인인 구쟈미는 중학교 영어 선생이다. 신경쇠약에다 위궤양을 달고 살고 대부분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크게 감정의 변화는 없다. 하지만 신경쇠약인지라 내면적으로는 자신에게 휘둘리는 인물이기도 한 듯 싶다. 작가가 실제로 영어 교사였고 위궤양, 신경쇠약이 있었던지라 구쟈미가 실제적으로 작가의 모습이 많이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나오는 모든 인물에 대해 설명해주고 어떤 사건의 경위에 대해 쏠쏠히 알려주는 (남의 툇마루에 가서 엿듣고 오는- 따라서 구쟈미나 메이테이는 알지 못하는 사건의 경위에 대해) 고양이는 여기서 이름이 없다. 인간세상에 대해 고양이의 시선으로 평가하는데 작가가 인간세상을 보는 시선이 이러하리라 생각되니 구쟈미 선생으로서의 작가모습. 고양이 시선으로서 (작가 시선으로서) 구쟈미(작가 자신)를 평가하는게 재밌다는 생각이다. 


  보는 중간중간 수면제마냥 졸기도 했기에 한번에 딱 읽기는 어려웠다. 나쓰메 소세키에 관심있다면 읽어보라고 추천이다.

a*******g 2012.11.21.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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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식 비틀기, 그리고 그 냉소적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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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염세적이며, 시종일관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는 문체는 주인공 자신의 내면과 상대의 내면까지 깊숙히 파고들어 끊임없이 비틀고 있다. 일본문학에 관심을 가질즈음 누군가 재밌다고 추천한 '도련님'을 먼저 읽게 됐는데, "아! 요런 기특한 소설도 다 있구나!" 싶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도련님'보단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기승전결식 진행이 아니라 등장인물간의 심리
"나쓰메 소세키식 비틀기, 그리고 그 냉소적 매력!" 내용보기
지극히 염세적이며, 시종일관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는 문체는 주인공 자신의 내면과 상대의 내면까지 깊숙히 파고들어 끊임없이 비틀고 있다. 일본문학에 관심을 가질즈음 누군가 재밌다고 추천한 '도련님'을 먼저 읽게 됐는데, "아! 요런 기특한 소설도 다 있구나!" 싶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도련님'보단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기승전결식 진행이 아니라 등장인물간의 심리교류에 초점을 맞추느라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다 싶으면 어느새 삼천포로 빠져 등장인물간의 허세를 까발리는데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건은 들쑥날쑥이다.(원래 장편소설로 썼던게 아니라 단행본으로 띄엄띄엄 나온것을 묶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결국 이 소설의 관건은 고양이가 관찰하는 <인간이란 족속들의 행태>에 어느만큼 공감하고 집중할 수 있느냐다. "왜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되지도 않은 잡설만 잔뜩 늘어놓다 사라지지?" 하면 이미 지루하다는 증거요, 그렇게 시큰둥하게 책장 넘기다보면 어느새 책장을 덮고 소설속 구샤미선생처럼 엎드려 잠을 자다 입가에 묻은 침을 쓰윽~ 닦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이나 중편소설을 먼저 접해보고 "아! 이 작가 나랑 삘 통하네!"하거들랑 장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접근하는 것이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책값을 절약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될 듯 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이야기의 스펙타클을 기대하지 않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냉소적 시선만으로도 매력을 느낄 준비가 돼있는 독자라면 "킥킥.." 배꼽 살포시 잡아가며 볼 수 있는 <재밌는> 책이다!
j*****1 2003.08.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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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그러기에 반갑지만 그러기에 다소 슬픈 인간풍자의 이야기
"100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그러기에 반갑지만 그러기에 다소 슬픈 인간풍자의 이야기" 내용보기
번역하신 이분은, 예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연이어 소개해주신 분인데, 글쎄 약간 아쉬움이 남아 가능하면 다른 분들은 가격말고 (헤헤, 난 가격보고 이 책을 샀으니까) 직접 보시고 좀 더 가격이 비싸더라도 좀 더 요즘 읽기에 편한 번역을 선택하시길 바란다.   이 작품은 역시나 찰스 디킨스 등등처럼 한장씩 지면을 통해 소개된 작품으로 (글쎼 최근에 어떤 토크쇼에서
"100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그러기에 반갑지만 그러기에 다소 슬픈 인간풍자의 이야기" 내용보기

번역하신 이분은, 예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연이어 소개해주신 분인데, 글쎄 약간 아쉬움이 남아 가능하면 다른 분들은 가격말고 (헤헤, 난 가격보고 이 책을 샀으니까) 직접 보시고 좀 더 가격이 비싸더라도 좀 더 요즘 읽기에 편한 번역을 선택하시길 바란다.

 

이 작품은 역시나 찰스 디킨스 등등처럼 한장씩 지면을 통해 소개된 작품으로 (글쎼 최근에 어떤 토크쇼에서 사전제작 드라마의 실패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쩜 사전제작보다도 가끔 나중에 작품의 완성도가 그때마다의 시청률과 배우나 제작진 이상의 요구가 강한 시청자의 입김에 휘두렸다는 한탄이 나올지라도, 가끔은 그떄마다 반영되어 발표되는 작품도 상당히 괜찮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왔다. 찰스 디킨스는 그런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그럼으로 오히려 부분부분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없애지는 않았을까?), 약간 어긋나는 부분이 나에게도 캐치된다(일장의 미케양은 변호사집이었다가 갑자기 예인집 고양이가 되버린다)만, 이장부터 이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소설밖의 현상이 소설내 저자의 현신인 선생님에게 미치는 영향이 언급되어 재미있다. 나츠메 소세키가 소설속의 선생님인지라, 저자에게 실제로 고양이 사진을 보내달라 등등의 뇌물 내역이 소설속 선생님에게 등장하고, 고양이는 점점 더 콧대가 높아진다.

 

여하간, 말만 많고 실제로 실천력도 없는 한심한 선생님이지만, 식순이 오상에게 패대기쳐 (그럴줄은 알았지만 하도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이라 그닥 안아픈줄로만 알았는데, 사람들이 장난식으로 하는 것들에 이 고양이는 고통을 호소한다. 조금 깜짝 놀랐다. 인간들이 그리 잔인한가...) 사라질 것은, 이 한심한 선생님은 내버려둬라 하여 이집안 식구가 된다. 뭐, 이름을 부여받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전에는...' 어쩌고 하는 시도 있고, 이를 추리소설화한 [소세키선생의 사건일지]에서도 가슴뭉클 에피소드로 창작되어있지만, 이 소설의 고양이는 끝까지 이름을 부여받지못한다. 가슴이 조금 아프다.

 

여하간, 그렇게 우연히 살게된 고양이지만 하늘과 땅을 구분해놓은 인간을 비판하여 잠행을 분석하는 등 분석력이 거의 프로이트 급이다. 난 사실 이론보다는 그 너무나도 치밀한 분류와 분석때문에 프로이트 박사의 [꿈의 해석]을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읽고있다. 한 페이지마다 감탄해야 하므로..나라면 칠판에 판서하듯 이렇게 찍 분류하여 중분류, 소분류하는 등 레벨을 구분하고 정의하고 그 중요한 예를 언급하고 이에 대한 비판까지 정리해야 하는데, 그분은 너무나 대단하시다. 여하간 우리의 고양이는 그 급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단한 분석력을 가지고 있다.

 

언급하거나 인용하고 싶은 부분은 참으로 많다 (생각보다 좀 더 작은 장으로 나눴으면 하는 부분도 많기도 하지만). 마음에 새길 부분도 많고...단 하나 정말로 아쉬운 점은, 어차피 다 먼지로 갈 운명이더라도 책 속의 인간사가 그리 허무한 방향으로 발전되간다는 것. 아마도 계속 일으키는 일본의 전쟁, 그리고 사상을 단속하려는 비자유스런 분위기, 전쟁으로 인간들이 계속 죽는 그 허무한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이야기들이 생명력을 잃지않고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두는 것은..

 

 

 

p.s: 1) 고양이의 입을 빌렸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자신과 다른 종이지만,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악을 입히지않는한 (뭐, 차위에 새똥을 흘리는 등 직접적인 해악을 입히더라도) 보다 더 편하게 생명을 유지한다면, 같이 사는 지구 위에서 좀 더 다른 생명에게 친절했으면 좋겠다. 이 책의 핵심과는 다소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고양이가 툭툭 던지는 말 속에 인간으로 인한 고통이 들어있어 마음이 아팠다.

 

2) 아무리 선생님보다 똑똑하더라도, 가끔 호랑이가 된 꿈을꾸는 고양이라도 (아마도 위 번역서의 표지는 그 호랑이 꿈 때문인지도...ㅡ.ㅡ) 아래 고양이가 더 좋다. 그런데, 우리의 고양이는 까만 고양이가 아니라 회색고양이에 약간의 얼룩이 있는 종자란다. 눈앞의 고양이를 두고 엉뚱한 눈없는 고양이를 그리는 '선생님'인가봐..하하하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k*****k 2009.09.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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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렵다.
"아직도 어렵다." 내용보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는 여러가지 판본이 있다. 수많은 판본 중 문학사상사의 편집이 보기 편한 것 같아 선택했다.   사실 예전에 한 번 읽으려고 시도했던 책이다. 그러나 어려웠다. 포기했다. 다시 한 번 책을 잡은 것이 바로 이번의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책을 읽으며 웃었다.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톡톡튀는 유머 안에 숨어있었다. 예전에는 읽으면서 그 겉만을 읽고 느
"아직도 어렵다." 내용보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는 여러가지 판본이 있다. 수많은 판본 중 문학사상사의 편집이 보기 편한 것 같아 선택했다.

  사실 예전에 한 번 읽으려고 시도했던 책이다. 그러나 어려웠다. 포기했다. 다시 한 번 책을 잡은 것이 바로 이번의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책을 읽으며 웃었다.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톡톡튀는 유머 안에 숨어있었다. 예전에는 읽으면서 그 겉만을 읽고 느꼈다. 이번에는 좀 더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이야기 중간에 언급된 '오마치 게이게쓰'라는 이름에 주석이 달려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오늘의 일본 풍속도'라고 평하였다. 과연 그런 모양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당시 일본의 생활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간은 발이 네 개인데도 두 개만 사용하는 것부터가 사치스럽다.' 인상깊었던 구절이다.

  소세키의 생각은 곧다. 다른 문학작품에서도 보인다. 독서량이 부족하여 많이 읽지 못했지만 소세키의 '도련님'은 읽을 기회가 있었다. '도련님'의 '나'또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처럼 당시 일본의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나는 곧은 사람들이 좋다. 소세키의 생각이 좋다. 항상 본받고 싶다.

  책 속의 고양이는 나쓰메 소세키 자신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고양이가 죽을 때 슬펐다. 그러나 또다시 소세키 특유의 생각이 있어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나갈 수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애쓰는 건 무리한 노릇이다. 무리한 짓을 강행하려니까 고통스러운 것이다. 너절하다. 스스로 찾아서 고통을 겪으며, 스스로 좋아서 고문을 당하는 것은 너절하기 짝이 없다.'

  그 후 고양이의 독백은 곧 나쓰메 소세키 자신의 독백이다. "이젠 그만하자. 멋대로 하려무나. 아둥바둥은 이제 더 이상 원치 않아. 질렸어." 일본 사회에 대한 나쓰메 소세키의 외침이다.

  겨우 두 번째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이 책은 나에게 어렵다. 그러나 이번에는 끝까지 읽어냈다. 하나의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다가온다고 하였다. 나는 평생 이 책을 몇 번이나 읽게 될 것인가.

j*******4 2009.02.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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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고양이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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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외국에서는 "I'm a Cat"으로 번역되었고 한국에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번역된 소세키의 유머(?)소설이다. 내가 장르조차 불분명한 '유머'란 단어를 이 소설에 끄집어댄 이유는 우습게도 이 소설이 너무나도 유머러스한 나머지 내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되는 마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표적 인물 네명을 소개하자면 소세
"철학적 고양이의 자서전..." 내용보기
이 책은 외국에서는 "I'm a Cat"으로 번역되었고 한국에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번역된 소세키의 유머(?)소설이다. 내가 장르조차 불분명한 '유머'란 단어를 이 소설에 끄집어댄 이유는 우습게도 이 소설이 너무나도 유머러스한 나머지 내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되는 마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표적 인물 네명을 소개하자면 소세키의 분신격인 고지식한 중학영어선생인 '구샤미', 그의 친구이자 허풍선이 미학자인 '메이테이', 구샤미의 제자이자 엉뚱한 논문을 쓰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물리학자 '간게쓰',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결코 쥐를 잡지 않는 위대한 철학의 소유자 '고양이'...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사를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하는 방식의 이 소설은 고양이가 인간을 논한다는것 부터가 묘한 뉘앙스를 띄고 있지만 구샤미, 메이테이, 간게쓰가 펼치는 개성의 퍼레이드가 좀체 독자의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듬으로써 5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이 100페이지 정도의 유머집을 읽은듯한 여유를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우리에게 웃음만을 자아내게 하고 마지막엔 웃음의 원인조차 모호해지게 만드는 여타의 유머집들과 이 소설을 동격으로 치부해선 결코 안된다는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이 한세기전 일본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그리고 그만큼 한자어나 고사성어의 사용이 빈번하다는점, 한자어가 많다는 것은 문장을 이해할 때 어쨌거나 이해력의 부재를 실감하거나 사전을 참조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는점, 또한 작가가 영문학을 전공한 덕택에 문장들 곳곳에서 영문학과 관련한 책들이나 인용문구들이 드러난다는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세키의 인간에 대한 철학적냉소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점 등이 이 소설의 무게와 특성들이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고양이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이 소설은 실제로도 고양이를 키웠고 고양이의 죽음을 바라보았던 소세키의 애틋함이 투영되어있는 듯하여 애틋한 그리움과 슬픔마져 느껴지게 한다. 이 책은 문학사상사란 거대한 출판사와 하루키의 '상실의시대'를 번역했던 유유정이란 걸출한 역자까지 더해져 아마도 국내의 소세키 책들중 유일하게 많이 팔린 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며 그만큼 소세키를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린 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표지에 나와있는 고양이 그림은 피카소의 그림이며 페이지의 시작과 동시에 네페이지에 걸친 컬러판의 소세키 사진들과 설명은 이 책을 읽는 또하나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m******0 2003.11.18.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