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Think 1. 고전의 해석이 힘들다면 '이 책'을 주목해 보세요
"Think 1. 고전의 해석이 힘들다면 '이 책'을 주목해 보세요" 내용보기
<서울대선정 인문고전 60권>을 일찌감치 눈여겨 보고 있던 참에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서울대선정 문학고전 43권>이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눈독만 들여놓고 있다가 새해 들어서 드뎌 읽기 시작했다. 도합 100권이 훌쩍 넘지만 올해를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해보련다.     일찍이 '7차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교과과목 간 '통합'이 주요관심을 쏟을 때쯤, '논술'이
"Think 1. 고전의 해석이 힘들다면 '이 책'을 주목해 보세요" 내용보기

  <서울대선정 인문고전 60권>을 일찌감치 눈여겨 보고 있던 참에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서울대선정 문학고전 43권>이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눈독만 들여놓고 있다가 새해 들어서 드뎌 읽기 시작했다. 도합 100권이 훌쩍 넘지만 올해를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해보련다.

 

  일찍이 '7차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교과과목 간 '통합'이 주요관심을 쏟을 때쯤, '논술'이라는 것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비록 수능시험에는 출제되지 않지만, '정시'와 '수시' 모집에서 논술이 입시결과를 좌지우지했었기에 '독서'가 학생과 학부모 들 사이에서 크게 관심을 모았었다. 허나 막상 책을 읽으려니,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어서 모두가 오리무중이던 때에, 서울대에서 마침맞게 '서울대선정 필독서 목록'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발표한 뒤에 '논란'이 크게 일었다. 왜냐면 그 '목록'에 이름을 올린 도서들이 하나같이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들이 읽기에 너무나 부담이 되는 '어려운 책'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읽기에도 난감하고 막막하고, '두껍기' 그지 없는 책들을 학부모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사모으기 붐이 벌어졌지만, 변변한 '주석서'나 '해설집'도 없이 그 어려운 책을 읽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한 가닥 한다는 '논술선생님'들조차 난색을 표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 <고전>을 두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알맞은 수준으로 '낮추어'서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일이 만만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사자인 학생들은 '모범답안'을 달달 외우는 것에 길들여져 있던 탓에 용감하게(?) '자유로운 해석'을 시도해볼 생각도 없을 정도로 막연하고 막막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대에서는 부랴부랴 '필독서'도 아니고, '정시, 수시'에도 출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놓고, 도서목록은 그저 '입학하고 난 뒤'에 틈틈이 읽으라는 발표했을 뿐이고, 서울대학생이 '문제 푸는 기계'로 전락하지 않도록 권장한 도서목록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이 화재가 되면서 '서울대생'도 대학생으로서 상식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서둘러 발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암튼, 지적교양을 쌓기 위해서는 '이 정도' 책은 읽고 나름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을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투로 '도서목록'이 발표되었으니 알아서들 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자 발빠른 '출판시장'에서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서울대선정...>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물론, 적절한 '주석'과 '해석'을 달고서 말이다. 자, 문제는 지금부터다. 과연 이 책들에 실린 '주석'과 '해석'이 모범답안이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석학'들이 풀어놓은 해답이니 충분한 자격을 갖춘 믿을만한 정답이 아닐 턱이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 '정답'만을 달달 외우라고 주석과 해석을 달아놓은 것일까? 아니, 좀더 심층적으로 물음을 바꾸어서 '<고전>에 정답이 있는걸까?'라고 물으면 어떨까? 자신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고전>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수많은 '해석'만 있을 뿐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해석이 있기에 그것을 '정답'이라고 말할 순 있겠지만, 그 해석도 시대가 바뀌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새로운 해석'이 기존의 해석을 뒤엎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 '새로운 해석'조차 '또 다른 해석'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고뇌하고 사색하는 일만이 유일한 정답인 셈이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이 <고전>을 처음 접할 땐 '길라잡이'가 필요한 법이다. 아무리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위대한 존재라 하더라도 처음 시작은 '모방'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베끼고 따라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만의 가치관'을 갖춰나간 뒤에야 비로소 '독특한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을 위한 '주석서'와 '해설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본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더구나 '어려운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화형식'으로 출간되어 읽기에 부담은 줄이고, 이해는 머리에 쏙쏙 되는 훌륭한 '길라잡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단순암기'에서 그치고 만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렇기에 '독서토론'이란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길라잡이로 대충 감을 잡았으니 '자기만의 안목'을 발휘해서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 그렇게 경험을 쌓고 난 뒤에는 '원작'을 다시 읽어야만 제대로 된 독서가 될 것이다. 왜냐면 '가치관'이란 물길처럼 한 번 흘러간 자국을 따라 계속 흘러가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이를 '수로화'라고 표현하는데, 만화책만 즐겨 읽다보면 이런 경향을 쉽게 띠게 된다. 만화책에는 '인물의 표정'이 획일화 되어 있고, '배경묘사'에도 이미 만화가의 경향이 반영되었기에 '독자의 상상력'을 크게 위축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만화책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가치관 형성'이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만화책>만 너무 즐겨 읽다보면 '수로화의 문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수 있으니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정반대의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다. 청소년들이 '원작'을 읽다보면 '시대배경'도 '공간배경'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경험'이나 '이해'가 부족하기에 생기는 문제점이다. 이럴 때엔 '상상과 경험의 씨앗'이 필요한데, <만화책>이 그 씨앗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책>을 고를 때에는 '만화가의 뛰어난 실력'을 고려해야만 한다. 뛰어난 만화가는 '확실하고 탁월한 고증'을 바탕으로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려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 <서울대선정 문학고전>이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듯 싶어 권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첫 번째 책이 <주홍글자>다. 이 책을 벌써 몇 번에 걸쳐 리뷰를 올리고 있는데, 마침맞게 이 책이 첫 번째 책이라 개인적으론 반갑기 그지 없으면서 '또 다른 리뷰'를 써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고전의 장점은 읽을 때마나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기에 간략히 써내려가보려 한다. 먼저 책 제목은 <주홍글씨>인데, 근래에는 '글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가 많다. 왜냐면 '글씨'는 모양을 나타내고, '글자'는 문자, 그 자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글자'와 '글씨'는 서로 '비슷한 말'인 관계로 무엇으로 쓰든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론 어릴 적부터 불러서 익숙한 '주홍글씨'가 편하긴 하다.

 

  암튼, 이 책의 주제는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적인 해석이 중론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지었다는 '원죄'를 중하게 다루기 때문에, 청교도들이 이주해서 세운 초기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책을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주제로 다루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속 주인공들도 하나같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인 헤스터 프린은 '간통'이라는 죄를 짓고, '죄값'을 치르기 위해 가슴에 A라는 글자를 화려하게 수놓고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깊이 반성을 한다. 아서 딤스데일도 차마 '스스로' 죄인이라 밝히지는 못했지만 가슴에 A라는 글자를 '직접' 새겨놓고 저지른 죄에 대한 죄의식을 털어버리기 위해 깊은 고뇌에 빠져버린다. 한편, 칠링워스라는 헤스터의 남편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식'도 없이 오로지 '복수심'만을 불태우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진정한 구원을 받은 이는 헤스터 뿐이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수치스러워하기보다 '당연히 받아야 할 죄값'으로 여겨, 그 죄값을 다할 때까지 반성과 선행을 꾸준히 행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죄값의 끝' 따위는 없다는 것을 헤스터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그녀의 반성과 선행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헤스터는 '죄 없이 벌만 받은 듯' 살아가는 당시의 여성들의 삶에 당당히 맞서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여성들이 죄인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까닭도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탓이라며, 불우한 이웃을 도우면서도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이룬, 다시 말해, 남편 없이도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에 성공을 한 자신의 '존재감'을 널리 보여줌으로써 확고한 '여권신장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딤스데일은 '죄의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자기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는 것으로 스스로 벌을 받고 있지만, '구원'을 받지는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대중들 앞에서 '고백'하지만, 목사라는 '사회적 지위'에 가려져 죄의 고백이 오히려 '사회지도층의 겸양'으로 비춰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딤스데일은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스스로 '위선자'라는 죄의식까지 더해져서 더욱더 고통스런 나날을 보낼 뿐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딤스데일은 헤스터가 부러울 따름이다. 일찌감치 '죄값'을 치룬 덕분에 치욕스런 삶을 살고 있지만 '죄의식'은 한층 가벼워져서 아낌없이 선행을 하며 '구원의 길'에 한발짝 더 나아간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죄악'을 밝힐 기회도 잃어버리고, 따라서 '구원'도 받지 못하는 괴로움에 영혼이 죽어감을 깨닫게 된다. 비록 육신은 멀쩡해서 의사도 치료할 것이 없을 지경이지만 말이다.

 

  '그 의사', 다름 아닌 칠링워스는 스스로 '죄의식'을 깨닫고 '구원의 길'을 가기는커녕 '복수심'만 불태우며 헤스터와 딤스데일의 '죄값'을 들춰내며 괴롭히는 '악마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다. 그로 인해 칠링워스의 외모는 나날이 추해질 뿐이다. 결국 복수의 대상이었던 딤스데일이 만천하에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밝히고 죽은 뒤에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다. 딤스데일은 죽음의 문턱에서 '죄의 고백'을 함으로써 영혼의 구원을 받게 되었지만, 칠링워스는 자기 스스로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죄의식'도 없고, '반성'도 하지 않아 '구원'도 받지 못하고 만다.

 

  한편, 헤스터의 딸, 펄은 '살아있는 주홍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펄은 헤스터의 가슴에 수놓인 A에 집착하는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하면서 헤스터를 당혹스럽게 만들곤 하지만, 그로 인해 헤스터는 '죄값'을 잊어버리는 해이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고, '죄의식'에 대한 반성 또한 철저히 하는 '구원의 지름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헤스터가 자신의 딸을 '구차한 생의 혹'으로 여겼다면 절대로 갈 수 없었던 길이다. 사랑스런 딸이 내뱉는 '날카로운 비수' 같은 말과 행동으로 헤스터는 한시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반성을 늦출 수 없었던 셈이다. 심지어 헤스터가 딤스데일과 '새 출발'을 약속하며 떼어낸 A 글자를 다시 주워와 엄마의 가슴에 다시 달게 만드는 장면은 '펄의 역할'이 주홍글자였음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적인 관념이 물씬 드러난 <주홍글자>가 '종교적인 주제'를 뛰어넘어 인류 모두의 '문제의식'을 다루는 고전으로 분류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건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주제가 우리 사회의 '윤리도덕의 문제'로 읽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그때마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침잠해버리고 만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잘못과 실수를 '바로 잡을 방법'을 제시하고, 오히려 그 방법을 통해 더 큰 꿈을 이루는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아니, 인간은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고, 시련을 극복한 사람만이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설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나 죄를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 죄값을 당당히 치루고 '죄의식의 극복'으로 더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바로 이런 깨달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이 책, <주홍글자>가 고전이라 불리는 것일테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23.01.24.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주홍글씨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주홍글씨" 내용보기
강림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이라는 이름에서 신뢰를 느꼈고, 학창 시절에 언뜻 스친 추억이 있는 작품이기도 해서 눈길이 갔다. 독서에 있어서 내가 고마움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요즘 건망증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읽은 책도 기억이 흐릿한데, 수십 년 전에 읽은 책을 어찌 기억할 것인가. 새로운 책을 만나는 마음으로 펼친 책을 읽으면서 무엇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주홍글씨" 내용보기


 

강림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이라는 이름에서 신뢰를 느꼈고, 학창 시절에 언뜻 스친 추억이 있는 작품이기도 해서 눈길이 갔다. 독서에 있어서 내가 고마움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요즘 건망증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읽은 책도 기억이 흐릿한데, 수십 년 전에 읽은 책을 어찌 기억할 것인가. 새로운 책을 만나는 마음으로 펼친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세계 명작에 대한 나의 착각을 확인했다.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은 초등학교 때 「큰 바위 얼굴」로 처음 만났다. 그 작품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으므로 교단에 근무하던 나는 거의 매년 그의 작품을 읽었다. 대표작인 『주홍 글씨』는 암기하다시피 했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주홍 글씨』를 읽었는데, 오래되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었다고 착각한 이유가 무엇일까? 고교시절에 간추린 세계명작을 읽었다. 100여 편의 작품들을 한 권에 압축한 책인데, 『주홍 글씨』 줄거리는 거기서 알게 된 듯하다. 긴 이야기를 2~3장으로 압축했으니 그것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내가 완독한 세계명작은 그리 많지 않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주홍 글씨』처럼 줄거리만 소개한 것으로 읽었거나, 초등학생용 축소판으로 읽은 것이 대부분이다. 완역본을 읽은 것은 10권이나 될까 싶다. 내가 읽은 『삼총사』, 『보물섬』, 『소공자』, 『전쟁과 평화』 등의 명작은 원작이 아니라 어린이용 축소판이었다. 그중에는 『부활』, 『소공녀』처럼 원작을 읽은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어린이용 축소판에서 멈춰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00여 권의 세계명작을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민망한 마음이다.

 

둘째, 역사와 허구의 절묘한 조합에 감탄했다.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나는 부정한 행위를 한 사람이 A라고 쓴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다닌다는 행위가 허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실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아메리카에 이주한 초기의 청교도들은 그런 정서가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인 헤스터와 딤즈데일 목사, 반동인물인 칠링위스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벨링엄 총독, 윈스럽 총독, 윌슨 목사, 히빈스 부인 등은 미국 역사에서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홍명희의 명작 『임꺽정』에서 임꺽정의 의형제들은 허구이지만, 주인공 임꺽정과 그를 배신한 서림, 토포사 남치근 등이 실존 인물이니 독자로 하여금 사실감을 느끼게 한 것과 같은 효과라고 할까?

 

셋째,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인의 정서를 느꼈다. 미국인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인물이 왜 없겠는가? 미국은 이민이 나라이다. 세계 각국에서 잘 살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갖가지 인물이 많을 것이다. 고향에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도망쳐서 정착한 인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 이면에는 자유를 향한 개척 정신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인권을 존중하는 정신 등이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서를 잘 표현한 것이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

 

『큰바위얼굴』에서 초인을 기다리는 어니스트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어니스트를 알아본 시인, 『주홍글씨』에서 투철한 신념의 헤스터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은 딤즈데일 목사 등이 추구한 정신이 그래도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정신의 주류가 되었기에 오늘의 미국이 되었을 것이다. 실례의 표현인지 모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큰바위얼굴』의 장군이나 정치가, 『주홍글씨』의 칠링위스와 같은 인물의 행태를 이어받은 미국인일 것이라고 느꼈다. 그런 인물이 주류가 되었을 때 미국은 세계의 우환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나는 학창 시절에 원작으로 이 작품을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이라면 초등학생도 몰입을 시킬 수 있을 듯하다. 지금의 아이들이 우리 세대보다 안목이 더 높은 면도 있겠지만, 책의 구성이 좋았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이 책을 만났다면 아마 바로 원작까지 찾아 읽었을 것이다. 특히 배민기 화백의 명작에 어울리는 품격 있는 그림이 좋았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y******3 2021.08.02.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 - 주홍 글씨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 - 주홍 글씨" 내용보기
17세기 미국은 청교주의라는 엄격한 종교적 도덕률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소설 [주홍 글씨]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금지된 사랑을 아픈 마음으로 섬세하게 그려 내고 있으며,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수작이다. [주홍 글씨]는 헤스터 프린이 처형대에 서서 처벌을 받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헤스터 프린이 어떻게 딤즈데일 목사와 불륜을 맺었는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 - 주홍 글씨" 내용보기



 17세기 미국은 청교주의라는 엄격한 종교적 도덕률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소설 [주홍 글씨]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금지된 사랑을 아픈 마음으로 섬세하게 그려 내고 있으며,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수작이다.


 [주홍 글씨]는 헤스터 프린이 처형대에 서서 처벌을 받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헤스터 프린이 어떻게 딤즈데일 목사와 불륜을 맺었는지가 아니라, 불륜을 저지른 후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감옥과 무덤이 상징하듯 원죄를 지닌 인간이 본질적으로 죄를 짓기 쉽다는 점과 죄로 인한 죽음이 어떤 사회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소설 속에서 여자는 용서 받지 못할 죄인으로 취급받고, 간통죄를 뜻하는 주홍 글씨 A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여자에게 주홍 글씨 A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지워지지 않는 낙인 같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여자는 외딴 곳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삯바느질로 근근이 살아간다. 반면에 아이의 생부는 남몰래 죄의식에 시달리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악마의 자식으로 여겨지는 아이는 유난히 엄마 가슴의 A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여자의 남편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복수를 꿈꾸는 남편은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아이의 생부에게 접근해 간다. 그는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 상대의 영혼을 조정하고 자멸 시키려 한다. 한편 여자는 꾸준히 선행을 베풀어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지만 마음속으로는 도피를 꿈꾼다. 하지만 아이의 생부가, 자신이 숨겨진 죄인이었음을 대중 앞에서 고백하고 만다.


 [주홍 글씨]는 17세기의 미국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헤스터가 사는 뉴잉글랜드 지방은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곳이다. 호손은 청교도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는 주인공 헤스터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보여 준다. 개인에게 자유를 무한정 허용한다면 사회의 혼란스러워지고, 반면에 사회 질서를 우선시하면 개인의 자유는 제약을 받게 된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 간에는 긴장과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다.


~~~~~~~~~~~~~~~~~~~~~~~~~~~~~~~~~~~~~~~~~


 낙인이란, 소유자를 표시하기 위해 가축 등에 쇠붙이를 불에 달궈 찍는 도장을 말한다. 예전에는 형벌로 죄인의 몸에 낙인을 찍어 죄인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범죄학 이론 중에 '낙인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일탈자라는 낙인을 찍게 되면 그 사람은 일탈 행동을 더 하게 되고 결국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낙인 이론에서 유래한 용어가 '낙인 효과'이다. 일단 일탈자로 규정되면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당사자는 점점 위축되어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그 낙인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된다.


 한편, 낙인 효과와 반대되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마음에 드는 여성이 없어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아로 조각했다.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 조각상을 그는 진짜 사람인 양 아끼고 보살폈고, 나중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마침 '사랑의 여신' 축제가 열리자 그는 그 조각상과 똑같은 여성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피그말리온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한 아프로디테는 기도를 들어주었고, 조각상이 살아 있는 인간으로 변하자 피그말리온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처럼, 어떤 일에 대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


 호손은 [주홍 글씨]를 소설이 아닌 로맨스라고 불렀다. 로맨스는 문학의 한 장르로서 낭만주의 문학의 전통에 속한다. 중세 기사들의 연애와 모험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공상적이고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지칭하는 용어로 변했고, 다시 몽상적인 소설을 가리키게 되었다. 호손에 따르면 소설은 평범한 일상 경험을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햇빛에 드러난 삶이 소재가 되는 반면에, 로맨스는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을 다루며 달빛에 드러난 모습이 그 소재가 된다. 즉, 로맨스는 소설에 비해 다소 공상적이고 상상적인 요소가 강한 장르라고 볼 수 있다.


 호손 스스로 [주홍 글씨]를 로맨스로 분류했듯이 이 작품에는 사람의 가슴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거나 하늘에 큼직한 글자가 나타나는 등 사실적 묘사를 추구하는 소설과 다른 대목들이 나온다. 또한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어휘들이 많이 등장하고, 가정법 문장이 많이 쓰이고 있는 것도 로맨스적 요소로 파악될 수 있다. 한편,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낭만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헤스터는 죄인이 아니다. 오히려 규범에 순응하지 않고 인간 본성에 기초한 자연법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지키려 한 낭만주의자로 여겨진다.


t**********3 2017.04.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