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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인류 정신에 대한 반성적 사색이다." -- 펑유란(1895~1990)--
<<1935년 펑유란 가족사진>>
중국역사의 한 획을 수 놓은 삶에 대한 깨침을 터득한 철학자. 철학자라고 칭하기 보다는 늘 푸른 소나무처럼, 자신의 삶과 사유를 통해 하나로 융화했던, 그래서 1세기를 살아오면서 마직막 임종순간 딸에게 " 너 인생을 무서워 말거라.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라는 인생의 함의가 다 녹아 있음을 확인한다. 전통 왕조의 마지막이던 청왕조의 몰락과 사회주의 중국건설,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유럽과 미국을 기행하며 철학적 한계를 넘어 동서양의 경계를 초월한 인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된다.
뇌출혈로 향년42세의 일기로 떠나보면뒤 펑유란은 열 세 살 때부터 어머니의 보살핌과 교육을 받으며 세상을 향한 무한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배움과 중국 봉건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어머니의 교육철학인 " 사람이 죽었든지 살아 있든지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야지 사람이 죽었다고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는 가르침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격랑의 파고를 헤치며 동서양을 아우르며 철학의 등불을 밝히는데 불사른다.
누에는 죽어서야 실을 더 뽑지 않고,초는 재가 되어서야 촛농이 마르듯이 그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만인들에게 영혼으로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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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사진의 펑유란 부부>>
그는 미국유학길에서 중국은 관료국가이며 미국은 상업국가라는 점을 인지한다. 미국인들은 빈틈만 보이면 뚫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인들은 빈틈이 보여도 뚫고 들어가지 않고, 중국에는" 탕만 바꾸고 약은 바꾸지 않는다" 즉 형식만 바뀌고 내용은 바뀌지 않는 반면에 미국은' 약은 바꾸고 탕을 바뀌지 않는다.' 즉 실제적이지 형식이 아닌 반면, 중국은 이 면에 있어 형식에만 신경을 쓰고 실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것이 곧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차이임을 발견한다. 봉건주의는 일을 처리할때 관료에게 기대고 '윗사람은 속이고 아랫사람은 속이지 않는 것'이 관료주의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식임을 자각한다.
컬럼비아 대학교에 장학금을 신청할 때 존 듀이가 추천서를 써 줄때 " 이 학생은 참으로 학자가 되기 적합한 인재입니다."라고 추천한 것을 보아도 펑유란은 보통인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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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유란 유학시절 지도 교수인 존 듀이 교수>>
서방의 봉건사회 영국을 여행하면서 유럽은 제후들이 할거하는 판세를 이루고 있어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같은 때와 유사함을 발견하며 봉건주의는 ' 귀한 이를 귀하게 여기고(貴貴)", 자본주의사회는 '부자를 존경하며(尊富)', 사회주의사회는 '현명한 이를 숭상한다(尙賢)',는 결론을 얻게 된다.
봉건사회,자본주의사회,사회주의사회를 살아본 결과 사마천(司馬遷)이 " 배우기를 좋아하고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이어야만 마음속으로 그 의미를 안다(好學深思之士, 心知其意)" 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 의미를 알려면 '배우기를 좋아하고 생각을 깊게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직접 생활을 해야 만 한다는 것에 크게 무게중심을 두는 것으로 보아 다산 정약용 선생 만큼이나 실용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펑유란은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근대철학과 철학사와 중국의 방대한 철학을 섭렵하면서, 덜어냄을 중시하면서 현세를 부정하는 도가와 노장 유파를 낭만파로, 현재 세계의 사물은 상대적이지만 이상 세계의 이데아는 절대적이며 현재 세계는 볼 수 있지만 사유될 수 없고, 이상 세계는 사유될 수 있지만 볼 수 없다는 플라톤의 이상파, 이 세계는 볼 수 없도 없고 사유될 수될 수도 없는,이른바 불가사의한 영역이라 한 쇼펜하우어와 불교는 허무파, 눈앞의 쾌락이 최대인 것을 최고로 여겨서, 바로 눈앞의 쾌적함이 곧 낙원이라는 쾌락파, 사람은 눈앞의 쾌락을 희생해서 장래에 최대 다수의 안전과 번영을 추구해야한다는 묵자계통의 공피파, 우리가 만약 충분한 지식과 권력을 갖고 진보한다면 가장 좋은 세계를 이룰 수 있고, 그 가운데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진보파, 중도파인 아리스토텔레스,헤겔등의 유파를 관통하면서 세계 철학사를 정리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철학체계를 완성한다. 그의 스승인 존 듀이가 실용주의를 설파한데 비해 그는 플라톤 식의 신실재론으로 변화한다. 진리란 객관적인 것일 뿐 아니라 모든 관념과 개념도 객관적 대상이이며 이러한 대상은 모두 사람의 인식으로 붜 독립하여 존재하며 그런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은 일종의 발견의 방법에 따라야 한다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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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사를 영역한 더크 보드와 함께>>
펑유란의 진정한 사상 체계는 짜깁기해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섞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맹인이 코끼리를 더듬은 우화를 비유해 설명한다.어떤 맹인은 코를 더듬고서 굵은 밧줄 같다고 말한다. 어떤 맹인은 코끼리의 다리를 더듬고서 굵은 기둥 같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두 맹인의 말을 짜깁기한다면 코끼리는 밧줄 같기도 하고 기둥 같기도 한 것이 된다. 그렇게 짜깁기한 사람은 맹인보다도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맹인은 그나마 코끼리를 만져보기라도 했지만 짜깁기한 사람은 만져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혼탁하다 못해 실타래를 풀기 힘들정도로 오염되어 있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이들에게 펑유란은 따끔한 충고도 있지 않는다. 어떤 직군에 있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잡가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은 연회에 나오는 모듬 안주와 같으며, 모듬 안주가 아무리 멋지다 하더라도 모듬 안주는 모듬 안주일 뿐 정식 요리는 아니다고. 진정한 철학자는 우주와 인생의 도리에 대해 하나라도 깨닫고 있고, 하나라도 체득하고 있으며, 설사 그런 깨달음과 체득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완전하지 못한 것일지라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 자기 자신이 직접 본 것이지 다른 사람을 베낀 것이 아니기에 일정한 가치가 있음을 그의 사상체계를 대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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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부 확대회의 기간에 펑유란과 악수하는 마오쩌뚱>>
펑유란의 사상은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넘어선다. 그는 동서의 경계를 타파한다.주의(ism)는 외향과 내향의 대립이지 동양과 서양의 대립이 아니며 사람의 사상은 모두 같아서 동양과 서양으로 나 눌 수 없다. 그런 대립은 동양철학에도 있고 서양철학에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철학사와 서양철학사의 경계를 넘어선 그의 삶을 통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흔들린 나침반을 곳추 세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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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완안(萬安)공원묘지엔 투박한 모양의 돌에 아로새겨진 이런 비명이 있다. "삼사로 고금의 철학을 해석하고(三史釋古今), 육서로 신이학의 체계를 세우다(六書紀貞元)." 한눈에 봐도 대단한 지식인의 묘비명임을 알 수 있다. 그 당사자는 누구일까? 다름아닌 철학자 풍우란(馮友蘭,1895~1990)이다. 그는 우리에게는 《중국철학사》(전2권)의 저자로 더 유명하지만 현대중국철학사에서 풍우란은 양수명(梁漱溟), 웅십력(熊十力), 모종삼(牟宗三)과 더불어 신유가의 대가로 명성이 드높다. 신유학은 보통 금악림(金岳霖, 1895~1984)으로 대표되는 육왕학파와 풍우란으로 대표되는 정주학파 계열로 나뉜다.
풍우란이 본 신해혁명은 지주계급 내부의 모순을 드러낸 부르주아 민주혁명이었다. 하지만 당시 부르주아 계급의 역량은 매우 미약했다. 혁명에 나선 이들이 대부분 지식인이었고 손문의 삼민주의 가운데 민족주의가 신해혁명의 주된 동력이었다. 즉 이들은 만주인들의 통치에 반대했고 서양인들의 침략에도 반대했다. 삼민주의의 민권주의와 민생주의에 대해서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혁명세력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해혁명은 현지 세도가 권력과 관권 사이의 투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