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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처음 화장을 해보는 나이는 몇살일까? 아마 십대 전후해서, 조금 늦는다면 대학 입학식 정도에 화장을 해 볼 것이다. 처음에는 화장품에서 풍겨나오는 달콤하면서 야릇한 내음에 정신이 빼앗겨서,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너무도 익숙해진 자신의 얼굴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책 소개 이전에 왜 이렇게 화장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냐고? 혹시 이 책이 화장에 대한 거냐고? 물론 그런 내용은 없다. 다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갓 화장을 시작한 풋풋한 여자의 내음을 맡았을 뿐이다. 그게 이 책과의 첫대면이였다. 지금은 최고의 연애소설을 써낸다는, 귀기와 정념의 작가라는 전경린의 데뷔작품을 읽으며 처음 든 생각은 무섭다는 거였다. 이 작품집의 맨 끝에 수록된 <사막의 달="">을 처음 대했을 어느 여름,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난 오싹함을 경험했다. 지루함을 없애려 시간때우기 식으로 꺼내든 책에서 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그렇게 그 무더운 여름 내내 이 책을 곁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대다수의 평론가나 독자들이 <염소를 모는="" 여자="">를 최고의 작품으로 치는데 비해 나는 오히려 <사막의 달="">이 더 강렬했다. 모정보다 애정을 택했던 여주인공에게서 지금까지 어느 여성작가도 보여주지 못했던 열정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을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의 숨겨진 사촌동생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 연이 보였던 그 쓸쓸한 미소와 절망이 어떤 울부짖음보다 강렬했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삶으로 돌아오는 그녀의 다부짐이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다. 단순히 이 소설이 근친상간에 관한 거였다면 몇 십 번을 다시 읽진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는 죽음을 반복하는 주혜엄마, 정부와 공모해 사기치고 도망온 재봉집 여자 등 여러 유형의 여성상이 등장한다. 모두가 상처입은 영혼이며 자식을 버린 엄마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모성보다는 애정에 치우친 정열적인 자기 중심적 삶을 살아온 여인들... 그들이 부도덕하기보다는 슬퍼보이는 게 나 혼자만 느낀 감정은 아닐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서 풍겨나오는 끈끈함과 상처는 작품을 읽고 있는 나에게까지 감정이입을 요구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내 몸 한 구석이 싸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느낌을 제공해줄 수 있는 소설이 과연 몇 편이나 될까? 아마도 평생을 걸쳐서 단 한 편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비범한 작품을 데뷔작으로 그려낸 작가가 누구인지 몹시도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침 그 작가가 내가 살고 있던 중소도시, 그것도 내 집에서 불과 십 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가슴이 터져나갈 것처럼 설레였던 기억도 함께 남아 있다. 짝사랑하는 남자애를 기다리는 기분으로 그 아파트 앞계단에 앉아 혹시나 스쳐갈까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지켜보던 기억도... 한 작가를 평가하고자 할 떄는 데뷔작과 첫소설집을 보라는 말이 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첫 작품집은 그 작가가 앞으로 펼쳐나갈 작품세계를 예고해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집을 보면서 나는 전경린이라는 작가가 앞으로 독특한 연애담과 함께 개성있는 여성상을 그려낼 거라고 예감했다. 그리고 다행이도 아직까지는 그 예감이 나를 배신하지 않고 있다. 한 여성의 자아찾기가 염소라는 매개체와 독특한 은유로 진행되는 표제작 <염소를 모는="" 여자="">와 처음이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그리고 옜날 전설이나 민담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쓸쓸함을 예고하는 <낯선 운명=""> 등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알찬 작품들이 이 작품집을 드는 손을 묵직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이 소설집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내가 알고 있는 타인의 모습을 훔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 나처럼 평생을 함께 갈 작품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을지...
나는 오늘 그녀의 맨얼굴을 봤다. 전경린이라는 작가가 맨 처음, 설레이는 마음으로 화장대 앞에 앉았을 시절의 모습과 그 얼굴을 말이다. 지금 그녀의 작품이 기초화장을 끝내고 색조화장에 향수까지 뿌린 상태라면 이 당시의 작품은 막 세안을 마치고 화장대 앞에 앉은 설레이는 여자의 모습과 같다. 그래서 더 풋풋하고 싱그럽다.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도 내 얼굴을 감싸고 있는 화장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면 가만히 앉아서 이 작품집을 꺼내볼 것이다. 그리고 주저없이 <사막의 달="">을 꺼내어 그 속의 연이를 만날 것이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면 책을 펼치고 맨 끝에 위치한 이 작품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인상깊은구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도 많은 유릿조각을 삼켰던 것일까, 목 안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두 손을 모아 침을 쏟으니 붉은 피가 엉켜나왔다. 머릿속에 뭉친 기억들이 회오리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사막의>낯선>꽃들은>염소를>사막의>염소를>사막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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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다음 중 전경린의 작품이 아닌 것은?
① 불란서 안경원 ② 염소를 모는 여자 ③ 혀 ④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⑤ 나의 자줏빛 소파 ⑥ 황진이
나만 그런 걸까? 『나의 자줏빛 소파』와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이 동일인의 작품인 줄 알았다. 내 두뇌 속 어디선가 전경린과 조경란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혼돈했다는 건데,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꽤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이런 왜곡이 진행되었을텐데 왜 그걸 여지껏 인식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고. 각각 'ㅈ, ㄱ, ㄹ'으로 시작되는 이름의 유사성 때문인지 아니면 작품의 분위기가 유사해서 그런 건지도 잘 모르겠다(두 작가의 작품이 머릿속에서 혼재되어 있어 따로 구분해내지도 못 하겠다. ^^;). 남들도 그런 걸까? 아니면 나만 그런가? 이번에 『염소를 모는 여자』를 읽으면서야, 내가 이 두 작가를 마치 한 사람인냥 뭉뚱그려 기억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두 작가 모두 대개의 작품들이 여성의 일상, 여성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자주 성(性)을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로 전면에 다루고 있고. 아마도 그래서 두 작가를 혼돈한 게 아닌가 싶다.
『염소를 모는 여자』는 전경린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항상 그 시원을 거슬러가보는 것이 대상의 본질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독자로서 어떤 작가의 첫 작품을 대면하는 것은 작가의 맨 얼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개는 자전적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는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뭐랄까? 작품의 질이 균일하지 못하다. 어떤 건 좀 유치하고 촌스럽기까지 하다. 문체라던가 서사가. 그래도 대개의 작품들이 30대 여자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다. 그녀들이 그녀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쩌면 그 조차 30대 여성들의 현실일 수도 있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표제작인 '염소를 모는 여자'.
『펭귄의 우울』의 우울증에 심장병까지 걸린 펭귄이나 『하늘이 내린 곰』에서 종교행위를 사람만큼 잘 하는 곰은 그 자체로 현대인의 반영일 것이다. 인간을 객관적 거리에서 낯설게 보기. 이 작품의 '염소'도 그런 장치라고 볼 수 있겠다. 주인공이 자신을 투사하는 대상. 그 점이 매우 신선하다. '염소를 모는 여자'라니.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의 산과 들에는 염소가 많았다. 흑단같이 검은 그 짐승의 이미지는 바깥을 염탐하지 않는, 자기 내부에 틀어박힌 자의 침묵과 존재와 일체가 되어버린 슬픔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의미를 헛헛하게 뛰어넘는 가벼움...... 염소들은 염천의 불볕 속 메마른 개울가나 그늘 한 점 없는 들판 한가운데에, 숯덩이처럼 까맣게 묶여 있었다. 불볕이 몸을 뚫어 금새라도 화륵 타오를 것 같은 야릇한 평화를 거느리고...... 한밤중에 어두운 들판에 묶여 노숙하는 염소는 그곳에서 솟은 산이나, 물길 트인 대로 흐르는 개울물이나, 그곳에 꽂혀서 자란 나무 한 그루처럼,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어두운 하늘 아래 고요히 묶여 있을 줄 아는 염소는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예감이 들곤 했었다(16쪽).
"염소를 왜 데리고 있지요?"
내면 서술 부분의 몰입도가 매우 높은 것도 마음에 든다. 몇몇 표현들은 매우 시적이고 정갈하다. 잊고 있던, 혹은 속에서 항상 부유하고 있는 감정들을 잘 건드려줬고.
그런데 대화 부분 처리가 좀 서툴다. 뭐랄까? 작품에서 대화체를 사용하는 방식이 좀 서툰 느낌이 든다. 대화 부분만 시작되면 차분했던 분위기가 깨지고 어색해진다.
이건 이 작품뿐 아니라,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작품에서 동일하게 느낀 점인데, 나는 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원인을 꼭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서툴고 유치한 대화들이 작품의 전체적인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대화의 내용이 유치하다는 게 아니라 대화체를 사용하는 방식이. 그리고 이름들. 너무나 소설적인 이름들이, 그것들이 단지 허구의 작품이라는 것을 너무나 수시로 환기시켜준다. 더군다나 작품 속에서 이름을 부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장면들도 어색하다. 존재를 호명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뭔가 작품 전체에 잘 스며들지 못한 느낌? 결말까지의 서사 과정이 촘촘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쓰고 보니 주로 문제점만 지적하게 됐는데, 서른이 넘어 한 번쯤 자기 생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마음 속에 뭔가 출렁이는 것들이 있을 땐 그게 고여 있지 않고 잘 흐르게 해줘야 하는데, 이런 책들의 좋은 점은 그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달까?
[덧붙임] 늘 내면 세계에 갇혀 있는 '그녀'들이... 한편으로는 참 안타깝다. 이런 이야기들만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그런 시스템의 문제. 언제쯤 '그녀'들은 다른 이야기를 꿈꾸고, 다른 이야기를 생산해낼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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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나라 여성 작가 대표로 당당히 이름을 내걸수 있는 작가로 부상한 전경린씨. 최근 '열정의 습관'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등 튀는 (?)책을 출판하는 전경린씨에 대해 어느정도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글쎄..우선 최근의 작품을 보면 겉멋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것 같기 때문에 적어도 겸손한 작가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모든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초기의 작품들은 약간은 촌스런 맛이 느껴진다. 아마 시대적 흐름에 따른 것이기에 그런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최근의 작품보다는 초기의 작품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초기의 작품들은 아주 솔직하고 꼼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아주 정성스럽다. 총 8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는데 어느 한 작품 허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한편 한편 세심하게 글을 쓴 흔적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전경린씨의 작품중에선 이 책을 제일 우선으로 대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언제까지 벼랑 끝에 배를 붙이고 심연을 내려다 보고 있을수 는 없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끊긴 길 앞에서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닫고 자신의 본질를 향해 어느 순간 훌쩍 뛰어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뛰어내려 본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심연속에 현실보다, 현실의 현실보다다도 더 강한 구름의 다리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숲을 향해 가는 구름처럼 가벼운 구름의 다리... |
| 전경린은 항상 30대의 여자가 주인공이 된다. 행복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삶에 익숙해 버려서 특별할 것도 없고 새로움도 느낄 수 없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자들. 남편이나 가정에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인생의 지루함을 느끼는 여자들. 그런 그녀들이 새로운 삶의 시앗을 본 것은 '나'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열정이나 사랑, 희망은 나를 사랑하게 되는 기본이 된다. 꺼져가는 사랑에 다시금 희망과 열정의 불씨를 가져다 주는 전경린의 소설에서 그녀의 예리한 글솜씨와 그네들의 감정이 하나하나 느겨진다. 그녀의 소설의 기본은 슬픔이다. 어쩔 수 없는 여자의 운명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고 일어설 수 있느 위로를 살짝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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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표 소설의 주요 테마는 상처받은 여성들이 느끼는 쓰라린 자아에 대한 성찰과 끝없이 타오르는 불온한 정열을 지적할 수 있다. 작중인물들은 도저히 버티기 힘든 여건 속에서 사랑을 향한 불꽃같은 열정을 분출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은밀한 불온을 내포한다.
안정된 가족구조의 보편성을 함축하면서도 은밀히 도사리고 있는 파괴적 열정의 내부 균열이 곳곳에서 포착되는데... 이 책의 대표작인 <염소를 모는 여자>에서도 그 취기(臭氣)는 농밀하게 전해온다.
<염소를 모는 여자>의 여주인공은 결혼 전후의 괴리에 고민하며 나지막한 비상을 꿈꾸는, 새장에 갇혀버린 앵무새이다. 사랑 없이도, 믿음 없이도 살 수 있는, 결혼이라는 신성한 봉인이 뜯겨져 버린 현실을 감내하지 못하는 섬세한 여성이다. 단조로운 일상과 반복되는 시간... 점점 옥죄어오는 답답함... 자기 내부에 틀어박힌 침묵의 존재와 일체가 되어버린 흑단같은 검은 짐승의 이미지... 하지만 그녀에게 명멸하는 것은 허무한 일상의 공간...
검은 박쥐우산을 펴들고 자신만의 공간속에서 바깥으로 연결된 통로를 의식적으로 차단하려는 청년과의 가벼운 손등 키스는 어울린 공간속에서 피어나는 동질감과 공동의 정신을 창출해낸다. 염소를 맡겼으나 찾아가지 않는 불순한 남자의 존재는 무엇일까? 그녀가 검정 박쥐우산을 쓴 채 염소를 끌고 도달하고자 하는 그 곳... 정체된 일상과 훼손된 가정을 뒤로 한 채 떠나는 그녀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런 왜곡된 현실속에서 절망을 품고 떠나는 여행은 작가의 데뷔작인 <사막의 달>에서도 확인된다. 근친상간의 불온한 심리를 꽉 짜인 틀 속에 부유시키며 내부의 파괴적 에너지를 바깥으로 내뿜는 자기부정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미래의 희망적인 내 몫의 삶을 온전히 받아 들여야만 하는, 소망하지 않는 희망을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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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윤미소는 가정주부이다(염소를 모는 여자)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가계를 하고 계신 어머니와 군청에 다니시는 아버지의 맏딸이다(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나는 서른 세살의 가정 주부이며, 산골에서 살고 있다 (봄 피안) 나는 낡고 허술한 일본식 목조 건물에 살고 있다(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나에게는 남편과 엄마인 나를 자신만의 소유로 만들고 싶어하는 아들이 있다(남자의 기원) 나에게는 어려서 마루에서 떨어져 꼽추가 되었다는 사촌언니가 있다 (낯설 운명) 나는 서른 세살의 가정주부로 대학에서 남편을 만나 스물 다섯에 결혼 하였다(새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나는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남편과 아이가 있는 주부이다(사막의 달) 나, 윤미소를 시작되는 염소를 모는 여자라는 중편을 비롯해 여자는 세 벌의 옷을 고른 후로 시작하는 사막의 달이라는 제목의 작가의 등단작까지 총 8편의 소설이 담겨져 있는 염소를 모는 여자를 읽었다. 위에서 짤막하게 소개 했듯이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그녀)다, 이름을 가진 미소도(3인칭) 있고 나(1인칭)로 설명 되어지는 이름 없는 내가 소설 속에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여성을 대변하고 그 증거를 찾고 있는 것처럼 묘사 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그 증거를 찾은 경우도 있고(독자의 몫까지 포함) 그 증거의 언저리 조차 찾이 못한 소설도 있다고 감히 말할수 있겠다. 희생하기 때문에 여성의 사랑이 존재한다(?)라고 말하면 과잉 해석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소설의 내용을 거창하게 이야기 한다고 말하지 않을까 두렵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 조금은 재미 있으면서도 낯선 제목의 염소를 모는 여자는 잃어버린 염소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계기가 된 것은 같은 동네에 박쥐 우산을 들고 다니는 청년에 의해서다. 이렇게라도 발견할수 여성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하면 생각해 보게 한다. 예쁜 제목의 안마당이 있는 풍경은 맏딸이 본 삼촌에 관한 이야기 이다. 노래를 매개체로 삼촌과 대화(?)를 했던 시절에서 도시로 떠났던 삼촌이 병원에서 죽게 되는 것을 보면서 삼촌과 함께 했단 노래를 마음에 간직한채 어른이 되어간다는 풍경이 담겨 있다. 노래속에 담겨인 뜻보다는 그 이면을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나에게 노래는 무엇인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하며... 세번째로 읽은 봄 피안은 꽃에 비유된 한 여자의 운명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한 남자의 아내이면서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 다분한 불륜적 이야기라고 치유해 버릴수도 있지만 건질수 있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는 부분의 흐름처리가 좋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다음으로 읽은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와 남자의 기원은 모두 소유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동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은 친구에서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자포 자기한다는 내용(꽃들은 어디로 갔나)으로 흘러 가고 있으면 남편의 직장 사상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사는 여자는 직장 상사와는 대조적인 정해형이란 사람을 만나다는 이야기(남자의 기원)가 소설의 주를 이룬다(여전히 이해 되는 않은 소설이다. 나에겐)...... (낯선 운명)은 낯선 사랑을 낳는다고 말해도 될까? 곱추가 된 사촌 언니는 형부와 결혼을 하고 대학생이 된 지금 MT를 가게 된 곳에서 한때 형부였던 사람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가 제목처럼 낯선운명으로 다가온다 운명의 장난처럼 말이다. 새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는 아버지에 대한 해 못하던 부분들이 시장에서 흥정하는 지금의 가정주부로서 산을 남편과 오르면서 아버지를 이해 한다는 내용이다. 새가 여전히 언제나 그곳에 있는지를 의심스럽게 한 소설이라 이 정도로 이야기 한다. 마지막으로 읽은 사막의 달은 작가의 등단작이라는 것에 유심히 눈이 갔다 가장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것이 여기 저기에서 볼수가 있었으면 8편의 작품 중에서 두번째로 소설다운 소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옷가게를 운명하면서 알콜 중독자인 남편의 이야기를 해 주는 주혜엄마의 이야기와 여자들의 작은 공간이 된 옷가게가 주는 어떤 상징적 의를 책을 덮으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한편의 소설을 이해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다시 느끼게 됩니다.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자는 원래의 취지에는 미치지 못하였음을 이제야 밝힙니다 |
| 3년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다본 기억이 있다. 끝까지 읽지 못하고 가방에 넣어 들고다니다가 날짜를 넘겨 반납해던 것 같다. 그다지 재미도 없는데다가 그때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왜이리 더디게 생각이 자라는지. 이제서야 나는 이 책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다시 한번 소설의 신비한 힘을 실감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와중에도 무의식에 와닿아 저장된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와 지금의 느낌이 전혀 다르면서 동시에 익숙하게 다가왔다. 이해력은 부족했으나, 막연히 내 안에서 끓고있는 동경과 열정이 이미 그 당시에도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훌쩍 서른 세 살 가량의 우울하고 쓸쓸하고 권태로운 여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결국엔 어딘가로 떠나는 여자들. 그들의 탈출은 성공했을까, 과연...'미나리'는 지금도 춤을 추고 있을까?(새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염소를 몰고 비를 맞으며 떠난 '미소'는? '미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까?(염소를 모는 여자) 이런 식의, 이따위 궁금증을 갖는 것 자체가 비극인 것을...알면서도 나는 왜 이런 의문들만을 갖다대는가. 꿈만 꾸고 있을 뿐이어서? 그래서...이렇게 서럽기만 하고 감히 도발적이고 귀기까지 어린 행위를 시도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아직 꿈만 꾸는 것도 무겁고 벅차다.(*) |
| 여유로왔던 오후의 의자, 배부르던 어느 카페테리아의 창가, 폭신한 빅쿠션 등받이와 함께 너덜너덜 읽어내려간 전경린의 단편소설 '염소를 모는 여자' 약간 늦은 감이 있는 , 언제나 처럼 조금 열광하며 읽는 그녀의 소설. 건전한 묘사- 언제나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처럼 망상스럽고, 차갑고 이성적인, 그러나 행동은 급진적인, 주인공 여자의 독백이 넘치는. 길지 않은 단편- 띄엄띄엄 조용히 읽고, 읽는 중간에 잠시 보았던 '라이벌'이라는 울화치미는 파란만장 드라마에 구토가 몰려와 다시 책을 집어들었던. 그리고 주인공이 왜 염소와 함께있는가에 끊임없이 자신을 던지며, 읽어내려간, 그녀가 염소를 모는 모습 하지만, 마지막장을 덮었을때 입안엔 불쾌한 기분이 스미고 있었다. 그리고, 좋았던가. 불쾌했던가. 싫지만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자아-인지. 작가의 정서-인지 나의 상상-인지.. 어거지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싼 전씨의 비유와 묘사는 지겹고, 웃기고, 넌더리나지만 언제나 감탄스럽다 결말없이, 그저 끊어져버린 ㅡ 염소를 몰고가는 그녀를 덮다가,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 검은 염소를 상상해보았다 언제나 계몽이 없는 연애소설을 포장하고 있지만, 낮게 웅얼거리는 전씨의 목소리는 어느날은, 멈춰서 발가락을 들여다보라고- 속삭이고 어느날은, 받아본적 없는 상처에도 아픈척하라고- 명령하고 어느날은, 오늘처럼,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여튼, 난 그녀의 구석구석 촌스러운 비유가 좋다 나의 수다에 엄청난 동기를 부여해 주기도 한다. 책속의 주인공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책을 마니 읽지도 않는 내가 하기엔 우습지만) 맞는 말이다. 가끔은. |
| 이 책에 실려 있는 <염소를 모는="" 여자="">를 다시 읽기 위해 이 책을 꺼냈다. 먼지 틈으로 염소가 몇 마리 나타났고, 그 염소를 몰고 길을 걷고 나섰다. 약간은 신비스럽고, 정말 소설같은 내용의 염소를 모는 여자...자아를 찾아가는 여성을 그리고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요즘은 자아찾기의 시대가 아니던가? 읽다보니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그녀는 왜 염소를 몰고 나가버렸던 것일까? 입센의 <인형의 집="">과 같은 귀결, 그러나 그것보다는 더 상징적인 수법. 세련된 그녀의 필치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쑥쑥 읽어나갔다. 그런데 걱정스럽다. 염소를 모는 그녀에게도 한계가 있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사람이겠으나...왜 가정을 더 소중히 하지는 않았을까? 그럼 아이는? 물론 이런 문제를 생각하다보면 복잡해지고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읽고 있는 나는 생각나는 데 어떡하라고... 아무튼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소설을 자주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소설집도 드물어 걱정이었는데, 이 소설집은 괜찮았다.인형의>염소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