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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도, 충분한 명분이 존재하지도 않는 그저 일상적인 불륜을 소재로 다룬 소설이다. 자칫 통속적이고 선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소재를 전경린의 자신만의 마법으로 제법 근사하게 승화시켰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여성의 관점에서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 그러다 보니 남편의 '불륜'은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이며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지만.. 자신의 '사랑'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한 몸부림 내지는 로맨스.. 뭐 이런 느낌도 약간 들었지만.. 어쩌면 그건 남자로서의 내 편견일런지도 모르겠다.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그 일상을 결코 떠날 수 없는 자들이 단지 눈을 돌리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시작한 게임... 이런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을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였을때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소설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떨어진 것도 이 시점이었다.
가정을 이루고 안정된 사람들이 느끼는 일탈의 충동이 얼마나 큰 파국을 몰고 오는지.. 얼마나 많은 타인을 상처입히는지 이 소설은 보여주기는 하지만 거기게 어떠한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거 같다. 어릴 때나 젊을 때나 혹은 나이가 들어서나 어느 때 하는 사랑이던지 사랑에는 그만한 책임과 아픔이 동반되고, 그 모든 책임과 아픔을 감수하고 사랑의 느낌을 받아들이느냐 외면하느냐 선택햐야 한다고..
근데 사실 개인적으로 이 부분.. 많이 헷갈렸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보상이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 않나? 그런 생각은 이기적인거 아닐까? 그러한 느낌에 보상을 바라지 않으면 게임도, 책임도, 아픔도 다 필요없을텐데.. 라는 생각은 공자 마빡때리기일까?
너무 많이 포기하고 살면 인생이 재미 없고,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면 사는게 너무 힘들어지는거 같다. 중용이라는게 그래서 중요한 것인데.. 나는 삶도 생활도 사랑도 어느 것하나 아직도 중용을 찾지 못하고 헤메인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나는 주변에서 '늘 나만 그런 것은 아닐거야..' 라는 위안을 찾고 또 아주 쉽게 종종 위안을 받는다^^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많은 표현들이 이 소설의 가치를 살짝 높여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간의 참신함이 결여된 스토리로 기대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웠던게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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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의 첫 상업영화로, 여성의 입장에서 섹스를 다뤘다고 알려진 영화 '밀애'. 비록 포항의 어느 허름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지만, 그 때의 떨림과 미소는 잊지 않고 있다. 이 책의 원작인 소설이 바로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다. 책은 어떨까, 꼭 한 번 읽어보리라 그렇게 다짐했건만 다짐으로만 그쳤던 것이 사실. 그러다 문학비평서인 '파문'에 전경린에 언급된 것을 보고 생각이나 냉큼 빌려다보았다.
영화를 봤으니 그 내용을 다 잘 알고 있는데도, '파문'에서는 전경린의 이 소설을 전작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그저그런 연애 소설로 치부하고 있는데도,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참 좋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지는 그 게임 속에서,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 상황 속에서, 이미 결혼이란 틀에 묶여 있는 미흔과 규의 혼란은 더해간다. 그 과정이 때론 정말 예쁘고, 또는 너무 답답했는데 그게 바로 내 마음을 건드리고 있다는 증거란 생각에 참 좋았다.
영화 '밀애'를 보고 영화 속 주인공에게 물었다. '너 그리 살어 행복했냐'고. 이 책을 보고서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 짧은 순간의 깊은 행복만으로도 살 수 있느냐'고. [인상깊은구절] p139 바닷물이 파란 것은 바다가 다른 색은 다 흡수하지만 파란색만은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거 알아요? 노란 꽃도 마찬가지에요. 노란 꽃은 다른 모든 색은 다 받아들이지만 노란색만은 받아들이지 못해 노란 꽃이 된 거죠. 거부하는, 그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을 규정하는 거요. - 규가 미흔에게 p242 강하다는 건 이를 악물고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관 없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다는 거야. 아무 곳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진흙 한점 묻히지 않고 피어나는 물 위의 꽃처럼. - 규가 미흔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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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이란 이름에 걸맞는 근래 보기 드문 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함으로 무장한 이번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내겐 특별한 재미였다. '군대'란 권태와 무사안일의 일상 속에서 '불륜'이란 소재가 가져다주는 일탈에의 달콤한 유혹이 책장마다 가득 묻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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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 아름답다
생각해 보니 전경린의 소설은 처음 만나는 것 같다. 그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니 이 한 작품이 나의 선입견이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떤 책을 읽을까 망설이던 차에 내 손에 쥐어진 그녀의 작품은 파란 표지와 제목에 반해서였을 것이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 뿐인'과 '~뿐일'이 주는 어감의 차이는 참 큰 것 같다. 앞으로의 시간을 장담할 수 없는 오늘을 살면서 단정적으로 말할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싶다. 하지만 작품 속 주인공 '미흔'은 자신의 사랑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작품 속 이야기는 간단하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불륜'이다. 시작은 남편의 '불륜'이고, 끝은 아내의 '불륜'이다. 남편의 이야기는 간단한 에피소드로 소개되어 있고, 그 뒤를 잇는 이야기이면서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은 아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 속 주인공 '미흔'은 평범한 아내였고,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자였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기막힌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사했다. 남편 효경이 일에 치여 사는 동안 잠깐 만났던 여직원이 그들의 공간에 등장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다복한 가정의 금은 다시는 치유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미흔은 일생에서 남자는 남편 효경 뿐이라고 그가 죽으면 너무도 외로워서 같이 따라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아주 평범한 주부였기 때문에 그녀는 쉽게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 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의 냄새를 사랑했다. 그의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는 세상을 향해 긴장을 풀 수 있었고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든 내 인생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의 꿈은 그런 것이었다. 스물한 살에 만난 남자가 그의 전 생애 동안 오직 나만을 사랑하고 나 또한 단 하나의 남자만을 사랑하며 평생 동안 하나이 생을 온통 함께 사는 것. 우리의 냄새를 다른 냄새와 뒤섞지 않는 것. 나의 꿈은 그것뿐이었고 그것은 흡사 하나의 이념과 같이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26쪽)
그런 일이 있은 후 2년동안 미흔은 제대로된 일상을 영위하지 못 하고, 효경은 그런 미흔을 위해 한적한 시골 생활을 제안한다.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된 미흔의 일상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새로운 인물, 윗집에 사는 그곳 마을의 사설 우체국장 '규'를 만나면서 활기를 되찾는다. 하지만 그 활기라는 것이 '구름모자벗기기'라는 이상한 게임을 시작하면서 그녀의 일상을 뒤흔드는 것이 되는데 미흔은 그 게임에 빠져들고 만다. 시골에서 효경은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깨어진 가정을 이어붙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미흔은 남편의 노력을 알아채지 못 하고 규에게 빠져들어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그런 불륜의 소재로 이루어진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볍지 않게 잘 읽히는 것은 아마도 여자의 내면 심리를 너무도 적라하게 묘사한 작가의 문장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어릴 때부터 합법적으로 제도에 편입되어 기념비가 되는 사랑보다 삶을 무너뜨리고 얼굴을 다치며 내쫓기는 비합리적인 사랑에 매혹되었다"던 작가의 작품 속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지만 누군가 사랑하고 있다면 미흔의 사랑을 추천한다.
"......당신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 강하다면, 남편의 일에 그렇게까지 크게 상처를 입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제부턴 강해지기를 바래. 강하다는 건 이를 악물고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다는 거야. 아무 곳에도 뿌리내지 않고 진흙 한점 묻히지 않고 피어나는 물 위의 꽃처럼." (242,243쪽) |
| 일명 이런 글을 읽어본지는 정말 오래된 것 같다. 그냥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지만 어떻게보면 나한테도 어쩌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일이다. 그냥 한낮에..새로산 오븐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그런 날..아주 한가로운 날..너무 평범해서 더 이상 다른 일이 무엇이 있을까조차도 생각못하는 그런 날..그런 날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한 여자가 들어닥치면서 결국은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는 것...참 한가로운 날에 닥친 일이라서 나도 놀라고 이 여자 주인공은 너무 놀랐을 것이다. 부부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없이 가까운 사이지만 한없이 멀어지게 되면 것잡을 수 없이 멀어지는 것이 바로 부부라는 이름인 것이다. |
| 평소에 이런 식의 소설은 거의 손에 잡지 않는데 그 이유는 글을 읽다보면 글 속에 가득한 감정 내지는 감상속으로 너무 깊이 빠져들어가 다 읽고나서도 한동안 머리가 띵하게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나 판타지 혹은 넌픽션을 주로 읽는데 아주 예외적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읽고나서의 첫번째 느낌은 영화 밀애를 안보길 잘했다는 것이다. 오로지 글만 읽으며 머리로 생각할수 있으니까. 미흔의 생각과 감정만 열심히 따라가면 되니까. 미흔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등의 분석은 접어두자.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이 완벽하게 당위적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이 인간다울수 있는게 아닐까. 그저 마음속에 상처를 가진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고 일탈을 하고 그리고 여자의 인생이 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고 싶다. 글을 읽는 내내 행간에 가득했던 말로 표현못할 감상을 느끼고 간직하는건 느낀 사람만의 특권일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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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고 좋은 작가. 문체가 좋은 작가가 있다.
전경린은 문체쪽에 더 가깝다.
사랑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라고 한다. 나는 사랑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가라 말하고 싶다.
참 글쟁이다. 내가 너무나 부러워 하는 글쟁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는 그녀
결혼하고 외딴집에 이사해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이놈에 사회에서 살아가지 않아 내면을 바라볼수 있는 것일까.
그 내면또한 무겁고 무섭긴 마찬가지지만...
미흔과 수...
사랑을 아는 미흔과 수가 있다. 그들은 남들이 불륜이라고 하는 행위를 했다.
불륜이란 단어를 참 싫어한다. 사랑은 하는 것이고 불륜은 저지른다 표현한다.
그리고 그들은 삶을 견뎌냈다. 미흔과 수는
마지막에 나오는 염소같다. 죽어가는 소리마져 무시하고 그냥 서로를 감아버린 그들은 삶의 끝을 보았다. 그래서 불륜으로 손가락질 받고 모든걸 잃었다고 해도 그들이 불쌍하지 않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이 아니라 <일>이다.
그러니 몸출수가 없다. 놓칠수가 없는 하루뿐일 날.
너무 감성적이고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진부하디 진부한 사랑과 불륜을 소재로 삶을 견뎌내는 우리네 모습을 본 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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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의 작품으로는 <엄마의 집>, <열정의 습관> 이후 세 번째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안 일인데 영화 <밀애(2002)>의 원작소설이란다. 영화도 봤었는데, 영화보다는 책이 더 제대로가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고서 드는 생각이라곤 '불륜은 왜 맨날 침대에만 눕지?' 하는 생각 밖에 안 들었으니 말이다. '야한 영화' 한 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 영화를 2002년도에 봤고 지금이 2008년이니 그로부터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때는 내가 어렸기에 그랬을까?
영화를 먼저 봐서인지 내 머릿 속에선 어김없이 미흔역은 김윤진이, 인규역은 이종원에게 맡겨졌다. 어찌보면 영상을 활자로 회상한 일이었을지도. 그러나 확실히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 책 역시 전경린만의 문체가 도드라졌다. <엄마의 집>을 읽었을 때도 역시 그랬다. <엄마의 집>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휘황찬란한 문체가 오히려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는 그것이 하나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다. 전경린은 잔뜩 기교를 머금은 모호함과 공감각적인 표현을 즐기는 것 같다. 그녀의 필명 전경린 역시 '고 전혜린' 여사의 그것을 흉내낸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전경린은 문체에 적잖은 비중을 두고 글을 짓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작가나 그렇겠지만 그녀의 경우 좀 더) 전혜린 글의 매력 역시 그녀만의 문체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비단 문체때문만은 아니다. 사유의 깊이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함, 인텔리한 시선은 더욱 훌륭하다.) 그런데 <엄마의 집> 보다 이 전에 쓰여진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 훨씬 단정하고 정돈된 느낌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갈 수록 기교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일지. 또 '이 문장을 반드시 쓰고 싶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이야기를 위해 쓰여진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와는 별 상관없이 쓰여진 문장들 같은 것이다. 지나치게 시선을 끄는 문장들.... 틀림없이 매력적인 문체인 것은 같은데 그것이 너무나도 의도적이 느낌이 든다. 똑같은 표현을 여러 군데에서 쓰고 있는 점도 들 수 있겠다.
그녀의 문체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하자. 그러나 전경린 소설에서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점 중 하나가 그녀의 문체일 것이다. 미흔과 인규의 게임은 사랑일까? '사랑' 거참 유행가 가사처럼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랑은 뭐지? 불륜. 불륜도 사랑일 수 있을까? 사랑. 그것이 아름답고 고귀한 속성을 가진 정신적인(혹은 육체적인) 활동인 것이라면 불륜은 사랑이 아닐게다. 불륜안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손 치더라도 나로서는 그것을 곱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결코 아름답게 여길 수는 없을 것 같다. 불륜이라는 것은 소위 말해 결혼이라는 제도로 확증된 두 사람이 제도 속 계약권자가 아닌 다른 자를 사랑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배우자의 믿음과 신의를 져버린 그것을 어찌 미화할 수 있겠으며 아름답다 두둔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아름답지 못했다. (아름답지 못하다고 해서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표제가 주는 느낌은 소중하고 절대 잊지못할 기억들로 가득한 이야기들이 담겼을 것만 같다. 예를 들어, 잊지 못할 생일선물이라든가, 기분좋게 특별한 경험이라든가. 그런데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우울했다. 남편(호경)의 내연녀와의 대면에서부터 인규(외간 남자)와의 사랑 그리고 파멸. 이 책의 제목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다. '하루뿐인' 도 아니고 '하루뿐일' 이다. 이것은 다시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표현이다. 게다가 '꼭' 이라는 단어도 힘주어 써두었다. 내(미흔) 생에 꼭 하루 뿐일 특별한 날은 인규와의 만남이었다. 인규와의 사랑이었다. 호경(남편)에게 배신감을 떨칠 수 없었던 상처받은 미흔이 인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인규는 그녀의 영혼을 위로해주고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다. 인규의 말대로라면 상처를 주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다. 어느 한 쪽이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면 지게 되는 게임. 승자는 없고 패자만이 존재한다는 게임. 그런 게임을 제안하는 인규는 어떤 상처가 있었을런지. 이 책에 나오는 자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빈 집터로 남았지만 그 곳에 살았던 부희, 휴게소 여자 은연, 미쳐버렸다는 인실 할머니, 미흔의 엄마. 그리고 미흔, 인규, 호경.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와 대면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신 내부에서가 아닌 타인이나 바깥의 것으로 그것들을 치유하려 하고 있다. 살던 곳을 떠나 이사를 한다(미흔&호경, 휴게소 여자 은연, 부희네 집 사람들) 그러나 간절히 상처가 낫기를 바라며 번민하는 고독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전경린의 화두는 '성'이다. <엄마의 집> <열정의 습관> 그리고 이 책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역시. 전경린은 이 책에서 상처받은 자들이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성'을 빌어 풀었다. 두 사람의 정사. 서로의 몸에 자신을 기록하기 위한 정사. 그것은 인규와 미흔만의 대화 방식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흔히 하는 데이트 같은 것보다 서로의 몸에 탐닉하는 행위로 대화를 대신했다. 잘 모르겠다. 섹스라는 것이 남녀에게 혹은 부부에게 얼마나 큰 문제의 것이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일지. 오로지 '미친듯이' 몸을 섞는 짓만으로 사랑을 할 수도 있는지. 아니 그것을 사랑이라 불러도 좋을지를 말이다. 이 책의 성애는 은밀하면서 노골적이다. 그런 행위 가운데 숨겨둔 뜻이 있으리라 믿기에 저질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책에서 미흔과 그녀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체 예술이 되는 섹스와 외설이 되는 섹스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니?....(중략).... 가슴이 빈약하고 머리가 짧고 화장도 하지 않고 단순한 속옷을 입은 여자가 하면 예술이고 가슴이 크고 머리가 길고 화장도 하고 튀는 속옷을 입은 여자가 하면 외설이야. 거의 그래(p.218)' 에서 처럼 미흔과 인규가 튀지 않는 평범한 자들이기에 그들의 짓을 예술로 읽어야 할지.
불륜. 그러나 그들은 그런 관계 속에서 상처를 떨친다. 절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만 같던 인규가 '사랑한다' 말하고 다시는 삶을 삶같이 살지 못할 것 같던 여자 미흔에게도 열정이 생기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를 쏟을 수 있는 그 무엇. 헤어나오지 못하게 나를 빠뜨릴 수 밖에 없게 하는 그 무엇이 없는 일상은 무미건조하다. 그것이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야 하는 자들에게라면 더더욱. 전경린의 이야기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다. 한 권의 소설은 또 다른 한 권의 소설에 속편처럼 존재한다. <엄마의 집>도 <열정의 습관>도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도. 서로가 서로의 속편이다. 어쩌면 전경린의 모든 소설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다른 책도 급히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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