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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동네 언덕 꼭대기에는 남들은 좀처럼 찾지 못하는 자그마한 도서관이 있다. '판도라의 도서관'. 바그다드 카페 풍으로 솟아오른 도서관인데 주변의 숲과 안개로 인해 기묘하고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넘쳐난다. 책과는 담을 쌓은 나들이족이나 연인들, 연예인 가십으로 수다 떨길 좋아하는 치들은 결코 알아채지 못하는 비밀의 장소다. 그래, 보르헤스의 도서관처럼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그런 낭만과 광기의 공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판도라 도서관은 여성 전용 도서관이다. 금남의 공간이기에 책을 읽는 그미들의 모습이 한층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신이 판도라의 상자에 아무 것이나 집어 넣은 것이 아니둣, 판도라의 도서관에 소장된 책들도 그저 그런 책들이 아니라 어떤 엄중한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 그 원칙이란 문학과 예술에 열광한 여류작가들이 즐겨 읽었거나 그미들이 썼던 책들로만 구비한다는 점이다. 여성 작가들의 눈독을 받지 않은 책, 여성 독자가 단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고루한 책들은 판도라 도서관에서는 사절이다. 순종의 미덕을 가르치거나 종교적 영성을 강조하던 책들도 서가에 꽂혀 있지만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그런 볼온한 서적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결국 판도라의 도서관을 통치하는 것은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위험한 여자들이다.
판도라 도서관의 열람실은 모두 4개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걸출한 여류문인들이 독서와 토론을 즐기는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열람실마다 특별한 명칭은 없다. 하지만 그 곳을 즐겨 찾는 작가들의 연배에 따라 구분되곤 한다. 첫번째 열람실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대표적인 여류문인들이 출입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사포, 히파티아, 반소, 세이 쇼나곤 등이 책을 읽거나 쓰고 여성의 책읽기 문화사의 기원에 관해 대화를 나누곤 한다. 열람실 안에는 독서하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고 기나긴 장형 모양의 탁자 위로 "도서관에 있는 지식은 이 세상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라틴어 문구가 보인다. 이 열람실을 즐겨 찾는 이들에게 책읽기나 글쓰기는 모두 사치와 신분의 상징이었다. 그렇다. 책은 언제나 특별한 신분과 특권을 나타내거나, 신앙심, 사치, 미덕, 명상, 여가, 성격의 상징이기도 했다.
사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귀족 혈통이 아닌 여성들은 글을 배울 수가 없었고 책은 언제나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희귀품이었다고 말한다. 당시에 카리톤의 《카이레아스와 칼리로에》와 《다프니스와 클로에》 처럼 사랑과 모험을 다룬 로맨스 소설이 귀족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무라사키 시키부도 일본에서도 궁녀와 무녀들이 시와 글을 남긴 적이 있다고 밝히면서 시는 여성이 문학을 즐길 수 있는 적당한 형식이었지만 반면에 소설은 위험한 장르로 간주되었다고 부연한다. 과학과 진리에 헌신했던 삶을 살았던 히파티아는 여성의 자리는 가정이 아니라 진리의 실험실이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여성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히파티아는 학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과학의 역사가 동시에 성차별의 역사라는 점이라고 역설한다. 한나라 역사서를 집필하고 후한 황실 도서관에서 강의하면서 궁정 최고위층 여성들을 가르쳤던 반소도 대화에 가세한다. 반소는 자신이 지은 《여계》는 여성들에게 시댁이나 궁정에서 겪는 난관과 음모를 이기는 세련된 전략을 전수하는 책이니깐 여성들의 권익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두번째 열람실은 독일의 수녀원에서 지식을 지켜낸 힐데가르트 수녀와 진보적인 여권운동가 매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자주 찾는 공간이다. 세속의 여성 교육은 르네상스 때 시작되었지만, 오랫동안 여전히 귀족만 접근할 수 있는 호사스러운 혜택으로 여겨졌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수녀원에서 귀족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수녀원은 종교라는 울타리 내에서 그나마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여성독자는 주로 부유한 귀족계층이었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종교에 한정이 되었기에 그미들이 읽는 양서라곤 성경이 주를 이루었으나 독서는 여전히 고상한 취미나 교양의 대상이었다. 당시 여성의 독서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는 과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고 여성의 독서가 고상하고 특별한 것으로 다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매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이 열람실을 자주 찾는 이유는 무척이나 계몽적이다. 종교적인 귀족교육으로 세뇌당한 이들을 깨우치고 이들과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로서 그미는 중요한 것은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 라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지만 여권신장을 위해 분투한 그미는 여성들이 보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는데 가령 루소의 교육론을 반박하는 《여성의 권리옹호》라는 책이 바로 그러한 증거다.
세번째 열람실은 '여성 문학 살롱'의 방이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여성 지식인들이 출몰하는 방이다. 방의 구조나 디자인 모두 프랑스의 고급 문학살롱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 이 열람실을 찾은 이들은 에드워드 번 존스의 그림 <신록이 우거진 여름>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낭송자가 읽어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방 정면에 걸린 필리프 반 브르의 <여성 화가들의 화실>이란 그림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마치 이 열람실의 분위기를 그대로 화폭에 옮겨놓은 듯 고혹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마침 앤젤라 버뎃 코우츠 남작부인의 주선으로 귀빈 한 분이 문학살롱에 자전적 이야기 강연을 위해 참석했는데 다름아니라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의 미국 여성 시인 필리스 위틀리다. 그미는 참석자들에게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이라는 억압구조로 인하여 후원자를 찾지 못한 나머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 생을 마친 자신의 기구한 애가를 소울이 강한 음성으로 들려주었고 모두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지막 열람실은 일명 '현대 문학방'이라고 불린다. 20세기 여성독자들도 즐겨 읽는 책의 저자인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 등이 밀크티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가장 트렌디한 공간이다. 세 명의 브론테 자매는 이 열람실에 들어온 신여성들에게 당시 자신들을 겨냥한 일종의 마녀사냥식 악평을 담담하게 들려주곤 한다. 가부장적인 문학평론가들이 그미들이 쓴 작품들의 언어가 거칠고 공격적이며 선정적이라는 혹평을 쏟아내곤 했기 때문이다. 열람실 안 북서편에는 20세기 인물화의 거장인 발튀스의 그림 <세 자매>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책 읽는 누드 여인>이 각각 걸려 있고, 커다란 원형탁자 위로 "문자를 해독하고 책을 읽는 행위는 개인이 누리는 자유이다."라는 표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책읽기는 대표적인 여가활동이 되었고, 소수엘리트의 특권이 아니라 대중적인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계층을 구분하지 않는 판도라들의 위험한 독서와 글쓰기는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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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종영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세종과 밀본의 본원 정기준이 만나 백성과 글의 관계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거기서 세종이 글이 백성에게 사대부가 가진 능력을 나눠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사대부들을 스스로 견제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창제가 가진 긍정적인 효과를 얘기하자 정기준은 곧바로 오히려 이렇게 반문한다. "글로 인해 백성들이 가지게 된 거대한 욕망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이다.
이 장면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게 글이 단순히 글이 아님을 깊이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세종과 정기준은 모두 글이 어떤 무형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무릇 당시 조선의 권력이란 애오라지 글을 아는 것에 있었으니 말이다. 글을 앎이 곧 힘을 얻는 원천이었다. 하지만 글이 주는 힘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단순한 힘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므로 더이상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고유의 자신을 가지게 만드는 힘도 있었다. 그것이 세종이 정말 백성에게 주려했었던 '주체화'의 힘이었다. 글은 그런 힘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바람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게 됨으로써 더이상 사대부의 농간에 농락당하지 않도록 만드는 힘이 말이다. 하지만 정작 정기준이 우려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은 곧 자신의 욕망을 알게 되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글을 모를 땐 자신도 모르고 욕망 역시도 그 언어를 얻지 못해 내면 어딘가에서 그저 잠들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글을 알게되어 자신을 알게 되면 욕망 또한 그 언어를 얻어 잃어버린 얼굴을 되찾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기준은 그렇게 드러날 욕망으로 벌개진 무수한 얼굴들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자아를 찾게 되면 반드시 그림자처럼 따라올 것이기에 그의 등골은 더 서늘해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타계한 폴란드의 영화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말 그대로였다. 그는 폴란드가 자유화되자 덩달아 범죄마저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을 보며 이렇게 술회했다고 한다. "자유와 동시에 죄악까지 들어왔다."고. 정기준은 바로 이와 같은 사태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글을 통해 사슬에서 놓여남의 이면엔 그대로 유혹에 노출됨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기준의 이 말이 사실은 그토록 오랜 세월 여성들에게 책 읽기를 금지시켜온 본래 까닭은 아니었을까를 크리스티아네 인만의 '판도라의 도서관'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다.
'판도라의 도서관'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책 읽기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려내는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 않다. 근대에 들어와서까지도 여성들은 제 마음껏 책 읽기가 어려웠을 정도로 내내 남성중심의 사회로부터 책 읽기에 대해 철저하게 억압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성들이 종속적인 위치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책읽기마저 그토록 속박 받아왔었음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남성들은 왜 그토록 여성들의 책 읽기에 대해 억압했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세종과 정기준이 바라봤던 글의 힘 때문이었다. 즉 정기준이 말했던 욕망의 부추김이요 세종이 자립적 주체로 만드는 힘 그 때문이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책을 읽고 스스로 사고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작가 플로베르가 소설 '보봐리 부인'에서 그렸던 대로, 보봐리 부인이 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실현시키려 하였듯이 그렇게 여성들이 책을 통해 남성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려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비단 서양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에게 글이란 철저히 금기시되는 것이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의 여주인공 연우는 당시 조선에서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고 그렇게 글을 안다고 해도 오히려 그 때문에 모진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허난설헌이다. 그녀는 지금도 중국과 일본에서 그녀의 시를 흠모하고 연구하는 모임까지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문재였지만 27년이란 그리 길지 않은 생애를 고통과 고독 속에서 보내다 끝내야 했는데 그렇게 만들었던 주된 이유가 바로 그녀가 글을 읽고 시를 썼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조선 당대의 가장 진보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을 연암 박지원마저도 아녀자에게 시를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했을 정도이니 우리나라도 서양만큼이나 여성들에게 책과 글을 허락하지 않은 나라였던 것이다. ![]()
크리스티아네 인만은 그런 슬픈 역사를 담는다. 여성들이 그 억압과 속박 속에서 어떻게 지금처럼 자유롭게 되었는지를 책 읽기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러니까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는 여성을 그린 그림들의 역사를 통해서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크리스티아네 인만의 책을 읽으며 새삼 글이 단순히 글이 아님을 깨닫기도 하지만 그림 역시도 단순히 그림만은 아님 또한 깨닫게 된다. 사실 그 전에 우리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역사적 과정을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일까? 말해지는 모든 그림이 그런 의도로 그려졌을 리도 없을텐데...'하고 말이다. 그래서 크리스티아네 인만은 말해준다. 그림은 사실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가치관, 삶의 방식이 하나로 집약된 공간이라고 말이다. 즉 그림은 단순히 하나의 현상 혹은 대상만을 도려낸 존재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서로 조응하는 가운데 그 시대의 분위기 또는 그 시대의 핵심이 조밀하게 들어간 하나의 응축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글 보다 그 그림들을 통해 훨씬 더 생생하게 역사적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책 '판도라의 도서관'은 그러한 크리스티아네 인만의 생각이 과연 옳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잠깐 여기서 책이 보여주는 '책 읽는 여성의 그림'에 반영된 여성 자아의 확장의 역사를 간단하게 소개해보자면 먼저 첫걸음이라고 소개된 고대 문명과 중세에 이르기까지는 책 읽는 여성의 그림속에 실제 여성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로 나타나는 책을 읽는 여성들은 하나의 모범이 될만한 신화나 성경상의 중요한 인물들 뿐이다. 물론 그 여성들이 보는 책들도 대부분 종교서적이다. 그러니까 이 당시의 책 읽는 여자의 그림들은 실제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성들에게 어떤 특화된 규범을 전파하기 위해 그려졌다. 여성들에게 신앙과 도덕심을 고취시키는 그런 규범들 말이다. 또한 그 규범들은 그대로 남성에게 여성을 더욱 종속시키는 규범들이기도 했다. 때문에 포즈들 역시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듯 살짝 옆으로 돌려져 있다. 그렇게 여기서의 책이란 여성들 스스로 더욱 더 남성 중심의 가치관을 수용하는 하나의 매개였고 순종의 상징이었다. 사실 이것은 그대로 당시의 여성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세에 있어 여성들의 책 읽기는 더욱 더 가혹해져 여성들은 수녀원이 아니고서는 책을 읽을 기회조차 없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이야기 속의 여성들이 아니라 실제 여성들이 책 읽는 그림이 전면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16세기였다. 이 책은 16세기와 18세기까지 별도의 한 장을 할애하여 경건과 사치로 그림들을 살펴준다. 이 장의 제목이 경건과 사치인 것은 단적으로 시대에 따라 그 주가 되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16세기에 지배적이었던 경건적 분위기는 18세기에 이르러 사치스럽고 화려한 분위기로 변했다.
대표적으로 여기 프랑수아 부세가 그린 마담 드 퐁파두르의 초상화 처럼 말이다.
그 중간에 르네상스가 있었음을 상기해 본다면 이것은 그대로 종교적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이 좀 더 자유로워진 것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여성의 자아 역시도 보다 자유로워지고 개방되어졌다. 16세기의 그림들을 주로 지배했던 성경과 기도서들을 대신하여 18세기에는 미켈란젤로의 글이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이나 뉴턴의 이론 같은 학문적인 글까지 나타나게 된다. 당시는 살롱 문화가 지배적이었고 거기서 여성들은 새로나온 책이나 사상들을 자유럽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책도 다양해졌으나 그래도 아직 여성들에게 책 읽기란 자신의 자아를 정립하거나 개인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과 관계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그녀들의 신분을 드러내는 장치일 뿐이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신흥 부르조아지들이 서서히 주류가 됨으로써 교양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주된 증표로 삼았기 때문에 그 신분의 여성들을 그리는 데 있어 책이 들어간 것일 뿐이었다. 16세기의 개인의 도덕성, 신앙을 드러내는 책은 이제 그렇게 단순히 신분을 드러내는 도구로 바뀌었다. 따라서 18세기의 그림들에서 책을 읽는 모습은 그리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놓여져 있거나 위의 그림 처럼 들려져 있을 뿐이다.
이러한 책 읽기가 근본적으로 변화를 겪은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책은 '여성 책을 접하다'라는 제목으로 19세기의 책 읽는 여성의 그림들을 통하여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말해준다. 대표적으로 존 래버리의 오러스 양과 빨간 책이라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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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부세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19세기의 그림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그녀들이 책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몰입해서 말이다. 이렇게 19세기의 책 읽는 여성들의 그림은 책에 푹 빠져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들의 몰입은 너무도 상당해서 바깥의 세상이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나 윈슬로 호머의 '새 소설'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게 그녀들은 남성 중심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책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한다. 여기에 이르러 그녀들의 책 읽기는 혼자만의 세계, 즉 자아의 발견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들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책을 읽는다. 게다가 18세기엔 그저 신분을 나타내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던 책은 이제 그것을 너머 계급을 초월하여 자아를 발견하는 매개체마저 된다.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의 '하녀'라는 그림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은 이제 그 어디에 있든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스스로의 세계로 걸어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세종이 말했던 그리고 남성중심의 사회가 두려워했었던 그녀 자신만의 주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그녀들은 남성의 시선에 응답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이 원하는 곳을 바라볼 뿐이다. 책 읽기는 더이상 자신을 드러내는 특이한 경험이 아니라 어디서나 아무렇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이 되었다. 이것은 그대로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가치관에서 해방되어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것의 반증이었다.
그렇게 20세기가 오고 이제 여성들은 남성들만큼이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다. 20세기의 책 읽는 여성들의 그림은 그 변화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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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튀스의 '세 자매'가 대표적이다. 일상의 한 단면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듯한 이 그림에서 세 여성들은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으며 자유분방하다. 마치 그녀들을 얽매일 더 이상의 굴레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그렇게 20세기의 책 읽는 여성들의 그림은 포즈도 옷 차림도 더 이상 아무런 경계가 없다. 아무데서나 특별한 이유 없이 읽을 수 있게 된 책 만큼이나 그녀들 역시도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금은 숨이 가빴을지도 모르겠지만 크리스티아네 인만이 '판도라의 도서관'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내 개인의 느낌을 바탕삼아 간략하게 말해 보았다. 너무도 간략해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앞에서 말했던 그림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글을 통해서 보는 것 이상으로 역사적 변화를 잘 목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은 어느정도 입증되었으리라 믿는다.(제발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아마도 과거의 사건이 그 과거에서의 어떤 의미를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크리스티아네 인만이 현재 우리에게 '판도라의 도서관'을 통하여 새삼 여성들의 책 읽기 역사를 펼쳐 보이는 것도 단순히 그 과거의 행적만을 밝혀두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크리스티아네 인만을 따라다니며 이 글 서두에 말했던 대로 책이 주는 힘, 보다 근본적으로는 글이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여성들이 저 해방된 모습을 되찾아 오는 것이 가능했던 건 무엇보다 내내 여성들이 책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생각과 욕망으로 스스로 세계를 구현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란 걸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크리스티아네 인만은 왜 그런 걸 느끼게 해 주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이 책 읽기를 계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독서란 것이 단순히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들 자신에게 어떠한 힘 또한 주는지 똑똑히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마치 그 옛날의 여성들 처럼 스스로 세상으로 부터 어떤 속박과 억압을 느낀다면 스스로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책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하듯이.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그림이 있다.
바로 필리프 반 브르라는 여성 화가의 '여성 화가들의 화실'이란 그림이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반 브르는 이 그림의 중앙에 서 있는 여자에게 헤라클레스의 형상을 취하게 함으로써 완벽한 남성성에 대비와 그 대안처럼 완벽한 여성성을 가져온다. 이것은 한 마디로 남성 질서의 전복이며 그래서 여성 화가들만이 있는 화실은 그녀들만의 온전한 유토피아가 된다. 그 헤라클레스의 형상을 한 여성 아래 한 가운데서 한 여성이 글을 읽고 있다. 아마도 반 브르는 그 중앙에 또한 글 읽는 여성을 배치함으로써 이러한 유토피아를 완성하는데 무엇보다 글이야 말로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책이 가진 힘의 궁극적 효과이지 않을까?
크리스티아네 인만의 책을 읽으며 여성들의 책 읽기에 대한 역사 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시금 책 읽기의 힘과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내겐 또 하나의 커다란 수확이었다. 글이 주는 자유의 힘과 해방의 힘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느껴졌던 하나의 문장을 마치 방점을 찍듯 다시 확인해본다. '책이 바로 유토피아'라고... 크리스티아네 인만을 통해 들려온 이 말의 울림은 아마도 책을 읽는 앞으로도 내내 메아리처럼 들려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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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도서관>
처음 이 책을 발견한 것은 친구를 기다리면서 서점을 어슬렁거렸을 때였다. 깔끔한 흰 바탕에 마치 데칼코마니를 해 놓은 듯 한 표지에 이끌려 집어 들었던 책. 그때 까지만 해도 이 책이 어떠한 책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부제인 ‘여성과 책의 문화사’를 보고 ‘여성’과 ‘책’이란 키워드만 잡아냈을 뿐. 그리고 컨텐츠를 훑어보니 다양한 명화들이 담겨있었다. 그것도 모두 ‘책을 읽고 있는 여성‘이 담긴 명화들이었다.
평소 예술서적을 즐겨보던 터라 일단 명화에서 마음이 솔깃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그림의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 명화나 모아놓은 모음집이 아니라 오로지 ‘책을 읽고 있는 여성’만을 모아놓은 주제가 명확한 책이라는 점. 그만큼 저자가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료조사와 정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작은 오귀스트 툴무쉬의 <서재에서>라는 동판화로 시작된다. 네 명의 여인 중 한 명은 망을 보고 있고, 한 명은 책을 찾고 있으며, 나머지 두 명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겠지만, 당시의 여성들에게 ‘책’은 ‘금단의 열매’와도 같았다. 먹어서는 안 된다는 선악과. 그리고 여성은 읽으면 안 된다는 책. 이 둘의 성격은 비슷하다. 금지하는 누군가가 있고, 그 덕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자꾸만 손에 쥐고 싶어지는 심리가 있다.
결국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말았다. 그리고 여성은 책을 손에 쥐었다. 그것이 불과 계몽주의가 시작된 18세기 후반의 일이다. 년도로 치자면 대략 200년이 조금 넘은 기간.
저자는 문명의 요람부터 20세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해놓았다.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기록된 작가인 수메르의 공주 엔헨두안나 이야기를 시작으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히파티아, 반소, 세이 쇼나곤, 무라사키 시키부, 힐데가르트, 사포 등등 책을 읽을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지적 권리를 찾으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나마 그들이 통치자의 딸이거나 고위 공직자의 부인 혹은 자녀, 부유층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반인은 책을 살 돈도 없거니와 구할 수 조차 없었기에 그들의 입장은 이 책에 담겨있지는 않다. 당시의 시대상으로 ‘여성’이란 아이들을 양육하고 살림을 꾸려나가며 남편이 편안하도록 돌보는 사람이었다.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 안에서 여성이 지식 활동은 물론 정식으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가정에 대한 책임을 소흘히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독서는 여성을 망상으로 빠져들게 하는 요소이며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는 결론이 ‘남성’들에 의해 내려졌다. 참으로 어이없는 결론인 것이다.
시간이 흘러 여성 교육의 필요성이 확대되었을 때에도 책의 선별은 집안의 가장, 혹은 남성들의 몫이었다. 어쨌거나 여성은 가사일을 해야 했기에 책도 온통 가사와 관련된 내용이었고, 여성이 배운다는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나마 가사에 필요한 기술 이외의 지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수녀원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녀원은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한국 속담 역시도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한 문구이다.
16세기부터는 책을 읽는 여성의 초상화에 당대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 이전까지는 성녀나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여러 가지 목적을 띠고 책 읽는 여인의 그림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주로 그림의 기증자, 안주인, 미술가, 여가를 즐기는 여성, 어머니처럼 당시 여성이 수행했던 사회적 역할을 보여준다. 어쨌거나 아직까지도 사회적 지도층에 국한되어있다.
17세기부터 네덜란드에서 독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전 유럽의 지식인, 작가, 과학자들이 네덜란드로 몰려들어 도서 인쇄의 중심지가 되면서 여성들도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평등주의 사상에 따라 딸들도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18세기에 들어서 프랑스에서는 계몽사상이 일어났고, 결국 계몽사상은 여성의 지적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유한 귀족 출신의 여인들이 주도했던 ‘살롱’이 탄생한 것이다.
살롱은 여성의 독서문화에도 영향을 끼쳤고, 로코코 시대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 당시의 명화를 보면 독서를 위해 만들어진 가구와 장식품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독서 활동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도서 시장에서의 여성 작가는 여전히 홀대 당했다. 특히나 성역할에 대한 관념이 뚜렷히 나타났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여자아이들을 위한 것이었고, 모험 이야기는 남자아이들에게 주어졌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딸이기에 인형놀이를 했고, 딸이기에 공주 이야기를 들었으며, 늘 집안에서의 놀이를 배워왔던 것 같다. 20세기에도 그랬는데 18세기면 오죽하겠나... 싶다. 21세기인 지금도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알게 모르게 여성의 역할은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어찌되었건 18세기부터는 잡지, 신문, 시, 소설 등 보다 폭넓은 독서 문화가 이루어졌다. 처음부터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한걸 생각하면 울컥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할수록 나아졌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 당시 인상 깊었던 명화는 예술과 사치의 후원자로 소개된 마담 드 퐁파두르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그녀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했던 <바로크-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전에서 만났다. 다른 그림들보다 압도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초상화. 나는 그녀가 들고 있던 책보다도 화려한 드레스와 외형에 시선이 갔다. ‘정말 바로크-로코코 시대는 장식적이구나!’ 느꼈었는데 이 책에도 그녀를 ‘사치의 화신’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중요한건 ‘사치’이기 이전에 그녀가 수천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개인 서재를 소유했고, 문학과 예술을 대단히 사랑했던 후원자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지금의 나의 꿈과도 닮아있기 때문에 더욱 인상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의 지적 능력 개발을 고무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나타났음에도, 남성과 여성의 일은 다르며 남녀 차이는 극복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신념은 19세기 역시도 여전했다. 여권 운동계에 영향력을 미친 울스턴크래프트의 작품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뿐만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 역시 엉뚱하고 무섭다며 부정적인 비판을 받고 경고가 가해졌다. 브론테 자매의 <제인 에어>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작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바로 혹평을 퍼부었다. 제인 오스틴 역시도 마찬가지로 죽고 나서야 이름이 밝혀진 사례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과거에는 일어났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현 시대에 태어난 것에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책의 가격도 더 저렴해지고 독서에 관한 모든 장애를 어느정도 극복하여 즐거움 또는 여가 활동으로 책을 읽는 일이 흔해졌다. 물론 순수하게 지식을 쌓거나 직업을 위해 책을 읽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20세기부터 책 읽는 여인은 이성적인 분석과 예술 실험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또한 여성을 독립된 개인으로 받아들이면서, 여성이 보는 책의 분야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여성은 저술가와 독자로서 당당하게 책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원하는 장르를 원하는 만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마지막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그 ‘희망’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의 내가 쉽게 책을 접하고 읽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새삼 책을 읽는다는 그 자체에 뿌듯함과 긍지를 느낀다.
책의 맨 뒤의 글귀가 하루 종일 머릿속에 떠다닌다.
“그녀가 책장을 연 순간,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고 책은 ‘희망’이 되어 그녀 가슴에 남았다!”
그녀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과거의 여성들인지, 혹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내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이 책을 만났다는 것도 책을 찾은 인연에서 일어났고, 맨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느낀 감정 역시 마음 속 깊이 ‘희망’이란 이름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여성-남성을 떠나 <판도라의 도서관>을 추천해주고 싶다. 과거 여성들이 어떻게 독서문화를 이뤄냈는지. 그 역사적인 과정을 지금의 우리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의 책 읽기 자세와 마음가짐은 큰 변화가 생겼다. 너무 가볍게만 읽으려고 했던 자세를 반성했고, 보다 진실된 마음으로 책을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림을 볼 때에도 그 안에 책이 있는지 없는지도 유심히 찾아보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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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여성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고 그 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물론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글을 읽는 다는 것 자체가 힘을 가지는 것을 의미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훨씬
이 책에서는 여성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고 있다.그렇다. 책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지혜가 있으며 세상이 있고 우주가 있으며 역사가 있다. 가장 위대한 여성시인으로 지금까지도 칭송을 받고있는 '사포'라는 인물은 그녀를 잘 몰랐던 독자에게는 아마 신비한 인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허구가 아닌 실제이고 그녀 자체가 역사이다. 수녀나 귀족들 위주로만 어렵게 글을 읽고 표현할 수 있었던 그 제한적인 시절에서
출판사 <예경>은 미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제 그림을 보는 듯한 화보의 quality로 꽤 유명한 출판사이다. 그런 출판사에서 미술 작품을 통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낸 이 책을 출판하는 것은 우선 미술작품들의 화보들에 대한 quality는 믿고 볼일이었다. 이런 믿음이 없던 사람들이라도 아마도 누구든 이 책을 여는 순간 책을 읽고 있는 어려 여성들의 모습은 마치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흔히 유럽의 여러 museum에 가서 스처지나가듯 봤던 미술작품속에 여성들의 독서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앞으로는 그 어떤 미술작품들도 쉽게 넘어가지 못 할 듯 싶다.
이 책은 한 쪽에는 미술작품을, 또 다른 한 쪽에는 그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과 이야기를 그리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이런 구성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 안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을 나에게 누군가 들려주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여 단숨에 책에 빠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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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오랜 시간 금단의 열매였다. 과거 독서는 귀족들에게 허용된 행위였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독서는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독서가 허용된 시기에도 여성의 독서는 여전히 금단의 열매였다. 이 책 <판도라의 도서관>은 여성의 시각에서 독서의 문화를 살핀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으로 독서의 문화를 보면, 재미난 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성에게 세상 이기는 전략을 전수하는 <여계>
이 책은 히파티아, 반소, 세이 쇼나곤 등의 특출한 여성 작가들을 통해 고대 여성의 독서 문화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반소의 경우다. 반소는 중국 한나라 시절에 <한서>라는 굵직한 역사서를 집필(반표, 반고, 반소 공동 집필)했다.
그리고 여성 교육서 <여계>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과거에는 이 책이 여성에게 순종의 미덕을 가르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이 책이 여성들에게 시댁이나 궁정에서 겪는 난관과 음모를 이기는 세련된 전략을 전수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당시 여성 전략서가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서구 중세에는 여성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은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은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세속의 여성 교육은 르네상스 때 시작되었지만, 오랫동안 여전히 귀족만 접근할 수 있는 호사스러운 혜택으로 여겨졌다.
여성 독서 인구의 증가에 따른 여성 문학과 문학 살롱의 탄생
여성의 독서 문화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 문학'과 '문학 살롱의 탄생'이다. 이것은 여성의 독서 문화와 무척 깊은 관련이 있다. 17세기 여성들이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근대 여성 독자들에게 영합하는 여성 문학의 증가가 최고조에 달했고, 이것은 프랑스의 특징적인 문화 형식인 문학 살롱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여성 문학 중에서도 로맨스 소설은 여성 독서의 영향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교육받은 아내와 딸을 행복에 보탬이 되는 자산으로 여겼는데, <다프니스와 클로에>, <카이레아스와 칼리로에> 같은 사랑과 모험을 다룬 작품이 여성들에게 인기 있었다. 이 작품들은 이를테면 로맨스 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여성 독자는 주로 부유한 계층이었고, 이들에게 독서는 고상한 취미였다. 따라서 독서의 즐거움을 향상하기 위해 우아한 의자 등이 제작되기도 했다. 당시 여성의 독서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는 과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고 여성의 독서가 고상하고 특별한 것으로 다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여성 작가로서 브론테 자매와 제인 오스틴이 겪은 수모
그렇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여성이 증하는 17세기에도 여전히 여성이 자신을 위해 교육을 받는다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은 아직 낯선 개념이었다.
이 책은 브론테 자매나 제인 오스틴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여러 어려움을 잘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은 고전 문학으로 취급되지만, 당시 출판사는 오스틴이 쓴 원고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의 작품은 결국에는 익명으로 자비 출판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어느 숙녀가 쓴"이라는 말이 붙었을 뿐이다. 그가 독자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죽고 나서야 이루어진 일이다.
브론테 자매가 쓴 <제인 에어>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작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다. 작품이 구사하는 언어가 거칠고 공격적이며 선정적이라는 혹평이 나왔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헛웃음이나 한 번 지을 뿐이다.
여배우와 위대한 여가수들이 세계의 무대와 연주회장을 누비며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19세기 후반에나 가서야 여성 작가들도 전업 작가가 되어 문학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세기에나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여성의 독서
여성의 독서는 근대에 이르러서도 천천히 개방되었다. 대다수 여성이 순수하게 지식을 쌓거나 직업을 위한 필요성을 느끼고 책을 읽게 된 것은 20세기에나 들어와서야 가능해진 일이었다. 이전에는 여성이 보는 책을 엄격히 통제했으나, 여성을 점차 독립적인 개인으로 보면서부터 여성이 보는 책의 분야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성이 책을 읽는 것이 고혹적인 활동으로 그려졌던 19세기 그림과는 달리 20세기 그림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더는 없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제 여성의 독서는 더는 지나치게 세련되거나 격식을 갖춘 행위를 떠올리게 하지 않고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여성이 책을 손에 넣기까지 길고도 어려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색다른 매력은 그러한 과정을 도판을 통해 살펴본다는 점이다. 즉 도판을 역사 자료 삼아 내용을 전개한다. 책 속에는 책을 읽는 여성을 그린 수많은 도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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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라는 이름의 뜻은 '모든 것을 받은 여자'라고 했다. 그러나 신이 세상에 내린 이 '여자'가 이름값을 하기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어쩌면 이름값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는지 모른다. '판도라'는 모든 것을 받기를 기다리는 대신 치열하게 쟁취해서 가지고 말았으니.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 [forbidden fruit] 금단의 열매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연상되는 이 마력적인 제목은 한국에 와서 [판도라의 도서관]이 되었다. 누구나 손 쉽게 읽고 싶은 책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엄밀히 말하면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된 일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고위층은 책(지식)을 독점해왔다. 책(지식)은 중하층 계급의 사람들에게는 만져보기도 힘든 물건이었을뿐더러 그들에게는 거의 원천적으로 문자를 해득하고 책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와 여유가 봉쇄되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신분상 상류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독자로서도 저자로서도) 책(지식)으로의 접근이 금지당했다.
인류 최초로 시를 지은 작가는 여성이고 인류 최초로 소설을 지은 작가 역시 여성임을 발견한 순간, 저자 크리스티아네 인만은 아마 책과 단절 당해온 여성의 역사에 의문을 느꼈을 것이다. 어째서 여성으로부터 문학이 출발했음에도 여성은 책으로부터 단절당해야만 했는가. 여성들이 차별을 벗어나 비로소 책과 자유롭게 조우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고위층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책(지식)이 어떻게 전 여성에게 전달되어 왔는가를 추적한 저자는 고리타분할 수 있는 이 역사를 그림과 융합했다. 미술사의 흐름, 책(지식) 전파의 흐름, 여권 신장의 흐름. [판도라의 도서관]은 이 세 갈래의 흐름을 합친 문명의 강이다.
책과 여성 그리고 그들을 담은 그림의 이야기는 내용이 다채롭지만 다소 산만하다. 하지만 재밌다. 시대별 여권과 책 읽는 여성의 위치는 본래 알고 있던 역사적 이해에 더할 것이 없어 별로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 낯익은 역사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그림 속의 여성들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여권 신장을 위해 고군분투한 존경스런 언니들을 만날 수 있다. 히파티아, 메리 드 라 리비에르 맨리,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 판도라에게 금지된 도서관을 열어주기 위해 그들은 그들 자신이 책(지식)에 기록되는 역사가 되어야만 했다. 독자는 저자가 안내하는 명화 속에서 스스로 도서관의 살아있는 책으로 화한 그들의 눈빛과 얼굴을 마주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초상화. 도서관을 선물받은 오늘의 판도라 앞에 남은 금지된 것은 무엇일까? 오늘의 판도라는 무엇을 열기 위해 역사가 되야 할까. 마치 그렇게 묻는 것처럼 그녀의 눈빛은 강하고 단호하다. 이제 무엇을 열기 위해 역사가 되야 할까, 고민하게 만드려고 작정한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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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따뜻한 커피한잔과 행복한 책읽기를 하고 있는 내모습...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풍습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시를 읊고 책을 읽는 모습이 비춰져서인지 여성의 독서에 별도의 제약이 있다는 생각은 크게 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직접적으로 여성의 읽을 수 있는 책종류가 제약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여성입장옹호론자들이 들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혈전을 벌이며 토론을 벌일만한 과거사의 발언들이 다량 적혀있어, 소심하게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며 책장을 넘기고 넘기며 한장한장 읽어내려가던 中. '여성이 책을 읽으면 가정생활과 자녀양육, 남편부양에 소홀해지게 되므로 필요없는 일이라 여겨졌다'라니요... 우리 여성의 지적사고능력은 이제 남성을 앞질러 가고 있다구요!!
오랫동안 여성들의 자유로운 독서활동을 위한 어떠한 투쟁과 노력이 있었는지 살펴보면서 읽어가는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고대 수메르공주였던 최초의 문학작가부터 그리스의 사포, 중국의 반소, 일본의 세이 쇼나곤...등등 시대별, 국가별 인물과 관련된 남겨진 기록들을 토대로 사회 관습을 기록해놓은 모습으로 생활상을 유추해볼 수 있도록 챕터구성을 해놓은것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 많은 학습의욕을 보이면 수녀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과 금속활자와 산업혁명 이전에는 수도원에서 필서를 제작했고, 크기별로 금액을 측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내용도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1640년 인쇄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이 시작된 출판업, 검열의 자유가 있던 네덜란드에서 출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18세기 로코코 시대를 맞이하며 귀족,신흥 브루주아 여성들의 살롱문화가 형성되고 19세기 여성 학교출현과 더불어 글을 배우기 시작하고, 프랑스의 계몽주의 이후 독서의 자유가 마침내 이루어진 결과, 여성의 행복한 독서시간이 시작되었네요
이론만으로만 서술해놓았더라면 딱딱하고 읽어내리기에 힘든 주제였을텐데, 책과 함께 있는 여성의 모습이 드러난 그림이나 조각품과의 조화로운 설명에~ 한결 편안하게 내용을 습득하며 새로운 역사의 단면을 알 수 있게 되었던거 같아요.
더불어 그림속에 읽혀지고 있는 책의 내용까지 설명해주면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책의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있어요.
여전히 남성위주의 사회비중이 크게 차지하고 있는 시점에서 또 다른 관점에서의 색다른 접근이 참신하게 느껴졌어요
왜 우리나라의 허난설헌이나 기록이 남아있는 다른 여성의 내용은 빠졌는지 , 그점이 살짝 아쉽기는 해요
가끔 이렇게 보물같은 책을 만나면 굳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마케팅을 하지 않고도~
#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2012년 독서의 해를 맞이해서 온라인 리서치 기업 '두잇서베이'가 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2011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달 평균독서량에서 64% 이상이 1권 이하를 읽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을 감안하면 한권도 안 읽는 사람의 수도 상당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과거 문자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였고, 그 문자로 쓰여진 책은 귀족이나 집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여자에게 책은 금지된 항목일때가 있었다고 하니, 지금 이렇게 세상의 거의 모든 책들을 읽고 있는 나같은 이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책과 여성의 문화사를 알아보면서 특히, 여성의 독서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과거와 현대에 아우르는 미술작품들을 통해서 알아보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시대별 회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책과 여성을 주제로한 그림들을 통해서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와 분위기, 문화를 분석하면서 여성의 독서 역사를 알려준다.
초창기 여자를 남자의 지배하에 두기위해서 많은 사회가 여성의 책읽기를 금기시했다. 이것은 귀족층의 여성들도 예외는 없었다. 책을 읽기 위한 한 방편으로 수도원이 제안된 걸 보면 그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서양사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도 독서에 많은 제한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모든 이야기들을 볼때 이 책의 제목에 판도라가 붙여진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판도라(Pandora)는 제우스가 헤파이스토스, 아테나, 아프로디테, 헤르메스 등이 각자 자신들이 가진 힘을 불어 넣어 만든 인류 최초의 여자이다. 이런 이유로 판도라(Pandora)라는 의미는 '모든 선물을 받은, 도는 지닌(all-gift 또는 all-giving)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인류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가 책을 읽게 된 역사를 시대별로 회화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에 바로 <판도라의 도서관>이란 의미가 탄생한 듯 하다.
인쇄술이 발달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여성의 독서에 대한 욕구는 점차 현실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책에서 소개된 그림을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양한 자세로 책을 읽는 여성들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시선끝에는 바로 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대별로 권장되던 책의 종류도 다양하고, 선호받은 책도 다양하다. 그리고 각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포즈와 다양한 책읽기를 하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나의 그림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의 독서 역사를 보면 여성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보다 아버지나 남편, 나아가 사회의 규범에 따라 움직여야 했던 여자일때 독서는 여전히 목마른 대상이였고, 탐할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일때였다. 하지만 20세기, 21세기를 넘어 오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수록 여성의 독서 분야에는 제한도 없고, 제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매력적인 그림만큼이나 더 매력적인 독서의 향기에 빠져있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정체된 그림에서 즐거움과 행복이 묻어나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그녀들의 모습에서는 그 어떤 불편함의 움직임도 찾아낼 수가 없다. 오히려 여자들은 자신들의 손에 들린 책에 몰입해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녀들의 기쁨이 나에게까지 전해져 오는 그런 그림들이다. 책읽는 여자에게선 향기가 묻어난다. 뭔가 모르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나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즐거움을 위한 책읽기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에 하는 책이다.
세상은 넓고 읽은 책은 무궁무진하다. 과거 많은 여성들이 읽을 수 없었던 독서에 대한 갈증을 단숨에 해결하는 그 자유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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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이가 할 수 있는 모든것과 가정,학교,사회 더 나아가 국가와의 관계에서 상호보완적으로 얻고 추구 할 수 있는 것들을 당연함으로 여기는 걸 당연시하며 살아왔음에 새삼 놀라움을 자아내게 한 책이 있다. 나의 이런 '당연함', 반대로는 '아둔함'을 일깨워준건 도서 <판도라의 도서관>이다.
이 책을 통해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놓고 가슴엔 영혼을 불어넣는 기본적인 의미를 넘어 '여성'인 내가 현재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에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음이 시대와 나라를 뛰어넘은 모든 선조 여성들의 시대와 남성에 대한 투쟁의 역사이자 '여성'이라는 이름 앞에 붙은 편견과 한계, 억압을 뛰어넘었고 또는 그러고자 노력했던 여성 개인의 역사가 한데 얽히고 설킨 시대와 남성에 의한 허용이자 여성 스스로의 수용의 선물이었다.
문명이 태동한 이래 권력을 쥔 특정한 남성들과 그들의 허락을 받았던 극소수 여성들에게만 주어진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는 각 분야의(문화/예술등등의) 터질듯한 변혁과 그에 따른 시대의 발전 그리고 여성의 지적해방의 욕구가 맞물리면서 결국엔 독립된 개인으로 받아들여진 여성들의 당연함이 되었고 <판도라의 도서관>은 이 흐름을 그림과 함께 집어내며 고난의 책읽기 혹은 사치의 책읽기를 통해 귀족이든 아니든 시대에 스며드는 것조차 힘들었던 여성 역사의 단면도 함께 보여준다.
책의 첫 장을 열고 마지막장을 닫으며
특별히 '시'만 읽고 쓸수 있었던 시대의 여성과 수도원과 수녀회의 주된 일이었던 필사를 통해 책을 읽었던 여성, 여성이 자신을 위해 교육을 받는 다는 것이 터무니 없었던 시절에마저 책을 쓰고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여성, 사치와 여가생활만으로 이용되었던 책읽기의 주체였던 귀족여성, 여성 능력을 개발하자는 분위기가 일었던 개척시대의 희망고문 속 여성, 교육받은 시민의 중요성이 나라의 발전으로 연결되었던 때 책과 함께한 여성들도 그리고 현재 책을 읽고, 책을 쓰는 모든 여성들까지의
그 모든 여성들 "모두"가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책 읽기 민주화의 시작이자 원동력이고 구심점으로써 미래의 책읽기의 자유를 지속시키는 표본들임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과거 여성들의 책읽기가 그러했든 오늘의 여성들의 책 읽기 역시 가장 위대한 여성시인으로 꼽히는 사포의 말처럼 기억되고 회자되어 앞으로의 어느시대의 여성이라도 책 읽기는 끝없이 이어지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도 오늘 책을 읽고 내일 또 책을 읽으며 여성의 책 읽기 자유화에 그리고 그 당연한 권리에 소소한 한 페이지를 장식해 볼 생각이다.
" 내가 이르노니, 훗날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해주리"
사포, 기원전 6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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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5월 늦은 봄. 어느 시골 학교에 여자 아이가 학교 도서실 서가에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이렇게나 많은 책은 처음 봤다는 듯 휘둥그레한 눈으로 말이다. 나무로 된 서가에 책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는 게 내게는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이었고, 신세계임이 틀림이 없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접했던 책이라고는 계몽사 세계위인전 시리즈 60권과 백과사전 10권이 전부였고, 그 책들이 헤지고 닳을 때까지 몇십 번을 읽어 내용을 다 외울지경이었다. 그러던 내게 초등학교 아니 그때의 국민학교 도서실은 너무나도 꿈같은 곳이었다. 읽고 싶은 책들이 마음껏 있고, 내가 보고 싶을 때 언제나 읽을 수 있다는 거, 아마 그때의 환의의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이는 결코 알지 못할것이다. 뭔가 세상을 다 가진 것같고, 뭔가 뿌듯하고, 정말 밥을 안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다는 말을 처음으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책사랑은 서른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책은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내게 영원한 변치 않는 친구이자, 내게 선생님이었고, 인생의 동반자 같은 존재였다. 지금의 내가 있을수 있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가 누구냐는 질문에 나는 거리낌 없이 책이라고 대답할것이다.
아마 말하지 않아도 책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많은 지식을 전해 주었는지, 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즐거음을 얻었는지는 다들 스스로 잘 알지 않을까? 지금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여성인 내가 책을 읽고, 책을 소유하게 된것이 정말로 당연하게 저절로 이루어 진것일까? 사실 한번도 내가 책을 읽으면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여성들이 책을 읽을 권리를 쟁취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 해봤던 적이 없는것같다. 막연히 과거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필사를 해서 책을 만들려면 힘들었겠고,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어야 문화나 예술에 눈을 돌릴테니 부자가 아니라면 책을 못읽었겠구나하는 정도에서 끝이었다.
그러던 차에 내 눈에 들어온 책 <판도라의 도서관>이다. 판도라의 상자라, 제우스가 여자인간 판도라의 탄생을 축하하며 결코 뚜껑을 열지말라고 하며 줬던 상자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판도라가 뚜껑을 열고 그 속에서 온갖 재앙과 재악이 뛰쳐나와 세상에 퍼지고,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그리스 신화의 상자. 아마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가 바로 책이 아니었을까?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독서가 마음과 영혼의 양식이라고 했다. 마음과 영혼의 양식. 그것도 접할수 있어야 마음의 양식이 되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거 아닐까? 과거 수세기 동안 여성의 독서는 금단의 열매였고, 결코 범접할수 없는 하나의 커다란 산과 같았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정 내 남성이 지키고자 했던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여성들이 책을 통해 지식을 얻음으로써, 그들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편협한 시각때문에 독서는 허락 되지 않았고, 허락된다해도 사회, 윤리적 기준에 맞는 영성문학과 종교 문학에 국한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허나, 그런 악 조건 속에서도 여성들은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긋기 시작했다. 세계사에 최초로 기록을 남긴 작가는 여성이었고, 동서 고금을 통틀어 지금까지도 칭송을 받는 서정시인도 여성이었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소설을 쓴 사람도 여성이었다. 여성들은 세계 문학사에만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식을 얻을 권리를, 자신들의 책 읽을 권리를 스스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남성과 맞서 싸우기도 했고, 공립학교를 세워 여성교육에 힘쓰기도 했으며, 그들의 노력의 증거가 바로 우리 눈앞에 들어나지 않는가, 지금 내가 <판도라의 도서관>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4000여년에 걸친 여성의 지식쟁취의 기록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정말이지 여권 신장은 물론이고, 그 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문화사를 한눈에 펼쳐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나, 책 곳곳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역사의 진행에 따라 독서활동이 어떻게 전개 되었고, 다양한 지역과 문화권에서 여성의 지적,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서재에서 금기시 된 책을 읽는 여인들을 그린 동판화 한장. 이 한장에서 벌써 여성들의 지적 호기심이 어느정도인지, 어떻게 그들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해결해왔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이제 여성들이 어떤식으로 자신들의 지식을 영위할 권리들을 찾아 나섰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첫걸음 : 문명이 요람에서 중세까지
고대 세계 문학에서 최초로 이름을 남긴 작가가 누구인줄 아는가? 바로 수메르 세계를 통일했던 아카드 제국의 정복왕 사르곤의 딸 <엔헤두안나>다. 물론 그녀 이전에도 글자들을 적었던 서기들이 있지만, 엔헤두안나는 세계 최초로 설형문자판에 자기의 이름을 적었다고 한다. 달의 신 난나의 고 여사제였던 엔헤두안나는 시와 난나 신 찬가에 능했고, 그 찬가는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가 등장하기 전까지 전무후무한 걸작으로 기록되기 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 귀족 혈통의 여인들은 글을 읽고 쓸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춤과 음악, 노래를 비롯한 예술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금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는 동서 고금을 막론한 서정시인 사포가 있다. 여성의 감정과 경험을 노래했던 사포는 칭송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그리스 사회에서 여성의 자유가 급격히 제한되자 작품이 금지 대상이되고 부도덕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포는 문화의 아이콘이되었고, 모든 시대의 독자를 매혹했다고 한다.
- 이제까지의 모든 서정시인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손꼽히는 사포
어떻게 보면 그리스 시대에 여성이 교육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수도 있는데, 이것은 여권 신장과 결부짓기는 좀 어려운 것같다. 고대 로마 역시 여성에게 교육을 실시했고, 그것은 로마의 자랑이었다고 한다. 교육받은 안내와 딸을 가족의 행복에 보탬이 되는 자산으로 여겼다니. 로마의 모든 여성은 남편의 엄격한 보호를 받았고, 아내가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남편의 신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아내의 역할 이외의 능력의 능력은 인정받을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여성의 교육이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던 듯 하다.
동아시아 그리스 로마와 더불어 지구 반대편 중국에서도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반소라는 중국 최초의 여성 사관(역사가)가 있었다. 그녀는 동한 시대의 사람으로 아버지였던 반표가 시작했던 중국최소의 왕조사였던 < 한서>를 편찬했고, 여성생활의 지침서이자 윤리적 잣대가 되었던 <여계>를 썼다. 반소는 후한 황실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며 궁정 최고위층의 여성을 가르쳤고, 남성즐의 영역이었던 철학과 학문연구에도 몰두해 많은 여인들의 롤모델이 되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교양과 학식을 두로 갖춘 대단한 독서가인 궁녀들의 눈에 띄였는데, 헤이안 시대 중궁 데이시를 모시던 고위급 궁녀, 세이 쇼나곤은 10년동안의 중궁 생활을 바탕으로 <마쿠라노소시>를 썼다. 뛰어난 감수성과 기발한 재치로 유명한 <마쿠라노소시>는 헤이안 시대의 세련된 궁정 생활에 대한 당대 최고의 기록물로 손꼽힌다고 한다. 또한 세이 쇼나곤가 같은 시대를 산 무라사키 시키부는 세계 최초의 소설이라는 <겐지 이야기>를 지었다.
중세유럽 중세 유럽에서 글을 쓰고 읽는 것은 오로지 종교를 위해서만 허락되는 일이었다. 그 당시의 여성 독자들은 대부분 귀족이었고, 지성적으로나 그외의 여러 방면에서 중세는 여성들에게 가혹했다. 교육의 기회는 극히 제한되었고, 중세 여성이 책을 읽는 방법은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 뿐이었다. 중세의 수녀원과 수도원은 종교서적은 물론이고, 과학, 철학, 여타 분야의 책들도 필사해 방대한 규모의 책을 소장하게 되었다.
중세에 다방면에 걸친 학식을 지녔던 여성중 한명이 독일 출신의 빙겐의 힐데 가르트이다. 근는 유럽 최초로 대중을 직접 가르치고 설교한 수녀였다. 독일 전역을 돌며 평생 대중 곁에서 다가가고자 했고, 여러왕과 왕비의 고문으로도 활동했었다.
필사본 제작은 1200년무렵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아서 왕의 전설> <여우 르나르>이야기 등이 유행했다. 1454년 인쇄기가 발명되면서 마르틴 루터는 대중에게 개혁과 혁명 사상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기록물 출판이 점차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이론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도 책을 소유하고 읽을수 있게 된것이다. 여성의 교육기회 역시 많아 졌으며 읽을 거리의 선택의 폭도 넓어지게 되었다.
-책 읽는 마리아 : 대천사 가브리엘이 방안으로 들어오고, 뒤어이 십자가를 진아주 작은 예수의이미지가 빛줄기를 타고드러온다. 눈을 아래로 깔고 책을 읽는 데 몰두한 동정녀 성모마리아는 잠깐이지만 하늘 나라 손님들이 찾아온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같다.
경건과 사치 : 16th~18th Century
이 시기의 책읽는 여성의 초상화에는 당대의 여성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성녀나 전설속의 인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그림의 기증자를, 안주인을, 미술가를, 여가를 즐기는 여성을 그림으로써 그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 등장하고 있는 여성은 사회 지도층이었고, 사회 전체를 볼때 여성의 교육자료와 독서 자료에 대한 접근이 여전히 제한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여성의 초상화에는 성무일 도서가 많이 등장했는데 여전히 여성들의 독서는 종교서가 주를 이루고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디 마가렛 보포트가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한다
튜더 왕조를 세웠던 헨리 7세의 어머니 마가렛 보포트의 초상화에서도 성무일도서를 찾아볼수 있는데, 그녀는 베품을 아낌없이 베풀었고, 영국의 출판인쇄업을 부흥시켰고, 대학의 부교수직도 창설했다. 여성의 학교 입학도 허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 교육기회는 유명무실했고, 귀족 가문의 딸들은 어머니나 여자 친척들로 부터 침선, 실 잣기등의 가사일을 배웠다고 한다.
16세기 전반이 되자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을 통해 잉글랜드의 교육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는 귀족 가문의 딸들에게 고전을 교육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종교개혁의 결과로 교회의 감독을 받던 학교는 문을 닫았고 부유한 상인계급의 학교가 문을 열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재위했던 1558년에서 1603년 사이에 여학생들을 위한 교양 교육이 점차 확대되고, 수많은 소도시에 여학생을 위한 기숙학교가 생겨났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서서히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다. 문화 수준이 높고 부유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에서 두드러졌는데,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궁정인>에서 카스틸리오네는 귀족 집안의 딸들에게 인문학을 교육해야 하며, 소묘와 회화까지 가르쳐야한다고 주장했다. <궁정인>은 '궁정의 예절'과 관련된 예법서였다. 궁정이 아닌 소도시와 농촌의 평범한 집안의 딸들은 공식적으로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귀족 가문의 딸역시 순수한 학문을 추구하려면 수녀원에 들어가야했다. 수녀원이야 말로 여성 교육의 궁극적 수호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귀족 출신 지식인 집단의 계몽 덕분에 르네상스시대의 뛰어난 여성들을 만날수 있었다. 소포니스바 앙구이솔라는 르네상스 시기 최초의 여성 화가로 미켈란젤롤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소녀와 게에 물린 소년>이라는 대표작을 탄생시키는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소포니스바가 초상화 영역에 집중했다면, 라비니아 폰타나는 성공한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고 당대 남성 미술가들과 어깨를 겨루고자 했던 유럽 최초의 여성이었다. 이처럼 16세기 후반에는 재능이 풍부하고 단호한 성격의 여성들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또한 1640년 무렵, 끊임없이 발달한 기술 덕부에 유럽 전역에 도서 인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름 없이 잊혀졌을 많은 작가들이 급성장한 도서 인쇄 추세에 맞춰 작품을 펴낼수 있었다. 그 결과 대중은 다양한 책을 선택할수 잇게 되었고 책값도 저렴해졌다. 17세기에는 초기 여성 독자들에게 영합하는 여성 문학의 증가가 최고조에 달했고, 17세기 말에는 여성 독서 인구는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18세기에 들어서 계몽사상이 프랑스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자, 부르주아지가 사회를 움직이기시작했다. 18세기는 부유한 귀족 출신의 여인들이 주도했던 살롱의 시대였다. 살롱에서는 새로운 책이라면 모두 열정적으로 환영했고, 로코코 실내 장식으로 인해 편안함 속에서 책을 읽는 이상적 환경이 제공되었다. 언뜻보기에 18세기 회화에서 그려진 여성들을 볼때면 독서문화는 당진 감각적인 사치와 귀족적인 여가 생활로만 보여지기 쉽상인데,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17세기 후반 잉글랜드에서 신문이 확고히 자리 잡은 이후 여성작가들, 특히 여성 언론인들은 남성이 지배하는 문학계에서 위태로운 위치를 차지 했다. 그들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여성 독자들에게 알리려 했으나 실패했다. 잉글랜드 보다 사정이야 낫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의 여성 언론인들은 정치 발전에 고무된 이들의 힘을 모아서 기존 제도에 도전했고, 파리 거리로 나서서 가장 억압받는 문맹 여성들, 이를 테면 농민, 세탁부, 매춘부를 상대로 신문을 읽어주었다. 하지만 사회의 급변속에서도 여성의 교육과 직업면에서 여성의 입장은 답보 상태였다.
도서 인쇄는 게속해서 발전하고 확장되었다. 하지만 여성 작가는 소수에 불과했는데, 여성 작가들의 작품 출간이 적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작품을 출간 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업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위대한 작가로 꼽히는 제인 오스틴, <제인에어>의 브론테 자매까지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중세 말부터 18세기 로코코 시대까지 여성의 책 읽는 모습을 담은 이미지는 기도 또는 유혹 또는 어머니와 교사라는 특별한 역할과 관련되었다. 하지만 18세기 말 교육이 기회를 얻었던 여성들로 인해 지식을 쌓으려 책을 읽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이미지가 등장하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도 책을 읽는 독서의 민주화는 갈길이 멀었지만 19세기가 되자 여성들은 점차 글 읽기를 배우고, 읽을 거리도 지속적으로 다양해 졌다.
- 예술과 사치의 후원자 : 마담 드 퐁파두르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로 수천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서재를 소유했고, 문학과 예술을 대단히 사랑했던 후원자였다. 퐁파두르를 숭배했던 프랑수아 부셰는 전형적인 로코코 시대 살롱풍의 긴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그녀를 그렸다.
-목사의 딸 : 창밖으로 정원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여인, 성 제임스 광장 14번지 / 젊은 여자는 책상에 앉아 글 쓰기에 집중하는 중이다. 책이 촘촘히 꽂힌 책장에, 정원을 바라보는 창이 있는 서재는 내과 의사이자 퀘이커교 목사인 토머스 폴 박사의 집이다.
여성, 책을 접하다 : 19th Century
19세기에 책읽는 여성을 그린 작품들은 이전과 사뭇다르다. 이제는 집 안의 사적인공간, 풀과 나무가 우거진 정원, 공공장소, 미술가의 작업실등 다양한 배경에서 책읽는 여인들이 등장하게 된것이다. 이 그림들은 책 읽기와 교육을 무언가 세련되고 고귀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작품 안에 등장하는 책은 가정과 여성의 의무를 벗어난 외적인 관심을 의미하게 된것이다. 책읽기는 상상세계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19세기의 새로운 그림을 통해서 책읽는 여성들이 더 많이 용인 되었고, 또 다양한 책들을 접할수있게 된것이다.
17세기에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여성들이 읽은 책은 주로 성경이엇다. 여성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졌고, 여성의 정규교육은 100년이 후에나 이루어졌다. 18세기 미국혁명의 포화속에서 여성의 지성이 필요함을 달았기 때문이다. 앤 브래드스트리트와 매리 로런슨은 식민지 문학의 첫 세대 여성 작가로 브래드 스트리트의 <최근 미국으로 뛰어온 열 번째 뮤즈>는 미국 여성이 출간한 최초의 책이었다.
아메리카 식민지에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탄 잉글랜드 출신 이민자들에 의해 인쇄술이 전해졌다. 물론 초기 출간작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신앙 서적이 대부분이었다.
애비게일 애덤스, 일라이저 핑크니, 애니스 부디노트 스톡턴 같은 여성지도자들은 여성 교육을 개선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런 여성들은 서신 교환을 통해 대중이 여성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이끌었으며 교육 계발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식민지 시대에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미국 여성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은 필리스 휘틀리였다. 필리스는 서아프리카의 노예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1761년 예닐곱살 밖에 되지 않아 보스턴의 노예 시장에 끌려왔다. 거기서 주인은 존 휘틀리를 만나면서 교육을 받게 되고, 시를 쓰게 된다. 그러다가 존 휘틀리 부부의 사망이후 후원자의 지원없이는 시를 출판할수 없었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 사망하게 된다.
-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미국 여성 시인 필리스 휘틀리
미술에서는 초상화가 미국 혁명 전후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제 책은 여성을 그린 초상화에 자주 등장했다. 책은 부지런한 연구, 교육적 책임 또는 철학적인 명상과 교양을 상징하기에 이른것이다.
신생 미국이 지녔던 개척자 정신, 그리고 여성의 지적 능력 개발을 고무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있었음에도 남성과 여성의 일은 다르며 남녀 차이는 극복되기 어렵다는 일반적 신념은 여전했다. 거기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독서는 상류계급의 일반적 활동이었다.
1800년 무렵 영국 출신 미국 여성의 절반이 알파벳을 읽을 줄알았다. 하지만 이것이 곧바로 독서로 연결되지는 않았는데, <매사추세츠 매거진>,<뉴욕 머큐리>,<미국의 박물관>같은 정기 간행물에 여성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해야한다는 요구가 자주 실렸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급진적이며 명민한 시대를 훨씬 앞서갔던 사상가다. <여성의 권리옹호>라는 논문을 통해서 단순한 여권 신장이 아니라, 당시의 교육 체계 때문에 여성의 능력이 퇴화한다고, 성별 위계질서를 철폐해야한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그녀의 주장이 받아 들여지지는 않았지만말이다.
신생 미합중국은 평등과 민주 체체를 요구 했고 교육받은 시민이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학생과 여학생의 교육 과정은 평등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여성 독자들과 여성 작가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글을 읽고 쓰는 인구가 증가하자 자연스럽게 도서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인쇄기술의 발달로 인쇄물의 가격이 저렴해지고 1847년 미국의 발명가 리처드 호의 고속 회전식 인쇄기는 기술적으로 세련된 인쇄물이 탄생하는 길을 열었다.
기술과 사회,경제면에서 변화가 찾아오면서 여성의 독서와 책에 대한 접근과 통제는 점차 어려워 지기 시작했고,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독서모임이 18세기 말엽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책은 중상 계급 여성의 삶의 일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여배우들과 위대한 여가수들이 세계 무대와 연주회장을 누비며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여성 작가들도 이들처럼 전업작가가 되어 문학계에 중심 역할은 물론이고, 본명으로 작품을 출간하게 되고, 모든 문학 장르에서 다양한 주제에 관해 자신감을 가지고 더이상 여성 독자만을 겨냥하지 않고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여성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책의 가격도 더 저렴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남성들만이 책을 구입할수 있었고, 도서관을 이용할수 있었다.
대다수의 여성이 순수하게 지식을 쌓거나 직업을 위한 필요성을 느끼고 책을 읽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여성의 고등교육역시 20세기가 되어서야 확대되었는데, 많은 대학들이 여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의 여성 해방 속도를 보자면, 미국이 훨씬 빨랐다. 여대생의 숫자만 보더라도 그 차이를 느낄것이다. 미국 대학교에서는 1861~1900년 사이에 대략 1700명의 여성 박사가 배출되었지만, 영국의 여성 박사학위자는 100명에 불과했다.
서양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여성은 교육을 통해 남편에게 어울리는 배우자, 매력적인 안주인, 훌륭한 가사 관리자, 자녀에게는 미덕을 갖춘 모범이 될 준비를 해야했고, 학문을 체계 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이차적인문제였을뿐만 아니라 일부에서는 아예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었다. 여전히 독서는 여성의 정신과 사회적인 책임 면에서 부작용이 우려됐고, 남성의 통제를 받기는 했으나 여성은 점점 더 읽을 거리를 스스로 결정하게 되었다.
-교양미 넘치는 게이샤의 일상 : 화려하게 차려 입은 두명의 게이샤가 <쓰레즈레구사>를 읽고 있다.
- 봄날의 독서 : 클로드 모네의 아내 카미유가 잔디밭에 앉아서 조용히 책에 몰입하고 있다.
-책을 들고 달아나는 여인 : 19세기 후반 독서는 일반화 된 활동이지만, 젊은 여자들이 읽을만한 책은 여전히 부모 또는 남편이 손수 골라주는게 관례였다 이 젊은 여인은 읽어서는 안될 '위험한 소설'을 몰래 빼들고 은신처로 가는것 처럼 보인다.
-19 세기 말의 뮤즈들 : 여러 명의 젊은 여인들이 모여서 책을 읽는 모습을 담은 이작품은 고대 신화에서 비롯된 모티프, 곧 예술과 문학의 뮤즈들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했다.
- 책읽는 아이와 함께 :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메리 커샛의 작품. 어마니와 아 이 사이의 친밀함을 단순한 화면에 설득력있게 표현했다. 이 그림은 아이를 돌보고 가르쳐야 하는 가정내 여성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황홀한 시간 : 화려한 옷을 입고 멋지게 치장한 새넌 부인과 외동딸 키티 모녀가 에흐몬드 해변에서 함께 책을 읽으며 황홀한 시간을 보내는중이다
미술이 된 독서 : 20th Ceontury
20세기에 들어서 책읽는 여인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린 작품들을 보자면, 인물의감정보다는 이성적인 분석과 예술 실험을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화면과 통합되어 집합적으로 또는 보편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에 낯설게 보일지도 모른다.
서구사회에서 점차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보게 되면서 더이상 여성의 독서를 통제할수도 없게 되었다. 결국 여성은 책의 주인이 된것이다. 과거 특정 계층에서 책을 소유하고, 읽었지만 이제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여성들은 더이상 독서가 지나치게 세련되거나 격식을 갖춘 행위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일부로, 여가활동의 일부로 여기게 되었다. 오늘날 여성이 책을 읽는 것은 충격적이거나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냥 당연한 것이다. 소수의 귀족 여성들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던 책이 이제는 여성 자신의 자유의지에 이해 책을 선택하고, 지식을 영위할수 있게 된 것이다. 여성이라는 주체성을 되찾는데 한몫을 한 독서. 독서라는 하나의 도구를 통해서 지난 4000년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잘 알수 있었다. 사회의 규제와 편견, 간섭,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또한번 깨닫는다.
- 쟁취한 여가 : 여인들의 식사 장면을 담고 있는데, 그중 앉아 있는 여인은 책을 읽고 있다. 페르낭 레제에게 여가란 근대적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여가를 근대인들이 '쟁취한 것'으로 여겼다.
-가냘픈 여성 독자 : 야스오 구니요시의 작품에서 혼자 있는 여인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여성 전체를 대표한다. 이 여인은 어쩐지 우울해 보이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또 내향적이며 가냘픈 여성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여성에 대한 개념을 그린다는 건 대단한 가치가 있다. 나의 내면의 감정을 주제에 투사한다는 것이 개별 인물의 외모보다 더 중요하다..... 문제의 내용, 내면에서 고동치는 본질을 파악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시선보다 내면을 외부로 표출하는 데 집중했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현대의 책 읽는 여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오랫동안 미술가로 활동하면서 회화, 조각 , 판화를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미국 팝아트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대상을 확대하고, 단순화하여 낯설게 하기 효과를 거두며, 관람자가 대상을 새롭게 보도록 고무한다.
-개인의 역사 <구원>: : 위트필트 로벨은 이를 테면 건축 폐기물 또는 그밖의 장소에서 온 낡은 판자에 손으로 글니 목탄 소묘와 할인 구매한 중고물품이나 벼룩시장에서 구한 오브제를 결합하는 작품을 만든다. <구원>에서는 낡은 책들이 여러권 쌓여 있는 선반에 그림이 부착되었다. 구원은 독서 혜택을 은유하는 뜻일수도 있다. 문자를 해독하고 책을 읽는 행위는 개인이 누리는 자유이다.
그렇게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읽는데 족히 일주일 이상은 더 걸린듯 하다. 앞쪽에 나뉘어진 서론 부분에 제시되는 이름과 연도, 이런것들이 조금 어려웠던 것같다. 개별적으로 제시되는 그림의 경우는 너무나도관심이 있게 지켜봤고, 조금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까지 했었다. 지금까지 지켜본 여성들의 책 쟁취기는, 뭐랄까 한편의 긴 서사 드라마를 본듯한 느낌이다. 과연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땅에 태어나서 얼마나 많은 투쟁과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통해서 지금 내가 당연시 누리는 것들을 쟁취했을까, 과거 그녀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 당연한것들 조차 당연하지 않았겠지. 처음 학교 도서실에서 많은 책을 봤을때의 그 감동을, 이 책에 등장했던 수많은 여성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아마 앞으로도 나는 수많은 책들을 만나게 될것이고, 또 그책들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삶에 한부분인 책들이 내손에 들어오기 까지 얼마나 힘든 여정을 겪었는지 이제는 조금 알게 됐으니깐, 정말 책 한권을 보더라도 허투루 보는 일이 없어야겠다.
어떤 한권의 책도, 그 책만의 가치가 있으리라, 책의 소중함을, 책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마 앞으로는 정말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수많은 여성들이 문맹에 시달리고 있고, 책을 살서 볼 돈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그 여성들은 책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하겠지. 언젠가 이 지구상에 모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원하는 만큼, 원하는 책을 볼수 있는 그런 날을 꿈꿔본다. 너무나도 당연한 책이, 오늘 따라 정말 새롭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