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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는 단지 하나의 고전이 아니라, 조직화한 인간 이성이 어느 정도까지 경이로운 저작을 건축할 수 있는지를 예증하는 전 지구인의 긍지요 자랑입니다. 비평가들(주로 서양측 인사들)이 한결같이 칭송하는 바는, 사기야말로 지상에 출현한 최초의 구조적 내러티브요, 이후 발생한 모든 인문학 기술의 전범과 영감의 원천이 된 거작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동양의 이 고전이, 실크로드와 파미르 고원, 자그로스 산맥, 홍해를 건너 서양의 문명에까지 모종의 영향을 어떤 방식으로 끼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동양의 문물이 자폐적이거나 재생복사가 불가능한 고립적 기술, 혹은 진실을 은폐하고 통치질서를 합리화하는 프로파간다가 결코 아닌 독자적 고등 지성의 산물임은 이 불후의 저작이 잘 증명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대중에게는 그런 학문적 의의보다, 고전의 내용적 요소가 가르쳐 주는 교훈, 처세의 울림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현재 한국어로 완역된 사기만 해도 두어 종이 있고(원저가 방대한 분량임을 감안하면 이 역시 당연하게만 받아들일 일은 아닙니다), 전 체계 중에서 특히 인기 높은 <열전>은, 발췌역 완역 망라하면 사십 종이 넘습니다. 이처럼이나 많은 역본이 나왔다는 건, 일반 독자로부터조차도 이 고전 사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게 유지된다는 증거이며, 불변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 이 저작에서 맹렬하고도 유익하게, 효과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확증입니다. 이렇게 인기 높은 책이, 소설이 아닌 본격 인문 장르에서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경이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김원중 교수 역(민음사판)이 가장 인기 있는 버전이고, 제 개인적으로는 정범진 전 성대 교수 외 여러 학자(成大팀. 이 중에 김 교수도 포함됩니다)가 옮긴 까치출판 에디션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되었습니다만, 저는 홍석보 교수(2000년에 고인이 되셨습니다)님의 아름답고 박력 있는 문장으로 표현된 삼성사상전집판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었습니다.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책이기도 하고, 제가 보기엔 태사공의 그 비장하면서도 신랄한, 충직하면서도 정교한 말투와 표현을 한국어로 가장 잘 구현한 명작이 아닐까 합니다.
鼂錯는 한 제국 초기, 군국제에서 군현제로 이행하는 과도기에서 철혈재상으로 상당히 큰 역할을 한 관료의 상징 같은 존재죠. 이 이름이 삼성판에서는 "조착"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사실 큰 문제는 없는 것이, 저 글자는 본디 어긋날 착, 둘 조 두 가지 음과 훈을 가진 글자라서인데요. 여튼 현대의 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를 "조조"로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름을 새기는 데 "어긋나다"의 訓을 적용하는 건 사리에 어긋나기도 하고, 어떤 연유이건 간에 지금은 "조조"로 읽는 게 관행으로 굳었습니다만, 홍 선생님의 세대는 오히려 "조착"이 관행이었다는 사실도 알고서 넉넉한 마음으로, 장점에 주목하면서 읽는 게 바람직하겠습니다(지금은 도서관 아니면 그 책을 구할 수도 없지만요). 발췌역에서는 십 수 편의 에피소드가 누락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행열전" 처럼 재미있는 편이 빠진 건 참 아쉽죠. 그 책은 또한 맞춤법 개정 이전에 나온 텍스트인 까닭에, 이후 교정한 부분이 다소 다른 모양의 (크고 가는)활자로 대체된 모습이 간혹 나옵니다. 또, 원 텍스트가 두음 법칙의 일관된 적용에 태만했던 걸 바로잡은 흔적도 여러 군데에서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 (예:"몽념/몽염) 반면, 정 교수님의 이 책은 표방한 바 그대로 완역본이기에, 발췌본에서 생략되곤 했던, 따라서 아쉬운 군침을 삼기며 넘어가야만 했던 많은 대목들을, 숨겨진 보물이나 조상 누대로 이어온 가보를 발견이나 하듯 반짝이는 눈망울로, 입에는 군침을 다셔가며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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