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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형식의 수필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가슴을 잔잔하게 만드는 수필을 만날 때엔 기분이 좋다. 그래서 그런 수필을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지만 보통은 외면받기 일쑤다. 사춘기 아이들의 특징. ‘내가 알아서 할 게요.’ 이 함정에 빠져. 이제 중 3이 된 큰 아이도 늘 하는 말이 “제가 알아서 할 게요.”다. 그렇게 말하지만 알아서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는 큰 아이기에 나도 그냥 놔두곤 하는데 그래도 가끔은 잔소리처럼 말한다. “이 책 참 좋아. 시간 되면 읽어봐.“ 먹히지도 않는 말을 하는 건 책 안에 담긴 메시지 때문 아닐까? 부모나 선생님이 하는 말씀은 잔소리지만 좋은 책에서 해주는 글은 마음을 울리거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으니까.
나 같은 선생님이나 어른이 많았던 모양이다. 중 3 아이들 교과서에 수록되거나 읽기 바라는 수필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으니까.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경험, 미래, 일생. 모두 3개의 큰 주제에 자잘한 수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이다. 31편의 수필은 내 삶을 그리고 내 인생을 한번쯤은 되돌아 볼 수 있어 좋았다.
아들아. 길은 그 자체로 인생이란다. 그리고 그것을 걷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이란다. (P 48 – 어머니는 왜 숲 속의 이슬을 떨었을까, 이순원 작품 중에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들에게 작가의 어머니는 등굣길의 말없는 친구가 되어준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20리나 되는 길을 걷는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라면 학교가 가기 싫다는 아들을 때려서라도 가야한고 했을까? 아님 그래 가지마. 할까? 엄마의 행동이나 말.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나 역시도 그 놈의 ‘욱’하는 성격으로 늘 도 닦는 기분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니 아이의 길을 개척하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나 혹은 훌륭한 사람의 어머니들은 다들 한 인품 하셨던 것 같은데... 그걸 알기에 나 역시도 인품 뛰어난 엄마가 되고 싶지만 현실과 이상은 늘 다르다는 게 아쉽다. 더 도를 닦아야 해. 쩝...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뛰어난 화가는 그리지 않고도 다 그린다. 훌륭한 시인은 말하지 않으면서 다 말한다. 좋은 독자는 화가가 감춰 둔 그림과 시인이 숨겨 둔 보물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찾아낸다. 그러자면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P 79 –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 정민 중에서)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 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화가들은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산에 점으로 찍힌 절을 그린다? 아님 숲에 절 탑이 보이는 것 정도? 그런데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산속 오솔길에 한 스님이 물동이를 이고서 올라가는 모습.’ 좋은 그림이란, 시란 그런 것 같다. 대 놓고 그리고 읊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은 뜻 혹은 감춰진 모습을 살짝쿵 내 비칠 수 있는 상상력이라는 것. 어쩜 그래서 내가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짓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수필을 읽다보면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본다. 앞만 보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며 산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과 함께.
이런 좋은 글을 아이와 함께 읽으면 가장 좋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내 마음이고 내 강요가 될 수 있으니 슬쩍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을 뿐. 어떤 말도 할 수 없네. 말하지 않고 행동하게 하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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