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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책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통나무, 87년2월, p. 141)에서 '동양학도라면 꼭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하는 것'을 보고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그 후의 저작인 "노자철학 이것이다"(통나무, 89년3월, 앞날개)에 이동철씨의 번역으로 곧 나온다는 안내를 보았고(실제 번역은 김석근씨),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통나무, 89년5월, p. 355)에 보면 김용옥씨가 일본정치사상연구학회에서 '마루야마론'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도올세설"(통나무, 90년3월, p. 70)에서 직접 마루야마 마사오를 만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김용옥의 여러 번의 소개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日本政治思想史硏究)'의 존재를 알고 나서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되었으나 막상 95년 출간된 책을 서점에서 대강 훑어보고 너무나 많은 서적명과 인명이 나와 놀라서 덮어버렸고 또 그 당시 너무 바쁘기도 해서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책의 해제에 보면 서울법대 교수인 박세일씨가 '솔직히 말해서 한 줄을 읽지 못하겠더군, 그 책은 참으로 난해한 책이야'(p. 14)라고 하는 말이 나와 있는데 아마 나도 그 당시 심정이 그랬었던 것 같다. 99년에 조금 한가해져서 한 번 모질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구입하여 읽기 시작하는데 거의 암호를 읽는 기분이었다. 현재 일본은 선진국이라지만 중세 일본에서 학문이란게 있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무지를 통감했다. 지금의 일본의 학문전통이 19세기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려고 하면 '일본은 없다' 정도의 제멋대로 해석한 일본 인상기들만이 서점에 있을 뿐이었다(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가장 단순한 사실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대가들의 이름과 책들이 수백 명·수백 권 이상 나오는데 마루유마 마사오와 그의 주관심 대상인 오규우 소라이(1666-1728)를 제외하곤 아는 이름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그렇게 가까이 살아왔는데 일제의 한국통치가 36년이나 되었다는데 아직도 일본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200여년 전에 사셨던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도 오규우 소라이의 논어징(論語徵)을 읽고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 인용하고 계신대 지금 정보가 개방된 오늘날에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니 그저 놀랄 뿐이다.(나만 몰랐던 걸까) 우리 나라는 주자학의 질곡에 묶여 고전에 대해 주자와 다른 해석을 한 윤휴가 노론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고 죽었는데 일본에는 그런 질곡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고전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였기 때문일까?
예전에 배우기를 정유재란때 일본에 잡혀간 강항(1567-1618)이 일본에 성리학(주자학)을 전하여 일본의 문예부흥기를 여는 단초를 제공하고 후지와라 세이카, 하야시 라잔, 야마자키 안사이 등에 영향을 주었다 하는데 이 책에는 조선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인지. 무시할 정도로 영향이 미미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인 마루야마 마사오는 1914년생으로 동경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것이 1937년 23세이고 1940년 26세 때 쓴 논문 '근세일본유교의 발전에 있어서 소라이가쿠의 특질 및 코쿠가쿠(國學)과의 관련성'이 오늘날까지 일본사상사연구에 관한 세계의 모든 흐름을 주도하고 장악하고 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겨우 26세에 이런 대작을 쓸 만큼 많은 책을 읽고 그 것을 꿰뚫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다니.
그리고 1944년 결혼한지 3개월밖에 안 되는 아내를 두고, 징집영장을 받고 신병훈련을 받기 위해 한국의 평양으로 가게 되는 일주일간을 이 책의 마지막 논문 '국민주의(國民主義)의 전기적(前期的) 형성'을 유서(遺書)라도 되듯이 남기고 떠났다 한다. 죽을 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최선을 다했던 그의 모습이 존경스럽다. [인상깊은구절] 소라이의 길은 선왕의 길이며 선왕의 길의 본질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治國平天下〉는 정치성(政治性)에 있었다. … (중략) … 군주는 이들 특수한 기능을 기른 자들을 관료로 발탁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군주의 정치적 지배를 보좌하면서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 |
| 마루야마 텐노오(天皇)! 일본에 대해 피상적으로 (예: 일본이 있니 없니, 혹은 배낭여행기 등등) 떠드는 것이 아니라, 학술적으로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이라면 마루야먀 마사오(丸山眞男)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사실 국내에 일본사상사(日本思想史)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환기시킨 사람으로 도올 김용옥 선생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일본정치사상사연구(日本政治思想史硏究)》의 해제에서 도올이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존재를 알고난 이후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도록 치열하게 대결해온 역정을 기술한 것만 보더라도, 일본학계에서 마루야마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도올의 고백에서도 나타나듯 아직도 일본학계에서 ‘마루야마 텐노오(天皇)’의 권위를 뛰어넘는 자를 찾기 힘든게 사실인 듯 하다. 물론 마루야마 생전이나 사후에 마루야마의 방법론을 비판한 학자나 서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근원적으로 마루야마를 부정하고 뛰어넘는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 싶다. 오죽하면 도올의 데미안 쿠로즈미 마코토 교수가 마루야마의《켄큐(硏究)》를 "거대한 거짓말"이라 했을까. 일본에 유학을 간 학자들을 크게 분류하자면 대개 두가지 타입으로 볼 수 있을 듯 싶다. 일본 학계의 우월성에 심취해 매몰되는 사람과 그 속에서 허점을 발견하려 애쓰는 사람. 도올은 마루야마가 서구라파 근대사상이나 서구라파의 역사전개방식에 대해 하등의 의심을 품지 않고 종교적 신념처럼 받아들이고 있음을 비판하고 나름대로 일본학계의 문제점을 넘어서려 애써왔으니,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려나.. 이 책의 번역자 김석근 교수는 마루야마의 여러 저서를 한글로 번역해 내면서 실력을 쌓아가고 있음을 볼때, 우리학계의 신진학자들이 마루야마의 저주를 풀 날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며.. 나 역시 간만 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 거대한 책에 서평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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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드디어 일독했다. 사실 일독은 아니다. 특히 도올 선생의 해제는 다섯 번은 읽었다. 곱씹고 곱씹으려 읽고 또 읽었다. 일본에 대한 최초의 관심은 역시 근대화였다. 한, 중, 일 삼국이 서양이 몰려드는 근세에서 어떻게 대처했길래 오로지 일본만이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켰을까? 그리고 그 결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러한 의문이 들었고 이를 알고 싶었다. 즉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을 알고 싶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마루야마는 일본내부의 사상에서 일본이 이룩한 근대국가 건설의 동력을 찾으려 했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연구>이다.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연구>에 등장하는 많은 사상가들의 주장을 다 검토할 수 없으니 마루야마의 의도와 주장이 어떻다는 것을 대강 이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앞부분에 등장하는 도올의 해제는 참으로 강렬했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 어떤 노력과 수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체험과 경험은 절실하게 다가 왔다. 표절과 새로울 것 없는 정리에 급급한 한국의 학문적 풍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연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송대의 주자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연구>를 읽는 이유가 조선과의 비교를 통한 차이를 찾는 것이라면 송대의 주자학이 조선에 와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에 전래된 주자학은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세 번째 내용은 <연구>에 잘 나와 있다. 적어도 <연구>를 읽는 이유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동시대 조선에 관한 비교도 이루어져야 하리라. 그래야만 양국의 사상사의 변천과 그로 인한 사회발전의 변수와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루야마의 방법론으로 조선의 사상사를 다룬 책도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마루야먀에게 가서 배운 한국사람에 의해 쓰여졌다.
마지막으로 무릇 모든 이론이나 견해에 대한 비판은 이론이나 견해가 토대로 삼고 있는 핵심사상이나 대전제에 대한 타탕성을 검토하는 데서 출발한다 도올선생은 마루야마가 전제로 삼고 있는 헤겔의 역사주의를 그 비판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한 그러한 역사주의를 바탕으로 조선을 이해하는 태도 또한 문제삼고 있다 사실 역사에 대한 인식은 여러 갈래로 이루어질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를 발전한다는 <역사주의>, 똑같은 구조가 계속되고 있을 뿐이라는 <구조주의>, 영웅이 도전을 극복하고 새롭게 창조해 나간다는 <영웅사관> 등
역사주의를 바탕으로 성리학이 조선을 망하고 했고 조선의 근대화는 성리학을 부정하고 실용적인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논리 또한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사학계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역사주의에 입각한 해석만을 강조하고 있다. 도올은 성리학에서 조선근대화를 뿌리와 에너지를 찾고 싶어한다. 학문은 모든 권위에 도전한다. 이것이 학문의 가치이다. 반복과 아류의 재생산은 시간낭비이다. 삼봉의 민본사상 또한 따지고 보면 근대적 사고가 아닌가? 군주가 아닌 신하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재상총재제도는 근대적 사고의 출발이 아닌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 학도들이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배움의 길이 안락한 삶을 위한 수단이 될 때 학문의 치열함은 사라진다. 최고의 수재들이 하나같이 의대를 가려는 이 천박한 세태덕분에 노벨상 하나 받지 못한 현실이 계속된다. 학문의 즐거움과 함께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진리를 밝히려는 배움의 자세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절실하다.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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