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실로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정당화된 그들의 폭력 행위는 단지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테러 방지를 위함이라며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아랍인들의 개인적 E-mail 까지 검열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자국민을 위한 강력한 국가라는 이미지보다는 백인 혹은 기독교 문명의 우월성을 강요하는 처사로 보였다. 이는 미국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탄압 중 낮은 정도에 해당하는 한가지 예에 불과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유색인종에 대한 탄압을 일일이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특히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기에 이러한 현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들이 이야기하는 평등한 사회가 과연 누구를 위함인지 의야하기 그지 없다. 환상의 베일에 가려진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느낀다. 미국의 백인들은 히스패닉계, 유색의 피부를 가진 노예들을 통해 지금의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그들은 어김없이 그들이 지닌 노골적인 배타성을 표출한다. 본래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었던 땅에서 타인들이 이룬 것 마저도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이제는 자신 외의 것들을 내쫓기까지 하는 그들의 태도는 참으로 이기적으로 보였다. 공영방송에서 버젓이 흑인을 비하하고 백인을 찬양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들에게는 심지어 전제적인 나치즘, 파시즘 조차도 개인의 선택 문제였다. 이 모든 것은 ‘언론의 자유’라는 웃기지도 않는 명목하에 정당화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선택과 자유는 오로지 백인 남성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백인이 아닌 경우, 그들은 미국 헌법의 가장 기초를 이루는 수정 헌법에서도 배제되었다. 미국에선 백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배척당해왔고 백인들은 이를 당연한 처사로 여겼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늘 인종적으로 노예 이상은 될 수 없는 족속들이라고 폄하하였다. 흑인들 조차도 오랜 노예 생활 속에서 자신감을 상실한 체 살았다. 슬럼가에서의 가난한 삶, 끊이지 않는 악순환 속에서 그들은 박탈당한 그들의 삶을 갱스터 리듬에 실어 표현할 뿐이었다. 비록 그 리듬이 온갖 욕으로 얼룩져 있을지라도, 아마 이는 흑인들이 받았던 모든 멸시와 억압을 표현하는데 충분히 않으리라.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인디언들 역시도 백인들의 철저한 차별과 말살 정책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갔다. 이는 자연과 하나됨 속에서 살아왔던 인디언 문명의 몰락이었으며, 인간과 환경의 분리였다. 더욱 우습지도 않았던 사실은 백인들이 인디언을 차별하면서 동시에 인디언 역사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여겼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히 주장한다 하여 인디언 아닌 이들이 인디언이 될 순 없으며, 무엇보다도 백인들은 인디언이 누려왔던 자연과의 하나됨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장 문명화되었다는 미국 사회의 기초라는 사실이 두려웠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 속에서 나는 미국 사회의 진실된 왜곡을 느낀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 모습 속에서 나는 미국 사회의 야만성을 느낀다. 백인의 화려함을 위해 죽어야 했던 흑인과 인디언, 백인들의 영화를 위해 세상의 밑바닥을 걷고 있는 히스패닉들과 아시안들. 그들을 되돌아보고 그리워함은 황색 피부를 가진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이며, 환상에 젖어 이민 열풍에 참여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우려이다. 9.11 테러 1주년을 추모하며 부시가 했던 ‘God bless America’ 라는 말이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신이 축복한다는 미국은 백인들만의 천국이나보다. |
| 그림이라곤 단 한 장도 없으며 글씨도 여느 책들보다 작다.그럼에도 이 책과 후속작인 <미국 현대="" 문명="" 보고서:="" 게이="" 레즈비언부터="" 조지="" 부시까지="">는 여러 번 읽어도 자꾸 생각을 되뇌이도록 하는 책이다.이 책의 초판이 99년에 나왔는데,7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다만 이 책이 주로 미국 내에 있는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후속작은 미국의 구체적인 생활과 마인드를 묘사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 책의 장점은,지은이 스스로가 미국에서 살았다는 점에서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 뿐 아니라, 단순히 그 체험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을 확장시켜 미국에 대하여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를 던져놓는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맥도날디제이션의 미국''이라는 장에서는, 베이글에 맛들인 지은이의 가족 이야기로 시작해서,외국 음식인 스시와 베이글의 대중화에 관하여 이야기한 뒤,그를 통해 햄버거가 어떻게 전미국적으로,전세계적으로 대중화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식이다.그리고 작가는 이 장을 라틴계 미국인의 학사 학위 취득 이야기로 끝맺으면서, 베이글이라는 한 꼭지에서 미국 기업,미국 소비 행태,비백인 미국인의 활동까지 이야기를 확대시키는 재주가 있다. 이 책은 일반 대중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국제관계나 미국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농담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이 책은 미국 번영의 이면을 파헤치지만,그렇다고해서 반미 감정을 부추기는 책은 아니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인식해야 할 문제를 던져주는 역할을 하는 책이니, 친미극우파들의 심기를 건들지는 않는 좋~은 책이기도 하다.미국> |
|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정착에 성공한 영국의 청교도인, 그러나 그 원주민들을 200년간 박해와 억압으로 죽음으로 몰아가 버간 미국인. 과연 그들에게서 우리들이 무엇을 얻어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게 만든 책.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6.25 전쟁 중 우리를 도와 준 미국이 그저 고맙고 부러웠으며, 그때까지 우리가 형님의 나라로 받들어 모시는 미국에 대한 환상이 있었지만, 대학들어가면서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기 시작했으며, 다시한번 그것을 충분히 가슴 깊이 각인하는 역할을 해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권하여 읽히고 싶은 책. 흑인에 대한, 동양인에 대한, 히스페닉 대한 그리고 모든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 나라 -- 미국. 그런데 그렇게 좋지 못한 그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닮아버린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해준 책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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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이라고 불리우는 미국. 극동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에서 온 동양인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이 책은 한국인의 시각에서 미국 사회를 다각도로 조망한 책으로 5년간의 특파원 생활과 30년 간의 해외취재를 통한 작가가 미국 생활과 문화의 이모저모를 들려주고 있다. 정치, 교육, 대중문화, 성 등 일상 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주제들을 화두로 미국 사회의 이면과 미국인의 본모습을 찾아 나서며 이 책에서는 특히 인종과 민족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가지 유색인종 차별 사례들이 소개된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릴리 화이트, 유럽풍 짝사랑에서는 유려한 필치로 미국사회의 백인 우월주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제2장 흑인 4인방과 미국의 비극에서는 점차 정체성을 회복해 나가는 흑인들의 자주적인 모습에 대해 다루었다. 또 제3장 뿌리깊은 인종차별에 관해에서는 제도화된 인종차별이 얼마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는지 자세한 사례들과 함께 제시되고 있으며, 제4장 갈등과 타협의 땅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이 어떻게 심화 혹은 해소되고 있는지 전해준다. 제5장 그들의 섹스를 통해 성문제도 결코 인종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측면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으며, 그 동안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디언의 문제를 제6장 인디언을 고사시켜라에서 정면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컬러 라인은 이제 더 이상 강 건너의 불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뒤로 제쳐놓고 체념해 버릴 수도 없다. 인종문제가 끝없이 야기되고 이 사회는 결코 평등 사회가 아니다. 거대한 미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날카로운 안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면 미국은 멀지만 가까운 나라였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고, 일부 층에게는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배코플 때 우리에게 빵을 준 나라 미국은 그 빵을 얻어먹지 않고 자란 세대의 증가만큼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 특파원 시절에 체득한 미국인의 시각과 사고방식이 생생히 살아 있다.
미국의 주류사회를 이루고 있는 백인들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미국이란 공룡을 움직이려 드는지, 또는 미국의 미래를 위해 그들이 거세시키려 하고 견제하고 있는 세력은 누구인지, 비주류파들의 피맷힌 울음을 성토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한 꺼풀 벗겨낸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인종문제와 민족문제로 저자는 그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춰 미국의 실체를 해부하고 있다. |
| 사회 시간에 미국을 배울 땐 우리 나라보다 훨씬 짧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세계 여러 민족과 인종이 어우러진 거대한 용광로같은, 기회의 땅은 미국이었다. 그 때만해도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아니꼽고 치사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전쟁 때 우리 나라를 도와준 착한 나라였기에 기브미 쬬콜릿을 외쳐대면서 손을 벌려서 팀스피릿 훈련 나온 그들로부터 하나라도 손에 쥐어든 친구들이 마음껏 의기양양할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 미국이 더이상 용광로가 아니라 샐러드 그릇이라니 이게 무슨 변고인가싶었다. 이 책의 '책을 열며'만큼 잘 씌어진 서문도 찾기 어렵다. "다문화주의를 따른다고 해서 '샐러드 그릇'속의 상추와 양배추 혹은 버섯이 같은 무게의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중간 생략) 상추가 많으면 '상추 샐러드'가 되듯이 '문화의 충돌'에서 누가 미국 사회의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그리고 미국땅에서 그 주도권은 아직 상추에게 있다. 양상추가 가득 담긴 샐러드볼에 장식 삼아 오이도 몇 조각 넣고 노란 피망도 한 조각, 검은 올리브도 몇 알, 붉은 양배추도 몇 조각 넣은 다음 이것을 '모든 채소를 골고루 넣은 샐러드'라고 부르는 것이 곧 미국의 다문화주의로 비친다. (중간 생략) 청교도들이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한 이래 역사 속의 승자는 항상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였다. 다문화주의란 곧 와스프란 양상추에 장식 삼아 다른 문화적 특성을 살린 '와스프 샐러드'였던 셈이다." '앵글로 색슨의 혈통을 가지고 개신교를 믿는 백인'들의 나라는 자신들을 소위 문명의 대명사로 여기고 여타의 것들을 싸잡아 야만으로 호도한다. 그래서 Affirmative action program(소수 민족에게 취업과 진학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제도)을 실시하면서도 Hate crime(나라 경제가 어렵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그 탓을 이민자들에게 돌리며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이 판칠 때는 와스프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자신들의 설 자리를 위협하는 이민자들을 마치 마녀사냥하듯 잡도리한다. 이는 xenophobia(외국인 공포증 혹은 혐오증)를 은근히 꼬드기는 영화 그리고 쓰레기같은 토크쇼 방송 또 노골적으로 러시 림보 룸을 설치한 레스토랑, 러시 림보교를 믿으며 러시 림보처럼 되고싶어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이런 것을 미국 언론에 팽배한 엘리트주의 때문이라고 간단히 넘겨버릴 수 있을까? 하느님은 백인만을 창조하셨다고 감히 말하는 그들이 이룩한 미국이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나라다. 그 안에서 게토의 흑인들, 레저베이션안의 인디언들, 위안 지대(comfort zone)에 똘똘뭉치는 아시아계 학생들은 color line을 넘어설 수 없다, 결코!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점은 연구원과 특파원으로 5년간 미국에서 생활한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이다. 이루 다 나열할 수 없을만큼 풍부한 예시와 두말할 필요없는 똑 부러지는 해설앞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발가벗겨지기 충분하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개인적으로 별 다섯개도 모자란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충격 속에서 읽었고 다시 읽은 근래에도 저자에게 찬사를 보내 마지 않는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작은 욕심이겠지만) 글자가 작은 편이어서 피로하다는 점 정도. 하지만 그것도 넓은 행간덕분에 상쇄되긴 한다. 사족이지만 더 우스운 것은 요즘 우리 나라에 많이 들어온 산업 연수생과 불법 체류자 등에게도 미국에서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우리와 '기회의 땅'을 찾아온 그들간에 생기는 color line이 말이다. 유감이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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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배님이 미국에 5년간 특파원으로 머물면서 느낀 미국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오히려 어렵지 않고, 무용담을 듣는 기분으로 느긋하게 읽게 된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여기서 다루는 미국이란 나라는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진다. 작게 보면 파렴치한이라고 해도 좋을듯...
한나라안에 피부색에 따라 아직도 태생적한계가 비일비재하고, 흑인끼리 모야사는 게토를 쓰레기 처리장처럼 여기는 지배계급이 존중되는 곳, 세계의 평화를 위해 힘쓰는 척 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배반을 때리는 나라......
나도 어쩌면 그의 주관적 견해에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소수민족이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흑인들의 지위가 하위층으로 여겨지는 그곳이 과연 드림을 이루어주는 마술의 땅인지는 의심스럽다. 그들이 건네준 술과 총과 사탕발림에 거대한 영토를 내주고 레져베이션으로 쫓겨나 자멸하게된 인디언처럼 우리도 속고 속고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데인 교수에 의하면, 다양한 특성을 지닌 쇠붙이들을 녹여 금, 은 또는 순도 높은 강철을 뽑아내듯이 미국이란 용광로에서 만들고자 하는 것은 다름아닌 가장 미국인다운 미국인, 그 중에서도 와스프 (WASP :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앵글로색슨의 혈통을 가지고 개신교를 믿는 백인'이 바로 이 용광로가 만들고자 하는 주물이다. 흑인이나 황인종이 용광로에 들어간다 하여 백인으로 되어 나올까마는 얼굴색은 달라도 적어도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만은 백인과 유사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