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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3부작의 마지막 편까지 어떻게든 잡고 있는 사람만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편 [잠겨 있는 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쉽게 읽히고 로맨스에 쫄깃한 반전까지 어우러진 작품이 고개를 내밀고 있으니. 그만큼 앞 두편은 읽어내기 버겁다. 하드보일드한, 아니 하드코드라 해도 무방할 것 같은 얘기를 가까스로 견뎌내어야 포근하고 정겹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한 편만 읽을수는 없다. 세 작품이 서로 독립적인 중편이지만 비슷한 장르에 유사한 톤과 플롯을 지니고 있으며 등장인물이 겹치는 등, 거의 연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사설탐정이 등장하고 실종, 미행 및 신변보호 등 미스터리한 사건이 배후에 깔려있으며 엉크러진 실타래에선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는 측면을 감안하면 세 작품은 추리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통 추리물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있으며 코드의 결도 다르다. 우선 스피디한 서사 전개가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가 제자리걸음이기 일쑤다. 또 악당이 누구인지 특정하지도 않는다. 선악의 극명한 대비도 드러나지 않는다. 스토리보다 인간의 내면과 외적인 관계에 더 굵은 방점을 찍고 있다. 그래서 외형만 추리물의 옷을 입었지 실은 추리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인간과 사회, 자아와 세계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제출한 것으로 읽힌다. 뉴욕이란 거대하고 익명성이 강하며 그래서 차갑기만 한 도시, 그 와중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며 어떻게든 살아있음을 입증하려는 자들의 눈물겨운 고투를 그리고 있다. 뉴욕, 뉴요커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고독하고 분열된 자아와 넘기 불가능한 냉엄한 현실의 벽에 대한 르포로도 읽힌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과 사회에 이성이 지배하고 논리가 존중되며 인과율이 작동한다고 믿는 것은 허구라는 작가의 절절한 육성도 들려온다. 단지 우연이 우리를 어떤 곳에 데려다놓았을 뿐이란 것을.
삶은 우리가 손쓸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삶은 우리가 죽으면 같이 죽고, 죽음은 우리에게 매일같이 일어나는 그런 일이다. (313쪽)
누가 뭐래도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342쪽)
세 작품에는 하나 같이 글쓰는 이가 등장한다. 아니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 캐릭터로 기능한다. 전업작가이건 직무수행 상 불가피하게 글을 써야만 하는 일을 맡은 자건 모두 글쓰는 일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작가의 페르소나로 읽힌다. 심지어 사건을 의뢰받은 탐정 이름이 폴 오스터이기도 하다. 자연스레 글쓰기에 대한 오스터의 지론이 투영될 수밖에.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자평도 더불어. 조금 길지만 눈여겨 본 대목을 옮겨본다. 나에게 적용하기 위해 필사하는 심정으로.
그 무렵 나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자신을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런저런 글들을 많이 쓴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들은 찬사를 받을 만한 것이 못 되었고, 또 나는 그것들을 특히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다. 내가 보는 한에서는 그것들은 잡문보다 나을 것이 거의 없었다. 처음에 나는 언젠가 소설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마침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그들의 삶을 바꿀 만한 어떤 작품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대단한 희망을 품고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차츰차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에게는 그런 책을 쓸 만한 재주가 없어서 어느 시점에서인가 그 꿈을 포기하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논평을 쓴다는 것은 소설보다는 더 간단한 일이었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한 논평에 이어 다른 논평을 써나감으로써 나는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일이 가치가 있건 없건, 인쇄물에 내 이름이 거의 끊임없이 실리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었다. 나는 상황이 그보다 훨씬 더 비참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서른도 채 되지 않아서 이미 어느 정도 명성을 얻고 있었으니까. 나는 시와 소설에 대한 서평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논평을 쓸 수 있었고, 그런 대로 좋은 평판도 얻고 있었다. 영화, 연극, 미술 전람회, 연주회, 책, 심지어 야구 시합에 이르기까지, 요청이 있기만 하면 나는 글을 쓰곤 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명석한 젊은이, 상승세에 있는 새로운 비평가로 보았지만 내심으로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늙은이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그때까지 해온 일을 모두 합쳐 봤자 아무것도 아닌 일의 단편들일 뿐이었다. 기껏해야 산들바람에도 날아가 버리고 말 먼지밖에 되지 않았다. (325~326쪽)
또 글 쓰는 자로서 오스터의 욕망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빼어난 문재를 지녔던, 아니 모든 면에서 주인공보다 탁월한 역량을 보였던 팬쇼와 자신을 비교하며 세속적인 면모에 대한 자잘한 집착까지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팬쇼에 대한 애증, 경외와 열등감이 어우러진 복잡미묘한 감정의 결을 노출한다. 페르소나를 통해 자신의 위상과 욕망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바랐고, 욕구가 너무도 많았고, 순간순간에 너무도 얽매여 있어서 그런 무관심의 경지에는 도저히 이를 수가 없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잘하는 것, 이를테면 좋은 성적, 대표팀 마크가 붙은 운동복, 평가 기준이 무엇이건 그 한 주 동안 뭘 잘했다고 받는 상 같은 내 야망의 헛된 징표들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335쪽)
작품 속 작가들은 고뇌하면서도 솔직하고, 충실하면서도 이단적이다. 그래서 싱크로율이 높아 더욱 몰입하게 이끈다. 그런 작가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허무에 찌들고 암울하기 그지 없어 외면해버리고 싶지만 우리 삶의 엄연한 민낯이기에 도저히 고개 돌릴 수 없었다. 더 힘들었던 것은 지금 고통을 견디고 있는 사람이 그 일의 원인제공자가 아니며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적시해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데도 작가는 위로의 메시지 하나 날리지 않는다. 몇 마디 말 따위로 최면을 걸려 하지 않는다. 그냥 처절하게 직면하라고 우리를 내몬다. 세 번째 작품도 그런 맥락이지만 조금의 숨구멍은 터주고 있는 셈이다. 앞 부분을 읽다가 좌절하였다면 세 번째 이야기 [잠겨 있는 방]부터 먼저 읽고, 이야기의 연원을 찾아가듯 앞 두 편을 읽는 것도 괜찮은 접근 방법일 것이다. 허무에 휘둘려 폴 오스터 문학의 정수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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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은 3개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읽다보면 부분부분이 서로 겹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엔 같은 이야기가 되고 만다. 폴 오스터의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힘이 들게 만든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정말 내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되어버려 나 역시 주인공처럼 소진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최고봉이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힘이들 정도로 정신적 소모가 심한 책이라 남들에게 쉽게 권해 줄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마음 단단히 먹고 책장을 넘기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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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는 모든 그의 책 속에서 존재한다. 그의 책들은 이책 저책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연스럽게 독자가 느끼도록... 뉴욕 3부작은 책 제목대로 3개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너무나 유명하고 극찬의 책이라 나의 주말을 오롯이 반납하는데 이책을 선택함에 주저함이 없었다.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 오후.. 내일 출근의 압박으로 무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이며, 월요병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책은 아직 다 읽지 못했고 유령의 첫 대목이 시작되는 순간 두통의 전조증상이 시작되었다. 이책을 읽기전에 읽었던 빵굽는타자기의 “정전” 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도 블랙과 블루의 대사를 따라가며 이게 무슨상황이지, 그래서 블랙이 왜 그랬다는 거지? 머리가 지끈지끈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중편 3부 “잠겨있는 방” 이 남아있다. 읽기 괴롭지만, 블루 처럼 어쩔수 없이 또 읽어나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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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깐. - 잠겨있는 방의 일부- 다 읽고 나니 세 편이 왜 뉴욕3부작으로 묶여져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사건을 추리하게 되고, 다음에 일어날 일이 궁금해 지고 주인공을 따라 뉴욕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 편이 전혀 별개의 이야기인 것 처럼 읽히다가도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는 거 보면 참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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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책들 30주년 기념판으로 가성비 좋게 구입하였습니다. 이정도 두께라면 통상의 2/3수준이라고 할까요?
폴 오스터는 대중 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 문학계에서 진지한 소설만을 고집해 온 특이한 작가이다. 뉴욕 3부작은 근본적으로 글쓰기라는 창조적인 과정과 또 하나의 독립된 자신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을 잃어가는 작가의 이야기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으로, 즉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성공을 거둘지 어떨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이 작품은 언뜻 보기에는 서로 관련이 없는 듯하면서도 전체를 이루는 구성요소들로 읽어야 완벽해지는 세 편의 중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다음 편으로 섞여 들고 마지막 이야기는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전체를 구성한다. 유리의 도시에서 어느 여인으로부터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은 뒤 탐정 역할을 떠맡아 편집증적인 노인을 추적하는 작가는 다른 이야기들에서 그 자신으로,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다른 인물을 찾는 일에 뛰어든 또 다른 인물로 다시 나타난다. 따라서 첫 번째 이야기인 `유리의 도시`와 두 번째인 `유령들`의 의미는 마지막 이야기인 `잠겨 있는 방`의 끝 부분에 이르러서야 분명해진다. 그러한 전개 방식이기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전체를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그러는 사이에 탐정 소설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느 실존적이면서도 공상적인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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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떠난 길, 여행길이 점점 멀어질수록 영혼의 고뇌 또한 더욱 깊어진다. 우리 삶의 여정을 이끄는 방향타가 명확한 자기 의지나 인과 관계, 논리적인 법칙이 아니라 우연한 사건, 작은 불상사일진대 그 속에서 정의와 불의, 도덕과 비도덕,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그렇게 확연히 그을수 있을까 하는 착잡한 심정들이 그려진다. 그렇다고 소중한 삶을 우연이나 운명에 맡긴채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둘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작품들 속에서 이러한 삶의 분명한 기록을 보여주고 증언함으로써 우리에게 고된 <의미 찾기>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두번째 단편 <유령들>의 블루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진실, 즉 자기의 존재는 곧 자기의 일이며 그 외에는 어떤 생각이나 느낌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상 역자의 글) 언어의 근원, 삶의 의미, 자아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을 세 작품에서 연속으로 보여주지만 어느 것도 명쾌하지 않고 고뇌하며 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자기 자신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깊이 탐구하지만 그럴수록 불확실과 모순에 가득찬 사실만을 발견할뿐이며 자신에게조차 다가갈수 없음을 깨달으며 절망한다. 주인공들의 공허와 무의미가 끝내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이 책을 다 읽고나서도 혼란스럽기는 매 한가지이다. <유령들>에서 '블랙은 오늘도 소로우의 월든을 펴놓고 있었다' 이 장면을 작가는 여러번 언급하고 있다. 폴 오스터는 세 단편을 통해 인간 개인, 타인과 나의 행동을 집중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했던 반면 소로우가 자연 안에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관조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것을 대단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같다. 미국소설의 한 획을 그은 문학이라 하는데 작가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깊이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생소하면서 신선했고 그래서인지 흥미진진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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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으로 이뤄진 3개의 이야기입니다 공통점은 몇몇 인물들과 작가가 등장한다는 점과 빨간 노트로 생각되네요 추리소설 형식은 좋아하지만 단서를 두고 상황을 되짚어 보게 하는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화자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실일지 끝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고전문학풍의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노트 정리와 함께했던 독서경험이였네요 등장인물들의 마지막과 이후 이야기는 전적으로 독자의 상상에 달려 있지만 그 자유가 오히려 답답함을 배가시키는 느낌이였습니다 복잡한 머릿속에 정리되면 찬찬히 재독해보려고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