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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인생, 제목을 참 잘지었다. 이보다 더 어울리는 제목이 있을까.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1년도 더 전에 아버지가 들고 오신 신문을 통해서였다. 신문을 집중해서 꼼꼼히 읽는 편은 아니지만 책과 관련된 기사나 새로 나온 책소개란 등은 즐겨보기에 그 날도 그냥 그런 기사가 없을까하고 펼쳐들었을 뿐이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한면을 장식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그때도 그저 책을 읽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서평에 대해서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나는 십여년이 넘게 천팔백여편의 리뷰를 모 서점에 올렸다는 그녀의 존재에 놀라웠고 그녀의 짧다면 짧은 삶이 안타까웠으며 슬펐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 바쁜 일상속에 그녀는 서서히 내게서 잊혀져 갔다.
그런 그녀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책과 관련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서평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과 원치않는 이별을 한지 딱 1년이 되던, 이 책이 출판되던 때였다. 그때 그녀의 기사를 접한 게 인연이라면 인연이었을까? 자주 가는 서점의 블로그에 올라온 서평을 접하는 순간, 그녀의 존재가 내안에서 되살아났다. 아, 그때 그분이다...하고.
그렇게 이 책은 내게 왔다. 그녀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기에 표지만 봐도 가슴이 아려서 그저 몇번을 쓰다듬어봤다. 책을 받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읽어버릴 것만 같았는데... 왠지 섣불리, 표지를 넘기지 못했다. 이미 다른 분들의 서평을 접해 어떤 내용인지 대충은 감을 잡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글은 정말 한자한자 정성들여 읽고 싶었기에... 그래서 한동안 책꽂이에 모셔두고 바라만 봤다.
그러다 더이상 바라볼 수만 없게 되어 드디어 읽었다. 역시 한번 손에 잡으니 놓기가 싫을 정도로 술술 너무나도 재밌게 읽혔다. 슬프지 않게 볼 수 있을 거란 서평을 접하긴 했지만 그래도 든 생각은 왠지 힘겨운 투병기와 그녀가 서평을 쓰면서 느낀 생각들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건 추리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기가 막힌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있었다면 난 아마 블로그에 찾아가 대뜸 이렇게 물어봤을 거였다. 정말 이렇게 재미나고 웃겨도 되는 거예요?라고... 여동생과 남동생에게 각각 만순, 만돌이라는 애칭까지 붙여 부르며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솔직담백하게 때론 대담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낸 그녀의 이야기는 조금이라도 슬퍼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자신보다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고 걱정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어느 순간 난 귀기울이고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한 생각은 존경스러움이 절로 묻어나오기에 옮겨보면...
[ 어떤 삶이 더 낫다. 못하다 저울질 말고 그저 내 삶이 제일이려니 생각하고 살자. 누구든 살면서 남보다 우위에 놓이길 원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게 그리 중요한가. 내 삶은 이생에서 단 한번뿐이고, 그 삶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하며 스스로가 아름답게 생각해야한다. 다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
우리가 바쁜 일상에 지쳐 잊고 사는 것들을 그녀는 그녀만의 방식대로 일깨워주고 위로해준다. 이 책은 아마도 내가 힘들때마다 두고두고 꺼내어보게 될 것이다. 헌데 그녀는 자신의 글이 책으로 엮어져 나오는 걸 원치 않았다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이렇게 책으로나마 그녀를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많이 기쁘고 좋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늘 바쁜 일상에 찌들려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잊은 채 계속 살아갔을 테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녀의 글을 다 읽은 후 그녀의 가족들이 마음에 걸렸다. 모쪼록 그녀의 바램대로 그녀의 가족들이 지금보다 덜 아파하고 덜 슬퍼하면서 서로를 아껴주고 위하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것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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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곳에 둥지를 틀 때였다. 당시는 블로그라는 명칭도 흔하지 않을 때였다. 블로그를 연 후 안내하는 대로 간단한 가입 인사를 했다. 그러자 처음 보는 블로그 친구들이 축하한다며 환영글을 달아주셨다. 이런 공간이 서툴 것 같은 아줌마가 들어왔다고 느꼈는지 이것 저것 친절하게 알려주는 분도 계셨고, 댓글도 달아주며 격려해주는 분들도 계셨다. 친구들이 이끄는대로 하나하나 익히며 하다보니 꽤 재미 있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 젊었던 터라 애 아빠와 만나게 된 경위라던지, 우리 둘의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등 시시콜콜한 얘기를 창피한지도 모르고 적었었다.
이 곳에 적응할 즈음, 블로거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따뜻하고 잔잔한 글로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을 받던 분이셨다는데, 지병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시게 되었단다. 그 분의 마지막 글이 불과 며칠 전 실려있어서인지 블로거들의 충격이 대단한 듯했다. 그 분을 추모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고, 몇몇 분은 문상과 더불어 발인까지도 함께 하셨다. 장례식이 끝난 후 돌아가신 분의 누님이, 블로거들로 인해 동생의 마지막이 쓸쓸하지 않았다며 감사의 글을 올리셨다. 미혼인 젊은 남자 블로거의 죽음은 한동안 이 공간을 슬픔에 젖게 했지만, 발벗고 나서 마지막을 함께 한 블로그 친구들로 인해 이곳이 결코 삭막하지 않은 곳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유명 블로거로 활동하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한 리뷰어에 대한 이야기다. 물만두라는 닉네임으로 모 인터넷 서점의 중추적 블로거였던 홍윤씨의 글이 그녀의 일주기를 기해 이번에 출간됐다. 그녀에 대해 안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다. 책을 받자마자 열심히 읽어내려 갔다. 책에는 2003년 12월 부터 2010년 10월 마지막 글까지, 지상에서의 그녀의 삶이 온전히 드러나 있다. 10년간 1,838편의 리뷰를 올렸다는 전설적 블로거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게다가 근이양증을 겪었던 그녀가 그 많은 책을 어떻게 읽고 썼을지 그 경이로운 과정이 궁금했다.
'질보다 양'이라는 구호로 글을 썼다며 그녀는 책에서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리뷰가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것은 그녀의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삶은 오로지 책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덥거나 춥거나, 마음이 힘들거나 편안하거나, 외롭거나 쓸쓸하거나 그녀는 어떤 감정과 상태속에서도 책과 함께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자신은 '질보다 양'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그 말은 오히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길지 않음을 직감했던 그녀가 한 권이라도 더 읽고 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을 준비했던 25살의 한 여성이, 꽃도 피워보기 전에 자신이 회복되기 힘든 병에 걸렸다는 걸 알았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자신의 20대가 그 갈등으로 힘들었다고 적었지만 그 후로 병과 관련된 절망은 잘 표현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조증과 울증을 오고갔다는 얘기를 서술할 뿐이었다. 또한 극단적 선택과 같은 표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엄마에게 들켜놓고는 멋적어 했다는 것만 글에서 느껴질 뿐이었다. 그녀는 간간이 자신의 첫사랑을 언급하곤 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지만 대학교 1학년 때의 남자 친구와의 첫키스는 그녀의 글에 시간을 두고 나온다. 단 두 달간의 만남이 그녀의 평생에 남을 소중하고 유일한 추억이 었다. 그 이상의 추억이 없음을 그녀는 아쉬워했다. 내 가슴이 다 짠해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든든하고 안전한 가족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유복하진 않았지만 좋은 부모님 밑에서 절약하는 습성을 익혔고, 나이들어서까지 함께한 가족은 그녀의 기쁨이자 명예였다. 아프기 전까지 동생들에게 믿음직한 맏이이자 반 부모의 역할까지 했던 그녀는 동생들과의 추억도 자신의 일부로 여길만큼 가족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글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녀는 평생을 병과 싸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단지 근이양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아니라 병과 싸워 이긴 백전의 노장이었고, 역전의 용사였다. 식구들 또한 단지 지켜만 보는, 좋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도 외유내강의 훈련된 병사였고 병마와 싸워 이기도록 지원한 우군이자 버팀목이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홍윤과 식구들이 우울과 절망속에 있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주어진 삶을 얼마나 아프도록 소중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는지를 알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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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홍윤의 몸무게 만큼 가볍고 편안한 책이었다. 그런데 제목이 '별 다섯 인생'이다. 그녀의 생이 최고의 인생이란 뜻일터다. 그녀는 리뷰를 올리며 책에 대한 평점을 별로 표시할 때, 늘 진지하고 후했다 한다. 이제는 우리가 그녀의 삶을 다룬 책에 별을 매겨야 할 차례가 되었다. 당신은 별을 몇개나 줄텐가? 나는 이미 마음 속으로 별을 매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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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따사로웠다. 이율배반적인 이러한 감정이 되는 것은 저자의 따뜻한 마음과 그의 상반되는 그의 삶 때문인 듯하다. 온 몸이 병 저장고라 할 수 있는 분, 더구나 아름다운 것과 향기 나는 것만을 생각해도 다하지 못할 감성을 지닌, 향기를 지닌 여인으로 그렇게 모진 세월 속에 놓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읽는 내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구김살 없는, 자신의 현재를 넉넉히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바는 잘 모르겠지만 언어로 나타난 그의 모습을 살필 때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알라딘 서재에서 오랜 시간 물만두라는 닉네임으로 서평활동을 해온 홍윤님의 글이다. 서평활동 중간 중간에 그의 삶을 적어 다른 서재님들과 소통의 장을 만들었고, 그 글들을 모아 편찬해낸 책이다. 진행성 근육병을 앓으면서 그의 가족생활은 이루어지고 있다. 아버지, 엄마, 여동생, 남동생 화자 그렇게 한 가족이다. 화자가 밖에 나가서 하는 생활이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거의 가족의 이야기다. 그 가족들의 따뜻한 모습과 구김살 없는 솔직한 생활 형태가 녹아들어 있는 글은 우리들의 마음을 아늑하게 한다. 어려움이 아무런 어려움이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게 한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10년간 무려 1800여 편의 서평을 썼다. 그녀는 주로 추리적인 글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서평은 그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그녀의 서평이 훌륭해 추리 소설 신간을 읽으려면 그의 서평부터 읽고, 읽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소문이 났다 한다. 알라딘에서는 꽤 유명인사가 되어 있는 듯하다. 이 책은 그가 투병을 하다가 사망하고 난 후, 그의 유고 형태로 엮여져 나온 것이다.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많이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그리 특별하지도 않는, 특별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 책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그녀의 서재 지인들과 관련된 이야기라든지, 동생들과 관련된 이야기, 또 부모와 관련된 것들, 지병과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조찰하게 그려져 있다. 사소한 내용들이 가슴 뭉클하게 하고 있다. 그녀의 삶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이 보통의 상황과 너무 다르기에 감동을 준다. 너무 순수한 화자의 모습이 글 속에 담겨 있다. 그 순수를 뭐라고 말할 수가 없을 듯하다. 단지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백설과 같은 맑은 영혼의 노래라고 밖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난다. 그것이 물질의 어려움이든, 정신적인 혼란이든, 육체의 힘겨움이든 많은 일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좌절하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몫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이 책은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간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정말 건강한 사고고, 세상을 밝게 만들어주는 요인이 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데는 화자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노력가 긍정적인 사고에 찬사를 보낸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불행하다고 한다. 나도 어릴 적 그런 생각을 지녔을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자폐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볼 기회가 있어 가보고 그런 생각이 많이 지워졌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하는 것을 느꼈다. 그 뒤부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으로 많이 치환된 듯하다. 요즈음은 모든 면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이 컵에 반이 남아 있으면 ‘아직도 반이 남았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이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듯도 하다. 작품을 읽으면서 화자의 모든 생활과 생각 그리고 언어를 만나면서 늘 생각이 머물렀던 것이 순수와 긍정이다. 정말 감사하게 읽은 책이다. 저자의 명복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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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알라딘을 통해서 이다.평소 추리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책을 고르면서 새로운 작가 , 괜찮은 작가, 숨겨진 작가를 찾다가 우연히 그녀의 글 ( 물만두 필명) 을 보게 되면서 추리 소설을 읽고 사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솔직히 글만 보고 가고 도움도 꽤 받았지만 댓글도 하나 달지 않는 도둑 이웃이었지요 . 그래서 그녀의 병도 몰랐다. 글들이 너무나 쾌활하고 밝아서 아프리라 짐작도 못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랐다. 저의 스승 , 친구, 이웃이 한꺼번에 사라져서 너무나 안타깝고 허망했는데 물만두 그녀가 떠난지 일년만에 책이 나왔네요.
이책은 그녀의 일상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어떻게 리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만두 동생, 만순이, 만돌이, 부모님의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힘든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느낌 보다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이야기처럼 너무나 웃음지게 하며 때론 그래 인간이므로 가족이므로 이런것은 잊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도 한다.
글 중간 중간 아픔에 대한 글도 있지만 그 아픔을 어떻게든 의지와 희망으로 이겨내려는 의지 또한 가득해서 읽고 있는 저도 힘이 불끈 불끈 하게 만들더군요 .
이처럼 물만두 그녀는 책에 열중했다. 아파도 읽고 슬퍼도 읽고 즐거워도 읽었다.
어린시절의 기억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꿈꾸는 그녀의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이 들었다. 난 조그마한 고통에도 불행에도 남을 탓하고 내인생은 절망이라고 투정을 부렸는데 그녀는 받아들이고 받아들인다 . 그녀의 글중에서 고통은
스물다섯처음 발병한 병으로 인해 오랫동안 점점 몸에 힘을 잃어가면서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긍정적이고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게 했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녀를 보살피는 가족이 아니라 그녀와 같이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은 가족때문이니라, 언니로서, 딸로서. 누나로서의 자리를 뺏어가지 않는 가족들의 따스한 시선때문임을 그녀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그마한 상처에도 난 꽤 오랫동안 아프다고 말하고 보여주고 했던 것이다.나는 아직 덜아프다는 증거다 . 왜냐하면 그녀의 말처럼 너무 아픈 그녀는 책속에서 난 아프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상처등을 이야기만 할뿐 어디가 아프다 라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10년동안 오랜 병마와 싸우면서 조금씩 글을 쓰고 책을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희망을 놓치 않았다. 내일 당장 다시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을 쓸것 같은 희망을 던져준 그녀가 , 그녀의 글이 너무 그립다.
장르소설서평은 스포일러 없이도 가능하며, 추리소설 또한 계보와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오랫동안 같이 더많은 추리소설을 읽지 못하게 되어 아쉽다. 좋은 꽃밭에서 좋은 경치와 함께 더좋은 추리소설들 좋은 세상에서 만나고 있을것이라는 기대를 가진다. 그녀라면 물만두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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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무서워하는 것 네 가지> 첫째, 아버지가 사 오시는 정체불명의 건강 보조제. 둘째, 내 방에 책이 점점 쌓여 가는 것. 셋째, 만순이 방에 옷이 넘쳐 나는 것. 넷째, 만돌이 방에 게임 CD가 널려 있는 것.
인생 뭐 별거 있어!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내가 하는 말이지만 내말처럼 느껴지지않고 마치 물만두님이 곁에서 속삭이는 말처럼 들려왔다. 내가 물만두라는 닉네임을 처음 알게된 것이 언제였더라. 몇년전으로 기억된다. 그 무렵엔 물만두님이 아프다는 사실도 몰랐고 아마 알았어도 금방 잊어버렸을테지. 책을 읽어가면서도 생전에 가까이 했다면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친하게 지냈을 있었을텐데 라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10년간 1,838편이라는 리뷰를 올린 전설적인 서평 블로거. 한달에 15권, 일년이면 180권 정도, 10년에 1,838편이라 힘들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는 나에게 있어 그다지 대단한 숫자로 보여지지는 않았다. 아니 그것은 물만두 홍윤 씨의 병명을 알기전에 불과 했지만 말이다. 스물 다섯 한창 꽃다울 나이에 진행성 근육병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던 와중에 책을 읽고 쓴 서평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도에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잠시 들었지만 역시나 금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들려온 2010년 12월 13일의 영면 소식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몇일 전 벌써 1주년이 지났다던가?
물만두, 만순이, 만돌이, 1남 2녀와 부모님까지 다섯식구가 알콩달콩 참 재미나게도 살아간다. 가족들이나 알라딘을 비롯 물만두를 아는 분들께 물만두는 아직 잊혀진 인물이 아니다. 그녀의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권해가기도 하며 생생하게 살아숨쉬고 있다. 비록 몸은 병들었으나 마음만은 건강하게 살아왔던 그녀 물만두와 몸은 건강하나 마음에 깊은 병을 앓고있는 살아도 사는것 같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과 과연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았고 살고있는가 싶어 잠시 비교하는 생각을 해봤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p.18) 기형도 시인의 <질투의 나의 힘>의 일부분인데, 이말이 나를 사랑할줄 모르는 나를 향하는 말처럼 느껴져 더 아프게 다가왔다. 물만두 홍윤과 비슷한 생(나이)을 살아왔지만 내 삶에 있어 그녀처럼 남기고 갈 무엇이라도 존재할까? 살아오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번도 안해봤다면 이상한 일이겠지. 때로는 죽음에 대한 생각도 해보지만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 잊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에 그 유혹을 이겨나갈수 있었다.
작년 얼굴을 알지 못하고 인터넷으로만 만났던 사람들 중 몇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잊혀졌다. 난 그렇게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 오늘 내가 죽는다해도 그것을 기억해주고 슬퍼해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또한 그들에게 있어 잠시 기억했다 사라져도 이상할리 없는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친구가 별로 없고 수다 떠는 거 싫어하고 혼자 만족하며 사는 인간' (p.62) 유유상종이라고 친구는 닮아야만 사이가 오래 간다고 했던가? 책을 읽어가면서 그녀의 성격이 나와 비슷한가 싶더니, 더 읽어가면 갈수록 나보다는 딸과 닮아 있었다.
'1년을 함께 지내는 동안 말을 한 번도 안한 아이도 있고, 친한 친구 한 명이 없던 적도 있다.' (p.73) 극소심에 내성적인 성격과 뻔뻔함이라 친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딸의 말이 물만두의 말과 어우러져 환청처럼 들려왔다. 제목 <별 다섯 인생>은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붙인 점수가 아닐까. 1주년을 맞아 그녀를 추억하기 위해 그녀가 10년간 쓴 서평들을 모아 <물만두의 추리 책방>을 출간했고, 그녀의 일기를 모아 이 책 <별 다섯 인생>을 출간했다. 자칭 타칭 넘어지기의 달인이자 책 읽기와 서평 쓰기의 달인인 물만두 홍윤, 아직도 그녀의 알라딘 블로그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추억하며 찾아들고 있다.
만두 걱정 마시길…… 만두는 변함없는 만두일 뿐……. (프롤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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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리소설에 관심이 생긴 것도 이 책의 저자인 홍윤(필명: 물만두) 씨 덕분입니다. 홍윤씨의 추리소설 서평책을 읽고 추리소설을 한권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연애소설이 시시하기 까지 합니다. 이를 어쩌지요?^^ 홍윤님... 별 다섯 인생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요. 웬지 시같고, 마지막 잎새와 같은 아련함과 가련함이 묻은 제목뒤에 이렇게 유쾌한 인생이 담겨져 있네요. 알라딘이라는 웹세계속에서 책을 읽고 나누고 위로받고 상처받으며, 당신은 책의 평점을 매기고 있었네요. 당신의 평점은 후하기로 유명하다지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후하게 살아주셔서. 글들을 읽으면서 '과연 불치의 병을 가진 사람이 맞나' 싶었습니다. 너무도 밝습니다. 유쾌합니다. 멀쩡하게 살면서 우울하게 살았던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나도 다시 유쾌해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어주셔서. 환경에 관계없이 열정을 불태운 삶을 기리고 싶네요. 남은 유족들은 아직도 홍윤님을 많이 그리워하겠지요. 유족들께서 이 글을 읽으실지는 모르겠으나, 홍윤님이 저 별로 가셨지만 아직도 팬이 생기고 있고,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홍윤님의 동생, 현수씨... 저도 여동생이 있어서 홍윤님의 여동생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맏이는 언니지만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가지고 있답니다. 그런 사랑을 받으셔서 참 행복한 사람이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자주 물만두님의 블로그에 들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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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닉네임을 알게 된 것은 그녀가 고(故)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그때가 책을 읽고 서평이란것을 작성한 시기였거든요. 그리고, 10년간의 1,838의 리뷰를 올렸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고, <물만두의 추리 책방:2011년 작품>이라는 책도 출간이 되어 관심이 더욱 증폭 되었지요.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책 <별다섯 인생> 처음 봤을 때 무슨 뜻인가 했는데 별은 리뷰를 쓸 때 표시하는 그 책의 평가 인것을 알게 되고, 그녀의 인생이 이 책속에 있음을 깨달았답니다. 비록, 뒤늦게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밝은 모습은 현재 불만인 내 모습에 부끄러운 생각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2003년 12월을 시작으로 2010년 10월까지 그녀의 소소하고 일상의 이야기들은 뭉클하게도 하고 부모님들을 비롯 동생들과의 생활들이 너무 평안하게 다가왔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큰 고비가 오면 두가지 갈래로 나뉘어지는데 그녀가 받아들이는 삶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용기를 주는 선택이었습니다. 읽다보면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인 것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기에 '물만두' 닉네임을 잊어버리곤 했거든요.
언제나 책과 함께 했던 삶. 누구에겐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누구에겐 지루함을 달래는 시간을 주기도 하고, 누구에겐 세상을 알아가는 지혜를 주기도 하고, 누구에겐 삶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 책...난 과연 이 네가지 중에 어느 곳에 속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책을 오래 볼 수 없단 말이지 고개를 숙이고 오래 있을 수 없단 말이지 고개가 아프단 말이지. 어느 세월에 이 책을 다 읽느냔 말이지 아이고....
이젠 허리까지 아프단 말이지 한 번씩 고개를 들어야 한단 말이지 아, 늙는 것도 서러운데 책도 읽기 어렵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 은근히 재미있다는 사실 아마 안 읽으면 후회할 사람 많을 거란 말이지'
2006.4.13.
간간히 그녀가 남긴 발자췌를 보면서 책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책이 궁금해서 시작한 독서가 이제는 서평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하지만 이것이 습관인지 애정인지 구분이 안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책과 함께 하는 것이 이제는 좋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어떻게 리뷰를 작성해야 하는지 참 고민이 많았던 책이었답니다. 하지만, 읽고 나서 좋았던 그 감정들을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지 않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그녀를 향한 추모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녀가 남긴 잔여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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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소설 자체도 많이 읽지만 독자들의 서평(書評)들도 자주 찾아 읽게 된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 특히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는데 크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같은 책을 읽었지만 서로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는 다른 독자들의 글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가 제법 신선하고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리소설 서평들을 읽다보면 꼭 만나게 되는 닉네임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 서재에서 “만두의 추리 책방”을 운영하시던 “물만두”님이다. 내가 읽어온 책들 뿐만 아니라 꼭 읽고 싶었던 책들을 눌러보면 어김없이 물만두님의 서평들이 올라와 있었고 그분의 서평들을 읽으며 내 감상과 비교도 해보고 책 구입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추리소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닉네임이 바로 “물만두”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난 그분을 추리소설들에 달린 서평글로만 만났지 그분이 어떤 분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분의 서재도 가끔씩은 들어가 봤지만 역시 추리소설 서평들만 읽었을 뿐 그분이 올린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글들은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2010년 12월 어느날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 게시글을 통해 그분의 부음(訃音)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내가 알고 있던 “물만두”님이 맞는지 의아해서 그분의 서재에 들어가 봤더니 이미 그분을 아는 많은 분들의 추모 댓글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죄송스럽게도 슬픔이나 안타까움보다는 이제 추리소설들에 한결 같이 달려 있을 그분의 글들을 읽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예전 가수 김광석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도 첫 생각은 슬픔보다도 언제나 그를 만날 수 있었던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 가도 그를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분의 부음 기사와 추모 댓글을 통해서야 그분이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성분이라는 것을 알았고, 오랜 기간 동안 병마와 싸워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분이 떠나고서야 그분의 삶의 일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셈이다. 그 이후로 그분의 닉네임을 딴 추리소설 리뷰대회에 응모도 하고, 간간히 그분 서재에 들어가 추모 댓글들이나 과거 글들을 읽곤 했었는데, 역시나 그분의 새로운 글들을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가시지 않았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분을 두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그분의 추리소설 서평들을 엮어낸 <물만두의 추리책방>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공개 일기를 모은 에세이 <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년 12월)>이다. 그 중 먼저 그분의 속삶을 엮어낸 에세이부터 만나게 되었다. 책 앞표지 책띠 속 그분의 작은 흑백 사진, 병마의 고통이 컸다고 들었는데 그런 아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밝은 모습의 그분의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생기신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표지를 열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2003년 12월부터 그녀의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린 2010년 10월 20일까지의 일기와 서재 게시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프롤로그 <만두의 진실 또는 고백(2004.9.3)>에서 그녀는 자신이 앓고 있던 병에 대해 털어놓는다. 아마도 그녀가 아프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밝힌 글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진행성 근육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상태는 일어나는 건 못하고 자다가 한 번은 뒤집어 줘야 하며 깨면 일으켜 줘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아픔에 의연하게 대처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인생을 살고 또 다른 사람은 저런 인생을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가끔 엄마가 “하필이면.......” 하시는데,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자신이라도 상관없다는,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인생을 사는 건 재미없는 일이며 그저 자신 나름대로 즐겁고 재미나게 살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조물주가 아홉 개의 건강한 공과 한 개의 병든 공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셨는데, 그중 병든 공 한 개를 골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자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불행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니 남들도 그런 걱정일랑 마시길 하고 씩씩하게 말하고 있다. 보통 오랜 병마에 시달리다가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수기를 보면 온통 좌절과 슬픔이 가득한데 이런 의연함과 씩씩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본문에 들어서면 그 이유를 짐작해볼만한 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성품(性品)을 들 수 있겠다. 그녀는 아픈 몸 때문에 참 많이도 넘어지고 다쳐서 반창고를 늘 달고 다니지만 그저 해프닝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또한 프롤로그의 글처럼 스물 다섯 나이에 시작된 병에 대해서도 그저 여러 인생 중에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뿐 전혀 동정 받을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하며 나음대로 즐겁고 재미있게 살 생각이라고 말한다.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지만 그 또한 그녀의 밝고 낙천적인 성격 앞에서는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을 끈질긴 사람이라고, 자신의 병도 그런 자신에게 정 떨어져 나가 버릴지 모를 일이라는 그녀의 말 속에 그녀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거기에 가족들의 사랑 또한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은 가지고 싶은 거 다 가져보지 못하고 살았지만 자식들에게만은 그렇지 않고 싶다며 먼저 선물을 내미는, 그러면서도 건강식품과 식탐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딸 병수발하면서도 전혀 힘든 내색하지 않고 집안에 머물 수 밖에 없는 딸을 위해 사진기로 꽃을 찍어 보여주는 어머니, 때로는 언니와 먹는 걸로 다투기도 하고 언니가 책으로 한번 써봐라 할 정도로 짠순이 동생이지만 속내 깊은 곳에는 언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여동생 “물만순” - 실제 이름은 참 예쁜데 “물만두” 언니 덕분에 동생들이 다 무슨 “만”자가 돌림자처럼 닉네임에 붙였다 - , 무슨 낮잠을 택배기사의 초인종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푸지게 자서 종종 경비실에서 택배를 찾아오게 하지만 제대 후 혼자 제대로 걷지 못하는 누나 때문에 속상해 대성통곡했다는, 역시 누나에 대한 사랑만큼은 깊었던 남동생 “만돌이”.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를 보살피고 배려해줘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음식 가지고 다투기도 하고, 아버지 선물 살 때 돈 모으는것 가지고 “꼼수”도 부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그녀가 잠시나마 자신의 병을 잊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의 그녀에 대한 사랑만큼은 어찌나 따뜻하고 속 깊은지 읽는 내내 부러움이 다 들 정도였다. “오랜 병고에 효자 없고 형제없다”는 말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족 모두가 힘들고 지친다는 뜻이겠지만 이 가족에게만큼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슴 한 구석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픔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씩씩한 그녀도 아픈 딸을 보살펴야 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은 숨기지 못한다.
세상의 어느 자식이 자기 입으로 효자라고 말할까마는 건강한 자식, 안 아픈 자식은 무조건 효자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모두 건강하시길.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사시길. 그리고 부모님은 자식 마음 아프지 않게 건강 돌보시길. 건강하다는 건 세상에 나와 이미 한 가지 복은 받은 셈이니까. 그래서 가끔 나는 부럽다.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여. 2005.01.31. - P.150
세 번째는 10년간 올린 서평이 1,838 편에 이를 정도인 책에 대한, 특히 추리소설에 대한 사랑을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녀는 하필이면 왜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는 데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도 슬픔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슬픔이 더 큰 슬픔과 연민을 동반하고, 가슴에 침잠해 있던 것들까지 부유하게 만드니 가슴이 먹먹해서 기분이 가라앉기 십상이다. 지금도 사랑이야기를 읽고 나서 가라앉은 상태다. 기분을 바꿔보려 애를 쓰지만 왠지 귀찮다. 그래서 추리소설만 읽는다. 2006.02.27 - P.288
결국 병마 때문에 그녀의 감성이 메말랐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더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달달한 로맨스 소설에 자신의 감성이 흔들릴까 두려워서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닐까? 그녀의 감성은 몇몇 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아파서 자다 깨다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침에도 후유증이 남는다. 다가오는 날들을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매번, 매시간, 매일, 오는 날들이여. 반기지 않아도 되갰지 작별은 의식없이. 언젠가 내가 떠나도 괘념하지 마시길, 아주 먼 언젠가. 오늘은 우울이 똬리를 뜬다.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지니고 있기로 했다. 이런날도 있는법. 울고 싶음 울고 우울하고 싶음 우울에 나를 던진다. 그래도 나는 빠져나올 자신이 있으니까. 2006.11.21. - P.267
나,너,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나, 너, 그리고 사랑이 있다가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나와 너는 남았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다. 나와 네가 사라지고 사랑 이 남는다해도 그 사랑 또한 좋은 것이니 족하다. 나, 너, 그리고 사랑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모두 함께 사라졌으니 슬픔은 남지 않 아 좋지 않을까. 나와 사랑만 남거나 너와 사랑만 남는다면 그 남은 한자리는 슬픔이고 그리움이고 아쉬움일테니. 2006.11.18. - P.337
어쩌면 그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과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아파하거나 또는 고통의 신음으로 드러내지 않고 의연하게 이겨내려 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 적어도 추리소설만큼은 감정이 이리저리 흔들릴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저 재미있게 읽고 즐기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밝았던 그녀, 결국은 “그럼 건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아 심한 건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2010.10.20.”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2010년 12월 13일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저 글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을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녀다운” 인사였다. 마흔 살 너머 오토바이로 세계 일주 하겠다던 김광석은 마흔이 되기도 훨씬 전인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서른까지만 살고 싶다던 그녀는 서른을 훌쩍 넘어 열 두해를 더 살다가 마흔 둘에 우리들과 작별을 했다.
물만두님은 전문 작가도 아니었고, 어쩌면 오늘도 병마에 시달려 신음하고 있을 많은 환우들의 사연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그런 “평범한” 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녀가 남긴 이 일기가 가슴 속에 잔잔하지만 결코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은 울림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앞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바로 삶에 대한 그녀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되어 주었지만 그녀의 삶을 “읽는” 우리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격려와 용기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미사여구로 과장되게 치장하지 않은 솔직하고 담백한 그녀의 말들이 그녀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웠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너무 늦게 만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안타까움과 슬픔 뿐만 아니라 가슴 한 켠을 따뜻하게 만드는 감동을 느끼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북 리뷰어” - 동생 만돌이가 이력서의 누나 직업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 라면 잘 알고 있을 인터넷 서점에서 책 평가 점수 방법인 “별” 평점은 그녀가 남긴 이 책에,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도 “별 다섯” 만점을 준다. 별점 후하기로 소문난 나이지만 이렇게 흔쾌하게 만점을 주기는 이전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매우 드문 그런 일일 것이다.
그녀의 서재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추모 댓글 여기서나마 간단하게 적어본다. 당신이 보여준 책에 대한 애정과 아름다운 삶, 정말 고마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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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알라딘에서 갑자기 물만두님에 대한 추모의 글이 올라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물만두님이 어떤 분이시길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전부터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고, 리뷰도 쓰기 시작했다. 여러 서점에 리뷰도 올렸지만 물만두님처럼 알라딘 서재에 리뷰 외 글도 열심히 올리면서 이웃들과 교감하지 못하고, 주로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에만 사적인 글을 올리고, 이웃관리 소홀한 것은 여전했다. 그나마 네이버가 인터넷 서점보다는 나의 주무대였다는 것이 차이일뿐. 그래서 물만두님을 미처 몰랐다. 추리소설 마니아이자, 서평 쓰기의 달인이신 분, 그리고 25세부터 걸렸던 근육이 무력화되는 병으로 오로지 책만 친구삼아 지내셔야했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물만두님에 대한 추모의 글을 올리고 싶어도 그 분이 여성분인지 남성분인지도 몰랐고 전혀 아는바가 없어 낯선 글 몇마디만 남겨 죄송했는데, 이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분의 책 사랑과 힘들어도 밝게 살았던 가족의 단란한 이야기 등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일지라도 물만두님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단 생각에 책에 감사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복이라고 생각하고 다닐 수 있을 때 걸어다녀. " .. 내가 좋아했던 건 가끔 서점에 들러서 책을 산 다음 근처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것. 정작 지금은 할 수 있는게 그리많지 않다. 그 전까지는 전혀 없던 여행 생각도 나고, 이때까지 한번도 해본적 없는 '친구랑 수다떨기'도 해보고 싶다. .. 아무때나 스윽 밖으로 나가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일상조차 없다는 것이 가끔 아쉬울 뿐이다. 누가 감히 앞날을 장담할 수 있으랴. 많이 할 수 있을때 하고 싶은걸 미루지 말고 하시길. 171p
책을 좋아하기에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한 어느 분, 특히나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지셨던 유명한 서평 달인님의 글을 읽고, 알게 되었다는 것이 뒤늦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누워서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게 된 물만두님께는 특별하고 어려운 일일 수 있는 사소한 모든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다.
책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 더욱 공감하며 읽었는데 어느 기자의 이야기는 나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물만두님의 병환을 알고, 인터뷰하자고 조르다가 물만두님이 자신의 병을 기삿거리화하기 싫어 회피하니 나중엔 욕까지 하면서 뭐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기삿거리화하려는 그 심리, 게다가 상대방에게 잔인한 고통까지 가하는 그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만두님 서평을 도용하는것도 모자라 타 서점에서 자신이 알라딘 물만두인양 활동하면서 진짜 물만두님을 서평 도용으로 고발하고, 탈퇴시키고, 어쩌고 하는 어이없는 분의 글도 읽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있으려나? 서평 도용 문제는 종종 발생해도 물만두님처럼 잘 알려진 분을 상대로 그런 사기행각을 벌인 사람이 있다는게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참, 눈뜨고 코베어 가는 세상이라더니.. 나 또한 알라딘은 아닐지라도 서평을 쓰기 시작하며 책까페 등에 많이 가입하고, 다양한 이웃들을 알고 소통하기 시작했는데,온라인으로 친구를 사귀고 블로그에 신경쓰게 된것은 (앞서 말했듯이 미미한 정도지만 예전에는 내 블로그는 그저 여행 정보나 요리 정보들을 스크랩해서 나 혼자 보는 용도가 전부였다.) 내게는 정말 큰 변화이고 개혁과 같았다. 물만두님 역시 알라딘 서재(네이버 블로그와 같은)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을 한다. 인터넷이라는 세상에서는 물만두님도 얼마든지 자유로이 대화할 수 있고 (그래서 뒤에 다른 분들의 추모 글을 읽다보면 물만두님의 병환을 몰랐던 이들은 소소한 일상을 올리는 물만두님이 이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건강한 몸이 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사람들에게 정도 얻고, 즐겨찾기가 끊어졌을땐 상처도 받는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참으로 깊숙이 와 닿았다.
투병중이실때 쓴 이야기라 우울한 이야기 일색일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나하나 그분의 삶을 잊을만큼 너무나 재미나고 진솔하다. 본인이 물만두이기에 여동생은 만순이, 남동생은 만돌이로 부르며 삼남매와 부모님의 오손도손, 때로는 재미나게 티격태격하는 본인 말로도 코믹하다 할 정도로 재미난 가족사가 정말 가감없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아픈 딸 앞에서 아픈 언니, 누나 앞에서 가족들은 우울한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 물만두님을 위해서 그런것이겠지만 다들 오히려 더 건강한 사람보다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물만두님을 대하고, 농담도 서슴지 않고, 특히 먹을 것 앞에서 언니, 딸을 팔아 (아픈 만두님 거라면서 엄마가 호떡을 빼돌린다던지) 간식을 챙기는 만화같은 모습도 종종 그려진다. 가족 자체가 워낙에 유쾌한 분위기라 만두님도 버텨내실 수 있으셨던게 아닌가 싶다. 소중한 가족. 못됐다 투덜거리다가도 사실은 가장 아끼는 여동생 만순이와 놀리면서도 정이 담뿍 든 막내 동생 만돌이.
엄마의 사랑은 또 어떠한가. 어느 집이나 엄마의 사랑은 가없이 극진할 것이다만은 만두님네 어머니의 사랑은 더욱 눈물겹고 애틋하다. 만두님도 잘 알면서도 몸이 아프고 힘드니 짜증을 내고 만다. 제사 상을 홀로 차리다 데여서 아픈 팔에 딸이 의지해서 꽉 붙잡아도 아프다 티 안내고 속으로 삭히신 어머니, 밖에 못 나가보는딸을 위해 사진기를 들고 아파트 안 예쁜 꽃들을 골라골라 찍어오시는 어머니.
가족에 대한 사랑은 물만두님이 시트콤처럼 재미나게 풀어내는 일상 이야기 속에서 투덜대는 듯 하는 말투 속에서도 그 안에 담긴 한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표현되어 있었다. 울수만도 없고, 그냥 웃을수만도 없는 이야기들. 읽는 내내 행복했다. 책과 가족, 그리고 만두님의 어릴적 일상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읽으며 만두님을 아주 약간, 아주 약간이라도 이해하게 되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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