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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다.’
이 책을 읽은 나의 한 줄 평이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의 책 「아가미」를 사둔 지 한참 되었지만 읽지 않고 있었다. 이 책 「파과」는 순전히 출판사의 기민한 카피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60대 여성 킬러의 이야기”라니!! 평소 미스터리 장르와 강렬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선물했다. 아내는 금방 책을 읽은 후 내게 책을 건네며 한마디 했다. “영화로 만들면 무조건 윤여정이야, 윤여정”
매사에 쉽게 흥분하지 않는 아내가 꼭 읽고 리뷰를 쓴 후, 그 리뷰를 보여달라고 했다. 아내는 「진이, 지니」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도 재미있다고 했다. 「진이, 지니」는 아내가 작년에 읽은 책 중 최고로 꼽는 책이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꼭 읽고 리뷰를 보여달라 하시니 그 명령 따르는 수밖에.
“아니면 자기가 그 폐휴지 더미 가운데 가장 작고 얇은 데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상자 한 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나.” (p.218)
한때는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방역업자였다. 책에서는 방역업자라고 표현되는 그녀의 직업은 흔한 말로 살인청부업자. 말 그대로 킬러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각계각층의 사람들. 이유를 묻지 않고 오로지 죽이는 것이 ‘업’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녀를 방역업계에 끌어들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갖게 한 ‘류’가 떠난 이후 줄곧 그랬다. 물론, 생물학적인 나이도 무시할 수 없다. 60이 넘은 킬러라니. 그녀는 이제 업계를 떠날 것을 꿈꾸지만 깊이 디딘 발을 쉽게 빼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일은 40여 년을 이어온 방역의 개인사에서 치명적인 오점이었다.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몸은 모로 뉘어진 상태였고 뒷목부터 허리까지 이물감이 느껴졌다.” (p.78) “어째서 이런 중요한 순간에 목표물을 놓치고 타인을 버렸을까. 단지 몸이 불편한 노인이라서,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이 위험한 도로에서 신문지 한 장까지 포기 못 하는 장면을 바라볼 때 자연히 생겨날 법한 동조와 연민의 감정이라고 한다면…….” (p.188)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던 그녀의 몸은 점점 흠집이 난다. 깊게 팬 사과의 단면이 시간이 지날수록 짙게 물 들어가 짓물러 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녀는 뭉개져 가고 있었다. 거듭되는 실수와 뭉개져 가는 몸만으로도 벅찬 그녀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투우는 그녀의 태도에서 그녀가 결국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며, 자신의 존재가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갔을 수많은 남겨진 어린아이들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직감하지만, 실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p.325)
투우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방역업계에 뛰어든 젊은 킬러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유유히 베란다 밑으로 뛰어내린 중년의 여자 킬러를 기억하고 있었다. 파과되어 가는 킬러 ‘조각’은 물론 그것을 알지 못한다. ‘투우’가 왜 자신의 일을 거듭해서 방해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십수 년을 갇혀 군만두만 먹다 나온 오대수에게 이우진은 이유를 찾으라고 했었다. 오대수는 죽을힘을 다해 그 이유를 찾아낸다. 하지만 조각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강 박사의 아이를 납치한 투우를 제거한 후 아이를 살려내지만, 자신의 한쪽 손도 함께 잃어버렸다. 오대수는 미도와의 관계를 폭로하려는 이우진을 향해 몸부림을 치며 사과하고 자신의 혀를 잘라내 버리지만, 조각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지 않는 것인지, 못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p.130)
투우는 게임을 하고 싶었다. 잔인한 게임을 말이다. 스무고개를 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오대수를 가지고 노는 이우진이 된 것처럼 말이다. 막상 먹잇감을 앞에 두고는 확실하게 제거하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여자 킬러를 찾아내 죽이는 것이 목표였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삶은 잔인하다. 예측하지 못한다. 방향을 설정하고 그곳으로 제대로 걸어가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생각일 뿐인 경우가 많다. 뒤늦게 잘못을 발견하지만 이미 갈 만큼 가버려 돌이킬 수 없다.
“이거 소질 있네.” (p.166)
조각이 ‘류’에게 발탁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겁탈하려는 미군의 목에 꼬챙이를 찔러 넣은 것도 조각이 예상하고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일은 벌어지고 삶은 마음대로 움직였다.
“주무시는 동안 새벽 시장에서 사 온 겁니다. 취향에 맞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비슷해 보이는 걸로 골랐는데 어떠세요.” (p.88)
방역을 하다 다친 몸을 끌고 찾아간 병원의 장 박사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얼마간의 돈도 찔러 줬겠지. 오랜 인연을 이어가다 보니 척하면 척이다. 우연히 장 박사가 부재한 시간에 찾아간 병원에서 낯선 의사 ‘강 박사’를 만난다. 장 박사가 아닌 것을 발견한 것은 이미 치료가 끝난 이후였다. 장 박사보다 더 입이 무겁고 신중하며 살뜰한 사람이었다. 뭉개져 가는 노년의 킬러에 불과한 그녀의 마음 한켠으로 강 박사가 들어왔다. 밀어내려 하지만 이겨낼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강 박사라는 사람을 만나고 삶은 또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p.342)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녀가 방역업을 그만두고 더 이상 킬러를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여느 방역이 그러했듯, 투우를 방역하고 잡히지 않아 세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여전히 꼬장꼬장한 할머니로 예의 “어머~ 어머님~”이라고 만면에 웃음을 띤 서비스 업종의 장사치들에게 일갈을 날린다. 이제는 한쪽 손밖에 네일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뭉개져 가는 제멋대로인 자신의 삶에 반짝이는 웃음을 짓는다. 잠시나마 반짝이다 사라질 네일처럼 비록 파과(破果)되었지만, 다시 한번 반짝일 수 있으리라는 헛된 기대를 찬란한 햇빛에 흩뿌린다.
책을 읽는 내내 아내의 “윤여정이 딱이야.”라는 말이 맴돌았다. 오기는 아니지만 다른 배우를 떠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내의 말이 옳았다. 윤여정 배우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개봉하자마자 아내 손을 잡고 보러 가고 싶은 내용이다. 검색을 해보니 윤여정 씨가 47년생이시다. 아이구 이런~ 작품 속 ‘조각’보다 10년이나 더 위다. 더 늦기 전에 영화로 만들어지고 ‘조각’을 열연하시는 윤여정 씨의 모습을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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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노인, 여성, 킬러.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가지를 조합한 주인공 조각은 65세 여성 킬러다. 그녀의 이름은 조각. 한때 ‘손톱’으로 불리던 그녀는 40여 년간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으며, 날카롭고 빈틈없는 깔끔한 마무리로 ‘방역 작업’을 처리해왔다. 하지만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면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한편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고 평생을 되뇌어온 조각의 마음속에 어느새 지키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는가 하면, 청부 살인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발견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외면하고 살아온 조각의 눈에 ‘타인’의 고통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조각의 마음에 온기가 스며든다.
그러던 어느날 방역 작업중 부상당한 조각은 자신을 치료해준 강 박사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되고 강박사의 주변을 맴돌게 된다. 그런 조각을 눈치챈 투우는 강 박사의 딸을 납치하고, 조각이 투우에게 총을 겨누며 생애 마지막 작업을 실행키로 결심하면서 소설은 절정으로 향한다.
이 소설은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를 보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부서진 과일, 흠집 난 과실이 그 첫 번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 나이 16세 이팔청춘, 즉 가장 빛나는 시절을 뜻한다. 우리 모두 깨지고 상하고 부서져 사라지는 ‘파과(破果)’임을 받아들일 때, 주어진 모든 상실도 기꺼이 살아내리라 의연하게 결심할 때 비로소 ‘파과(破瓜)’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처럼 소설 『파과』는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다.
구병모 작가는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책을 통해 접해본 작가이다. [위저드 베이커리]가 내용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게 읽었기에 작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 역시 구병모 작가의 이름을 믿고 구입하게 되었다. 읽는 내내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듯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이 소설의 말미에서 조각과 투우가 벌이는 총격전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영화로 나와도 재미있을것같은 책이였다. 역시나 신선한 내용들이여서 술술 읽혔던 책. 구병모 작가의 다른책도 구입했는데 어서 또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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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과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한 여인 이야기로 보았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조각은 사랑이 결핍된 과거를 지닌 탓인지, 방역(암살)이라는 끔찍한 일을 업으로 삼은 탓인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인물로 보인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대신 유리 같은 자존심만으로 벽을 세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각(爪角)이 짐승의 발톱과 뿔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조각의 살인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은 남을 해치는 것 보다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암살이라는 일을 통해서, 정확히는 그 일로 자신의 구원자와도 같은 류의 인정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던 조각은 이젠 류를 잃은 지 한참이 흘렀음에도 "일"을 놓지 못하고 있다. 늙고 약해진 조각은 그 위험한 일을 예전과 같이 수행할 수 없어지며 자존심을, 자신의 일을 지키지 못할 위기에 처한다. 그 때 그녀에게 강박사와 투우, 두 남자와의 인연이 찾아온다. 강박사는 조각의 일에 대한 비밀을 지켜주며 그녀가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즉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그에 반해 투우는 강박사의 아이를 납치하며 조각의 유리벽을 깨부수려 한다. 나는 투우의 행동이 과거 아버지를 암살한 조각을 향한 복수가 아니라 강박사를 향한 질투와 인간적이고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조각을 향한 분노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암살자 조각의 모습을 아름다운 환상처럼 보며 그녀가 그때의 모습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어쩌보면 투우도 조각이 자존심을 지켜나가길 원했던 것 같다. 나는 조각이 강박사의 호의를 사랑했고, 투우의 폭력적이고 비뚤어진 도발로 사랑 받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조각은 그 두 사람에 의해 65년의 시간 동안 그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못했던 사랑을 꿈구고 느끼며 자존심으로 만들어진 벽을 깨고 그 자리를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채워갈 수 있었던게 아닐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만들어진 자존심은 조각난 자존심일 뿐이다. 그 조각을 아무리 단단히 얽어 놓았어도 말캉말캉한 복숭아 같은 사랑에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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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소설은 책 장을 넘길 때마다 머릿 속에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오르게 만든다. 책을 모두 읽은 후 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때, 상상 속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고 그제서야 천천히 극장을 떠나듯이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중년 여성 킬러라는 소재에 신선함을 느낀 나에게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창작물에서 마저 중년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성은 나이를 불문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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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파과(破果):흠집이 난 과실 *파과지년(破果之年):여자나이 16세. 가장 빛나는 시절 책을 다 읽고나서 책표지를 넓게 펼쳐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팔 하나가 보였다. 왠지 섬뜩했던 느낌은 손끝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정체모를 액체를 본 후부터 조금 더 싸늘해졌다. 담배를 물고 나를 주시하고 있는 저 여인은 젊은 시절의 조각이었을까? 핑크빛 표지를 보니 분홍에서 하양까지 바림이 이루어졌다고 표현된 수밀도가 떠올랐다. 잠깐 분노했고 통쾌하기도 했던 지하철 안에서의 사건부터 심상치 않았던 파과는, 청부살인업자인 65세 '조각(爪角)'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성 서사이다. 구병모 작가는, 영화로 치자면 범죄/스릴러/액션 장르였을 스토리와 너무나도 걸맞게, 냉소적인 문체와 적재적소에 자리잡은 범상치 않은 이음동의어(異音同意語)인 단어들로 호기심과 몰입감을 증폭시켰다. 작가님의 필력에 반해 '아가미'도 읽어보기로 했다.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처럼 전성기를 지나 이제 노년의 대열에 선 조각은, 몸놀림도 기억력도 퇴행 단계에 이른 킬러로 매우 독특하면서도 파격적인 설정이었고,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정환경 탓인지, 방역의 세계로 끌어들인 류의 탓인지 소설속의 그녀의 일생은 불에 타기 쉬운 건초처럼 위태로움과 동시에 아찔하게 비쳐졌다. 아무리 킬러본능이 살아있는 냉혈한이라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마음에 틈이 생기기 마련. 무뎌진 방역솜씨에 현직에서 물러나야 할 것 같은 두려움과 그동안 시선을 두지 않았던 방역대상자의 주변인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을 그녀는 늦게나마 갖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마음을 철저히 외면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무용을, 폐지를 싣고 가던 노인을, 다 바스러진 몸으로 강 박사의 딸을 지키려던 이유가 그동안 일부러 외면해온 증거가 아닐런지. 무용의 뜻밖의 죽음엔 눈물이 줄줄 흘렀다. 투우와의 악연은 안타까웠다. 투우는 조각이 나약해지는 순간을 기다렸던 걸까. 꼭 살인의 대가를 살인으로 치러야만 했을까. 결국 칼부림과 총격으로 선혈이 낭자했던 아수라장에서, 수십 년 동안 벼르던 복수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의 연이 끊어지는 순간에 알 수 없는 인지상정의 정(情)이 묻어났다. 책을 거의 다 읽어갈 즈음 간절히 바랐다. 조각이 끝까지 살아남기를, 용서받을 수 없는 인생이지만 콩알만큼이라도 행복해 보기를... 이미 만고풍설을 겪은 그녀가 지향하던 삶은 절대 이런 게 아니었을 테지만, 눈을 감으면 자연히 떠오를 거친 인생의 하일라이트를 깊숙히 삼키며 때를 한참 넘긴 이팔청춘을 살아보기로 한다.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조각난 자신의 손톱에 꽃을 얹고는, 그렇게라도 빛나다 사라질 순간을 누려본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사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 내린다. 채소 칸 벽에 붙어 있던 걸 떼어내느라 살짝 악력을 높였더니 그렇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건져 봉지에 담고, 그러고도 벽에 단단히 들러붙은 살점들을 떼어내기 위해 손톱으로 긁는다. 그것들은 냉장고 안에 핀 성에꽃에 미련이라도 남은 듯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쯤 지나 그녀 어깨가 흔들리고 신음이 새어 나오자 무용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짖기 시작한다. (225쪽)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342쪽)
http://https://www.instagram.com/p/CHzIDUwFR6N/?igshid=1uwisterz2vjd |
| 표지만 보고 끌려서 읽게 되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히는, 읽다보면 얼마 남지 않아 아까워지는 책입니다. 성인지 감수성 문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요즘이라 불편함을 안겨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치만 주인공이 새롭게 느껴가는 감정과 복잡한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가슴이 뜨끈해지는 이야기입니다. 파과라는 제목까지도 남은 울림을 이어가네요ㅎ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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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와 아가미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으로 여러번 재탕까지 했던 작품이었다. 요즘 파과가 한창 인기길래 읽어봤는데 구병모 작가님 특유의 음울하면서 심오한 분위기가 있는 소설인데다가 액션까지 있어서 상당히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주인공인 조각은 킬러이다. 조각은 제대로된 보호자나 가족 없이 지내왔다. 나이가 든 조각은 퇴물 취급을 받으면서도 청부 살인, 병역 작업을 놓지 못한다. 조각은 노년기에 접어들며 그동안은 잊고 살았던, 억눌렀던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기폭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강박사이다. 그러나 강박사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을 안 투우가 강박사의 딸을 납치하고, 조각과 투우는 격렬한 싸움을 하게 된다. 조각은 살아남아 네일 아트를 받으며 그렇게 살아간다. 다소 어려운 단어가 많아 약간 몰입을 방해했다. 유난히 긴 문장이 특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몰라도 집중할 수 있는게 구병모 작가님 소설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하다. 비유적인 인물의 이름이나 제목이 참 인상 깊었다. 제목인 파과는 1)흠집이 난 과실 2)여자의 나이 16세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왜 작가님이 제목을 파과로 지었는지 참 궁금하다.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니 작가님은 냉장고 청소를 하며 썩은 과일 한 알을 발견하고 언젠가 나도 이렇게 되겠구나는 사실을 인식하고 영감을 얻으셨다고 한다. 파과의 뜻 둘 다 담으려고 하셨고 무엇이 중점인지는 독자들에게 맡긴다고 하셨다. 나는 첫번째 의미에 집중하고 싶다. 언젠가는 찬란함이 사라지고 썩어가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빛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일상과 사랑이 아닐까. 조각이 비록 윤리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조각이 평생 방역업에 종사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행한것이었다. 조각은 누구나 누려야 할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각이 앞으로 살아갈 일상은 곧 사라지겠지만 아직은 찬란할 것이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쯔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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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에 상품권도 몇개 있고, 이제 카드에 남은 책도 없고, 게다가 빨간 책방에서 최근에 이야기했기에 이 책 <파과>를 구입했다. 빨간 책방에서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YES24에서 좀 찾아봤는데 별로 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빨책을 들어보니 호감이 생겼다. 책은 빨책에서 말한 것들이 그대로 나오지만 식상하지 않고 끝까지 긴장과 몰입을 유지하게 해준다. 옛날 단어들, 끊이지 않는 긴 문장, 반복되는 도치문은 이 책의 특징인 듯. 빨책에서도 이 책이 영화로 나온다면 누가 어울릴까란 이야기를 했는데, 조각역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배우보다는 강경화 장관이 계속 떠오르더라. (빨책에선 윤여정씨였다) 이미지에서 느껴졌던 포스때문이었을까? 마지막 부분의 액션은 좀 과장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래도 그냥 읽지않고 넘어갔다면 꽤 아쉬웠을 책이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숨은 보석의 발견이랄까? 빨간책방 1부: https://youtu.be/_pxjDMR0Xek 2부: https://youtu.be/kiPHaRqDZS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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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오빠에게에 수록된 하르피아인의 밤을 읽고 구병모 작가의 작품에 푹 빠져서 구매하게 되었다. 여성청부살인자라는 설정에 위 작품과 같은 몰아치는 전개와 긴장감을 기대했으나, 개인적으로 장편이라 그런지 그렇게 흥미롭지는 못했다. 몇 번 시도했지만 완독을 포기했고 지금은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다. 언젠가는 생각나 다시 읽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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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출간된 구병모 작가님의 파과를 읽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대체 왜 리커버를.. 하셨나요. 가격도 오르고 커버도 너무 마음에 안들지만..ㅠ 꼭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했습니다. 진짜 표지 제취향아니라 계속 거슬려요. 일단 구병모 작가님 파과는 워낙 유명하고, 또 아직 절반정도 읽었지만 문체가 너무 제 취향인데다가 소재가 정말 너무나 좋았습니다. 소설의 한 구절구절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정말 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