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벨리니의 최대 걸작 [노르마]
"벨리니의 최대 걸작 [노르마]" 내용보기
이탈리아 19세기 오페라사를 이야기할 때 롯시니와 베르디를 언급한다. 주로 희극적인 오페라를 작곡했던 롯시니(1792-1868)에 비해 베르디(1813-1901)는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활기차고 유머러스한 장면 묘사가 돋보인 롯시니의 [세빌랴의 이발사]는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베르디 유일의 희극 오페라인 [팔스타프]와 함께 희극 오페라의 3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롯시니의
"벨리니의 최대 걸작 [노르마]" 내용보기

 이탈리아 19세기 오페라사를 이야기할 때 롯시니와 베르디를 언급한다. 주로 희극적인 오페라를 작곡했던 롯시니(1792-1868)에 비해 베르디(1813-1901)는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활기차고 유머러스한 장면 묘사가 돋보인 롯시니의 [세빌랴의 이발사]는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베르디 유일의 희극 오페라인 [팔스타프]와 함께 희극 오페라의 3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롯시니의 마지막 오페라인 [윌리엄 텔]은 장중함과 더불어 가장 낭만적인 음악어법을 보여준 오페라로 그는 이후 더 이상의 오페라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낭만적 분위기에 대한 회의감이 작용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롯시니는 말년에 종교적인 음악과 노래, 피아노 작품들만을 작업하였다. 

베르디는 일전에 올린 음반 리뷰에서 언급했듯이 19세기 후반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쓸던 낭만적 분위기에 이끌리지 않았다. 대신 이탈리아 고유의 음악적 독립성을 철두철미하게 지켰고 일관성있는 작품방향을 고수했다. 차츰 그의 음악은 성숙미와 세련미를 더하여 결국 이탈리아 오페라를 세계 최고의 자리로 끌어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낭만 오페라는 롯시니로 끝이 났을까? 그렇지는 않다. 롯시니와 동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작곡가가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기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와 빈첸초 벨리니(1801-1835)였다. 연령상으로 볼 때 10년도 채 차이가 나지 않지만 롯시니는 10대때부터 이미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고 인생 후반기에는 오페라 작업을 하지 않았기에 이 두 작곡가의 작품은 롯시니보다 한 세대 늦은 작품으로 분류된다. 또 도니제티가 40세 즈음에  벨리니는 34세의 나이로 요절을 하고 말았기에 이탈리아 낭만 오페라사를 들여다 볼 때 이 두 사람은 롯시니의 낭만적 전통을 이어받아 베르디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초 무대에 올려지는 빈도수가 적었던 오페라 [노르마]는 작곡가 벨리니가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노르마만은 살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스스로 사랑했던 오페라였다. 벨리니 음악의 특색 중 순수미의 결정이, 단순한 표현력이, 그러면서도 영웅적인 힘찬 기상이 들어간 걸작인 [노르마]는 마리아 칼라스의 무대 연주로 다시 한번 세상에 등장하여 그 명성을 드높이게 되었다.

이 오페라 무대 연주보기가 힘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르마 역을 맡은 가수는 벨 칸토 창법의 명수로 목소리에 재주와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독주 무대에서 무대장악력이 높은 연기력을 갖춘 비극적 배우가 아니면 이 역을 소화할 수 없다는 전제가 붙는다.

둘째 노르마를 뒷빋침할 다른 배역의 가수들 또한 출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명작이 자주 무대에 올려지지 못하는 이유는 다분히 이러한 이유들때문이었다. 배역을 맡은 모든 가수들이 뛰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오페라가 바로 [노르마]이다. 그래서 선택한 음반속의 가수들의 이름은 실로 놀랍다. 현존하는 전설인 베이스 사무엘 레미,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에, 그들이 리처드 보닝과 만났다. 대가들의 총집합이 벨리니의 낭만적 비극 오페라를 최상의 자리에 올려놓은 음반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오페라를 실제 무대에서 만난 적은 없다. 마리아 칼라스, 조안 서덜랜드, 몽세라 카바에, 에디타 그루베로바의 음성으로 종종 듣는 <Casta Diva>는 들을 때마다 감성과 우수의 흔적을 남기는 아리아였다. 북독일 라디오 클래식 음악프로그램에서는 벨 칸토 음악 듣는 시간을 주말마다 편성하여 들려준다.  그 시간에 들려오는 "마리아 칼라스 오마쥬, 카스타 디바"를 부르는 앙겔라 게오르규의 음성을 듣곤 했다. 다른 건 별로여도 오마쥬 카스타 디바의 게오르규는 마리아 칼라스의 이미지를 자아낸다. 실로 놀라울 정도의 느낌! 그래서 오마쥬라고 하지 않았나.


이탈리아 오페라를 별로라고 생각했던 독일의 바그너도 벨리니의 [노르마]만큼은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전설과 신화를 음악적 요소로 삼는 바그너인만큼 켈트신화의 한 부분을 다룬 [노르마]의 줄거리는 그를 사로 잡을 만한 비극적 신화 그 자체였다. 음악적 완성도면에서도 벨리니의 [노르마]는 차후 바그너의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기원전 50년경 로마 공화정 말기, 갈리아 지방으로 드루이드교도들의 숲의 성역이 공간적 배경이다. 갈리아인이라고 하면 역사적으로는 고올족을 말하며 그 영토는 피레네 산맥에서 라인강에 걸쳐, 지금의 벨기에, 프랑스를 비롯하여 독일과 네덜란드 일부, 그리고 스위스의 태반을 포함하는 지역까지 미쳐있었고 갈리아 전쟁의 결과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심 안티 로마를 내세우며 호시탐탐 저항할 기회를 물색하였다. 

여기서 드루이드교란 고대 켈트족의 종교적 믿음을 의미한다. 켈트 다신교는 자칭 스스로를 무어라 부르는 이름은 없었고 그저 로마인들에 의해 이교도라 불렸을 뿐이다. 훗날 켈트 다신교의 사제인 드루이드를 이 종교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삼아 드루이드교라는 이름이 생겼다. "드루"라는 말은 인도유럽어족에서 나무를 뜻하는 어근인 DR/드르에서 파생된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드루이드란 낱말이 나무에 대한 존경에서 생겨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오페라 [노르마]의 1막에서 성역으로 치장된 숲의 중앙에 나무를 베어낸 집회장소가 만들어졌고 떡갈나무 아래 신성한 돌의 재단을 꾸며놓았다. 


드루이드교의 고승이며 지도자인 오르베소의 딸 노르마는 이르민술사원의 여사제이다. 갈리아지구 로마 총독인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져 아이 둘을 낳았으며 종교적 신념을 저버린 적이 있다. 현재 그녀는 폴리오네에게 버림받고 아이들을 숨겨 키우는데 그녀의 자리는 여전히 여사제의 위치이다. 노르마에게 마음이 떠난 폴리오네는 젊은 여승인 이달지자에 매혹되고 이달지자는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노르마에게 고백하는데, 그 상황속에서 노르마는 상대 남자가 누구인 줄 모른다. 같은 부족들의 적인 로마 총독의 무사안일만을 빌며 자신의 사랑을 되찾을 날을 기다리지만 이달지자가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을 떠난 폴리오네인 줄 알게 되자 배신감과 함께 격한 분노를 터뜨린다. 각자의 비극을 향해 치닿는 사랑의 결과는 노르마와 이달지자의 결속력을 높이고 노르마는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신성을 범하고 순결을 잃었으며 조국을 배반한 여자를 신의 이름으로 처형하겠노라며 사람들에게 선언한다. 이달지자의 이름이 나올까 노심초사하는 폴리오네, 하지만 노르마는 그 여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말하며 희생의 제물이 될 준비를 한다. 화형장으로 향하는 노르마, 폴리오네의 냉정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은 폴리오네와 이달지자의 사랑을 묶은 것에 뒤지지 않는다는 강고한 마음을 보이자 폴리오네는 이에 감복한다. 노르마와 동행할 것을 결심하는 폴리오네. 내용상 이거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노르마는 하녀에게 아이를 맡겨두었으니 아버지 오르베소에게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기를 애원한다. 불길에 싸인 회형대에 노르마와 폴리오네는 걸어들어가고 그들의 희생으로 제단과 사원은 정화되었음을 합창하며 비극의 막이 내려진다. 신탁과 신념은 참으로 무섭다.


이 오페라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극적인 아리아 <Casta Diva>를 듣자!

정결한 여신이여! 

노르마 1막에서 여사제의 위엄을 드러내는 아리아이지만 줄거리를 알고 있다면 이 아리아 역시 역설적인 묘사가 아닐런지,

그런 생각도 든다.


마리아 칼라스 1957 실황연주


조안 서덜랜드 

* 오페라 무대연출을 눈여겨 보라. 드루이드교도를 묘사하는 흔적이 두루두루 보인다.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풀을 초승달모양 낫으로 베어내는 등등...






b*******e 2013.02.13. 신고 공감 6 댓글 6