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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책이었습니다.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서적은 잘 읽지 않는 편이라 (종교서적의 내용과 그 구성이 별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던지라) 책을 좋아하는 저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망설였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출,퇴근 시간에 몇장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라고 추천하기에 조금 더 애착을 가지고 봤습니다.
책의 중간쯤 읽었을 때부터는 정말 깊숙히 빠져들었고,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와닿더군요.
친구에게 참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해야할 것 같더라구요.
주인공 프랜치스 치셤 신부이야말로 이상형의 인간상의 표본입니다. 참으로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인물이더군요.
수많은 구절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교를 아무리 설교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치셤신부님의 말)
종교의 좋고 그름은 거기 몸담은 자의 생활을 보면 제일 잘 알 수 있어요. 신부님, 당신은 당신의 모범으로 저를 정복하셨습니다... (챠 씨의 고백)
입니다. 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지요. 또한 지금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비판받는 기독교가 이유없는 미움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더욱 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깊은 감동에 목말라하셨던 분들에게 정말 추천하고 싶습니다. |
| 전 옛날 그러니까 20년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세로쓰기 판본으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책상태에 대한 평점은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존경할 만한 위인들을 내 행동의 준거인으로 삼고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안드레아 치셤 신부님은 저에게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갑작스래 부모를 여읜후로 거세게 밀려오는 그 많은 고난을 의연하고 감동적으로 극복해가는 모습에서 지혜와 성실 그리고 용기를 배웠고, 카톨릭 사제가 된 이후에 여러 종파를 초월하여 우정을 나누고 서로 인정하며 경쟁보다는 화합으로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진정 참된 인간의 전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3 2차모의고사때까지 희망 대학은 카톨릭대학 신학과 그러니까 신부지망이었죠. 물론 집안에서 장남이라는 반대와 갑작스런 저의 변심이 지금 예쁜 마누라와 귀여운 아들 녀석을 데리고 살게 해주었지만 적어도 전 신부가 되어 제가 존경하는 치셤 신부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죠. AJ크로닌의 여러 소설에 등장하는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는 그의 따뜻한 필체와 더불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원하는 독자의 눈물샘을 충분히 건드려 줄겁니다. 요즘 영화를 보면 반전의 묘미가 영화의 흥행을 좌우하곤 하는데 그의 소설의 반전은 반전의 고전이라 할만합니다. 그가 20세기 초반의 작가라 그 당시의 영국 특히 스코틀랜드, 중국의 개화기(?)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것도 볼거리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과의 처절한 싸움,선교사들의 고생등은 HDTV의 고선명 화질로도 잡아낼 수 없을것 같은 감동적인 묘사라고 할 밖엔... 자 책을 펼치시기 전에 손수건이나 크리넥스를 충분히 준비하고 영양제를 복용하세요. 틀림없이 밤을 세울테니까요^^ |
| 저자 크로닌은 우리에게 '성채'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스코트랜드출신의 작가이다. 전직은 의사였으나 작가로서 삶을 마감했다. 따라서 그의 글 곳곳에서 의사의 치밀함이 엿보인다. 이 책 천국의 열쇠는 카톨릭사제의 인생역정이다. 굳이 신앙인이라야 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 좋은 고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용인즉, 불우한 청소년기를 지낸 어린 소년이 카톨릭교회 신부로 성장해가는 과정과 중국선교지에서의 삶 그리고 마지막 생을 불우한 아이를 키우며 마치는 줄거리다.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에서 느끼는 독후의 감은 사뭇 다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이 무엇을 위한 삶인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의 답이 제시되어 있다. 물론 특정한 글로서 나타나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것인지 (말한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책의 초반부를 잘 넘겨야 책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중간쯤 가면 한꺼번에 다 읽지 않으면 못배길 정도다.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그 형식과 전개가 문학으로 승화되어 있다. 어느 노벨상 수상자의 이런말이 떠오른다." 하늘아래 새로운 이야기란 하나도 없다" |
| 참 드물게 좋은 책입니다. 깊으면서도 너른 마음을 가지고 싶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걸 향해 노력하고도 싶습니다. 처음 읽었던 때부터 십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세월만큼 많은 것들이 묻어서인가요..처음보다 더 근사한 책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착각일까요... 사람이 살면서 사람을 바로 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이 가진 잡다한 것들로부터 사람을 떼어내고 그 사람만을 똑바로 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 싶습니다. 치셤신부처럼은...비록 글속에 존재하는 분이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분명 이런 분들이 존재하시리라 믿습니다. 거짓없는 마음을 한 수 배우고 싶네요. 사람을 존경하는 일은 어떤가요..높은 위치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옳고 위대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같은 길을 가는 동료들보다 나은 게 많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흑과 백처럼 단순하고 명백할진 의심스럽네요. 높은 지위가 인품을 대변하는 것 아니니까요. 안셀모 주교처럼.. 살다보면 이리 갈리고 저리 편 가르는 사람들을 보고 그 속에 내가 있기도 합니다. 내가 옳을 때도 있을 거고 남이 옳을 때도 분명 있을 겁니다. 내 의견으로 남의 주장을 덮고 내 주장을 받아들이기를 바라기도 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모든 경우에 내가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내가 옳은 만큼 남도 옳을 수 있고 내가 틀릴 수 있는 만큼 남도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늘 의식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불어에 똘레랑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나와 다른 부분을 상대와 내가 타협해서 새로운 결과를 돌출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치셤신부야 말로 위대한 똘레랑스를 실천한 분이라 여깁니다. 그러기에 그 모든 사람들을 다 너그럽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치셤신부의 어드벤쳐같은 선교의 모습도 인상깊고 좋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부분으로 자주 읽고 읽으면서 따뜻하게 부풀어 오르는 글들은 책 앞의 몇 장과 뒤쪽의 중국에서 돌아와 어린 안드레아와 사는 모습이 나오는 글입니다. 그 속에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들어있다 생각해 봅니다. 애잔한 안드레아와 차가운 슬리스 신부의 묘한 대비도 많은 것을 돌이켜 보게 하네요. 슬리스 신부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값싼 일인가를 느낍니다. 천국의 열쇠를 읽은 나는 감히 다짐해 봅니다. 겸손하자..잘난게 많아서 못난 사람들을 상대로 적선하듯 한 수 접어주는 그런 덜 익은 오만이 아니라 정말 잘난게 없는 사람의 자기인정으로... 눈을 똑바로 뜨고 살자..마음은 더 똑바로 열고 살자..먼지 앉은 거울에 사람 얼굴을 비추는 것 보다 더 끔찍한 게 더러운 마음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비추는 것이니까.. 타고난 품으로 보아 그리 썩 잘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부단히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 십년 세월을 게으르지만 마음에서 놓치 않고 잡고 노력한 것처럼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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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며 비 기독교적 사상인 종교다원주의책인 천국의 열쇠는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선배의 권유로 읽었지만. 치셤신부는 자기를 평가하러 온 다른 신부에게 자신의 살아온 생활을 더듬어가며 비협조적행동에서 그를 존경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나간다.
부모님의 일찍 돌아가심으로 친척집에 살면서 고충을 겪다가 옛날 이웃인 폴리아주머니 집으로 다시와 생활을 하고 신부학교에 들어가 신부로 지낸뒤 사역지 세군데에서 아니 정확히 네군데어서 사역을 한다.
비록 간단하지만 처음사역지에서는 ㄱ보수적 신부를 바뀌려다 퇴출되고 신학교시절 잘못된 성녀의 우상을 깨뜨리고 중국에서 포교와 힘들엇던 패스트환자를 도우며 또한 전쟁속에서 종교와 억압받는자에대해 대변하며 신부로써 좋아하는 사람을 보낼수밖에 없었고 한 인간으로서 신앙과 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한 작품이다. 비록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밖에 없다고하지 않고 바르게 사는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잘못된 사상임에 틀림없다. 소설이지만 참으로 존경한다. 그의 선행은 기독신자인 나에게 많은 도전을 주었다. 진리을 쫓아 잘못된 관행들(신자를 돈으로 매수,거짓된 성지,불의의 항거,보수적신앙주의배격)등을 없앴다. 친한 친구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좌절된 상황이지만 물러섬없이 잘 나가는 모습에서 나의 나아가는 자세를 배웠다. [인상깊은구절] 교회는 스스로의 비겁함에 언젠가는 후회의 괴로움을 씹어야 할겁니다. 가슴에 기른 독사는 언젠가 그 가슴을 물어 뜯을겁니다. 자기의 소중한 신앙의 계명까지도 희생을 해가면서.. 또 실수했습니다. 주여 제발 저의 혀를 묶어주십시오 공자의 예지와 그리스도의 덕을 겸해.. |
| J.크놀린의 소설은 가난하고 총명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많다. 사회의 부조리와 명예욕, 부와 싸워서 젊은이다운 순수함을 늘 간직하려는 삶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의사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 '성채'라는 소설에는 청년의사가 그 주인공이다) '천국의 열쇠'에서도 두 청년 '안셀모 밀리' 와 '프랜치스 치셤'의 삶을 비교하고 있다. 같은 성직자의 길을 가면서도 늘 가난한자의 편에서 검소하게 사는 '프랜치스'와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안셀모' 이 두가지의 인생을 볼때 늘 존경받는 쪽은 '안셀모' 쪽이다. 사람들은 늘 치셤에 대해 못마땅히 여겼으며, 그의 진심을 잘 알아주지 않는다. 신학교에서도, 중국에서도,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쉽게 사귄 친구는 쉽게 헤어지듯 치셤과 어렵게 친해진 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한다. 그렇다고해서 모두 치셤을 못마땅히 여긴것은 아니었다. 신학교의 교장신부 러스티 맥은 다른학생들에 비해 순수한 청년 프랜치스를 대견히 여기곤 했다. 신학교내에서 그를 유일하게 인정해주던 신부는 함께 연어낚시를 하면서 그를 격려해주고 있다. 연어는 거센 강물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는 역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트위드이드의 가장 큰 연어란 바로 그 치셤을 이야기 하고 있는것 같다.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이지만 선배 선생님을 통해 커가는 그를 보면서 언젠가는 큰 일을 이루어낼 인재라는 것을 연어낚시를 통해 따스하게 전달하고 있다. 프랜치스은 그냥그런 얌전한 신학생은 아니었다. 일부러 비뚤게 나가지도 않았지만 남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쫓아가는 형은 아니었다. 신학교에 있던 그는 사촌누이의 노라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린시절 그가 간직한 순수한 사랑은 사회의 어두움속에 뭍혀져 결국 어린아이하나를 남겨놓은 채 사라져가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