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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걷기'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책 이야기를 한다면 그들은 걷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에 다양한 걷기행사가 있다는 것도 이분들을 통해 들었다. 밤샘걷기도 있었다. 무념무상. 오로지 걷는 행위로 마음을 비우고 자신에게 깊이 빠져드는 구도의 길이었다. 그분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산티아고로 갔다. 그리고 다시 안나푸르나로 달려갔다. 작년에 안나푸르나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에 남은 것은 네팔의 설산이 아니라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로 몰려들어 걷고 또 걸으면서 나눈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일이나 읽는 일이나 다 삶에 방점을 찍어가는 일이구나 나름대로 생각했었다.
이 책은 인문학자 김경집의 안나푸르나 기행문이다. 저자는 기행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기행이 아니면 이 책이 나올 수 없었으니 기행문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다른 기행글과 다른 점은 걷는 발걸음 만큼 생각이 많았다는 것. 그것을 18개의 질문을 만들어 스스로 답한 내용으로 책을 엮었다. 저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종일 하나의 질문을 갖고 길을 걸었다고 한다. 마치 수도승처럼 하루의 화두를 안고 히말라야를 돌아다닌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자 몇개의 낱말이 머리를 채웠다.
판형: 이 책은 크기가 170*183*30mm으로 정사각형 모양이다. 가끔 이런 책도 봤기에 별다른 생각없이 펼쳤는데 읽는 내내 편했다. 가로가 긴 만큼 여백이 넓어서 일부러 책을 다 펼쳐야되는 부담감이 없었다.이런 판형도 괜찮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그림: 저자는 안나푸르나의 풍경에 감탄하고 또 감탄하면서 사진 한 장 싣지 않았다. 챕터마다 삽화가 그려져있는데 저자의 감탄을 따라가기엔 부족했다. 왜 사진 대신 일러스트였을까. 편집의 묘미라고 하기엔 마음에 차지 않아서 따로 다른 이의 블로그를 찾아봐야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에 넘치도록 많았다. 여기에 편승하기 싫은 저자와 출판사의 편집의도였나 싶었다. 굳이 이 책은 기행문이 아니라고 했으니 사유에 집중해달라는 주문으로 생각하려했지만 글에 적합한 사진이 좀 아쉬웠다.
나마스테: 저자는 네팔의 인사 '나마스테'에 열광한다. "당신과 당신 안에 있는 당신의 신께!"라는 의미가 있는 이 인삿말을 최선을 다해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이 말을 주고 받을 때마다 행복하고 기쁘다고 했다. 현지에서 주고 받는 인삿말 하나로 그 나라와 국민에 대해 즐겁고 행복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나그네 입장에서도 고마운 일이다. 꼭 나마스테가 아니라도 사소한 인삿말이지만 진심을 담아서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인삿말도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성건성 나누었던 안녕하세요?에 마음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독서의 기쁨이 느껴졌다.
저자는 지금 인생 3막 중이라고 들었다. 25년을 배우고, 25년을 가르쳤으며 25년동안 강연과 글로 시민사회와 소통하겠다는 다짐을 한 뒤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살아가면서 느끼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점을 고민한 내용이 군데군데 들어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젊은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자신만 해도 먹고사는 문제는 끈기만 있다면 해결되었는데 지금 청춘들에게 그런 사회를 물려주지못한데 대해 미안해하고 안쓰러움을 내비쳤다.
우리는 게으른 것을 죄악시 하는 편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라고 하지 않은가. 가만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태만이라고 여겨 잠시도 자신을 가만히 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집안 일을 하면서 뉴스를 듣는다. 한꺼번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해야 정상인 것처럼 느껴지는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던 저자에게 보름동안의 안나프르나 여행은 느림이 주는 삶의 비밀을 조금 엿본 시간이기도 했다. 그 비밀을 독자에게 나눠준 것이 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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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음은 쉽다. 그러나 어울림은 어렵다. 같음은 나를 버리고 상대에만 맞추면 된다. 상대를 위해 나를 버리는 건 헌신적 사랑이 아니라면 잇속을 위한 아첨뿐이다. 어울림은 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내 생각과 판단을 곧추세우는 것이다. 현실에서 현상으로만 보자면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그걸 가려 실천하기도 어렵지만 그걸 분별해서 읽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여행은 단순히 공간의 이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생각의 이동이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과의 해후고 공감이다. 그것은 자연스레 어울림으로 이어진다. 그 안에서 삶의 어울림을 배운다. 403P
현대인은 고독의 가치를 잃고 산다. 고독은 쓰고 괴로운 게 아니다. 고독은 온전히 내게만 몰입하고 나와 세상이 일대일로 맞서는 상황이다. 그런데 고독을 피한다. 두려워한다. 고립과 혼동한다. 고립은 타의적 고독이라서 괴롭다. 따돌림이다. 그 따돌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아이도 어른도 두렵다. 그래서 피하고 싶다. 그러나 고독은 자발적 고립이다. 따라서 고독은 주체적이다. 모든 불필요한 것을 배제하고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 향하는 내밀한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전 존재로 대한다. 420P
계곡을 흐르는 물이 깨끗한 것은 바닥이 울퉁불퉁한 돌들 때문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434P
나는 불가에서 "성불하십시오"라는 인사처럼 멋진 건 드물다고 믿는다. 불자에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강복의 인사는 없다. 성불이란 내 안에 있는 불성을 온전히 깨닫고 꺼내어 내 삶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오랜 수양과 동안거와 하안거를 비롯한 용맹정진의 과정도 필요하지만 성불의 화두는 초발심의 불성을 되살려내며 스스로 부처의 삶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성불하세요'라는 기원은 상대뿐 아니라 그 인사를 건네는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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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묻다, 살아가다 막 히말라야 여행에서 돌아왔다. 설산의 위용을 자랑하는 안나푸르나의 길을 걸었다. 지나가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신을 만났고, 길가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에도 감사했다. 끊임없는 물음의 길이었고 물음의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목표점에 도달했고, 내려오는 길도 만끽했다. 아! 혼자 다녀온 것은 아니다. 한 인문학자의 여행에 무임승차했다. 물론 책값은 치렀지만 말이다. <생각을 걷다>(휴, 2017)는 인문학자 김경집의 히말라야 여행과 그 길에서의 사유를 담고 있는 책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고민한 18가지 삶의 질문과 그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기행문이자 인문학서이다. 저자는 안나푸르나의 높은 길을 숨가빠하며 걷다가 어느 순간 사유의 늪으로 빠진다. 그런 저자의 여정을 책상머리에서 동행한다는 것은 도리어 행운이다. 저자와 함께 히말라야로 떠났다면 그 길은 공유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의 사유는 공유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히말라야에서 사유한 삶의 질문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며 농밀하다. 그의 몸은 여행을 통해 비일상적인 장소로 옮겨가있지만, 그 떠남은 오히려 한 발 떨어져 일상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이 책은 비일상적인 장소에서의 일상에 관한 고찰을 통해 삶의 순간들을 특별하게 만들 방법을 일러준다. 그것은 바로 일상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나는 오늘 무엇을 물었고, 내일은 또 무엇을 물을 것인가?”(p.97) 나를 만나기 위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며 살아가는 일상은 순례자의 특별한 여행과 다르지 않다. 순례자와 같은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갈 때, 삶은 마치 순례처럼 경건해지고 겸손해진다.
저자의 히말라야 트레킹이 낯선 여행이었듯 우리의 인생도 낯선 여행이다. 이 낯섦 속에서 우리는 설렘을 발견하고, 기대를 품고, 희망을 갖는다. 이 여행에서 우리는 언제나 초행자이기에 모든 길은 새롭고 의미있다. 그러나 이 낯선 길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여정은 내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야한다. "내가 생각했던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나를 뛰어넘을 수는 있는 것일까? 정답은 있는 걸까? 그 정답을 내가 가지고 있는데 나만 몰랐다는 것일까? 진정한 자유는 과연 무엇일까?”(p.37)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아주 단순하다. 일단 숨 쉴 공기만 있다면 살 수 있다. 먹을 음식도 잠잘 집도 부차적이다. 사는 데 필요한 것이 아주 단순하다는 것은 삶의 본질 역시 단순하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삶에 욕망의 더께가 덕지덕지 붙으면 그 본질이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우리가 소유한 그것들은 삶의 본질을 더욱 깊숙이 숨긴다. 그러나 본질을 파악하고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가치있게 만들고 인간답게 한다. 나도 모르게 쌓여버린 욕망의 더께를 덜어내고 단순한 본질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사는 건 아주 단순함을 새삼 깨닫는다. 산소만 있어도 살 것 같다. 아무런 욕망도 없다. 그저 숨만 편히 쉴 수 있다면, 다 내줄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것들은 빈껍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이고 지고 끌고 다니며 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탓한 삶이었구나 싶다. 산소가 넘치게 풍부한 저지대로 내려가도 이 욕망의 더께를 벗어낼 수 있을까? 아는 것과 느끼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래도 그 간격을 조금은 줄여야 한다. 히말라야는 내게 그것을 요구한다.”(p.183)
목적지가 아닌 길에 널린 돌멩이에 눈길을 뺏기고 꽃과 잠자리에 마음을 뺏기던 ‘나였던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최단거리, 최고속도의 삶이 버겁다면 이 책이 던지는 화두에 귀기울여 볼 일이다. 가로가 넓은 이 책의 여백을 노트삼아 저자의 사유에 이어지는 나의 생각을 메모해가며 읽는 쏠쏠한 재미는 덤이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내 앞의 인생을 나만의 속도로 걷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빨리 걸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반면 너무 천천히 걸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금물이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고, 질문하고 답하며 걷는 것이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관건일 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온전하게 누리려면 서둘면 안 된다. 갈 길은 멀다. 그러니 서둘지 말고 즐기는 법을 마련하며 살자. 삶도, 사랑도, 일도. 때론 밭게 때론 성기게.”(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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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유명인사와 보통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오르는 네팔의 히말라야. 험난한 지형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히말라야를 걷고 또 걷는다. 그런 곳을 저자는 올라가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히말라야를 걷고 또 걷고 올라가는 저자가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삶과 사유를 함께 생각한다. 저마다의 코스는 다르지만 인생을 걷는 다는점에서 동질감을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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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보는 산이고 자연이다. 풍경의 일부일 뿐 아니라 생각의 부분이기도 하다. 간결하게 서 있는 자연 앞에서는 나도 간결해질 수밖에 없고 숭고하게 서 있는 산 앞에서는 나도 숭고해질 수밖에 없다. 북방계 산수화 양식을 통일한 송나라 시대 화가 겸 평론가였던 곽희는 산수를 이해하는 것은 생명의 이해와 같다고 했다. 사람은 자연에 머물 수 없으니 방에 산수화라도 걸어두고 마음으로는 그 안에서 소요음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