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종 씨앗의 소중함 -종자 식민지가 아닌 종자 종주국으로 지인분이 매년 오이며, 가지며, 상추며, 토마토 등등 그득그득 가져다주시는 마음이 고마워 하루는 텃밭에 따라가 일손을 돕기로 했다. 잠깐 장비를 가지러 가신 사이 나는 잡초를 뽑아 놓겠노라 하고 일을 시작했다. 나에겐 그때까지 오이, 가지, 상추, 토마토는 마트 진열대에 놓인 이미지만 있었다. 그랬다. 씨를 뿌려 새순이 올라온 그것들은 내 눈엔 다 잡초였다. 열심히 그것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새 순이 올라온 것들을 뽑아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지인 분은 내가 민망해 할까봐 웃으면서 올해는 조금만 먹으라는 신의 계시인 것 같다며 웃음으로 넘겨주셨는데 어찌나 미안했던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먹을 줄만 알았지 그것이 어떤 모양에서 시작하는지 또는 어떻게 자라는지에 대해 그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씨앗이라곤 과학시간에 비이커에 키워본 강낭콩이 내가 아는 유일한 씨앗의 모습이다. 씨앗도 새순도 모르는 내가 씨앗이 토종인지 개량종인지 알 턱이 없었다. 유기농만이 먹거리에 대한 내 지식의 기준이였다면 『할머니의 씨앗주머니』를 읽고서야 토종씨앗과 개량씨앗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토종 씨앗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농부의 보물은 씨앗이야. 그 보물을 잘 보관하기 위해서는 땅에 심고 씨앗을 거두어야 해. 보물을 땅에 심지 않으면 사라지거든. 멸종되는 거지. 우리나라 땅에서 사라진 여우나 늑대, 호랑이, 표범처럼 말이야."p151 선비콩 호랑넝쿨강낭콩 검은넝쿨강낭콩 앚은뱅이강낭콩 담배상추조선오이 검은찰옥수수 붉은쥐이빨옥수수 오글상추 담배잎상추 배추상추 개세빠닥상추 개구리참외 수박참외 깐치참외 사과참외 . . . 이름도 낯선 우리 농산물들이다. "비싼 가격을 주고 사야 하는 수입 씨앗만 심으면 우리나라 농업이 망할 수도 있대. 그래서 토종 씨앗을 잘 지켜야 한대. 토종 씨앗에 들어 있는 좋은 성분으로 우리 땅에 맞는 새로운 작물을 개발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p180 우린 토종씨앗의 소중함을 잊은 채 송희엄마처럼 잠시 '해리성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토종씨앗이 우리의 무지함과 무관심으로 이미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나에겐 농사지을 수 있는 밭이 없다. 그러니 토종씨앗을 잘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우리 토종 농산물을 찾아 먹어야겠다. |
|
어릴 적부터 나는 참 열매 맺는 식물을 좋아했다. 과일이든 채소든 땅에 심어 열매 맺는 것들이 참 좋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괜히 좋아하는 과일을 먹고나면 땅에 심어봐야지 하고 씨앗을 모으는 습관이 있다. 정작 땅에 심어본 적은 몇 번 안된다. 그래도 꼭 좋아하는 열매의 씨앗은 모아보게 된다. 작년엔 교과서 수업시간을 빌어 교실에서 강낭콩을 4알을 심어서 70여 알을 수확했다. 반 애들에게 2알씩 나누어주었다. 콩 한알에서 이렇게 많은 씨앗이 나온다는걸 모두가 신기하고 즐겁게 경험한 기억이 난다. 무엇을 심고 기르는 것에 대한 묘한 동경과 즐거움을 느끼는 이런 내게 '할머니의 씨앗주머니'라는 책은 제목부터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야기는 해리성기억상실증에 걸린 엄마의 치료를 위해 아빠와 함께 엄마 예전에 살던 외할머니댁으로 이사를 온 송희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동네에서 씨앗할머니로 불리시던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를 모두 그리워하며 송희 가족을 반가워했다. 송희는 읍에 있는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그곳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풀잎이와 동수를 만나 친구가 됐다. 아이들은 조별과제를 하며 토종씨앗에 대한 의미와 가치, 중요성을 알게되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함께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낯선 씨앗의 이름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놀랬다. 이정도로 내가 우리 토종 작물에 대해 무심했구나. 우리 작물을 기르고 가꿔온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질만도 하다 싶었다. 나같은 사람은 토종씨앗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했을 정도니까. 무조건 토종씨앗이 옳다! 토종씨앗을 심어야한다! 라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어서 더 좋었다. 우리 토종씨앗의 힘, 개량종씨앗과 토종씨앗이 가진 장점과 단점, 토종씨앗의 현실을 밝혀주며 우리 종자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잘 녹아나 있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기에 더 완곡하게, 하지만 힘있게 전해졌다. 우리 토종씨앗의 74%정도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 토종참외는 10종류정도였지만 우리가 주로 먹는 노란 참외는 외국 회사에게 종자 소유권이 있다고 한다. 청양 고추의 종자 소유권도 외국 회사에 있다. 이 모든 사실들을 나는 처음 알았다.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은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빠르게 변하며 사라지고 있을까. 그게 더더욱 우리 전통의 문화, 우리 토종의 것이라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얼마나 더 아쉬울까. 토종 씨앗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풀잎이와 송희의 우정 이야기, 송희의 가족 이야기 등 따뜻한 이야기가 잔뜩 담긴 '할머니의 씨앗 주머니'는 참 좋은 책이었다. 아이들이 많이 보길 바라며 학급문고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었다. 6월의 끝이 다가온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살구가 주렁주렁 열렸다. 평소라면 그저 살구가 익었다고 좋아하며 지나다녔을 것을, 책을 읽고 나서는 토종 살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개살구라는 토종살구가 있었다. 내가 조금만 관심 갖고 찾아보면 이렇게 쉽게 우리 토종의 것들을 알 수 있었구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