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 한국 위인전에서 인촌 김성수의 전기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를 세워 문화운동과 교육운동을 일으킨 김성수는 그야말로 존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후에 그가 세운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 때 받은 인상이 조금은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 생각은 곧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고 복잡한 논리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태평양 전쟁 시기에 조선의 학도들에게 학병으로 자원입대할 것을 권고하는 글 한 편을 읽는 것으로 충분했다.
해방된 지 5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친일파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앞으로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친일파의 자손들은 떵떵거리면서 살아가고 있고 이 땅의 지배층들은 그것을 은폐하는 침묵의 카르텔 구조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제발 그만하자고 한다. 숨가쁘게 발전하는 정보혁명의 시대에 언제까지 그런 케케묵은 과거에 얽매여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할 것이냐고 힐난을 퍼부어댄다. 그런데 그게 정말 과거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걸까? 청산되지 않은 역사란 결코 과거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례를 오늘 우리는 박정희 기념관 문제를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주 인용되는 사례이지만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드골 정부는 나치 협력자 2백만 명을 색출해 냈다고 한다. 그 중에 물론 혐의가 가벼운 사람들은 곧 용서를 받았지만 처형된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르고 종신형을 비롯해 투옥된 사람만 수만 명에 달한다. 뿐만 아니다. 요즘에야 대부분 물리적 수명이 다해 뜸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숨어 있던 부역자를 남미까지 가서 찾아내 재판정에 세웠다는 류의 기사가 신문 외신면을 심심찮게 장식하곤 했다. 또 요새도 가끔 주말의 명화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변신해서 숨어 사는 부역자들을 추적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또다시 프랑스가 외세의 지배를 받을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부역자는 나오지 않을 거라는 드골의 장담이 완전히 허풍은 아닌 셈이다.
그러면 우리 나라는 어떨까? 우리 나라가 또다시 외세의 침략을 받는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부역자들이 줄을 설 것이다. 아니, 그 범위를 외세의 지배에만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우리 주변에서 자본과 권력 편에 서려고 몸부림치는 인사들을 수없이 볼 수 있다. 그렇다. 친일파의 청산 문제는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다. 그것은 추상적으로 민족정기를 확립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우리 민족의 생존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임종국 선생의 뒤를 이어 친일파 문제를 연구하고 대중적으로 알리는 작업에 헌신하고 있는 정운현의 이 책이 발간된 지도 어느덧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친일파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해결의지를 다시 한번 다지는 계기를 줄 것이고, 초보자에게는 자신의 상식이 깨지는 당혹감과 분노를 안겨줄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끝으로 퀴즈 문제 하나!
일제 고등계 형사 노덕술,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문교부장관을 지낸 바 있는 역사학자 이선근,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김활란,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 동아일보 창업자 김성수, 조선일보 창업자 방응모, <불놀이>의 시인 주요한, <국경의 밤>을 쓴 시인 김동환, <무정>과 <흙>의 작가 이광수. 이 10명의 인물 중에 친일파라고 볼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불행하게도 '아무도 없다'이다.
[인상깊은구절] 드골 정부는 특히 나치에 협력한 언론인과 작가 등 지식인을 대부분 사형, 무기징역 등 중벌로 다스렸다. 나치 지배 하에서 비시 정권에 협력한 원로 언론인 여섯 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을 비롯해 저명한 작가·시인들도 예외 없이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전쟁기간 중에 프랑스 임시정부는 독일군 점령지역에서 15일 이상 계속 발행한 신문은 모두 '유죄'로 규정했으며, 종전 후에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물어 나치에 협력한 언론사의 사주와 경영자를 처단하고 그 재산은 국유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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